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산책이 내게 말해주는 것들

‘같이 가자, 내 손을 잡아봐.’ 산책은 내게 속삭인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울적한 날, 산책은 나를 보듬어 위로해 주고, 새로운 계획에 가슴 부푼 날엔 머리와 발에 휘파람을 불어넣어 준다. 산책은 동네의 구석구석 숨은 보석을 하나씩 꺼내어 보여주기도 하고, 그 안에 숨은 이야기도 들려준다. 햇살과 나무, 꽃들은 때마다 계절에 맞춘 옷으로 갈아입으며 언제나 산책길의 다정한 동반자가 되어 준다.

몇 시나 되었을까? 이불 속에서 한 팔을 빼내 침대 옆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폰을 더듬어 집었다. 다섯 시 사십오 분. 한밤중같이 깜깜한 새벽 시간이다. ‘조금 더 자도 되겠군.’ 안도하며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머리는 바로 일어나 고요한 적막을 깨라고, 아이들에게 시달리지 않을 새벽 시간을 더 많이 누리라고 속삭이지만, 몸은 좀처럼 이불을 놓아주지 않는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뜨니 여섯 시 십 분이다. 여전히 창밖은 어둡지만, 이젠 슬슬 움직일 시간이 된 것 같다. 두 팔과 다리를 하늘 위로 올리고 동시에 격렬히 털어본다. 혈관 운동에 좋다는 친구의 말에 실천한 지 한 달이 되어간다. 다리를 쭉 펴 엄지발가락을 맞부딪치며 하나, 둘, 백 번까지 센다. 짧은 몸풀기를 하고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는다. 가족들이 깨지 않게 살금살금, 어둠 속에서 옷과 양말을 찾아낸다. 살짝 거실 커튼을 젖혀보니, 노란 불빛이 켜진 앞 동의 몇몇 집이 눈에 띈다. 그 몇몇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으쓱해진다.

새벽 산책의 가장 먼 거리는 침대에서 현관까지다. 추운 겨울에는 이 거리가 시베리아까지 멀어진다. 이 거리를 통과하고 신발 끈을 단단히 동여매는 순간, 본격적인 산책이 시작된다. ‘오늘은 어느 쪽으로 갈까?’ 잠깐 고민에 빠진다. 직진하면 시원한 물줄기를 볼 수 있는 탄천, 왼쪽으로 가면 나지막한 불곡산, 오른쪽으로 꺾어져 걸어가면 고급 빌라들이 있는 동네가 나온다. 몸 상태가 개운하지 않거나 잠시만 걷고 싶다면 아파트 단지 안의 산책로를 걷는 것으로 만족하기도 한다.

다리는 어느새 나를 주택가로 이끈다. 녹지가 많고 시원시원 큰 주택들이 많은 이 동네의 빌라 단지를 걷고 있노라니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서울 혜화동, 성북동의 전경이 오버랩 된다. 오래된 주택들이 밀집한 그 동네 골목에는 집 앞 골목을 열심히 쓸어주시는 부지런한 어르신들이 있었다. 여름철에는 러닝셔츠 바람으로 집 앞만이 아니라 골목이 끝나는 지점까지 쓸어주셨다. 덕분에 매일 아침 깔끔한 길을 걷는구나 하고 감사하며 아침 산책을 시작하곤 했다.

아침 시간의 싸한 공기는 걸음을 걷고 있으면서도 몽롱한 정신을 얼음장 깨듯 깨워주었다. 살얼음이 스르르 녹아 물로 변해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몸을 생동감 있게 변화시켰다. 겨울 산책이 도전, 인내 같은 어려운 주제의 시험이라면, 봄, 여름, 가을의 산책은 즐거운 휴식과도 같다. 빨강머리 앤이 ‘환희의 길’이라 환호했던 하얀 레이스를 입은 벚꽃나무 길, 따스한 바람, 푸릇푸릇 피어나는 연둣빛 새싹, 황홀한 붉은색으로 물든 단풍, 수형 자체가 작품이 되어버리는 큰 나무들, 거친 회색 시멘트벽을 감싸주는 담쟁이넝쿨, 누군가 소중히 키우는 골목길의 화단 풍경 등 산책길에 ‘자연’ 친구들을 늘 만났기 때문이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함께 눈에 쏘옥 들어오는 것은 낡고 오래된 풍경이었다.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집들은 주름살 짙은 노인의 얼굴처럼 많은 이야기를 담은 듯했다. 동네의 골목 산책을 즐겨 하다 보니 참으로 다양한 집들을 마주 해왔다. 그들에겐 자신만의 개성이 있고, 이야기가 있었다.

