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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Beloved Cinema in the Europe
구글 지도에 ‘Film’과 ‘Cinema’를 검색하고 장소를 저장한다. 파리 탭도, 바르셀로나 탭도, 포르투 탭도 온통 극장으로 채워진다. 관람하는 영화에 한해서는 관객 모두 시공간을 공유하고, 동일한 시청각적 체험을 하도록 의도된 공간(물론, 언제 어디서든 이런 의도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이들은 있기 마련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가! 구태여 공간에 관련한 정보를 찾아보지는 않는다. 이름 옆에 별 모양을 달아두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만난 극장과 운명적으로 보게 된 영화를 기억한다. 앞서 언급했듯 정보를 알아보고 찾아간 공간이 아니다 보니, 전문적인 극장 홍보글이나 소개글에 미치지는 못할 것이다. 아주 사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만나게 된 극장에서 느낀 감정과 영화로운 순간을 공유하고 싶다.
France
프랑수아 트뤼포 <포켓 머니>(1976)
© <포켓 머니>
처음으로 가본 유럽, 그때 유럽의 극장에서 본 첫 번째 영화. 칸영화제를 가기 위해 니스를 방문한 여정 중 굳이 파리에서 2박 3일을 보낸 이유. 파리 에어비앤비 선정의 유일한 조건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Cinémathèque Française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냐’였고, 니스에서 파리까지 버스를 타고 간 이유 또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위치한 베르시 공원이 차고지였기 때문’이다.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프랑스 영화 산업을 육성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상영관을 비롯하여 박물관, 전시장, 도서관, 자료 보관실, 연구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많은 설명을 더 할 필요가 없는 공간, 한마디로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성지라고 할 수 있겠다. 생생하게 기억한다. 에어비앤비에 캐리어를 풀어두고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로 향하던 발걸음을. 극장을 가리키는 푯말 하나에도 설레서 연거푸 사진을 찍어대던 순간을. 그날 파리에 쏟아지던 햇살마저도 내 걸음을 축복해주는 것 같아서 시종일관 웃음만 나던 그 기분을.
파리의 에어비앤비에 도착해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홈페이지에 접속했더니 크리스 마커Chris Maker 특별전을 한다는 공지가 있었는데, 시간표를 확인하다 오후에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 <포켓 머니>를 상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트뤼포의 각별한 팬이 아니더라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라는 공간에서 트뤼포의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너무나 큰 설렘이었다. 달뜬 얼굴로 발권을 하려는 내게 영화에 영어 자막이 없는데 괜찮냐고 직원이 물어왔다. 이미 본 영화라고, 트뤼포의 영화를 이곳에서 본다는 것 자체가 내겐 의미 있는 일이라 답했다. “Perfect!”라는 회신과 함께 환한 웃음으로 티켓을 건네주던 그의 얼굴이 선연하다. 북숍에서 판매하는 굿즈 중 장 뤽 고다르, 짐 자무시, 프랑수아 트뤼포, 자크 리베트, 샹탈 애커만, 구로사와 아키라 등의 에코백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고, 고민 끝에 두 개를 구매했다.
이곳에 왔다는 것이 꿈만 같아서 안팎을 한참이나 둘러보고 곳곳을 사진으로 남겼다. 상영관 안은 자유롭게 착석하게 되어 있는데, 영사실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작은 창 너머 보이는 필름 영상기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내가 거의 겪어보지 못한 필름 시대의 영화에 관해 생각했다. 상영 시간이 다가올 때쯤, 형광 노란색 조끼를 입은 유치원생 혹은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우르르 극장에 들어왔다. 나는 그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봤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자 주도해서 손뼉을 치는 아이들. 처음 아이들을 마주했을 때, 귀엽다는 생각과 함께 관람 중 시끄러우면 어떡하나 걱정부터 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이들에겐 어릴 때부터 이곳이, 영화가, 이곳에서 영화를 본다는 행위가, 영화관에서 지켜야 하는 관람 예절까지 모두가 아주 자연스러운 일상이구나…. 한참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A. 51 Rue de Bercy, 75012 Paris, France H. cinematheque.fr T. +33 1 71 19 33 33
Spain
스파이크 존즈 <그녀>(2013)
© <그녀>
모든 건 우연의 연속이다. 구글 지도에 표시해둔 곳을 찾지만, 그런데도 여기가 정확히 어떤 극장인지 무슨 영화를 상영하는지는 잘 모른다. 어느 날에 어떤 극장으로 가게 될지조차 계획하지 않는 여행이기에 지도에 별표를 찍어둔 것만으로도 (내 기준에서는) 엄청난 일이니까.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을 바르셀로나에서 시작한 것은 축구 때문이었다. 날이 바뀌는 새벽에 숙소에 도착해서 잠을 자고 맞이한 바르셀로나에서의 일정은 밤 아홉 시에 시작하는 챔피언스리그 직관 외에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 낮에 에어비앤비와 적당한 거리에 있는 극장을 구경해야겠다고 다짐했을 뿐. 하지만 너무 일찍 나선 탓인지 근처 극장은 외관만 볼 수 있었고, 아쉬움을 안은 채 점심을 먹었다. 대형 멀티플렉스를 제외한 유럽의 영화관은 대부분 오후부터 영업을 시작한다. 물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이런 연유로 목적지가 바뀌게 되었고, 지도를 보며 골목골목을 걷다 ‘이런 곳에 극장이 있어?’ 싶을 때쯤 필모테카 데 카탈루냐FilmoTeca de Catalunya와 마주했다. 꽤 규모가 큰 회색 건물인데, 1층 통유리에 쓰여 있는 ‘FilmoTeca de Catalunya’라는 글씨가 유독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점은 주변의 주거지와 상점 건물들 사이에서 튀지 않고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적당한 높이를 가진 극장의 모습이었다. 천편일률적으로 개성 없이 지어진, 대다수가 멀티플렉스인 한국의 극장 건물이 생각나 씁쓸해졌다. 쿵쾅거리며 뛰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었고, 입구에서부터 이 공간에 온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이렇게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들어선 극장에서 그날 상영하는 영화가 스파이크 존즈의 <그녀>일 가능성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해진 기분에 ‘악‘ 소리가 절로 났다.
