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Transcend Space And Time Together

우리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설 수 있다면

외로운 방에 혼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가끔 친구들을 만났고, 

사진 몇 장을 함께 보면서 같이 보게 될 오늘을 그려보기도 했다.


외로운 줄 모르고 책상에 앉아 뭔가를 하겠지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 집에 와 있다. 이 집에 오면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안해진다. 우리 집과 다르게 가구나 가전제품도 많고 구경할 거리가 가득이다. 우리는 오늘 같이 브런치를 먹고 일을 하기로 했고 지금, 여기에 함께 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한 글자도 쓸 수 없을 것 같던 원고를 방금 쓰기 시작했고, 이걸 다 쓰고 나면 맛있는 저녁을 먹자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시간쯤 전에는 친구가 근사한 점심을 차려주었다. 새우와 마늘을 볶은 것, 막 구운 빵, 세 종류의 잼이 테이블에 차려졌다. 나는 친구가 요리를 하는 동안 커피를 내렸다. 맛있는 걸 배불리 먹고 나니 잠이 오길래 잠시 낮잠도잤다. ‘이제 일을 해볼까.’ 싶어 자리에 앉았고, 내가 자는 동안 일을 하던 친구는 일어나서 현관문 앞에 있던 상자를 들고 왔다. 어제 프린터를 주문했는데 오늘 바로 왔다고 신기해하며 그걸 설치하겠다고 했다. 부스럭거리는 친구를 옆에 두고 나는 원고를 쓴다. 가끔씩 오는데 올 때마다 ‘매일 여기에 오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여기에서라면 원고를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고, 마감이 없는 글도 쓸 수 있을 것 같고, 책도 더 많이 읽어낼 것 같고, 그러다 보면 사는 게 아름다워질 것 같다. 책상 앞에 앉아 프린터를 설치하는 친구의 얼굴을 흘끔거리다가 궁금해졌다. 친구는 내가 없을 때도 이렇게 테이블에 앉아 있을까. 나는 사실 집에선 침대에만 누워 있는다. 책상을 겸하는 식탁이 있긴 하지만 평일에는 회사에서 점심, 저녁을 다 먹고 주말에는 주로 밖에 있기에 그 앞에 앉는 일은 거의 없다. 더군다나 우리 집은 원룸이라 생활 공간의 구분도 거의 없다. 집에 오면 씻고 누워 침대 위에서 나머지 일들을 한다. 그러다 보면 가끔 외롭다. 친구 집은 투룸이고 거실이 따로 있다. 우리가 지금 일하고 있는 테이블은 거실에 있는 긴 책상이다. 혼자 여기 앉아 있는 친구를 상상해본다. 어쩐지 내 친구는 외로운 줄 모르고 책상 앞에 앉아 아름답고 우아하게 무엇인가를 하고 있을 것 같다. 혼자 있는 친구를 상상하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비슷한 생각을 했던 일이 생각났다.



크리스마스에 꺼내 본 10여 년 전의 사진들

“우리 집에 가서 옛날 사진 볼래?” 양꼬치를 먹다가 (앞서 말한 친구와 다른) 친구가 말했다. 제안을 한 친구 외에 두 사람이 더 있었다. 나를 포함해서 모두 네 명의 고등학교 동창들이 크리스마스를 외롭지 않게 보내겠다는 의지를 갖고 만났다. “콜!” “좋지!” “근데 너 옛날 사진 갖고 있는 거 있어?” “어. 찾아보면 있을 거야.” 

친구 집에 들어가자마자 빨리 사진을 보자고 재촉했다. 그는 기다려보라고 우리를 달래며 TV와 컴퓨터를 연결하기 시작했다. “너 처음 해보는 거 아니야?” “아니야. 가끔 이렇게 봤단 말이야.” 부스럭거리는 친구의 넓은 등을 보며 오늘과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얘는 혼자 있을 때, 이렇게 커다란 TV 앞에서 사진을 보기도 하나.’ 친구네 텔레비전은 정말 컸다. 내 노트북 모니터를 열 개는 합친 듯한 크기였다. 그 앞에 앉아 사진을 틀어놓고 혼자 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걔도 외롭지는 않을 것 같았다. “됐다!” 연결을 끝낸 친구는 불을 끄고 소파 앞에 앉았다. 우리는 텔레비전에 띄워진 사진을 보았고 모두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누가 “어?” 하는 짧은 신음 같은 소리를 냈고 누구는 “이야~” 하는 늙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는 “이런 사진을 도대체 언제 찍었어?”라고 물었다. 친구는 멋쩍게 웃었다. 10여 년 전의 일이고 우리가 함께 지나왔던 장면들이다. 잘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마치 없던 일을 보는 것처럼 낯설었지만, 이내 반가워서 없던 일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이 기분의 정체를 알 수가 없어 멍하니 모니터를 보고 있는데 내 얼굴이 나왔다. 카메라를 들고 웃고 있는 내가 화면에 가득 찼다. 사진을 찍는 나는 저런 모습이었구나.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그제서야 내가 사진을 찍을 때, 건너편에서 커다란 DSLR을 들고 있던 친구가 생각났다. 

