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a Labo Actorology’ And Una Beck

배우보다 배우를 더 사랑하는 사람, ‘백은하 배우연구소’ 소장 백은하

영화 기자로 일한 지 이십 년이 넘었지만, 영화 이야기를 할 때면 마치 처음 영화를 보는 아이처럼 눈이 반짝거린다. 배우에 대해 더 알기 위해 유학을 다녀온 후 ‘백은하 배우연구소’를 차렸다. “나는 배우를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사람. 늘 다정한 시선으로 배우를 살피고 인터뷰하는 사람을 인터뷰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무주산골영화제와 함께 공동 기획한 넥스트 액터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어요. 한국 영화를 이끌어 갈 다음 세대의 배우를 배우연구소가 선정했고, 영화제 기간 동안 특별전을 열고, 관객과의 대화도 하고요. 영화제에 맞춰 책 《넥스트 액터》도 출간돼요. 올해의 배우는 박정민 씨예요. 또 5월에는 올해 특히 특별했던 칸영화제 출장도 다녀왔어요. 그리고, 영화 개봉할 때 관객을 만나는 다리가 되어주는 모더레이팅 작업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어느덧 배우연구소가 개소한 지 일 년이 되었어요. 사람들이 “배우연구소는 뭐 하는 곳이야?”라고 물을 때,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이런 걸 했다는 증거품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백은하 배우연구소’라는 이름이 좋아요. 소장님이라는 호칭도 좋고요. 연구소 건물 계단을 올라오는데, 탐정 사무소를 찾아가는 기분이 들었어요.

맞아요! 그런 느낌을 좋아했어요. 지금은 사라진 단어 같잖아요. 물론 여전히 쓰는 말이긴 하죠. 인력사무소, 직업소개소 등 ‘소’ 자가 들어가면 몸을 움직이며 일하는 기분이 들어요. 손에 잡히는 일을 하고 있는 느낌이라 연구소라는 말이 가장 맞겠다고 생각했어요. 영어로는 Una Labo Actorology인데, 액톨로지라는 말은 영국에서 유학할 때 제가 만든 단어예요. 배우학이라는 말은 없으니까 적당한 단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이 말을 만들고 혼자 기뻐했어요(웃음). 저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직업이 사라진 직업 같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사람들이 더 이상 시계를 차지 않고 수리하지 않는 시대의 시계수리공 같은 느낌이에요. 물론 영화 기자라는 직함은 여전히 있고, 제일 설명하기 편한 직업명이기도 한데요. 기자나 저널리스트라 하면, 계속해서 취재를 하고 취재원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과연 내 직업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계속 든 생각이 “난 배우를 연구하는 사람이다.”라는 거예요. 이렇게 내 정체성을 정해놓고 나니까 할 일과 안 할 일이 구분이 돼요. 거절할 당위도 생기고요. 스스로 덜 헷갈리게 되죠.

 

백은하라는 이름을 앞에 걸었어요.

내 이름을 걸어야 그만큼 책임감도 가지게 되고, 또 기자 한 명 한 명이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나라는 사람의 브랜드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고민했을 때,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대표는 내 이름이 될 수밖에 없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기자를 시작한 지 얼마나 된 거죠?

1999년에 《씨네21》에 입사했으니까 20년이 넘었어요.그때 《씨네21》은 정말 대단한 곳이었어요.그랬죠. 입사했을 때, 회사에 엄청난 선배들이 있었어요. ‘내가 쓰는 글이 이 잡지에 누가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을 정말 많이 했어요. 저는 전방위적으로 대중매체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영화광이나 시네필이 아니었거든요. 물론 배우에 대해서는 엄청 어릴 때부터 팬질, 덕질을 했어요. 말하자면 ’배우필‘이었죠. 김혜수부터 시작해서 샤를로트 갱스부르 같은 배우들 덕질을 꽤 오랫동안 해왔지만, 영화란 장르에 대한 덕심은 아니었어요. 제가 일하던 시기는 그 주 《씨네21》 기사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 충무로에서 다 아는 시기였어요. 당시에 신기했던 게, 강우석, 차승재 이런 분들이 “백은하 기자 이번 주 인터뷰 잘 읽었어.”라고 말하는 거예요. 내가 뭐라고 그 사람들이 이걸 읽지, 어떻게 알았지, 했어요. 몹시 흥분한 상태였던 거 같아요. 

