Essay

가끔씩 오래 만나요

삼십 대 내향형 인간이 가까스로 관계를 지켜내는 방법에 대하여. 이건 조금 이기적이지만 솔직한 이야기다.

사이에 문을 하나 두고

내 마음에는 문이 하나 있다. 한번 열기만 하면 속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지만, 너무 단단히 잠겨 있어서 좀처럼 움직이지도 열리지도 않는 커다란 문. 문 옆에는 아주 좁은 틈이 있는데, 첫인상으로 결정한 ‘왠지 그냥 안으로 들여보내고 싶은 사람들’에게만 허용되는 프리패스 통로다. 그 밖에 모든 낯선 사람과 나는 문을 사이에 두고 서 있다.

가끔 누군가 찾아와 노크를 하면 들릴 듯 말 듯 “잠시만요.” 하고는 뭉그적대며 일어난다. 찾아온 이가 내 목소리를 못 듣고 돌아서더라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면 그뿐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지, 하는 아쉬움이 들 때도 있지만 보통은 누가 다녀갔다는 사실조차 금세 잊어버리고 만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혈기 왕성한 중·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려보면 나는 분명 새로운 관계에 적극적이었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생겼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공부 잘하고 밝고 바르고, 심지어 예쁜, 댄스 동아리 부회장이기까지 한 A와 같은 반이 되었다. 우정의 신이 도왔는지 우리는 이름의 초성이 비슷해 출석 번호순으로 짝꿍이 되었고, 글쓰기라는 공통 관심사로 어렵지 않게 친해질 수 있었다. 문학 선생님에게 시를 써 보여준다는 친구를 따라 엉겁결에 시를 습작해 보기도 했다. 점심시간에, 방과 후에 노트를 손에 쥐고 함께 교무실에 찾아간 시간은 지금까지도 학창 시절의 낭만으로 남아 있다(덕분에 생전 처음 교외 백일장에서 금상을 수상했고 진로를 정했다. 고맙다 친구야!). 내심 동경하던 친구와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내 모습도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학기가 끝날 때쯤 우리는 서로 다른 친구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 내 옆자리에 있는 건 B였다. 차분하고 맑은 B 옆에서는 좀 더 깊숙한 곳에 있는 내가 튀어나왔다. 늘 조금 상기되어 있던 목소리에 힘이 빠졌고 더 솔직해졌다. 신경 써야 할 일이 수두룩하던 수험생 시절에도 내 마음속 ‘친구’ 카테고리는 그렇게 열심히 일을 했다. 누군가를 향해 있는 힘껏 문을 열어보기도, 다른 사람의 문 앞을 기웃거리기도 하면서.

다시 생각해 보아도, A는 먼저 다가가고 싶을 만큼 좋은 아이였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A 같은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그때처럼 용기 낼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거다. 애써 쌓아온 관계가 어떤 갈등도 사건도 없이 멀어지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걸,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에 가깝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 나는 거기에 쏟을 에너지를 아껴두기로 했다.

편지 안의 이름들은 어디로

어느 주말, 대청소를 하다가 책장 맨 아래 칸을 묵직하게 지키고 있는 상자를 발견했다. 이게 언제부터 여기 있었지, 먼지를 후후 불고 열어보니 몇 살 때부터 모은 건지도 모를 편지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아무 봉투나 집어 꺼내 보니 제일 친한 친구가 익숙한 글씨로 남긴 생일 축하 카드였고, 연습장을 찢어 쓴 쪽지를 펼쳐 보니 이름도 없이 휘갈겨 쓴 글씨로 “다은아, 다리 좀 풀어”라는 한 줄이 적혀 있었다. 겹겹이 쌓인 낱장의 종이들 속에 얼마나 많은 이름과 추억이 담겨 있을지 몰라도, 현재형인 관계는 열 손가락을 채 접기도 전에 끝날 게 분명했다.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은 늘어간다. 끊어진 연에 미련은 없더라도 그리운 마음은 막지 못해. 잘 지내니? 문득 떠오른 너에게 안부를 묻는다. 잘 지내겠지? 대답을 들을 수 없으니 쓸쓸히 음, 음, 그러려니….

– 선우정아, ‘그러려니’

느닷없이 추억에 잠기고 나니 이런 노래가 떠올랐다. 내가 놓고, 놓쳤고, 놓지도 놓치지도 않았지만 멀어진 사람들의 안부가 궁금했다. 머릿속에 둥둥 떠오른 얼굴들 중에는 웬만해서는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는 나에게 서운함을 내비치던 친구의 얼굴도 있었다.

이상했다. 도대체 왜 연락의 횟수를 우정의 척도로 삼는 건지 어린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마트에 갈 때마다 포인트가 쌓이듯이 자주 연락할수록 사이가 더 돈독해지는 걸까? 일부러 고집을 피우는 게 아니라, 친구에게 연락하는 일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일 년에 몇 번 만날 때가 되면 메시지를 보내고, 그동안 못 한 이야기는 만나서 길게 풀면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건 내가 체득한 ‘인간관계 에너지 소비 조절 방법’ 중 하나였다.

어느 날 메신저 친구 목록을 훑어보다가 옛 친구에게 오랜만에 안부를 묻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때, 누군가의 생일마다 ‘생일 축하해!’ 한 마디씩 하고는 금세 조용해지는 채팅방을 볼 때 문득 깨달았다. 연락을 주고받는 일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들이는 최소한의 노력이었구나. 내가 혼자만의 시간을 지키고 싶어 하는 만큼 그들은 나와의 시간을 바랐을 뿐이었구나. 왜 나만큼 자주 연락하지 않느냐는 일방적인 요구 못지않게,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 네가 이해하라는 태도도 오만이었던 거다.

마음을 채우는 정원

멀어진 친구들에게서 굳이 이유를 찾지 않는 건 대부분 흘러간 채로 두는 편이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곰곰 생각하다가 결국 나 자신을 탓하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도 있지만. 넓음보다는 좁음, 자주보다는 가끔, 촘촘함보다는 느슨함이 나에게 더 잘 맞는다.

아무래도 내 마음의 문 안에는 세심하게 살피고 진심으로 애정을 들일 수 있는 인원수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정원을 대폭 늘리는 건 능력 밖이고, 그들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소리 소문 없이 문밖으로 빠져나가는 사람들은 모른 채 두는 거다.

언젠가는 이런 나를 후회하는 날이 올까? “지금 집이야? 나올래?” 하면 아프다고 거짓말하지 말고 나갈걸, “미안한데 나 오늘 몸이 안 좋아서 못 만날 것 같아.” 하면 몰래 신나 하지만 말고 얼른 다음 약속을 잡을걸, 하고.

사용자의 편의에 따라 자유롭게 연결하고 분리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제품을 모듈형이라고 한다. … 나는 모듈형 인간이 되고 싶은 것 같다. 블록을 조립하듯 마음대로 세상과 연결되고 분리되는 사람. 외톨이가 아닌 채로 혼자일 수 있는 사람. 약속이 취소되면 나는 함께라는 가능성을 가진 채로 기쁘게 혼자가 된다.

– 하현,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나와 마찬가지로 약속이 취소되면 속으로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 이 작가는, 혼자이고 싶지만 혼자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이 마음을 두고 이기적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나에게는 적당한 거리가 꼭 필요하다. 그래야만 나와, 가끔씩 오래 보는 나의 친구들을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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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다은

일러스트레이터 은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