가끔 노트북으로 옛날 사진을 본다. 집일 때도 있고 회사일 때도 있고 어느 카페에서이기도 하다. 외장하드에 날짜별로 정리해둔 폴더를 하나씩 열어 본다. 카톡이나 메일로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내줄 때도 있지만 진짜 아끼는 것들은 남겨두는 편이다. 나중에 친구들 환갑 선물로 사진집을 선물해주겠다는 약속을 했기에 그때를 위해 잘 보관해두는 거다. 

친구들 찍기를 좋아해왔고, 언젠가 이것들이 소중한 이들을 기쁘게 할 거라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지만 누군가 찍어준 어제의 나를 보는 기쁨이 있을 거란 사실을 예상해본 적은 없다. 카메라가 보편화되고 누구나 사진을 찍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고마워했다. 꼭 사진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사진을 찍고 있다. 휴대폰이 있고 거기에 저장된 사진이 있다면, 누구든 언젠가 한 시절을 함께한 사람들을 모아두고 사진을 상영할 수 있는 거다. 전에는 늘 “내가 더 많이 찍어줄게.” 말하곤 했는데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친구들에게 “우리 서로의 사진을 더 많이 찍어두자.” 말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본 감동이 지나간 뒤, 곁에 앉은 친구들의 오늘이 보였다. 사진을 찍어준 친구는 10여 년 전에 불곰처럼 포악했다. 요즘은 온순한 물개처럼 지내서 신기하고 아쉽다. 내 오른쪽에 있던 친구는 불곰 같은 친구와 자주 싸웠는데, 지금 둘은 같이 게임을 밤새도록 하는 좋은 사이가 되었다. 또 다른 친구는 그들이 싸우는 틈에서 말리는 시누이처럼 낄낄대며 웃었다. 지금도 그렇게 웃는다. 전처럼 자주 웃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도 외롭지 않을 순간

언젠가 인간의 머릿속을 형상화한 미디어 전시를 본 적이 있다. 한 사람의 머릿속에 여러 방이 있고 각 방의 역할이 다르다. 중요한 일을 넣어두는 곳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을 쌓아두는 공간도 있다. 누런 상자들이 각 장소에 쌓여 있는데, 커다란 박스를 열면 여러 박스가 있고 또 그 안에는 아주 작은 것들이 들어 있다. 친구의 사진을 보니 그 영상이 생각났다. 사진 한 장, 한 장이 하나의 박스 같았다. 사진을 두고 쓰는 표현 중 ‘들어 있다’가 있다. 사진에 이런저런 마음이나 감정, 추억이 들어 있다고 말하곤 한다. 네모난 프레임 안에 ‘함께’ 있던 일을 넣어둔다. 그 장면을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같이 들여다본다. 2차원으로 만들어진 평평한 면을 가만히, 뚫어져라 응시한다. 보고 있으면 그게 어느 순간 3차원으로 변할 거다. 내가 찍은 사진이라면 더 생생하게 그 공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만약 같이 있던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이라면 내가 보지 못한 면 쪽으로 입장해볼 수 있다. 언젠가 삼각형 넓이 구하는 공식을 배울 때, 머리가 아팠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걸 겨우 이해했을 무렵에는 1, 2, 3, 4차원이 있다는 것도 알았는데 4차원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포기하고 모르는 채로 남겨두었는데,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지난 사진을 같이 보는 일이 어쩌면 4차원에 가까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공간에서 나와 타인이 찍은 사진을 먼 훗날에 바라보는 일. 어색하고 낯설겠지만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내가 있던 방향과 상대가 있는 방향이 달랐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 앞에 있던 이가 찍은 사진을 통해 ‘나’를 바라보다 보면 저마다의 시간과 등 뒤에 있던 공간이 겹쳐지며 ‘우리’ 머리 위로 여러 차원의 세계가 겹쳐질 거다. 그 순간에는 아무도 외롭지 않을 수 있을까.


있던 일들이라 다행이고

친구는 방금 막 프린터 설치를 끝냈다. “무슨 프린터 설치에 두 시간이나 걸리냐!” 우리는 웃었다. 오늘 이 집에 오지 않고 우리 집에 누워 있었다면 이 원고를 쓸 수 없었을 거다. 친구가 만들어준 브런치가 없었다면 짧은 잠도 없었을 거고 그러면 아직도 졸고만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있던 모든 일이 다행이란 생각에 이른다. 이 집에 놀러 가도 되냐고 처음으로 물어본 날도 그렇고, 기어코 시골에 있는 고등학교에 가겠다며 엄마에게 떼를 쓰던 날도 그렇다. 엄마가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했지만 몰래 돈을 모아 필름 카메라를 샀던 일도 마찬가지다. 그러길 잘했지. 그래서 나는 외롭지만 친구나 엄마 앞에서는 외롭다고 말할 때 미안해진다. 우리에게는 선명한 증거들이 많이 있고, 마음만 먹으면 함께 그것들을 볼 수 있다. 늘 그래온 것처럼 두리번거리다가 몇 장의 사진을 찍어두었다. 오늘 찍어둔 몇 장의 사진을 보면서 있던 마음을 떠올릴 수 있을까. 프린터 설치를 끝낸 친구는 낙지김치볶음밥을 만들고 있고, 이 집의 고양이는 나와 친구 사이에 누워 잠을 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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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박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