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내 인생이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원래 내 꿈은 음악을 직접 하거나, 음악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었다. 전자는 재능 부족으로 진작 관뒀지만 후자는 좋은 인연들 덕분에 어떻게든 해내고 있는 편이다. 뭐, 자부심이 없지는 않다. 나는 정말 많은 음악을 들었고, 음악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간단하게, 기회가 왔을 때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의미다. 그래도 이 정도면 대운大運을 타고 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나친 겸손이 아니다. 인연을 맺어준 분들을 향한 내 감사의 인사다. 다시, 어쩌다 내 인생에 ‘영화’가 끼어든 걸까. 이거 역시 우연한 기회 덕분이었다. 어느 날, MBC 라디오의 한 피디가 “순탁 씨, 라디오에서 영화 얘기 좀 해볼래요?”라고 제안했는데 처음에는 “저 사람이 미쳤나.”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는 참으로 진지했다. 이후 경험 삼아 해보자는 심정으로 1년 넘게 방송을 했고, 이를 계기로 TV 영화 프로의 코너를 맡게 되었다. 이런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진 셈이다.가끔 영화 관련한 일들이 들어오다 보니 영화를 일주일에 최소 한두 편은 보는 것 같다. 그중에는 걸작도, 망작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작품도 있다. 하나, 나에게 영화의 완성도를 판단하는 섬세한 기준 따위 있을 리 없다. 그런 건 전문적으로 영화를 비평하는 분들이 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영화를 선정한 바탕은 ‘완성도’가 아님을 밝혀둔다. 완성도보다는 (주로 음악을 통해) 내 마음을 크게 움직였던 작품들이다.
낯선 영화일 수 있다. 그러나 확언할 수 있다. 당신이 만약 음악 팬이고, 레코드 컬렉터인데 이 영화를 안 봤다면 지금까지 인생 조금 잘못 산 거다. 성경 안 읽는 기독교인 봤나? 코란 안 읽는 이슬람교도 봤나? 이와 거의 비슷한 의미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는 음반 컬렉터에 관한 영화다. 레코드 가게가 무대로 나오고, 사장 1명, 직원 2명이 메인 캐릭터인데 3명 모두 지독한 음악 덕후다. 사장은 저 유명한 존 쿠삭이, 직원 중 1명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잭 블랙이 연기했다.
스토리는 주인공을 맡은 존 쿠삭이 헤어진 연인의 ‘순위’를 매기면서 그들을 다시 찾아가 “대체 내가 뭐가 문제였는지”를 묻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리하여 결국 그런 순위가 부질없음을, 중요한 건 추억 그 자체임을 깨닫는다. 영화 말미에 다시 사랑을 찾은 사장은 연인을 위해 단 하나뿐인 모음집을 만들 거라면서 이 노래를 플레이한다. 바로 스티비 원더의 ‘I Believe (When I Fall In Love It Will Be Forever)’다. 글쎄. 사랑에 영원은 없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영원을 기도하는 마음’도 없는데 그걸 사랑이라 부르기는 아무래도 좀 곤란하다. 부디 주인공의 사랑이 그의 바람처럼 영원하기를 나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희망한다. 좋은 영화라는 게 대개 이렇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주인공의 삶이 대체 어떻게 될지 관객들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준다.
[Talking Book]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I Believe (When I Fall In Love It Will Be Forever)’
정확하게 세어보진 않았지만 이 영화, 거의 열 번은 본 것 같다. 나는 술에 취하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타입의 인간이다. 술 취하면 글이 더 잘 써진다고 하는 몇몇 동료들을 봤는데 그건 나에겐 꿈도 꿀 수 없는 신의 경지다. 그래서 술 취하면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감상하거나 게임을 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할 필요가 있겠다. 적어도 영화의 경우 나는 술 취하면 <매그놀리아>를 본다. 오랜 버릇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여럿이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페르소나로 수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바로, 결핍과 상처를 어떻게든 껴안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 자신이다. 과연 그렇다. 부조리한 삶 속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상처받는다. 쉽게 아물지 않는 내면의 상처는 결핍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다. “One is the loneliest number(1은 가장 외로운 숫자죠.)” 영화 속에서 에이미 만의 이 노래가 괜히 흐르는 게 아니다. 참고로 이 곡 ‘One’의 오리지널은 해리 닐슨, 에이미 만 외에 쓰리 도그 나이트의 커버가 특히 유명하다.
이런, 안 울려고 했는데 그만 또 울어버렸다. 영화의 마지막에 클로즈업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비추는 장면을 볼 때마다 나는 눈시울을 적시는 것을 넘어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이 영화, 아마 많은 분들이 봤을 것이다. 뮤지컬로도 만들어져 큰 성공을 거뒀고, 재개봉 당시에도 꽤나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이 영화의 진가가 무엇보다 음악에 있음을 모르는 분들도 상당한 것 같다.
간단하게, 이 영화의 음악은 곧 시대의 상징으로 작동한다. 대표적인 곡이 바로 클래시의 ‘London Calling’이다. 때는 1980년대 영국 북부 광산촌. 영화는 대처 정권에 맞선 광부들의 파업으로 공권력과 광부 노조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절을 그린다. 이 곡은 광부들의 파업 장면에 흐르면서 잊지 못할 여운을 남긴다. 곡 자체가 ‘공권력의 폭력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오프닝에 등장하는 티렉스의 ‘Cosmic Dancer’는 주인공 빌리가 꿈꾸는 ‘춤을 통한 자유’를 뜻한다. “난 태어날 때부터 춤을 췄죠.”라는 가사가 말해주듯이 말이다. 이 영화에서 의미심장하지 않은 선곡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다. ‘선곡이 끝내주는 비非음악영화 리스트’를 꼽는다면 내 마음 속 1위는 무조건 이 작품, <빌리 엘리어트>다.
[빌리 엘리어트 OST]
클래시The Clash ‘London Calling’, 티렉스T. Rex ‘Cosmic Dancer’
우선, 한국 영화 하나쯤은 끼워 넣어야 하는 의무감에 이 영화를 택한 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 <라디오 스타>가 개봉하기 전까지 나는 언제나 ‘좋은 한국 음악영화’ 한 편 나왔으면 했다. 잊지 못할 여운을 남기는 스토리, 탄탄한 연기, 탁월한 음악 등이 말 그대로 ‘일체’가 된 듯한 작품 하나가 간절했다. 글쎄. 음악영화라는 타이틀을 내건 영화들이 몇 있었지만, 만족스러운 경우는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고고 70>(2008)과 바로 이 작품, <라디오 스타>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게다가 나는 ‘진짜 라디오 스타’와 함께 10년 넘게 방송을 하고 있는 사람 아닌가. 오랜 시간 일해본 결과, 라디오는 세 바퀴로 굴러가는 자전거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 아날로그, 감수성, 그리고 음악. 이런 측면에서 나는 이준익 감독이 라디오라는 매체를 깊이 이해하고 있음을 이 작품을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조금 부끄럽지만 용기를 내어 외쳐본다. 라디오,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