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길에서 타투아티스트 노보를 본 적이 있다. 이미 잡지나 텔레비전을 통해 자주 봐서 그가 얼마나 주목받는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꼭 어떤 매체에서 그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고 해도 나는 그가 타투와 얽혀있는 사람임을 알아봤을 것이다. 그의 온몸에는 빼곡하게 타투가 채워져 있었다. 온몸으로 “나는 타투를 좋아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많은 타투를 가진 사람을 처음 봤는데, 신기하거나 멋지거나 무섭기보다는 의문이 하나 생겼다. 그에게도 도화지처럼 하얀 속살이 있었을 텐데, 무엇이 그의 몸 전체를 타투로 채워지게 만든 것일까?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
타투아티스트 노보(강정은, 33)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했을 때, ‘타투는 너무 센 주제가 아니냐’는 얘기를 들었다. 타투라는 말 자체가 거칠게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보의 작업을 보고 나는 생각이 달라졌다. 그의 타투는 어릴 적 사인펜으로 몸에 그리던 낙서처럼 귀여웠고 다정했다. “친구의 소개로 <노보Novo>라는 영화를 보고 지금의 제 이름을 얻게 되었어요. 마지막 장면, 자막에 ‘노보,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이라는 말이 나왔거든요. 그게 너무 좋아서 프랑스에서 살 때부터 노보라는 이름을 쓰고 있어요.
부모님이 주신 강정은, 그리고 ‘이름 밑에 또 다른 이름(그는 불어로 surnom이라는 표현을 썼다.)’을 둔 거죠.” 영화를 통해 만나게 된 한 단어가 그를 동심으로 이끌어 주는 끈이 된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염두에 두고 지내서인지 그에게선 종종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서른세 살이라는 나이를 잊게 될 정도의 맑고 순수한 마음이 분명 작업에도 담겨있을 것이다. 타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작업은 한결같은 느낌을 갖고 있다. 누가 봐도 ‘아, 노보의 타투구나’라고 알 수 있도록.
불편한 억압
그가 타투를 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억압이었다. 어릴 적부터 무엇이든 ‘안 돼’라고 말하는 어른들에게 받은 상처가 그를 움직이게 했다. 규제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면 혼이 나거나 이상한 아이 취급을 받았다. 그는 교육이 자신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도 못한 채 학창시절이 허무하게 흘러갔다고 말했다. 한 번이라도 누군가 그에게 “안 돼”가 아닌 “왜 그렇게 해?”라고 이유를 물었더라면 지금의 노보는 없었을 거라고 말하는데, 나는 안도했다. 만약 그 안에 쌓여있던 억눌림이 없었더라면 아직도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타투는 오해와 편견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타투는 반어법적인 하나의 표현이었어요. 잡지를 보다가 타투를 한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들이 전혀 나쁜 사람 같지 않은데 타투를 갖고 있는 거예요. 타투는 나쁜 것이라고 배웠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꼈죠. 편견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분명 사람들이 마음 한구석 불편하게 여기지만 문화의 차이일 뿐,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잖아요. 타투는 누군가를 해치거나 힘들게 하지 않아요. ‘두들겨 새기다’는 뜻을 가지고서 오랜 역사를 지켜온,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문화입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르지만 아직까지도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상처로 만든 상처
그에게서 타투를 부탁한 사람 대부분은 ‘치유’를 받았다고 말했다. 상처를 내서 그 안에 염료를 넣는 고통스러운 과정에서 치유를 느꼈다니. 사람들이 받은 위안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타투를 새기기 전에 주고받는 이야기들이 작업 자체보다 더 값지다고 생각해요. 물론 상대의 최종목표는 무엇인가를 새기는 것이겠죠. 하지만 제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과정이에요. 여러 작업을 통해 남긴 결과물은 다양하지만, 제 머릿속에서 일어난 상상과 의뢰인이 스스로 끌어내는 것은 분명히 다르더라고요. 기술을 가진 사람으로서 도와줄 뿐 모든 생각과 결정은 제 앞에 있는 사람이 하는 거예요. 결국, 받는 사람을 위한 시간이잖아요. 몸에 지니고 살아갈 사람도 상대고요.”
나를 대하는 태도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예의 바른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작업실에 들어선 순간부터 나갈 때까지 그는 나와 나누는 대화에서 멀어지지 않았다. 질문을 던지러 간 사람은 나인데, 내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질 정도로 그는 열심히 들으며 대화를 만들어 갔다. 타투를 받는 사람의 이야기를 얼마나 진지하게 들을지는 안 봐도 훤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대쪽 같은 원칙이 있다. “대신 저는 무례하게 다가오는 이들과는 함께 작업하지 않아요. 자신의 몸에 평생 남게 될 흔적을 새기러 오는 거잖아요. 다짜고짜 ‘그거 얼마예요?’, ‘이거 요즘 유행인데 똑같이 해주세요’같은 말로 신중하지 않은 태도를 보이면, 정중히 거절합니다. 그건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예요.”