 

한국 영화의 전성기였죠?

1999년부터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시작이었어요. 눈을 뜨면 봉준호, 허진호, 홍상수 같은 감독들이 새로 태어났어요. 그때 시사회로 본 영화들이 지금 걸작으로 평가받는 영화들이에요. <플란다스의 개>(2000), <봄날은 간다>(2001), <살인의 추억>(2003) 이런 영화들이 태동하는 걸 봤어요. “류승완이라고 하는 박찬욱 감독 연출부에 있던 친구가 자투리 필름 모아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라는 영화를 만들었대.”라는 소식이 들리고, 씨네코아에서 보고, 영화가 엄청 좋고…. 그런 흥분이 계속됐어요. 산업이 잘나갈 때의 저널은 흥분 상태거든요. 입사하고 3~4년 동안은 그때 쓴 문장까지 지금 다 기억이 나요. 그런데 일 외에 내가 뭘 하고 살았는지 기억이 하나도 없어요. 기억나는 건 내가 글 쓰고 있던 거, 그리고 사무실 들어가면 다들 담배를 꼬나물고 노트북 앞에 앉아 있던 거. 사무실에선 조용히 자판 소리만 들려요. 그러다 어느 순간 누가 “윽!” 하고 비명을 지르면 그게 담뱃재가 떨어지는 순간이었어요. 그렇게 뜨겁고 재밌고 신나는 시기를 지나다가 한국 영화 붐이 조금 사그라지던 시점에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죠. 그때 뉴욕으로 갔어요. 서른 즈음이었어요.

 

《씨네21》을 그만두고 뉴욕에 가셨다는 건 알았는데, 거기서 뭘 하셨는지는 몰랐거든요. 그런데 특별한 걸 하러 간 게 아니더라고요. 저는 그게 너무 좋았어요.

회사 생활을 하면서 욕심도 많았고, 조바심도 엄청 내고, 스스로 많이 괴롭혔어요. 이십 년 정도 쌓아온 나라는 사람을 통째로 그 5년 동안에 바친 느낌이었어요. 그렇게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아무 생각 없이 뉴욕에 간 거예요. 평소에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삼십대에는 뉴욕, 사십대에는 유럽, 오십대에는 교토에서 살아봐야지.’ 사람이 태어났으면 번쩍이는 큰 도시에 살아봐야지 한 거죠. 아는 분 소개로 네일숍에서 일했어요. 노동력에 대한 가치가 높은 곳이었기 때문에 일주일에 서너 번 근무하면 집세를 내고 영화표를 살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었어요. 서비스업이라 팁도 꽤 받았고요. 뉴욕에서 지내는 동안,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영화는 작은 부분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TV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매거진T’라는 이름을 먼저 지었어요. 항상 그래요. 이름을 짓고 나면 뭔가 따라오더라고요. 웹진 형태로 발행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고민하던 차에 《씨네21》 당시 사장님을 만나서 그 이야기하다가 재입사를 하게 된 거예요. 《씨네21》 안에 《매거진T》 팀을 꾸렸어요. 그리고 어린 나이에 편집장을 맡았죠. 이후 《경향신문》 등을 거쳐서 ‘올레TV’에서 5년 동안 영화 프로그램을 진행했고요.

 

종이 잡지에서 웹진으로, IPTV로, 미디어가 빠르게 변하는데, 늘 그 중심에 있어요. 변화를 잘 읽고 또 적응을 빨리 하는 것 같아요.

매체나 표현 방식에 대한 고집, 충성도 그런 게 없어요. 어차피 모든 게 나한테서 나오는 거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곳이면 돼요. 내가 빠르다, 변화에 잘 따라간다기보다는 대중이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 대중을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창구를 찾은 거죠.

 

올레TV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시점에 영국 유학을 떠났어요.

