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목욕탕 여행

서울, 목욕탕 여행

과거보다 더 과거로의 여행

올해의 첫 입김은 11월에 시작됐다. 그 까만 밤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하나같이 허공을 향해 입을 벌리고 ‘허- 허-’ 뜨거운 입김을 내보냈다. 하얀 입김을 보니 문득 목욕탕의 풍경이 생각났다. 목욕탕 내부를 뭉게뭉게 가득 채우고 넘쳐서 굴뚝으로까지 새어나오던 하얀 수증기 말이다. 목욕탕 안에, 따뜻한 물에 들어가 가지런히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하얀 등을 내놓고 몸을 반쯤 담근 할아버지들, 그 사이를 철없이 휘젓고 다니는 매끈한 피부의 어린이들. 그런 걸 보고 있는 동안 폭격기라든지, 과학숙제라든지 하는 걸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까? 뭐 있다 하더라도, 그 모습 자체가 평화로운 풍경이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내 경우에는 미사일 대신 나의 어린 시절 과거의 좋은 기억들이 조용히 떠올라, 데워진 몸과 함께 마음이 둥그렇게 된다.

 

나는 정말로 물이 좋다. 그리고 유년의 일부가 이 따뜻한 물에 담겨 있다는 사실도 좋다. 이왕 목욕탕에 관해 이야기가 시작됐으니, 갈 때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오래된 목욕탕을 찾아가봤다. 미리 얘기하자면 이엉뚱한 여행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멀리, 그러니까 과거보다 더 과거로 향하는 여행이 되었다. 물 한방울 없는 목욕탕이 등장하고, 목욕을 마치고 보니 열쇠에 번호가 없어서 당황하게 된다. 십년 전의 목욕탕을 떠올렸는데 70년이나 된 목욕탕에 들어서게 된 나는, 역사적인 유적지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사실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그밖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생겨났다.

현대식 목욕탕에는 확실히 편리함이 있다. 널찍한 규모와 24시간 표를 끊어 주는 사람도 있다. 실용적인 면에서 오래된 목욕탕들은 과연 경쟁력이 있을까.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애초에 접어두었다. 비교 같은 건 제쳐두고, 그저 ‘과거로 떠나볼까’ 하는 생각을 품었다. 그랬더니 내겐 아주 재미있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 일들도 있었지만, 여기엔 굳이 밝히고 싶지 않다.

75년이나 된, 코리아 목욕탕

목욕용품 대신 카메라와 수첩을 들고 찾은 첫 목욕탕은 삼청동에 있는 ‘코리아 목욕탕’이었다. 포털사이트에 오래된 목욕탕이라고만 쳐도 나오는 아주 유명한 곳이다. 일단 이곳은 생긴 지 75년이나 됐고, 벽돌로 된 길고 멋진 굴뚝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의 눈에 띌 수밖에 없다(굴뚝에는 큰 글씨로 코리아목욕탕 이라고 쓰여 있다). 낮은 건물이 즐비한 삼청동에서는 이 굴뚝을 기준삼아 방향을 찾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한다.

유명세를 탄 곳이 으레 그러하듯, 주인아저씨는 나를 대하는 태도에 여유가 잔뜩 배어 있었다. 목욕탕 취재는 처음이라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아저씨는 티백으로 된 녹차를 한잔 내어주고 내게 인사를 건넸다. 그 인사는 실로 대단히 노련한 인사여서 우리는 바로 본론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느정도로 전개가 빨랐냐면, “어이, 어디서 왔나? 이리 와서 앉아. 여기는 75년이나 됐어. 아버지가 시작한 걸 내가 이어받았지.” 하는 것이다. 나로서는 더없이 좋은 상황이었지만, 잠시 동안은 내가 정수기나 보험상품 같은 걸 강매당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나는 벌어진 입을 애써 다물고 녹차를 후후 불어 몇모금 마신 뒤 녹음기를 켰다. 그걸 지켜보던 주인아저씨가 또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대한 내용은 인터넷에 다 나와 있으니까 그걸 찾아보고, 목욕탕에 한번 들어가보자고. 거기 재미있는 게 많아.” 대화의 흐름을 내 쪽으로 가져오는 것을 나는 그때 아예 포기해버렸다. 그렇게 어수룩한 하인처럼 아저씨 뒤를 따라 목욕탕에 들어갔다. 그 안은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사람은커녕 물 한방울 없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그곳은 사실 운영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평소에는 문을 닫아두고, 일요일에 한번씩 열어주는데, 그것도 아무한테나 열어주는 게 아니다. 동네 어르신이 손으로 문을 두드리거나 단체 손님이 있을 때만 자물쇠를 거둔다. 그제야 수도꼭지에서도 물이 나오는 것이다.

