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해서 더 아름다운 곳

화산의 나라 엘살바도르

위험해서 더 아름다운 곳
화산의 나라
엘살바도르

아메리카 대륙을 한참이나 확대해야 겨우 보이는 생소한 나라, 엘살바도르El Salvador. 나라를 휘청거리게까지 하는 치안문제와 10년 넘게 지속된 내전의 상처로 아직도 많은 이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서 일까? 중미에서 가장 작은 이 나라는 인위적이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한 땅이다. 그래서 조금만 용기를 낸다면, 오랫동안 숨겨진 비밀의 정원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멋진 파도를 떠나지 못하는 서퍼들의 낙원, 화산지대에서 자란 독특한 향의 커피, 중미의 피카소 페르난도 요트Fernando Llort의 고향, 모두 엘살바도르를 두고 하는 말들이다. 

그리고 이곳을 다녀간 많은 이들은 또 이렇게 말한다. 

“여전히 살아 숨쉬는 화산의 나라.”

어린왕자의 화산, 산타 아나 Santa Ana

어린 왕자는 휴화산도 똑같이 청소했다.
화산들은 청소를 잘 해주기만 하면 폭발하지 않고 조용히 규칙적으로 타오른다.

어린 왕자의 장미였던 생택쥐베리의 아내 콘수엘로. 책에 나오는 화산들 역시 콘수엘로가 항상 그리워했던 고향, 엘살바도르의 화산들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현지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후 막연하게 어린 왕자의 화산에 오르고 싶어진 건 어리석은 생각이었을까? 치기 어린 생각으로 시작된 화산 하이킹은 순조로울 리 없었다. 현지 아이들은 거칠고 비탈진 경사면을 제집 드나들듯이 쉽게 뛰어다니는데 나는 두 발을 제대로 뗄 수조차 없었다. 그렇다고 쳐다보기도 힘든 경사면을 다시 내려갈 수도 없어서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천천히 천천히 산을 올랐다. 그렇게 엉거주춤 자세를 낮춰 오르니 조금은 평평한 지대가 나왔고 그제서야 주변의 아름다움에 녹아들 수 있었다.

너무 청명해서 어지러운 하늘이 계속해서 펼쳐졌고 꼭대기에서는 에메랄드 빛 호수가 얼굴을 내비쳤다. 보기 힘들다는 무지개도 만났다. 그런데 팜므파탈 같은 아름다운 호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그만 심드렁해졌다. 생택쥐베리를 향한 치명적인 사랑을 선택한 콘수엘로. 위험해서 더욱 매력적인 산타 아나 화산을 평생 그리워한 그녀의 마음이 보였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의 화산들은 여전히 조용히 규칙적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환태평양 지진대에 위치해 나라의 90% 이상이 화산지형인 엘살바도르. 때로는 사납게 끓어오르는 화산에 피해를 입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농작물을 가꾸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화산 주변을 쉽게 떠나지 않는다. 엘살바도르만의 향 좋은 커피 역시 화산성 토양 덕분이라고 한다.

미소 뒤에 숨겨진 이야기

엘살바도르에서 1년을 보내기로 다짐한 나는 떠나기 전에 쓸데없는 걱정에 사로 잡혔다. 들려오는 수많은 위험한 이야기들과 포털 사이트를 도배한 정보들에 휩싸여 불안한 마음이 커졌던 것이다. 그런 내게 한 친구는, 직접 생활해 보지도 않고서 의심만 하는 나를 다그쳤다. “사람 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라며 위로 아닌 위로도 건넸다. 4개월 남짓 이곳에 머문 지금, 이제서야 친구의 충고가 사무치게 와 닿는다. 내가 가졌던 근심들과는 달리 나는 오히려 이곳에서 치유 받고 있었다. 항상 미소로 맞아주고 밝게 인사하는 엘살바도르 사람들. 그들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가족적이었으며 멋진 자연 속에서 꾸밈 없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들 앞에서 나는 폭 좁은 공감만으로 무언가를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선입견과 편견을 반성하는 시간들이었다. 도심에서의 치열한 생활에 정신적으로 지쳐있었던 나는 이곳에서 점점 여유를 찾았고 이방인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도 배울 수 있었다. 