한창 정킷junket 때문에 영국으로 출장을 많이 갔어요. 그때 서점에 들렀다 발견한 게 《스타스터디Star Study》라는 책이에요. 이런 학문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주로 배우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기호가 되는가에 대한 연구예요. 가령 마를린 먼로가 섹스 심볼로서 어떤 작용을 하고, 당시 사회의 어떤 걸 반영했고, 하는 것들을 사회학적으로 푼 거죠. 배우들 만나고 인터뷰하는 일들이 기사를 쓰기 위한 거라고 생각했지 공부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거든요. 충격을 좀 받았죠. 그리고 궁금해졌어요.유학을 떠나 공부를 하는 동안 배우를 바라보는 몇 가지의 가치가 더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예술가 혹은 기술인으로서의 능력, 산업을 지탱하는 사람으로서의 역할 같은 것들이죠. 이게 제가 말한 액톨로지의 중심이에요. 계속 고민하고 의문을 가졌고, 결국 논문도 썼고요. 배우 연구의 방법을 찾는 시간이었어요. 실제 배우들을 만나서 그 방법들을 적용해보고 있어요. 이번에 출간한 《넥스트 액터 박정민》이라는 책은 말하자면 액톨로지의 샘플이에요. 밖에서 봤을 때는 이전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내 안에서는 체계가 생기고 있어요.  

“난 배우를 연구하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어요. 이렇게 나의 정체성을 정해놓고 나니까 할 일과 안 할 일이 구분돼요. 거절의 당위도 생기고요. 스스로 덜 헷갈리게 되죠.

막연하게 일하던 때와는 확실히 다를 것 같아요.

예전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저 소모되는 거 같고 늘 똑같은 얘기 쓰는 거 같은 마음이었는데, 요즘은 마음가짐이 달라요. 한국 영화 100년이라는데, 감독과 영화에 대한 연구들에 비하면 배우 연구가 너무 없더라고요. 한국에 출간된 책들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없구나. 그러면 내가 써야지. 그게 백은하 배우연구소가 출판사가 되기도 한 이유이기도 하죠. 《넥스트 액터》 책날개에 이렇게 썼어요. “배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애장서, 배우를 꿈꾸는 사람들의 필독서, 배우를 탐구하는 사람들의 교과서로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그간 해오신 인터뷰를 보면서 배우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기자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럼요. 이번에 송강호 씨랑 칸에서 술 한잔하면서 농담으로 “우리 송강호 군은 성장판이 닫히지 않는 사람이야.”라고 이야기했어요(웃음). 그건 저만 할 수 있는 농담이죠. 송강호 씨는 저보다 나이는 많지만 그가 영화판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시점과 제가 기자 생활을 시작한 시기가 비슷해요. 이 배우의 시작을 제가 본 거예요. ‘나 이만큼 오래 해먹었어.’ 하는 게 아니에요. 성장과 변화, 어려움 같은 과정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사람이 가진 힘. 그걸 믿어요. 나만이 할 수 있는 거라고 자신하고, 그거에 대해서는 겸손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내 자산이고, 누구도 뺏을 수가 없는 거예요. 자기 자신에게 과한 책임감을 주는 거 아니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한국 영화가 엄청 잘나갈 때 이 일을 시작했고, 그때 받은 혜택을 갚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랬던 사람이 어느 순간 데스크로 가서 현장 일 안 하고, 이건 아닌 거 같아요.

 

맞아요. 배우는 계속 연기하잖아요.

네, 저는 계속해야 한다고 보는 거예요. 이 사람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이 내 추억 거리에 그쳐서는 안 되는 거 같아요.계속 나를 지켜보고 자세히 살펴보는 기자가 있다는 사실이 배우한테도 좋을 거 같아요.그랬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그들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아니고, 여전히 저 기자를 보면 긴장이 되고, 잘 써줬으면 좋겠고, 실망시키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은 관계요. 각자 직업인으로서 서로 존중하고 긴장감을 가지고 있는 관계로 오래간다면 저는 그게 너무너무 좋을 거 같아요.

 

배두나 씨 인터뷰를 봤어요. 소장님이 “배두나에게 봉준호란?”이라고 물었더니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영감을 갖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답하더라고요. 이 답을 소장님에게 돌려 묻고 싶어요. ‘좋은 기자가 되고 싶다. 오래하고 싶다.’ 하는 마음을 가지게 해주는 배우가 있다면요?

배두나 씨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예요. 두나 씨는 자기 시장을 스스로 만들어나간 사람이에요. 혼자서 배낭 메고 한국 밖으로 나가서 모든 길을 개척해나간 사람이죠. 게다가 놀랍게도 연기가 계속 좋아져요. 그리고 송강호 씨요. 이런 배우들을 보면 되게 좋은 기자가 되고 싶어요. 저 사람들은 저렇게 계속 성장판이 안 닫히는데(웃음) 나도 안주하지 말아야지, 끊임없이 우리를 놀라게 하는 저 사람들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비슷한 정도로 나도 성장해야지, 저 사람들이 행하고 있는 저것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 좋은 기자가, 좋은 연구자가 되고 싶다…. 그런 자극을 받죠. 

