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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사람, 그 어딘가
다 함께 영화를 보고 사무실에 들어오는 진진의 사람들과 마주했다. 각각의 얼굴엔 ‘진진’ 의 이름 뜻과 같은, 그들이 보여주던 영화와 닮은 무언가가 배어 있었다. 좀처럼 잘 보이지 않는 가치를 찾아내 영화와 관객 사이에 꾸준히 다리를 놓고 있는, 영화사 진진을 만나봤다.
90년대, 극장과 무대를 한곳에 품고 관객의 발길을 이끌던 동숭아트센터엔 한국의 예술 영화관 1호로 여겨지던 시네마테크가 있었다. 단순히 한국 독립영화 상영업을 넘어 국 외 영화 수입까지 뛰어들며 독보적 위치에 있던 영화관이다. 이 정체성을 그대로 지켜와 2006년 11월 1일, 또 다른 시작을 말하려는 사람들이 모여 지금 진진의 모습이 갖춰졌 다. 현재는 <북클럽>(2018), <마리아 칼라스: 세기의 디바>(2017), 전주국제영화제에서 CGV아트하우스상을 수상한 <이타미 준의 바다>(2019) 개봉을 준비 중이다.
인터뷰
진진이라는 이름의 빈 자리
진진의 이름 뜻을 듣자마자 여태껏 보아온 그들의 영화가 스쳐 갔다. 진진이라는 단어의 앞뒤에 여 러 단어가 붙어 새롭고 다채로운 의미를 가진다. 그들의 영화들도 다르지 않았다. 빠진 것 없이 완 벽한,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보는 영화는 아니지만 진진만의 ‘가능성’이라는 빈 자리를 늘 곁에 두 고 있었다. 이런 영화들이 차곡차곡 쌓여, 진진은 그들만의 독립된 자리에서 반드시 필요한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 수입과 배급은 쉽게 말하면 무역이랑 비슷해요. 다루고 있는 분야가 영화일 뿐이지 그 과정 은 같죠. 그중에서도 진진은 독립영화사의 형태를 이루고 있어요. 미국의 거대한 스튜디오하고는 조금 다른, 또 다른 과정을 만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어요. 인디펜던트, 조금은 다른 곳에 자리한 영화와 사람들은 그들만의 문화의 힘을 믿고 있죠. 서로 격려하고 상도 주고받고, 숨겨진 작 가들의 자리를 만들어요.”
함께 선택한 영화들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 흥행 기록작 <원스>(2006),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2008) 같은 진진의 영화들을 떠올린다. 문득, 그들이 영화를 보는 시선이 궁금했 다. 한 영화가 스크린에 걸리기까지,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모였고 영화를 아끼는 누군가의 소중한 선택이 있었다.
“진진에서 소개하는 영화들은 모두 다르고 그 안에서 전하는 메시지도 제각각이지만 어떤 관객들 은 진진의 영화를 보면서 공통점을 찾는 것 같아요. 괜찮다고 말하면서 위로를 주고, 숨통을 틔어 주는 영화들이라는 코멘트를 받아요. 지금까지 좋은 영화들을 담을 수 있었던 건, 한 사람의 선택 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모았기 때문이에요. 대표로서 최종 선택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여러 생각들을 반영하려고 노력해요. 진진에는 조금 더 ‘사람’ 자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생각해요. 작지만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죠. 켄 로치 감독의 영화 처럼요.
조금 더 다른 상상력
특정 영화가 반복해서 스크린에 걸리는 모양새는 이제 너무 당연해졌다. 조금 숨겨진 영화들이 사 람들 앞에 드러나기엔 힘에 부친다. 그 사이, 큰 상영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고 있는 영화 들은 아니지만 진진만의 스크린은 단단히 빛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독과점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가늠했던 것보다 더 뿌리 깊은 곳에 닿아 있었다.
“큰 틀에서 봤을 때 영화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문화’로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 람들의 생각을 확장시키고 상상력을 넓히는 구실을 하죠. 이 상상력이 중요한 이유는 사람의 이해 를 돕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타인이 될 수 없으니, 다른 이들의 마음을 상상해볼 필요가 있죠. 그렇 게 함께 살아가는 거고요. 이런 관점에서 영화가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내 옆에 없는, 실제로 보진 않았지만 반드시 존재하는 수많은 타인들을 영화 속에서는 쉽게 찾는 거죠. 그래서 다 양한 영화를 보는 것은 무척 값진, 소중한 기회에요. 그런데 요즘은 그 폭이 점점 좁아지고 있죠. 아 쉬운 흐름이에요.”