산책의 즐거움과 옛것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해준 동네를 뒤로하고, 남편의 직장 이전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 후 텅 빈 마음을 채워준 것은 다름 아닌 탄천의 징검다리다. 수년 전, 충북 진천에 있는 농다리를 건너다 바위틈에서 기어 올라오는 물뱀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바위에서 떨어질 뻔했다. 그 강렬한 기억이 다시 솟아날까 걱정이 되었지만, 주먹을 꽉 쥐고 용기를 내어 건너본다. 널찍하고 잘생긴 바위 위에 올라서면 이곳이 신도시가 아니라 아주 멀고 아름다운 시골로 공간 이동을 한 것 같다. 징검다리와 함께 청둥오리 녀석들 또한 산책에 양념을 솔솔 뿌려준다. 한번은 탄천 산책길을 걷다 묘한 시선을 느낀 적이 있었다. ‘저건 거북이?’ 믿을 수가 없어 눈을 한참이나 비비고 다시 보았다. 바위 위에 거북이 한 마리가 따사로운 햇살을 한가로이 쬐고 있었다. 이 기묘한 풍경을 알아채는 이가 나 말고 또 있을까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그 거북이를 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바삐 걸어갈 뿐이었다. 내 눈에만 보였던 것일까? 그런 신비한 풍경들이 나를 이끌고, 매일매일이 새롭다.

뜻하지 않은 산책 동지가 생길 때도 있다. 나보다도 먼저 일어난 큰아이가 나를 깨운 날이 있었다. “엄마 우리 산책 갈까?” 같이 나가자는 아들의 속삭임보다 더 달콤한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래, 일곱 시만 되도 사람들이 많이 나오니까 우리 후딱 산책하러 나가자.”

언제 이렇게 컸을까? 작디작았던 아이의 손이 성인 남자의 손을 잡은 양 두툼하고 묵직했다. 6학년이 되자 말수가 적어지고 손잡기를 꺼려 하는 아이였는데, 그날만큼은 집 현관부터 돌아오는 순간까지 한 번도 손을 놓지 않고 걸었다. 아들과 함께한 산책은 이사 와 전학으로 힘들었던 두 마음을 같이 위로해 주고, 단단히 묶어 주었다.

그날 아침, 산책길에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지금은 가물거려 잘 생각나지 않는다. 소소한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하던 기억이 흐릿하다. 혼자 하는 산책에 익숙했고, 산책의 곁에 누군가를 잘 두지 않았지만, 둘이 하는 산책의 즐거움 또한 매우 크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긴 겨울잠을 깨고 따사로운 봄을 맛보러 나온 동굴 안의 곰처럼 이날부터 다시 아침마다 운동화 끈을 동여매게 되었다. 계절은 돌고 돌아 다시 봄이 찾아왔다. 미로 찾기처럼 또 만나게 되는 골목과, 오래되고 낡은 집들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대신 30여 년 가까이 된 아파트들과, 그 세월을 함께한 굵직굵직한 나무들, 시원한 탄천의 물줄기가 나를 맞아준다. 예비 중학생이 된 아들은 예전처럼 같이 나가자며 속삭이지 않는다. 그래도 외롭지 않다. 산책길에 만나는 무수히 많은 내 안의 나와 만나기도 바쁘니까. 산책은 여전히 상상의 날개, 긴 호흡, 맘껏 슬퍼하고 기뻐할 수 있는 자유, 계절의 신비, 걷는 즐거움, 그리고 눈에 담을 수 있는 갖가지 풍경을 원할 때마다 다채롭게 선물해 준다. 파릇파릇 꿈틀대며 기지개를 켜는 새싹과 따듯한 바람, 향기로운 봄 내음이 함께하는 산책길에 ‘오늘은 또 무엇을 담아볼까.’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타박타박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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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다은

글·사진 손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