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glish With Family

엄마표 영어에 닥친 위기

엄마표 영어라는 배가 순항 중이라고 생각할 때쯤 예상치 못한, 혹은 예상했던 폭풍우와 태풍을 만난다. 즐겁고 쉽기만 하다면 어려울 것이 없을 테지만, 경험해 보니 그런 길은 없다. 아이가 즐거운 엄마표 영어라는 목표를 잘 이루어 나가기 위해 폭풍우와 태풍을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아이는 즐겁고 엄마에게는 쉽지 않은 길을 가려면 엄마의 너른 마음과 인내심이 뒷받침되어 줘야 한다.

고비를 마주하다

도엽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표 영어를 시작했다. 교육열이 치열한 동네에서 굉장히 늦은 편이었다. 비교가 시작될 때 엄마 마음이 무너진다고 했었다. 어느 누구는 지금 무슨 책을 읽는다고 하더라, 이번 영어 학원 테스트에서 몇 점이 나왔다고 하더라…. 이런 소리들이 귀에 들리고 주변 아이들의 영어 실력은 이미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섰는데 내 아이는 이제 시작이라니. 이제 리더스를 읽고 있는데 챕터북을 읽고 있다는 친구의 소식을 듣게 되면서부터 내 마음도 함께 무너졌고 아이를 채근했다. 엄마표 영어의 절대 적이라고 했던 조바심이 발동되면서 아이를 다그치고 아이의 현재 성향과 수준에 관계없이 ‘이 정도 하면 이 정도 책을 읽어야 해.’라며 조금씩 더 어려운 책을 보여주고 읽어내라고 요구했었다. 각자 속도가 있는데 그걸 무시하고 주변 시선과 기준에 나와 아이를 맞추려고 하는 순간은 누구나 온다. 엄마표 영어의 좌절과 실패는 여기서부터 시작되고 엄마의 고비가 아이의 고비로 이어지게 된다. 엄마와 재미있게 영상을 보고 책을 보던 영어가 갑자기 어려워지고 엄마의 다그침이 더해진다면 재미가 없어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니 말이다.

아이마다 고비의 순간은 다양하겠지만 공통된 이유는 재미가 없거나, 어렵거나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뉠 것이다. 재미가 없으면 어려워진다. 재미가 있으면 어려워도 해보려고 한다. 그러니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재미’라고 해야겠다. 재미를 못 찾는 것에도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 도엽이의 원인은 한글책과 영어책의 수준차이였다. 영어를 조금 늦게 시작한 터라 한글책으로 200페이지가 넘는 소설도 충분히 읽고 이해하는 아이가 단순한 리더스북이나 얼리챕터북을 읽고 있으니 아이에겐 유치하고 지루했던 모양이다. 한글 독서량으로 영어의 가파른 발전이 있었지만 그 이후로 정체기라고 불리는 때가 온 것이다.

독서가 힘이다

그래서 고비의 순간을 이야기하면서 한글책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실제로 영어 학습에 있어서 ‘한글책이 영어책 멱살을 끌고 올라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두 언어의 책은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엄마표 영어에서 말하는 흘려듣기와 집중듣기 같은 듣기와 책 리딩 방법들은 가만히 살펴보면 사실 한국어 습득 과정과 많이 닮아 있다. 수많은 단어들을 유추하고 문장의 흐름을 이해하고 나아가 책이 가지는 내용의 의미와 이야기의 재미를 찾는 독서를 하는 것이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아이들에게 모국어의 습득 방식과 비슷하게 많은 노출과 시간을 들여 익히게 하는 방법이고 특히나 우리 집에서는 리딩, 책 읽기에 많은 공을 들이고 노력을 하고 있기에 아이의 한국어 수준이 영어 학습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도엽이는 엄마표 영어를 시작한 초등학교 2학년이 된 해에 한글 독서의 수준과 양이 정말 둑이 넘치듯이 터졌다. 이제 와 돌아보면 아이가 짧은 기간에 많은 발전을 할 수 있었던 건, 그 폭발했던 한글책 독서의 시간과 양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한글책은 그림책 수준의 책을 읽고 있는 아이가 영어 챕터북을 읽어낼 수는 없다. 물론 파닉스의 음가를 알아서, 그냥 읽는 법을 알아서 얼추 읽어낼 수는 있겠으나 영어 문장들이 이야기하는 뜻을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간혹 아이 수준에 맞지 않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조건 영어책의 단계도 높여서 읽히는 경우가 많은데 한글책 이상의 영어책을 보여주는 순간 영어책에 관한 흥미와 호감도는 급격하게 떨어질 테다.

