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to Agnes Varda

그녀에게

당신이 만든 것들을 보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겨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바르다, 안녕하세요. 당신이 세상을 떠난 지 딱 두 달째 되는 날입니다. 그동안 당신의 영화 몇 편을 다시 보았고 며칠 후 개봉하는 마지막 작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이 죽은 일은 슬프지만 당신이 죽었다는 이유로 지난 작품들을 상영해주어 고마운 마음으로 영화관을 찾아가고 있습니다.요즘 영상 편집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배우다가 흥미로운 것을 알게 되었어요. 영상에서는 시간 개념을 ‘프레임’, 그러니까 필름 한 장으로 측정한다고요. 보통 1초는 24개의 프레임으로 구성되고 이 프레임을 연속적으로 스크린에 영사하면 잔상 효과로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고요. 24개의 사진이 연결되며 1초를 만들고, 또 24개를 더하면 2초가 되고, 그다음에 3초, 4초, 5초, 시간이 흐르게 된다고 하더군요.

당신은 영상을 찍기 이전에 사진작가로 활동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미지만으로 전하기 어려운 메시지를 영상으로 전달하고자 영화를 선택했다고요. 그때 이야기를 더 듣고 싶지만, 제가 읽을 수 있는 당신의 자료는 제한적입니다. 누군가 당신의 영화를 평론한 글이나 인터뷰를 찾아 읽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당신이 만든 것을 계속 보는 쪽을 선호합니다. ‘왜 사진을 찍다가 영상으로 옮겨가게 되었을까.’ ‘이 영화를 통해 뭘 말하고 싶었을까.’ ‘이 이야기는 어디에서 구했을까.’ 그런 걸 궁금해하며 당신의 영화들을 아껴 봅니다.

그 와중에 제 멋대로 당신을 상상하게 해준 영화가 있습니다. 1982년에 나온 <율리시스>입니다. 영화에서 당신은 28년 전에 찍은 사진 한 장을 들고 사진 속 풍경을 찾아갑니다. 1954년 5월에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의 왼편에는 벌거벗은 남자의 뒷모습, 그 바로 옆에는 어린아이가 자갈밭에 앉아서 카메라 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카메라와 가장 가까운 오른쪽에는 죽은 염소 한 마리가 누워 있고요. 당신은 사진 속 아이와 남자를 각각 찾아갑니다. 그들은 자라거나 늙었고 당신처럼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당신과 그들은 30여 년간 변해버린 일들 혹은 애초에 다르게 기억된 기록을 이야기합니다.

당신은 영화가 흐르는 내내 틈틈이 미소를 짓습니다. <율리시스>에서뿐만 아니라 자신이 만든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고 그때마다 슬쩍 웃어 보입니다. 이야기가 무엇이든, 그걸 담는 방식이 무엇이든, 그 옅은 웃음을 보면 저는 당신의 말을 믿어보게 됩니다.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그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다거나 다르게 이야기하더라도, 의심하지 않고 당신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거기에 있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24개의 프레임이 모여 1초를 만들고 그것이 영상이 되는 일처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당신이 사진을 찍다가 영상을 만들게 된 이유가 ‘이미지만으로 전달하기 어려운 메시지를 영상으로 전달하고자’였다는 얘기로 돌아갑니다. 영화를 막 찍기 시작했을 때, 당신은 시네필이 아니고 영화를 많이 보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고요. 사람들은 당신을 무시하고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시네필이 아닌 사람이 무슨 영화를, 영화도 몇 편 안 본 사람이 무슨 영화를, 사진을 찍던 사람이 무슨 영화를! 그런 말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신은 영화감독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발견한 장면들을 이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냈고요. 한 번이 아니라 계속 해나갔습니다. 굴하지 않고 누군가들이 만들어놓은 방식을 해체하며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지요. 그러곤 누군가 당신이 하는 것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발견하면 그저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믿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종종 에세이를 쓰고 사진을 찍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요즘은 영상을 배우고 있고요. 있었던 일을 쓰고 찍지만 저는 제가 만든 것들이 거짓일 거라 여깁니다. 그렇다고 그걸 읽거나 보는 이들에게 “저는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기엔 그것은 너무나 사실입니다. 제 믿음 안에서 분명하게 있었던 일이니까요. 당신의 영화를 보며 그 ‘믿음’이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글이든 사진이든 영상이든, 이야기를 만드는 이는 보는 이에게 그것이 있었다고 믿게 만드는 사람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당신은 9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까지 호기심 많은 눈을 매번 선명하게 뜨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은 일을 찾아냈습니다. 자신이 본 일이 분명하게 있었다고 믿으며 사진을 찍고 그 프레임을 이어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당신이 사진이나 영상이 아닌 다른 도구를 알았더라면 그것 역시 과감히 사용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마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당신은 더 많은 것을 만들었을 겁니다. 저 역시 작가니 사진가니 하는 이름들에 연연하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전하는 일만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제게는 아직 얼마 남았는지 모를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보여준 당신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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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박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