바로 <그녀>를 봐야겠다고 결정하고 프로그래밍 된 영화 리스트를 훑는데 그 면면이 아주 근사했다. ‘Per amor a les Arts’라는 장기 기획전의 일부로, <그녀> 외에도 에이슬링 월시의 <내 사랑>(2016), 에릭 로메르의 <갈루아인 페르스발>(1978), 폴 토마스 앤더슨의 <팬텀 스레드>(2017), 장 자크 아노의 <장미의 이름>(1986) 등을 매주 월요일마다 상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평일 오후인데도 다양한 연령층의 꽤 많은 관객이 기다리고 있던 공간. 어쩌다 보니 매표소에서 <그녀>를 처음 발권한 관객이 되었는데, ‘특별한 첫 번째 손님’이라며 회원 가격인 3유로에 영화를 발권해준 친절한 매표소 직원 아저씨도 생각난다(회원가가 아닌 일반 티켓 가격도 4유로로 저렴한 편이다). 나중에 검색해봤더니, 초기의 필모테카 데 카탈루냐는 전 세계에 카탈루냐의 영화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이후 보존과 복원을 담당하는 센터를 별도로 건립하고, 필모테카 데 카탈루냐 안은 상영관, 도서관, 전시실 등으로 구성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그녀>를 발권하고 극장 내부 통유리 너머로 지켜보는 바깥 풍경이 왜인지 낯설었다. 방금 지나온 길인데도 말이다. 새로운 영화 속 한 프레임에 갇혀 있는 듯한 행복한 이질감과 함께, 그렇게 <그녀>와 다시 만났다.
필모테카 데 카탈루냐
A. Plaça Salvador Seguí, 1 – 9, 08001 Barcelona, Spain H. filmoteca.cat T. +34 935 671 070
Portugal
장 뤽 고다르 <미치광이 피에로>(1965)&<이미지 북>(2018)
© <미치광이 피에로>
© <이미지 북>
원래 가고 싶던 극장이 문을 닫아서 길거리에서 급하게 검색한 후 만나게 된 시네마 트린다지Cinema Trindade. 크리스마스 같은 휴무에 오히려 연장 근무를 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집에서 보내는 게 오랜 문화로 정착된 유럽이라, 크리스마스 전후로 휴무가 길거나 단축 근무를 하는 극장이 대다수였다. 그런 와중에 영업 중인 극장을 우연히 발견해서 일차적으로 기뻤는데, 12월 20일부터 26일까지 상영하는 영화의 라인업이 무려! 장 뤽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로>와 <이미지 북>,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2018),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2018), 파베우 파블리코프스키의 <콜드 워>(2018)라니. 내가 포르투에 머무는 동안, 이렇게나 아름다운 영화 라인업을 자랑하는 극장이 근처에서 영업하고 있음에 감사했다. ‘원래 가려던 극장이 문을 닫지 않았다면 찾아보지도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며 이런 우연이 만들어준 발걸음에도 감사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었지만 취재차 영화제에 갔기 때문에 볼 수 없던 장 뤽 고다르의 신작 <이미지 북>. 지난해 5월, <미치광이 피에로>의 한 장면으로 만들어진 칸영화제 포스터 때문에 칸영화제에 가봐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파리에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비롯한 몇몇 극장에 방문할 수 있었다. 그 여정 중 실제로 마주하게 된 다채로운 극장의 공기에 매료되어 유럽의 극장 방문 욕구가 더 높아졌다. 따지고 보면 지금 내가 이 극장에 있게 된 동력이 되어준 영화(정확히는 영화의 한 신으로 만들어진 포스터지만)가 <미치광이 피에로>인 셈이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해 보일지라도 내게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이런 기억의 조각들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미치광이 피에로>는 이미 본 영화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에 또 다른 의의를 두는 사람이기에 본 영화라도 다시 극장에서 볼 기회가 생겨 무척이나 기뻤다. 그리고 그 기회를 잡은 극장이 한국도 아닌 프랑스도 아닌 포르투갈이라니. 상상도 하지 못하던 일이 자꾸만 일어난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계획하지 않고 여행을 떠나 발걸음이 닿는 대로 극장을 찾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마주하는 우연한 면면이 모두 영화롭기 때문에. 열댓 명의 관객과 함께 <이미지 북>을 보고, 이어 상영하는 <미치광이 피에로>는 혼자 보았다. 텅 빈 극장에서 왜인지 모를 헛헛함과 함께 자리를 나섰다. 필름으로 장식해둔 필름 크리스마스트리 사진을 잔뜩 찍은 후 눈이 마주친 극장 직원과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눴다. 주고받은 “메리 크리스마스.” 한마디에 온기를 채우고, 꽤 괜찮은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시네마 트린다지
A. Rua do Almada 412, 4000-235 Porto, Portugal H. cinematrindade.pt T. +351 22 316 2425
글·사진 이나경(《씨네21》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