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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확장
우주는 한 번의 폭발 이후 끊임없이 늘어난다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나의 우주는 어떻게 늘어났을까.
내 우주가 늘어나던 시간에 함께하던 아티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겐 각자 이유가 있다. 각각의 이유가 어쨌든 짧지 않은 시간에 먼 곳까지 혼자 떠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나는 그 쉽지 않은 결정을 단 한 사람만 믿고 실행했다. 바로 영화감독 우디 앨런이다. 지금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즐겨 보지만 과거엔 그렇지 않았다. 자극적이고 화려한 장면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잔잔하고 아름답게 흘러가기만 하는 영화들은 재미를 주지 못했다. 어쩌다 가끔 그런 영화를 보게 되어도 ‘흥미롭긴 하지만 <인셉션>보단 안 되지.’, ‘엄청난 영화인 건 알겠는데 <다크나이트>보다 높은 점수를 줄 순 없지.’ 하는 식으로 마음을 닫기 일쑤였다. 그러나 우연히 우디 앨런의 영화를 접한 이후엔 마음이 바뀌었다. <미드나잇 인 파리>를 처음 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영화의 내용이나 캐릭터도 인상 깊었지만, 영화에 담긴 파리 곳곳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첨단 무기가 달린 로봇으로 변신하는 노란 스포츠카보다 센강을 조용히 걷는 마리옹 꼬띠아르가 나를 더 두근거리게 할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이후 우디 앨런에게 매료되어 그의 영화를 찾아보았다. 런던을 배경으로 한 두 영화 <매치 포인트>와 <스쿠프>에선 각각 차갑고 세련된 런던, 따뜻하고 다채로운 런던을 보여준다. 두 영화를 비교하며 감상하면 우디 앨런이 얼마나 도시의 매력을 깊게 알고 있는지, 그 매력을 얼마나 잘 담아내는지 느낄 수 있다. <로마 위드 러브>에선 영화의 스토리와 로마의 아름다움을 우디 앨런 특유의 익살스러움으로 자연스럽게 엮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가 다른 영화에서 담아내는 다른 도시들도 모두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 매력은 ‘그곳에만 가면 나도 우디 앨런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기대하게 만들었다. 아쉽게도 비 오는 파리의 새벽, <미드나잇 인 파리>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나 찾아간 알렉산더 다리에서 나의 레아 세이두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의 우주는 더욱 넓어지고 있었고, 그 중심엔 ‘우디 앨런’이 있었다.
이별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이별 노래의 가사와 나의 스토리가 맞아떨어져서 공감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노래를 들을수록 내 이야기 같고, 그럴수록 그 사람은 자꾸 생각난다. 거기에 새벽 감성까지 더해지면 흑역사 만들기는 시간문제다. 하지만 이별의 아픔이 가시고 같은 노래를 다시 들어보면 예전만큼 공감되지 않는다. 노래는 노래일 뿐이었다.
하지만 박원의 노래는 그렇지 않았다. 단순히 감정에 취해 공감하게 되는 노래가 아니다. [0M]는 박원의 앨범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앨범이다. 4개의 수록곡 모두 한 사람과의 사랑 이야기로만 이루어진 것이 인상적인데, 이 앨범에서 그는 아픔이나 슬픔 같은 ‘감정’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랑하며 느낀 사실만을 포장 없이, 담담하고 진솔하게 이야기할 뿐이다. 하지만 슬픔과 아픔은 충분히 전달된다. 슬프다는 감정이 아닌 그의 사랑 자체에 공감이 되기 때문이다. [Like A Wonder] 앨범에 실린 <나를 좋아하지 않는 그대에게>는 박원의 아픔을 가장 깊게 이해하게 해줬던 노래다. 이 노랠 들으면 지금도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잊지 못한 것도 아닌데 노래만 들으면 아직도 가슴이 찌릿하다. 이별을 다른 관점에서 푼 노래도 있다. 마음이 식어가는 사람의 처지에서 쓴 <노력>은 이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대부분 이별을 통보받은 사람들은 슬픔에 빠져 본인의 상황만 본다. 하지만 이별이라는 결론이 나오기까지의 과정도 마땅히 존중해줘야 한다. 누가 먼저 결정했든, 이별을 견뎌내야 하는 건 결국 두 사람 모두니까.
‘비 온 뒤에 땅 굳는다.’라는 말이 있다. 사랑이 지나간 마음엔 언제나 비가 내린다. 금방 지나가는 소나기처럼 이별의 슬픔도 짧으면 좋겠지만, 언젠가 한 번쯤은 슬픔이라는 장마 속에서 흠뻑 젖어보는 게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치지 않은 비를 맞으며 사랑을 곱씹기로 맘을 먹었다면 플레이리스트에 박원의 노래를 추가할 일만 남았다.
남자들끼리 모이면 가끔씩 만화 얘기가 나오곤 한다. ‘남자라면 반드시 봐야 할 만화’라며 서로가 봤던 명작들을 늘어놓는다. 《슬램덩크》, 《드래곤볼》, 《원피스》, 《데스노트》 등 각양각색의 유명한 만화들이 나오다가 내가 만화를 말하면 친구들은 토론을 멈춘다. “《H2》? 그게 뭔데?”