너무나 한가한 굴뚝

삼청동이 문화관광지, 소비의 도시가 되면서 주민들은 떠나고 상인들이 잔뜩 들어섰다. 그러다보니 목욕탕에 찾아오던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지 않게 되었고, 결국에는 운영이 불가능해질 정도로 적자가 났다. 지금의 주인아저씨는 이건물이 오래도록 마을의 부동산 역할을 했으면 하는 아버지의 오랜 바람을 묵묵히 지켜주고 있는중이었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목욕탕 안에는 내가 기대한 생기가 없었다. 작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오후의 햇빛이 포근했지만, 그건 사실 묘비에 내려앉는 햇빛처럼 한없이 정적으로 느껴졌다. 관리인의 말끔한 성격 탓인지 샤워기나 바가지도 깨끗하고 주변의 물건들도 가지런했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약간 당황한 나머지 해야 할 일은 잊고 그저 그 공간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너무 멀리 온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목욕탕 사업이 적자이긴 하지만, 다행히 다른 일(같은 건물 2층에서 다이어트센터를 운영하고 있다)이 그럭저럭 잘 되고 있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다고 한다. 

 

목욕탕의 존망이 다이어트센터의 운명에 달렸다고 말하며 허허허, 아저씨는 웃었다. 평소에 ‘코리아목욕탕’ 문은 꽉 닫혀 있지만 삼십 명 정도가 단체로 오면 목욕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너무나 한가한 목욕탕을 보고 있자니, 북적대는 풍경이 잘 상상되질 않는다. 카운터에 트렁크 팬츠를 입은 남자가 앉아서 표를 받고, 말끔하게 기름칠한 헤어스타일의 이발사가 진공관 TV를 보고 있으며, 벌거벗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풍경들 말이다. 내 친구들을 아무리 모아봐도 삼십 명이(그것도 남자로만) 될 리가 없으니, 그런 풍경을 보고 싶다는 건 그저 작은 바람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나는 주인아저씨께 정중히 인사한 뒤 다음 목욕탕으로 이동했다. 그곳 역시 50년이 넘은 곳이었지만 ‘코리아목욕’과 다른점이 있다면, 지금까지도 어떻게든 운영이 된다는 것이다.

상식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종로구 계동, 중앙탕

계동은 한마디로 잘 정돈된 말끔한 골목을 가지고 있었다. 길가엔 쓰레기도 거의 없고,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간판들도 거리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헤치지 않았다. 내가 그곳에 들어설 무렵 서서히 해가 지고 있었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조용히 지나다니며 거리의 분위기에 묘한 생기를 불어넣었는데, 그 모습은 어쩐지 일본의 소도시 같았다. 그 단정한 거리 한 모퉁이에 ‘중앙탕’이 있었다. 그곳이 아주 오래된 장소라는 사실은 건물의 외관을 잠시 바라보기만 해도 알 수가 있다. 그 앞을 지나는 외국관광객들은 유독 좋아하며, 목욕탕을 뒷배경으로 여러장의 사진을 찍었다. 왠지 그런 기분을 대충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반대로 이국에서 내가 그런 식으로 보여진다고 생각하니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왜 아래는 그대로 두는 거야?’

거리의 상황과는 다르게 ‘중앙탕’ 내부에서는 대체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남탕은 2층이어서 나는 티켓을 끊은 후 계단을 올라갔다. 신발을 벗어들고 탈의실로 들어서서 이걸 어디에 둬야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한쪽에서 어떤 남자가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나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단숨에 알아 차렸지만 이후에 발견하는 단서들로 결국 끝없는 혼란에 빠지게 됐다. 한모금씩 느리게 연기를 빨아들이는 그 남자는 내가 보이지 않는지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계속해서 담배를 피워댔다. 다가가 말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 남자는 양말을 신고 흰 러닝셔츠만 입고 있었다. 그러니까 정작 중요한 속옷은 아직 옷장에 있었다. 왠지 접근하고 싶지 않은 복장이었다. 그러는 사이 샤워를 마치고 또다른 남자가 탈의실로 나왔다. 나는 내심 기대했으나, 그 남자는 전혀 담배연기에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몸에 물기를 제거한 뒤 흰 러닝셔츠를 꺼내 입더니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는 게 아닌가. ‘아니 왜 아래는 그대로 두는거야?’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다음 또다른 남자가 등장했다. 이쯤 되면 억지를 부리는 것 같겠지만, 그 남자 역시 흰 러닝셔츠를 꺼내 입고서 거울 앞으로 다가가 면봉으로 귀를 후비는 것이었다. 그들을 번갈아보고 있으면 등번호만 없지, 영락없는 한 팀으로 보였다. 어떤 종목을 다루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전혀 상대하고 싶지 않은 팀이었다.