엄마표 영어를 하면서 엄마의 인내심과 끈기로 빠지지 않고 해야 하는 게 매일의 루틴을 지키는 일도 있겠으나 아이의 성향과 수준 파악도 중요하고, 동시에 한글책 독서도 꼭 챙겨주어야 한다. 영어책 리딩 할 때 공통적으로 오는 고비들의 해결 방안으로 한글책 열심히 읽기라고 답하곤 한다. 그림책에서 얼리챕터로 넘어갈 때, 그리고 얼리챕터에서 챕터북으로 넘어갈 때 공통적으로 슬럼프라고 하는 마의 구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땐 별 방법이 없고 슬럼프의 고비를 잘 넘어가도록 영어 부담은 잠시 멈추고 한글책 독서를 즐겁게 하는 것이 좋다. 매일 해오던 루틴이 있으니 얼마간 조금 느슨하게 하더라도 우리는 언제나 다시 돌아갈 수 있다. 한동안 한글책에 푹 빠져 지내던 아이가 다시 영어책으로 돌아왔을 때 이전에 힘들어하던 영어책을 훨씬 수월하게 읽었다. 한글책을 즐겁게 많이 읽으며 문장과 단어들의 뉘앙스를 이해하고 유추해 보는 힘으로 슬럼프를 이겨낸 거다. 나는 영어에 대한 흥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재미있는 영어 영상과 함께 영어책 선정에 심혈을 기울였다. 지금 읽는 책들보다 조금 어려울 수는 있지만 재미에 기대어 아이를 이끌어주고 싶어서 그래픽노블을 보여줬다. 만화와 소설이 합쳐진 책으로 적당히 수준이 있고 만화가 함께 섞여 있어서 그 자체로도 아이들이 흥미롭게 볼 수 있다. 어느 한 시리즈에 꽂혀서 그 책만 반복해서 보아도 괜찮다. 재미와 흥미라는 불씨를 꺼트리지 않으려고 부채질을 계속하며 끊임없이 재미있는 책, 수준에 맞는 책을 보여주었다. 지금도 멈추지 않고 계속 찾는 중이고 언젠가 또 마주할 슬럼프들을 대비하는 중이다. 마음에 항상 되뇌는 말은 바로 어느 길로 가든 답은 책과 독서라는 거다.

멀리 내다보는 연습

엄마의 마음가짐을 다스리는 이야기도 해보려 한다. 조급하지 않아야 한다는 건 사실 말이 쉽지 어려운 부분이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가도 금방 다시 돌아서게 된다. 나는 엄마표 영어를 하면서 마주하는 고비들마다 아이의 먼 미래를 생각했다. 우리 집이 엄마표 영어를 하면서 세운 목표가 있다면, 원서로 해리포터를 한글책 읽듯이 재미있게 읽는 순간이다. 그때는 엄마표 영어의 꼬리표를 떼어내고 온전히 아이가 스스로 하는 아이표 영어라는 이름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그 정도가 되면 분명 영어 공부를 학습으로 마주하게 될 수능 준비 기간에(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아이는 훨씬 자유롭게 시간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치열할 아이의 시간들을 지금 많이 벌어주고 싶다. 그래서 그 목표를 두고 영어 공부에 온종일을 할애해야 할 시간을 미리 벌어주기 위해 지금부터 꾸준히 천천히 쌓아간다고 생각한다. 긴 마라톤이라고 생각하면 엄마와 아이 모두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다. 오래가야 하는 마라톤 같은 길이니 중간에 아이가 힘들어하는 순간에 충분한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 도엽이는 하루에 리더스 다섯 권을 듣고 소리 내어 읽다가 힘들어해서 바로 세 권으로 줄였다. 하루에 책을 몇 권 읽는지 보다는 한 권을 읽더라도 재미있게 읽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다. 내가 엄마표 영어를 하는 이유는 아이가 즐겁게 영어를 익히기 위함이니 뛰지 않아도 된다. 걷더라도 결승점에만 도착하면 된다. 큰 목표를 하나 정하고 차근차근 천천히 가되 꾸준히 하면 그날이 오리라 믿으면서.

슬럼프 때 도움이 된 책

Press Start! 시리즈
글 · 그림 Thomas Flintham | Scholastic

실제로 게임 속에 들어가 플레이하는 듯한 이야기의 그래픽노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다 모여 있고, 음원 CD가 함께 세트여서 참 재미있게 듣고 읽었던 시리즈. 음원의 효과음들이 있어서 여덟 살 도아까지 재미있게 읽은 책.

Mighty Robot
글 · 그림 Dav Pilkey | Scholastic

역시나 데브 필케이Dav Pilkey의 인기 시리즈로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로봇이 등장한다. 영어책에서 드물게 보이는 올 컬러 내지로, 줄글 책이지만 페이지에 꽉 찬 컬러감과 삽화들 덕에 애니메이션을 직접 보는 것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다.

Dog Man
글 · 그림 Dan Pilkey | Graphix

아이들이 좋아하는 작가 데브 필케이Dav Pilkey의 책으로 읽으면서 빵빵 터진다. 만화 형식으로 눈앞에 흡사 애니메이션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 효과를 주어 즐겁게 읽는다. 캡틴 언더팬츠는 영상으로도 시청이 가능해서 아이들이 한참을 빠져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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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현지

글·사진 최수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