그렇게 13이라는 숫자
어느덧 13년째, 지금의 진진은 또다른 고민을 안고 있다. 상업영화를 만들던 기업에서 소규모 상영 관이던 동숭시네마테크로 향했던 그녀는 당시, 앞으로의 10년을 상상하며 결국엔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단순한 이유다. 더 좋아하고, 더 아끼는 영화와 가까워지기 위해서였다. 이제 그녀는 다가올 진진의 10년을 상상한다. 다시 돌아왔지만 늘 낯선 고민이다.
“저에게 영화는 학교 같은 존재였고 늘 새로움의 연속이었어요. 영화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살아가죠.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저는 꼭 무언가를 얻어와요. 진진에 서 영화와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을 이어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극장에서 나온 사 람들의 세계가 넓어졌으면 하는 마음이죠. 제가 영화를 통해 배운 것처럼요. 화려하게 주목받는 영 화들은 아니지만 어디선가 누군가는 우리 영화를 좋아해줄 거라는 믿음을 가져요. 이런 생각을 가 진 단계에서 진진은 앞으로의 10년을 고민하고 있어요. 점점 시간이 지나는데, 잘 나이 들고 싶다 는 생각을 해요. 젊은 관객의 발걸음을 잡으려는 노력도 하고 싶고요. 그러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정성 들여 영화를 봐야겠죠.”
영화사 진진의 영화들
진진의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영화를 아낀다. 그 마음들이 모여 선 물 같은 영화를 전하고 있었다.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은 한결같이 편안한 표정을 짓는다. 평소보다 천천한 걸음을 걸으며, 소소한 위로를 간직한 채.
마케팅팀 장선영
<지슬>(2012)
오멸 | 드라마
“감독님과 오랜 시간 영화에 관한 이야 기를 하면서 제주에 대해 모르던 점을 알게 됐어요. 이 이야기를 관객에게 어 떻게 전할지 고민하기도 했고, 마케팅 과정에서 고단한 부분도 있었지만, 결 국엔 좋은 결실을 맺었어요.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작품으로 <지슬>을 꼽아 보고 싶네요.”
마케팅팀 이슬비
<안도 타다오>(2016)
미즈노 시게노리 | 다큐멘터리
“수급한 선재들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서 포스터나 예고편을 만들기 까다로웠 고, 관객들이 건축가 이야기에 얼마나 관심을 가져줄지 의문도 있었어요. 그 래도 역시 안도 타다오의 이야기라, 관 객의 선호도도 높았고 걱정하던 선재들 도 멋지게 나왔어요. 무척 좋은 작업이 었죠. 극장에 상영될 때는 설명할 수 없 는 뿌듯함을 느꼈어요.”
마케팅팀 윤혜인
<일일시호일>(2018)
오모리 타츠시 | 드라마
“키키 키린 배우가 연기한 다도 선생 다 케타가 ‘차는 형식이 먼저다. 처음에 형 태를 잡고, 거기에 마음을 담는 것’이라 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녀의 말을 빌려서, 아직은 영화 마케팅의 형태를 알아가는 중이지만 이 형태를 잡게 되 면, 거기에 마음을 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시작하는 마음을 되새기고 싶을 때마다 열어보고 싶은 영화예요.
배급팀 정태원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
켄 로치 | 드라마
“켄 로치 감독의 작품을 모두 4편 수입 했고, 지금은 최근 작품인 <쏘리 위 미 스드 유>(2019)를 개봉 준비 중이에요. 어느 리뷰에서 읽었던, 그는 시간이 흐 를수록 젊어지는 거장이라는 말에 공감 해요. 한껏 게을러진 제게 뼈를 때리는 가르침을 주었죠. 늘 매사에 성실하고 상식과 본분을 지킬 수 있는 영화인이 되기를, 그의 영화를 보며 언제나 다짐 해요.”
배급팀 김진웅
<아이, 토냐>(2017)
크레이그 질레스피 | 드라마
“저에겐 아픈 손가락 같은 영화예요. 기 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이 남았던 영화 기도 하죠. 실존 인물에 대한 논란도 있 었고, 수위 높은 폭력 장면은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진실은 없 다.’, ‘전부 헛소리다.’라는 대사와 동시 에 다시 아이스링크로 뛰어드는 그의 모습에, 이상하리만큼 따뜻한 위로를 받았어요. 추천하고 싶은 영화에요.”
회계·총무팀 김명옥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
아쉬가르 파라디 | 드라마
“영화는 씨민, 나데르 부부의 별거로 시 작해서 간병인 라지에와 호얏 부부의 이야기로 확대돼요. 이런 방식이 작은 오해, 거짓, 아랍 문화권의 종교적 배경 등을 잘 보여주고, 훌륭한 배우들의 연 기도 완성도를 높였죠. 아랍권 영화라 는 한계 때문에 관객이 많이 들지 않아 서 아쉬웠어요. 좀더 많은 사람들이 좋 은 영화와 마주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어요.”
에디터 ***
포토그래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