친절하게 준비된 재떨이와 라이터, ‘한대가 또 한대 불러’

나는 그들에게서 도망치듯 목욕탕 쪽으로 걸어갔다. 벽에는 어이없게 금연에 관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기재된 내용을 자세히 보니 그 또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일단 ‘금연구역, 단속기간, 폐와 간의 손상’에 관해써 있지만, 그 다음 내용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시대흐름에 적응한다’라든지, ‘한대가 또 한대 불러’ 이런 말들을 도대체 왜 적어놓은 걸까? 그런 걸 조합해서 읽고 있자면 왠지 담배가 갑자기 피우고 싶어질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탈의실 한쪽에는 재떨이와 라이터가 친절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원래 사람 사는 세상이 그렇다지만, 이 공간에서 진실을 찾기란 훨씬 어렵게 느껴진다. 나는 그래도 꿋꿋하게 속옷을 갖춰 입고, 담배는 피우지 않았다.

목욕탕 안은 사실 조금 음침한 분위기였다. 모두 구부정한 노인들뿐이고, 온탕은 내게 너무 뜨거워서 전혀 들어갈 수가 없었다. 전체적으로 조명도 어두워서 지하세계에 온 듯한 느낌이다. 몸을 녹이면 좀 나을까 싶어, 샤워기를 틀었는데 온도조절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저 물이 나오게 하는 것과 물이 나오지 않게 하는 단순한 기능만 가능할 뿐이다. 물이 나오게 조작해놓으면 무조건 찬물이 나오기에 다른 선택은 전혀 없었다. 옆 칸으로 이동해도 상황은 같다. 아주 차가운 물 아니면 아주 뜨거운 물, ‘중앙탕’엔 이 두 가지밖에 없다.

몸을 데우지는 못했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다

나는 목욕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왔다. 흰 러닝셔츠 트리오는 아직도 여유롭게 TV를 보거나 캔 음료를 따서 마시고 있었다. 아직 다른 목욕탕 두 군데를 더 찾아가야 하는데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중앙탕’에 대해 좋은 느낌이 한가지 있다면, 그건 아마 건물 입구에 마련해놓은 작은 방에서 30년 동안 일을 한 아저씨 때문일 것이다. 한 시간을 얘기해도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무서운 사람이 있는 반면, 단 몇마디만 나눠도 마음을 열게 되는 부류가 있는데, 그 아저씨는 확실히 후자였다.

 

“나는 사실 옆집에 사는 사람이었어. 그런데 어느날 이 목욕탕 주인아저씨가 돌아가신 거야. 그 아저씨는 항상 여기 앉아서 사람들을 맞았는데, 당장 그 일을 할 사람이 필요했지. 그래서 젊은 내가 이 작은 방에 들어오게 됐는데, 그게 벌써 삼십 년이 되었네. 허허. 그동안 이것저것 배우게 됐어. 이발도 해주고, 어르신들 몸을 내가 닦아주기도 해. 이젠 제법 잘하지. 허허.”

왜 다른 일을 찾지 않았냐고 물어볼까 했지만, 그건 결국 엉성한 질문이 될 게 빤하기에 나는 그대로 그곳을 빠져나왔다. ‘인생은 무엇인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탈리아의 고전영화들이 떠올랐다. 이를테면 <시네마 천국>, <일포스티노> 같은 영화들. ‘중앙탕’에서 실제로 몸을 데우지는 못했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다.

개인 물품함에 적힌 엉뚱함 해방촌, 영수탕

목욕탕 취재의 가장 어려운 점은 촬영의 문제다. 대체로 나는 아무데서나 카메라를 잘 꺼내는 사람이지만, 아무래도 홀딱 벗은 사람들 앞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 앞서 찾아간 곳에서는 이래저래 요령을 피웠지만, 이곳에서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몸 가득히 문신을 새겨 넣은 남자와 이방인을 경계하는 이발사 때문이었다. 나는 분위기상 일단 옷을 벗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랬더니 정말 조금은 경계가 풀리는 게 느껴졌다. ‘허락을 맡아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이발사 아저씨에게 정중하게 부탁을 했다. 종이로 된 명함을 내밀며 이런저런 사정을 얘기하는데, 알몸으로 굽신거리자니 기분이 굉장히 오묘했다. 예상외로 이발사아저씨는 착한 분이어서 얼마든지 촬영하라며 허락을 해줬다. 나는 다시 간단히 챙겨 입은 뒤 목욕탕의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옷 하나 걸쳤을 뿐인데, 훨씬 안정감이 들었다.