엘살바도르는 작은 영토와 적은 부존자원 그리고 열강들의 이권다툼에 휘말려 내전을 겪은 점에 있어서 우리나라와 닮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근래에도 화산이 폭발하고 대지진과 홍수도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내전 이후 치안문제도 나빠져 ‘불안한 나라’로 전락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엘살바도르 사람 대부분은 우리가 생각하는 라티노Latino의 이미지와 전혀 다르게 부지런하고 청렴하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자연이 선물한 놀이터

엘살바도르의 화산은 사람들에게 천혜의 놀이터를 제공하기 때문에 하이킹을 즐기려는 이들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특히 화산 꼭대기에 있는 코아테페크Coatepeque 호수는 숨겨진 보석 같은 곳이다. 이웃나라인 과테말라의 아티틀란Atitlan 호수에는 체 게바라가 혁명의 꿈을 접고 정착할 뻔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모르긴 몰라도 체 게바라가 아티틀란 호수가 아닌 이곳 코아테페크 호수에 왔다면 혁명을 접고 정착했을 것이다. 맑은 물 아래에서 노래를 부르며 유유자적 배를 모는 살바도레뇨salvadoreño(엘살바도르 사람을 일컫는 말)들과 뱃놀이를 즐기다 보면 해는 금방 져문다. 물론 제트스키나 스킨스쿠버와 같은 레포츠도 즐길 수 있다.

엘살바도르 서부에 있는 주, 아우아차판Ahuachapan의 산타 테레사Santa Teresa유황 온천 역시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화산 액티비티다. 온천을 사랑하는 일본인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이 온천 주변의 카바나Cabana(주 건물과 분리된 작은 객실)를 사서 온천욕을 몰래 즐긴다는 후문이 있다. 이곳에서는 또, 온천수로 키운 커피의 특별한 맛을 볼 수도 있다. 

하늘이 더 맑아지는 건기가 되면 사람들은 고도로 인해 선선한 날씨를 유지하는 쎄로 베르데Cerro Verde 화산 중턱에 옹기종기 모여 경이롭도록 쏟아지는 별들을 보며 캠핑을 즐기기도 한다.

진부한 진리

7만 명 이라는 희생자를 낸 내전의 상처, 강대국 이민자로서의 서러움, 치안불안정 국가라는 낙인, 자연재해의 아픔, 가난으로 고단한 삶이 있는 곳 엘살바도르. 하지만 이러한 어두운 이면 아래는 언제나 해맑게 웃는 아이들과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자연이 있다. 그리고 진부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것들은 언제나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한다. 

오늘도 아이들은 꾸밈없는 하늘과 화산 그리고 바다를 벗삼아 일찍 일어나 하루를 살아간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엘살바도르에 닿기

엘살바도르는 중미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에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마이애미와 같은 미국 큰 도시에서 오는 비행 편을 이용할 수 있다. 한국에서 올 경우 댈러스Dallas에서 환승하면 대기시간을 줄일 수 있다.

산타 아나Santa Ana, 이살코Izalco, 쎄로 베르데Cerro Verde 등의 화산이 있는 쎄로 베르데 국립 공원은 산살바도르San Salvador에서 67킬로미터 떨어진 손소나테Sonsonate주에 위치한다. 이곳에서 트래킹이나 캠핑을 즐기려 한다면, 버스보다는 렌터카를 추천한다. 자유롭게 일정을 짤 수 있을 뿐 아니라, 근처에 위치한 코아테페크 호수투어나 아우아차판Ahuachapan주의 산타 테레사Santa teresa에서 온천욕을 즐길 수도 있다.

화산 하이킹의 유의해야 할 점은 현지인이 동반한 투어를 미리 예약하여 현지 엘살바도르 경찰과 함께 동행해야 한다는 점. 기초적인 스페인어를 익혀두는 게 좋다. 쎄로 베르데 국립공원의 입장료는 단 돈 1불.

엘살바도르 관광청 www.elsalvador.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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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전진우

글 김예현 사진 김철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