영원보다 중요한 것
사람들이 타투를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영원하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반대로 누군가는 그런 점에 매료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으로 타투와 영원의 관계에 대해 물었는데, 노보의 대답은 조금 의외였다. “타투는 영원할 것 같지만, 사실 나이를 먹으면서 그 모양도 변하고 죽을 땐 사람의 육체와 함께 없어져요. 내 삶이 끝날 때 함께 지워진다면 그건 영원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닐 것 같아요. 영원함에 관한 얘기보다 중요한 것은 타투를 받는 사람의 책임감이라고 생각해요. 유행하고 있는 그림을 똑같이 새기거나, 어린 나이에 타투를 새기는 것은 사실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누가 어떤 것을 남기든 그것에 책임을 질 수 있으면 괜찮아요.
흔히들 ‘타투 새기면 할머니 돼서 어떡해요?’라고 묻는데, 삶에서 정말 후회할 일이 타투 뿐일까요? 할머니가 되어서 할아버지를 만난 일은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굳이 타투가 아니어도 후회할 일들은 세상에 너무 많아요. 하지만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일이든 영원하다는 점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좋아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면 오히려 많은 것을 놓치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의 변하지 않는 생각이 그 어떤 것보다 오래가는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사람의 마음에 숨어서 죽을 때까지 드러나지 않는 편견 같은 것. 우리 모두의 마음에 있는 바로 그것이다.
엄마를 새기다
노보의 말처럼 타투가 책임이라면, 그의 몸엔 책임지고 싶은 일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의미가 있는 타투를 물었을 때,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이전까지 막힘 없이 술술 대답을 해주다가 그 질문이 나오자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지금 딱 떠오르는 것은 숫자예요. 어머니에 대한 숫자. 제가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저는 어머니를 많이 닮았고, 그분에게 너무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아직도 실감 나지 않을 때가 많아요. MOTHER의 M은 알파벳의 13번째예요. 그래서 13과 어머니가 좋아하던 개구리를 새겼고요.
무릎, 허리, 허벅지에 어머니의 흔적을 남겼어요. 작업실에 마리아상이나 십자가를 뒀는데,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천주교도냐고 물어요. 예전엔 ‘그러려고요. 그러고 싶어요.’라는 대답을 했는데 요즘은 그냥 ‘그렇다.’고 답해요. 성당을 나가진 않지만, 어머니가 바라본 천주교를 그저 받아들인 것 같아요. 마리아상을 보면서 어머니를 떠올리고요.” 괜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다. 인터뷰에 집중할 수 없게 눈에 자꾸 눈물이 찼다. 대답하던 그도 몇 번이나 말을 끊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느끼면서 선택하는 삶
그의 작업실은 창덕궁 옆의 고즈넉한 골목 끝에 있다. 잡지나 텔레비전에서 보는 모습으로 유추하자면, 그는 화려한 사람이어야 했다. 도시적인 삶이 익숙한 사람일 거라고 넘겨짚은 것이다.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 것인지 제대로 느끼지 않고 사는 건 너무 슬픈 일 같아요. 무조건적인 편리, 허세, 보이는데 치우친 거죠. 비싼 차, 넓은 집, 역세권, 한강 아래에서 삶을 유지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라면 사는 게 너무 단순하잖아요. 중요한 것들이 분명 더 있을 텐데. 가령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집보다는 역에서 우리 집으로 가는 길에 내가 좋아하는 나무가 있다거나 돌길이 예쁘다거나 하면 더 좋지 않을까요.”
그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저녁 시간에는 파티보다는 가족들과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해서, 부득이하게 바깥에 나가야 한다면 하루로 몰아서 일정을 잡는다고 한다. “한강에서 수요일마다 달리기를 해요. 어떻게 보면 제 일보다 더 좋아하는 일이죠. 내 몸을 내가 아끼지 않으면 언젠가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말이 있어요. 일이 너무 많아 쉴 틈이 없을 때가 있는데, 달릴 때만큼은 자신에게 집중하게 돼요. 그러다 멈춰서 한강을 바라보면, 어느새 또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죠. 달리면서 봐야 그 자체로 다가와요. 한강, 참 예쁘죠.”
『노보앤유NOVO&YOU』 노보앤유 지음 / 서커스보이밴드 노보와 그의 아내 YOU(김유림)가 함께 만든 책이다. 노보가 타투를 소재로 새긴 작업물들을 아내인 유가 사진으로 담았다. 이 책은 한 권으로 끝나지 않을 예정이다. 아직 서투른 타투 문화가 자리매김 할 때까지 책을 내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노보는 말했다. 그의 아들 바하가 어른이 되었을 때, 적어도 지금보다는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이 귀에 남는다. 바하가 노보의 나이가 되었을 땐 이 책이 많은 타투 아티스트 새싹들의 입문서로 쓰이면 좋을 것 같다.
타투 작업에 대한 문의 novoing@gmail.com 노보와 함께 타투 작업을 하고 싶다면, ‘인사, 이름, 본인 소개, 생각하고 있는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고 예의있게 적어서 메일로 보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