 

‘영수탕’에는 열쇠에 번호라는 게 없다. 뒤늦게 수첩을 꺼내려고 옷장을 찾으려 할 때 안 사실이지만 한두 번 남의 옷장을 건드려보고서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역시 이방인이라 시스템이 익숙지 않군’이라 생각했는데, 나뿐만이 아니었다. 문신을 한 남자도 여러개의 문을 만지고, 확실한 단골로 보이는 대머 리 남자도 남의 옷장에 열쇠를 몇번 꽂아보고서 자신의 옷장을 찾았다. 이곳에서는 ‘경력’에 관계없이 누구나 헤매는 모양이다. 그때 갑자기 성냥을 긋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대머리 남자가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역시나 한쪽 벽에는 금연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그와 함께 재떨이와 라이터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모두들 속옷을 제대로 갖춰 입었다는 점이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거면 됐어. 맘껏 피워.’

‘손대지 말 것’에는 정작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이곳에서 가장 주목한 것은 바로 개인 물품함이다. 자주 오는 사람들이 로션이나 면도기 등을 놓아두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든 수납장인데, 거기엔 각자가 알아볼 수 있는 이름이나 별명 등이 적혀 있었다. 나는 그 글자들과 안의 물건들을 비교해보는 재미에 빠졌다. 일단 봉팔, 신행용, 백수 등 보기만 해도 웃긴 이름들이 눈길을 끌었지만, 정말 웃긴 건 나중에 발견한 것들이다. 

 

‘쌍둥이’라고 적힌 칸에 칫솔이 하나였고, ‘손대지 말 것’이라고 적힌 칸에 정작 아무것도 없었다. ‘삼다섬유’라고 적어놨기에 뭔가 봤더니 이번엔 세월이 느껴지는 타올 한장이 있었다. ‘이 기업의 사원들은 모두 이 타올 한장으로 목욕을 한게 아닐까’, ‘어감과는 다르게 일인기업인 걸까’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드디어 내 기억 속의 목욕탕 연남동, 서림 대중 목욕탕

연남동에 위치한 이곳은 내가 찾은 오래된 목욕탕 중에 ‘대중’이라는 말이 붙은 유일한 곳이었다. 주인장에게 물었더니 건물이 지어진 1990년부터 지금까지 함께해온 곳이라 한다. 겨우 20년밖에 되지 않은 (비교적) 신식 목욕탕이다. 나는 기뻤다. 앞서 담배라든지, 흰 러닝셔츠 군단이라든지, 번호 없는 열쇠 따위에 거의 질렸던 터라 더욱 그랬다. 내부에 들어서니 역시 대단했다! 신형 TV와 넓은 나무평상, 깨끗한 수건들, 게다가 목욕 전 간단한 운동을 위한 러닝머신까지 있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당연히 없다. 나는 이제야 제대로 된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사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정도의 역사가 배인 시기(20년)는 역시 가장 활기찬 한때인가보다. 전체는 아니지만, 이곳의 일부 수납장은 내 키보다도 훨씬 크고 긴 모양이었다. 그 안은 겨울코트를 걸어도 밑 공간이 남을 만큼 여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옷을 모두 벗어던지고서 목욕탕으로 향했다. 커다란 통유리 너머로 희뿌연 수증기가 가득했고, 그 수증기 구름 사이로 사람들이 천천히 지나다니고 있었다. 

노인들도 있지만, 볼록 나온 배까지 닮아 있는 아들과 아빠도 있었다. 보글보글 공기방울이 올라오는 온탕, 그걸 멍하니 지켜보는 탕 안의 사람들, 첨벙첨벙 소리 지르는 냉탕의 아이들, 그 가운데서 거센 물줄기를 맞고 있는 아저씨. 모든 게 어릴적 그대로였다. 나도 그 안으로 들어가 커다란 여유를 나눠가졌다.‘서림 대중목욕탕’에서 두 시간을 보냈다. 하룻동안의 고단함을 내려놓는데 그 정도 시간이 걸렸다. 나는 말끔해진 손등과 하얗게 드러난 목을 거울에 비춰보고 머리를 말린 뒤 그곳을 빠져나왔다. 거리는 사방이 칠흑처럼 어두웠지만 그럼에도 아주 상쾌했다. 겨울 특유의 차갑고 맑은 공기였다. 집에 가는 길에 맥주를 몇캔 사가야 좋을지 잠시 고민한 뒤, 나는 유유히 골목을 빠져나갔다. 오늘 나는 네 군데의 장소를 돌아다녔지만, 결국엔 내 그리움이, 아련한 향수가 ‘어느시점에 시작된 것인지’ 대충 알 수 있게 됐다.

‘코리아목욕탕’과 ‘중앙탕’의 경우에는 각각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추억이고, 내게는 그저 낯선 곳이었다. 나는 ‘서림 대중목욕탕’이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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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