가끔씩 찾아갔던 대학 동기 형의 자취방 책꽂이엔 《H2》 전집이 꽂혀 있었다. 《슬램덩크》도 아니고 순정만화책을 다 샀냐며 놀리던 나에게 형은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이라는 노래 알지? 이 만화 보고 그 노래 만든 거야.”라며 으스댔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그 노래를 탄생시킨 게 이 만화였다니. 관심이 생겼다. 그 자리에서 다섯 권을 읽었고, 책은 절대 안 빌려준다는 형에게 밥을 사줘 가며 나흘 만에 끝까지 읽어버렸다. 완전히 빠져든 것이다. 작가의 작품들은 대부분 비슷한 구도의 캐릭터와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남자 주인공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여자 주인공, 소꿉친구들이 사춘기를 지나 사랑에 눈뜨게 되는 이야기다. 《H2》 역시 야구 만화라기보단 소꿉친구들의 사랑을 담은 순정만화라고 할 수 있는데, 화려하고 자극적인 맛은 없지만 작가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만화에 빠져들게 한다. 우선, 주옥같은 대사들이 만화를 지배한다. 엉뚱한 것 같지만 뼈가 숨어 있는 의미심장한 대사는 캐릭터의 감정에 몰입하게 한다. 또한, 그는 침묵이 주는 효과를 최대로 사용한다. 대사가 없는 여백 장면을 삽입해 인물의 심리를 상상하게 만드는데, 대사가 없기 때문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더 잘 알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선사한다. 결말 역시나 여태 사용하던 여백 장면의 해석이 달라 사람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작가는 이런 탐미적 요소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몰입하게 하는 데 도가 텄다. 표현하지 못하고 간직할 수밖에 없는 마음, 겨우 꾹꾹 눌러 담아 뱉은 진심, 지나간 선택에 대한 아쉬움. 일본 특유의 아련한 감성을 이보다 더 잘 담아내는 작가가 있을까?
언제부턴가 ‘오글거린다’는 이유로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진심을 말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부끄러운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시대에서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은 만화가 아니라 마치 참고서 같다.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보여주는 방법,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설명하는 방법. 누군가에게 진심을 전달해야 할 순간이 찾아오면 그의 만화를 떠올린다. “때론 숨기는 것이 가장 많이 드러내는 것이다.”
베네치아 여행을 할 때의 일이다. 점심을 먹고 돌아다니다가 골목의 작은 가게에서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보았고,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누가 말을 걸었다. “모딜리아니 좋아하시나 봐요?” 처음 보는 한국 여자였다. 저녁에 그녀와 와인을 마시고 헤어지기까지 모든 일이 꿈만 같아 기억이 선명하진 않지만, 나에게 말을 왜 걸었냐는 질문에 그녀의 대답은 잊을 수 없다. “모딜리아니를 좋아하는 남자, 뭔가 있어 보이잖아요.”
모딜리아니를 처음 알게 된 건 대학교 때다. 전시회를 다녀온 뒤 그 전시회의 인쇄 광고를 만드는 것이 졸업 과제였다. 당시엔 아무 정보 없이 ‘눈을 그리지 않는 화가’라는 소개가 멋있다는 이유로 그 전시를 택했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인물화였는데, 인물의 목을 길게 그리고 눈동자에 색을 칠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는 자신이 그리는 인물과의 교감을 중요시했다.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 때 당신의 눈동자를 그려 넣을 것이다.”라는 그의 말마따나 인물의 눈동자가 그려진 작품은 그의 아내가 담긴 그림을 제외하곤 얼마 되지 않는다. 독특하고 멋있는 예술철학이었다. 그에게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나는 안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작품만큼 그의 삶 또한 평범하지 않았다. 많은 사랑을 받는 지금과는 달리 그는 처절한 삶을 살았는데, 평생을 가난과 궁핍 속에서 살다가 36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부인마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그의 죽음 이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의 배 속에 9개월 된 아이가 있었기에 그들의 결말은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비극적인 삶 속에 탄생한 비운의 화가, 공허해 보이는 초상화, 눈동자가 비어 있는 사람들. 미술을 모르던 나에게도 충분히 멋진 사람이었다.
그렇게 알게 된 모딜리아니 때문에 얼마나 많은 밤을 새우고, 회의를 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퇴짜를 맞길 반복했는지 셀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 집착하면 설명할 수 없는 신념이 생긴다.’던 영화 <독전>의 대사처럼, 학기가 끝날 무렵엔 그에게 어떤 신념이 생길 정도였으니까. 비록 C+라는 절망적인 성적을 받았지만 그를 향한 내 마음은 변함없었다. 좋아하는 작가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러나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모딜리아니 덕분에 3년 뒤 낯선 땅에서 운명 같은 만남이 이루어질 것임을! 대학 동기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하나같이 똑같은 반응이다. “아, 나도 모딜리아니 고를걸!”
글·그림 이두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