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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고 작은 곳에서부터
우리의 마음에는 누구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둡고 알 수 없는 장소가, 이를테면 우물 같은 것이 존재한다. 이창동의 매혹적인 영화 <버닝>은 이 시대의 우물들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나는 마음속 우물의 존재를 잊지 않으면서도 내 몸이 담겨 있는 공간, 현실적이고 물리적인 공간에서 하루하루를 잘 살아나가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와타나베 유코의 《집의 즐거움》 같은 책을 읽는 시간은 사사롭고 또 즐겁다.
“여기에 귤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기에 귤이 없다는 걸 잊어먹으면 돼. 중요한 건 진짜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야.”
– 영화 <버닝> 중 해미의 대사
이창동의 영화 <버닝>을 두 번 보았다. 어쩌면 세 번을, 네 번을 더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이 영화의 이미지와 음악, 이야기는 강렬했다. 영화는 종수라는 청년이 거리에서 우연히 어린 시절 친구 해미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종수는 아르바이트직을 전전하는 가난한 작가지망생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아버지는 홧김에 폭력을 휘둘러 교도소에 갔다. 성형을 해서 예뻐졌다는 해미는 나레이터 모델 일을 하고 있다. 해미는 종수에게 요즘 배우고 있다는 팬터마임 연기를 보여주며 그런 이야기를 한다. 여기에 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귤이 없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 알 듯 모를 듯한 이야기를 남기고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난 해미는 벤이라는 남자와 함께 돌아온다. 강남의 맨션에 살며 고급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벤은 도무지 정체를 알 수가 없는 남자다. 어느 날 종수의 집을 찾아온 벤은 이렇게 고백한다. 자신의 취미는 버려진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것이라고. 아무도 돌보지 않고, 아무런 쓸모도 없는 비닐하우스를.
“한국에는 비닐하우스들이 진짜 많아요. 쓸모없고 지저분해서 눈에 거슬리는 비닐하우스들. 걔네들은 다 내가 태워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난 그 불타는 비닐하우스를 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거죠.”
– 영화 <버닝> 중 벤의 대사
그날부터 종수는 벤이 곧 태우려는 비닐하우스를,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그 비닐하우스를 찾아다닌다. 하지만 어떤 비닐하우스도 불타지 않고, 얼마 후 해미가 수상한 전화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종수는 벤이 해미를 어떻게 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며 벤의 뒤를 쫓는다.
영화의 모든 것이 기억에 남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공간의 대비였다. 종수의 집과 해미의 집, 그리고 벤의 집. 이 세 공간은 세 사람의 개성과 성격, 그리고 처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종수의 집은 파주의 농가다. 버려진 비닐하우스가 널려 있는 쇠락한 시골 마을 종수의 집 마당에는 태극기가 휘날리고, 하루 종일 북쪽에서 내보내는 선전 방송이 들려온다. 아버지가 홀로 살며 소를 키우던 집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다. 과거의 물건들과 현재의 물건들이 너저분하게 뒤엉켜 있는 이 공간은 아버지가 살아온 인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 같다. 종수에게는 국가도, 분단의 상황도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종수는 그저 글을 쓰겠다는 야심만 품은 채 글을 쓰지 않고 하루하루를 해결하며 살아갈 뿐이다. 그리고 온갖 잡동사니가 쌓인 아버지의 창고에는 어디에서 난 건지, 왜 여기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사냥칼 세트가 있다.
해미의 집은 어떤가. 남산 아래 좁디좁은 해미의 원룸 역시 엉망진창이기는 마찬가지다. 턱없이 작은 방은 발 디딜 틈 없이 옷과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북향이라 언제나 춥고 어두운 이 방에는 남산 전망대 유리창에서 반사된 햇빛이 하루 중 아주 잠깐 들어온다. 해미는 이렇게 가난한데다 카드빚에 시달리며 가족들과도 연락을 끊었고 친구조차 없다. 해미에게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다.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해미는 부시맨들이 추는 춤에 대해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린다. 처음에는 물리적 배고픔을 채우려던 ‘리틀 헝거’가 영혼의 배고픔을 채우려는 ‘그레이트 헝거’가 되어가는 춤을. 해미는 그레이트 헝거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진 것이 없는 현실의 해미는 언제까지나 리틀 헝거일 수밖에 없다. 해미의 공간은 마치 해미의 정신세계 같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이상을 추구하지만 현실은 그 이상을 전혀 쫓아가지 못하는 세계.
