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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엄마표 영어’
거창한 목표나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사교육과 공교육이 모두 부재한 상황 속에서 시작된 ‘엄마표 영어’. 아이의 영어 교육을 엄마표라는 이름을 달고 시작하고 진행하게 된 처음은 그러했다. 첫걸음이 제일 어렵고 그 뒤로 아이와 엄마가 걸어가야 할 걸음의 방향과 속도는 모두 아이에게 맞추면 된다.
엄마표 영어를 마음먹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단계가 있다. 바로 ‘미디어의 통제’. 이 단계를 얼마나 잘 극복하고 적응시키냐에 따라서 엄마표 영어 시작의 수월함이 달라진다. 한글로 보던 만화 영상을 비롯해 유튜브 영상, 핸드폰 게임 등에 적응이 된 아이들일수록 한 번에 끊어내는 엄마의 결심과 아이들의 성화에도 흔들리지 않을 의지가 필요하다. 하루에 조금씩 줄여가는 것 말고 한 번에 끊는 방법을 추천한다. 다만 예상하는 시간보다 더 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적어도 한 달은 원래 시청해오던 미디어를 끊는 거다. 엄마표 영어 교육에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어 흘려듣기로 이어지는 중요한 단계이니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통제 가능한 미디어 노출 환경 만들면 좋겠다. 미디어나 게임을 한 번이라도 접해본 아이들은 갑자기 변한 상황에 반발도 하고 떼도 쓰겠지만 영어 영상을 즐겁게 접할 수 있는 밑 작업이 되어 줄 것이다. 미디어를 통제하고 나서 보여주는 영어 영상은 아이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가 될 테니. 우리 집의 엄마표 영어가 기간에 비해 좋은 성과를 내면서 순항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바로 미디어의 통제였다. 가장 처음 맞이할 큰 고비인데 이 고비를 넘으면 아이들이 영어와 한결 더 친해질 수 있다. 사실 엄마표 영어의 팔 할은 엄마의 인내심이다.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게 티브이에서 나오는 만화영화를 좋아하고, 또래 아이들이 나와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여주는 유튜브 채널을 좋아하고, 게임을 좋아하던 우리집 아이들. 미디어를 통제하고 줄이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영어 건 중국어 건 일본어 건 뭔가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할 무렵에 쉽고 재미있는 영어 영상들을 보여주면서 집안 어디서든 영어 말소리가 들리게 했다. 조금 냉정하다 싶지만 한글 영상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이거라도 볼래, 그냥 아무것도 안 볼래?’라는 약간 치사한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 처음에는 뾰로통한 얼굴로 울며 겨자 먹기로 보던 영상들을 지금은 너무 즐겁게 보고 있다. 영어로 쉬운 만화, 좋아하는 만화부터 보여주고 한글 자막 없이 보여줬다. 영어 영상을 볼 때 주로 많이 이용하는 건 넷플릭스. 키즈 프로필을 하나 지정해서 뽀로로처럼 쉽지만 아이들이 친숙해할 만화부터 보여줬다. 영상뿐만 아니라 영어 음원이나 노래도 온종일 틀어놓았다. 정말 집 안 어디서든 항상 영어가 흘러나오게, 말 그대로 ‘흘려듣기’이니 아이들이 듣든 안 듣든 상관하지 않고 최대한 많은 노출이 되도록, 영어가 낯설지 않도록 해주면 좋다. 탭이나 스마트폰으로 넷플릭스를 재생하고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한 다음 소리만 틀어놓는 방법도 아주 유용하다.
보통 엄마표 영어를 한다고 하면 먼저 책이나 학습서부터 알아보곤 하는데,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아이에게는 바로 책 읽기로 들어가거나 문제 풀이를 하는 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엄마표 영어의 시작은 쉬워야 하고, 재미있어야 한다. 처음 본 낯선 친구와 바로 손잡고 놀이공원에 놀러 갈 수 없듯이 자연스레 자주 보고 듣고 하면서 충분히 친해지도록 해주는 게 중요하다.
Books
아이들이 흘려듣기에 적응이 되고 영어 책 읽기를 시작할 때 처음으로 읽는 책들이 ‘리더스’라고 불리는 책들이다. 말 그대로 읽기 연습을 위한 책을 읽으면서 그림책도 곁들여 주면 좋다. 사용하는 어휘와 표현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함께 보여주면 좋을 리더스 책과 그림책을 모아보았다.