 

지난 인터뷰들을 보면서 배우의 장점을 잘 찾아내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 속에서 배우가 할 수 있는 게 많지만,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이 없기도 해요. 혹 영화가 망해도 그 안에 좋은 연기는 있거든요. 이건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하는 일이 아니잖아요. 영화가 별로인 건 사실 배우들이 더 잘 알아요. 하지만 홍보를 해야 하는 상황이고요. 거짓말을 덜 할 수 있게끔 제가 배우가 노력한 부분을 찾아보는 거예요. 단순히 칭찬으로 기분 좋게 만들기 위한 게 아니에요. 칭찬이란 건 구체적이어야 해요. 구체적으로 찾아보려면 물리적인 시간이 들고, 그러다 보면 애정이 생기죠.

‘우리 배우의 이런 좋은 점을 발견해주다니!’ 하는 반응들이 많더라고요.

기본적으로 덕심(웃음). 나의 중심은 덕심이에요. 어린 시절 김혜수 씨에게 쓴 팬래터에 “언니는 안 알아주겠지만 나는 <세노야>를 1회부터 끝까지 다 챙겨 본다.”라고 썼어요. 그땐 다시보기 같은 것도 없었잖아요. 그런 ‘평생의 덕질’을 하고 있는 거죠. 엄청 성공한 덕후 아니에요(웃음)? 그리고 나는 배우란 직업이 여전히 놀랍고 경이로워요. 그러다 보니 인터뷰를 하다 보면 존경심이 올라올 때가 있어요. 그걸 안 들키려고 애쓰기도 하죠. 너무 팬처럼 보일까 봐요(웃음). 감성적인 접근을 자제하도록 배웠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그게 나쁜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이 일을 하는 데 결정적으로 필요한 부분이고, 그게 없었다면 지금까지 버틸 수 없었을 거예요. 배우들이 어디에도 안 한 이야기를 내 앞에서 할 때 오는 쾌감, 친밀함 같은 것이 있어요. 그 친밀함이 나로 끝나서는 안 되고 나라는 사람의 필터를 통해서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미화되거나 폄하되지 않고 가감 없이 전달되기를 바라요. 잠깐이지만 직접 대면한 것처럼 배우와 만나게 해주고 싶어요. 그게 제가 인터뷰를 대하는 태도예요.

앞으로 배우연구소를 통해서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우선 출판 작업을 하고 싶어요. 한 배우에 대해 집중한 심도 깊은 연구서를 지속적으로 낼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또 배우들의 인터뷰를 모은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그리고 또 하나는 백은하 배우연구소라는 물리적인 공간을 적극 운영하려고 해요. 왓챠와 함께 기획 중인 프로그램이 있어요. 배우와 일반 관객, 배우를 꿈꾸는 사람들이 소규모로 만나 대면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거죠. 배우에 대한 모든 것이 가능한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배우들도 편안하게 와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고요. 연구소 오픈하고 나서 생긴 생각지도 못한 일 중 하나가 사람들이 배우 관련 연락처를 물어보기 위해 연락을 해와요. 허브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배우’라는 걸 떠올렸을 때, 가장 빠르게 생각나는 곳이 백은하 배우연구소가 되면 좋겠어요. 배우라는 사람들과 통할 수 있는 가장 빠른 통로, 유일무이한 그런 존재이길 바라요.

이십 년 후를 상상해보았다. 송강호 씨는 70대가 되어도 인상적인 연기를 하고 있을 것이고 배두나 씨 역시 50대가 되어도 세계 각지를 누비며 신선한 도전을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60대가 된 백은하 소장은 여전히 현장에서 배우를 연구하고 그들을 인터뷰하고 있을 것이다. 이십 년의 시간만큼 내공이 쌓인 기자와 여전히 성장하는 배우가 만나 이야기하는 장면을 상상하니 마음이 벅차오른다. 그리고 나도 성장한 모습으로 나이 들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나의 이십 년 후를 떠올리고 기대하게 되었다. 미래를 향해 오늘도 뚜벅뚜벅 걷는 사람, 백은하 소장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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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포토그래퍼 정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