종수와 해미의 공간에 반해 벤이 사는 맨션은 넓고 쾌적하다. 너저분한 살림살이라고는 눈에 띄지 않는다. 고급스러운 실내장식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미술품과 가구들이 보기 좋게 놓여 있다. 종수와 해미의 집은 오직 생활을 위한 공간, 먹고 자고 싸야 하는 몸을 처리하는 공간처럼 보이지만, 벤의 집은 그렇지 않다. 벤의 공간에서는 사적인 생활은 물론 사회적 교류까지 이루어진다. 벤은 가족이나 친구와도 탄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종교도 있다. 작가가 되겠다는 종수는 책을 읽지 않지만 벤은 책을 읽는다.
벤은 모든 걸 다 가졌다. 종수와 해미는 죽어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을. 무엇보다 벤이 다른 점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자의 저 여유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벤의 부유한 삶과 오만한 태도(“진지하면 재미없어요. 즐겨야지.”)는 종수의 마음속 질투심과 분노의 불씨를 지핀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좀 춥더라도 창문을 열고 지내려고 합니다. 집 안에 공기가 흐르고 바람이 들어오면 답답함이 사라지고 청정한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세탁기를 돌립니다. 세탁을 하는 동안에는 거실과 침실을 정리합니다. 지난 밤 잠들기 전에 미처 정리하지 못한 물건이나 탁자 위에 어질러진 물건들은 모두 제자리에 갖다놓습니다. 모든 물건들을 제 위치에 놓은 이 상태를 저는 집안의 ‘제로 상태’라고 부릅니다. 집 안의 모든 것을 정리한 다음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죠. 그동안 제 머릿속은 서서히 작업하기 좋은 상태로 바뀝니다.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움직이고 손을 움직이면 저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상쾌해지는 느낌이 들거든요.
– 와타나베 유코, 《집의 즐거움》 중에서
일본의 요리연구가인 와타나베 유코는 생활에 대한 글을 쓴다. 매일을 살아가며 놓치기 쉬운 작은 것들을 향한 관심과 정성이 담긴 글을. 《집의 즐거움》은 내가 살아가는 공간과 그 공간을 구성하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담은 책인데, 이런 책을 읽을 때면 왠지 안심이 된다.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샘솟기도 한다. 그런데 <버닝>의 이미지에 사로잡힌 채로 이 책을 읽다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이 책이 종수나 해미보다는 벤의 삶에 가까운 책인 것 같아서다. 뭐지? 나와 벤 사이에는 일억 광년 정도의 거리가 있는데? 이건 일종의 퇴행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대충 이렇게 정리한다. 인생은 어렵지만 어렵게만 살 수는 없는 법이다. 내 힘으로 내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건 어쩌면 순진한 착각일지도 모른다. 내 삶은 나 하나만이 아니라 수많은 것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으니까. 그럼에도 잘 사느냐, 못 사느냐의 문제는 일단 우리 손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집의 즐거움》 같은 책을 읽을 때는 그 믿음이 더 단단해지는 것 같다.
나는 종수를 이해하면서도 종수가 집을 좀 치웠으면 했다. 아버지의 유산들을 말끔히 정리했으면 했다. 그리하여 결국 아버지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랐다. 해미를 이해하면서도, 나 자신도 해미처럼 살아가던 때가 있었는데도, 해미가 청소를 좀 했으면 했다. 닿을 수 없는 큰 것을 향해 몸을 날리듯이 위태롭게 살아가는 것도 인생의 어느 시기에는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영원히 그렇게 살 수는 없다. 그 애들이 뭘 잘못해서 가난하고 막막한 인생을 사는 건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그 애들이 그런 것들에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이것은 <버닝>의 종수와 해미가 아니라 내 안의 종수와 해미에게, 앞으로 종수와 해미의 삶을 맞닥뜨리게 될 내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물건이 어쩌면 우리의 생활공간을 어지럽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우리 집에는 전자레인지도 전기밥솥도 없습니다. 물론 그런 것들이 있으면 편리하겠지요. 하지만 지금 저희 생활에서는 없어도 전혀 불편할 게 없습니다.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도 지금 자신의 생활에 정말로 필요한 것인지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세요.
– 와타나베 유코, 《집의 즐거움》 중에서
글 한수희
그림 김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