1 ORT(Oxford Reading Tree)
글·그림 옥스퍼드대학출판부 | 인북스
아마도 엄마표 영어의 리더스를 논할 때 가장 추천이 많은 책이 ORT(Oxford Reading Tree)일 것이다. 아주 쉬운 0점대 단계부터 얼리 챕터 북 수준의 12단계까지 있는 리더스북으로, 재미있고 유머러스한 반전이 있는 스토리 덕에 아이들이 이제껏 가장 좋아하고 재미있어 했던 리더스 책이다.
2 An Elephant & Piggie Series
글·그림 Mo Willems | HyperionBooksforChildren
모 윌렘스는 아이들에게 정말 사랑받는 작가다. 영어 문장을 다 읽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보고 재미를 알아챌 수 있는 그림책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An Elephant & Piggie 시리즈는 어렵지 않은 내용에 책 읽기를 시작한 친구들도 충분히 그림을 보면서 즐겁게 읽을 만한 책이어서 항상 추천한다.
3 Pigeon Series
글·그림 Mo Willems | Walker Books
모 윌렘스 작가의 책들은 영어를 잘 모르는 아이들도 아주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유튜브에 검색해 보면 아주 맛깔스럽게 읽어주는 채널들이 많이 있으니 잘 활용해 보자. 실제로 알파벳도 모르던 둘째가 일곱 살 때 이 시리즈의 재미에 푹 빠져서 듣고, 보고, 결국 외워서 이 책을 다 읽었다.
4 Little Criter(I Can Read My First 단계)
글·그림 Mercer Mayer | HarperCollins
이제 막 읽기를 시작한 아이들을 위한 첫 단계의 책으로 귀엽고 재미있는 이야기의 리틀 크리터 시리즈를 추천한다. 이 시리즈도 리더스와 픽처북 등 구성이 조금 다른데, 처음 읽기를 시작한다면 ‘아이 캔 리드’라는 리더스북 단계에서 나온 책이 좋다.
Programs
요즘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넷플릭스나 유튜브다. 유튜브는 정해진 채널만 시간을 정해 보는 것을 권장한다. 넷플릭스는 우리나라 영상들도 영어 원어로 서비스가 된다. 키즈 채널을 들어가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말이 너무 빠르거나 많지 않은 영상 위주로 먼저 보여주면 좋다. 리틀팍스나 리딩게이트 같은 리딩에 기초한 영상과 음원을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팟캐스트의 여러 채널도 평소 영어를 들려주기에 아주 좋다.
1 Barefoot books
신나는 노래와 율동, 영상으로 책을 즐겨 볼 수 있기 좋은 채널. 유명한 노부영의 싱어롱 라인의 책들이 음원 영상으로 시청할 수 있게 올려져 있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의 노래들로 아이들 귀를 사로잡기 좋고 나중에 책과 연계해서 보여주기에도 좋다.
2 Blippi – Educational Videos for Kids
블리피 선생님과 여러 곳으로 견학도 하고 실험도 하는 채널이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가 많고 아이들을 위한 내용이다 보니 사용하는 언어가 쉽고, 걱정할 일이 없는 순하고 바른 쉬운 영어들이다. 실생활 대화체 문장들을 많이 접할 수 있고, 유치원 선생님처럼 아이들 눈높이에서 이야기해 주는 채널이라서 아이들의 선호도가 높다.
3 Alphablocks
영어 학원에서 영어 공부를 시작하면 보통 파닉스부터 학습하게 되는데, 평상시 자연스러운 노출로 파닉스의 음가 정도는 집에서 충분히 학습이 가능하다. 영상을 시청하는 것만으로도 파닉스 학습에 많은 효과가 있는 채널이다.
4 Bedtime Explorers
잠자리에서 들려주기 좋은 팟캐스트 채널. 흥미로운 주제들에 대해서 말해주는데 잔잔한 음악과 조용조용하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듣다가 잠들 수 있게 해준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듣는 소리와 하루를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듣는 소리가 영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습관적으로 듣다 보니 요즘은 밤에 오히려 아이들이 먼저 자장가처럼 듣고 잔다고 틀어 달라고 한다. 잔잔한 음악과 목소리로 말해주는 영어 이야기들이라니 잠이 안 올 수 없지 않을까?
에디터 김현지
글·사진 최수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