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겨울숲에 가서 과연 무얼 할까? 확실히 다른 계절보다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겨울숲에 가서 과연 무얼 할까? 확실히 다른 계절보다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가만히 앉아 쉬는 것’도 좋지만, 무자비한 추위 때문에 그마저도 쉽지 않다. 대부분의 시간을 추위를 견디는데 써버릴 게 뻔했다. 그래도 우리는 천천히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크고 무거운 겨울장비들 때문에 몸은 앞으로 기울어지고, 가방 안에서는 달그락달그락 스테인리스 포트와 컵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짐을 챙기면서부터 숲의 한가운데에 도착하기 전까지 ‘역시 무리하는 게 아닐까’ 하고 여러번 생각했는데 겨울의 숲은 의외로 아주 따뜻한 곳이었다.
주말이 되면 꽤 활기차다. 평일 동안 쌓인 피로를 슬며시 잊고서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혼자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어떤 주말엔 친구들과 함께 돌아다니기도 했다. 돈이 많건 적건, 그곳이 부산이건 서울이건 크게 따지지 않았다. 전날 밤새 일했어도 토요일 아침이 되면 대수롭지 않았다. 나는 아무데나 가서 누웠고, 수영했고, 걸어다녔다. 참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그런데 겨울이 되니 모든 게 더뎌졌다. 어쩐지 친구들도 모두 움츠리는 게 느껴졌다. 그런 분위기가 단단하게 굳어져서 전화를 하는 도중에도 들리고, 문자메시지에도 섞여서 왔다. 아쉬운 마음으로 며칠을 보내는 사이 기온이 조금 더 내려갔고, 라디오에선 다음 주에 내릴 눈 소식까지 들려왔다. 나는 얼마 후 세 명의 친구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어 똑같은 말을 꺼냈다. 짧고 시시한 질문이었는데 의외로 다들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했다. 대답도 모두 ‘그래 알겠어’ 정도로 담담한 어조였다. 그날 내가 친구들에게 한 질문은 대충 이렇다. “두꺼운 옷 있어? 숲에 가서 하루 자고 오려고. 같이 갈래?” 물론 친구들의 대답을 듣고 난 뒤에 질문을 하나 더 하긴 했지만.
“그 옷 얼마나 두꺼운데?”
숲으로 들어가는 것은 언제나 신나는 일이지만, 12월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왜냐하면 한없이 크고 무거운 짐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캠핑장비들은 모양이 간결하고 (같은 제품군에서 보자면) 부피도 작고, 가볍다는 장점이 있지만 ‘겨울용’은 예외다. 추위를 막아내려다 보니 생긴 것도 밋밋하고, 크기도 너무 크다. 이것들을 집에서 편하게 구경하는 입장이라면 ‘꽤 귀여운 모양이네’ ‘정말 따뜻하겠군’ 식으로 말했겠지만, 어깨에 매고 걸을 생각을 하니 머릿속이 잠시 복잡했다. 하지만 작고 얇은 가벼운 장비들을 꺼내놓고 보고 있으면 이번에는 무릎이 시려왔다.
고민 끝에 최소한의 장비만 가지고 가겠다는 다짐을 했다. ‘도착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어도 좋을 거야’ 그런 말을 중얼거리면서 나는 필요없는 물건들을 하나씩 원래 있던 곳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요리도구가 꽤 많았는데, 간단한 차를 끓일 수 있는 도구만 남겨놓고 모두 제자리에 넣었다. 생각해보니 국자 같은 건 없어도 그만이었다. 냄비도 작은 걸로 하나만 챙겼다.
펼쳐놓기만 하면 굉장히 쓸모가 있는 야외용 접이식의자도 과감히 포기했다. 편안한 의자가 없으니 필기도구나 책도 왠지 쓸모없게 느껴졌다. 그렇게 십분 동안 꽤 많은 짐을 덜어냈다. 필요 없는 걸 판단해내는 일은 꽤 그럴싸한 일이어서, 짐을 줄이는 동안 나는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마치 유능한 편집자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어쩐지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겨울캠핑에 절대로 빠지면 안되는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침낭이었다. 침낭도 아주 두꺼운 침낭들. 그리고 어쨌든 침낭을 몸에 두른 다음에 바닥에 누워야 하니까 두꺼운 매트도 필요했다. 튼튼한 텐트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그런 덩치들을 멍하니 내려다봤다.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국자 같은 걸 빼고 사랑하는 접이식의자를 과감히 빼도, 이번 주말엔 짐을 가득 짊어진 당나귀 신세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 정도에서 짐 줄이기를 포기하고 튼튼한 끈을 꺼내와 가방 위아래, 양옆에 침낭들을 묶었다. 다 묶어놓고 보니 커다란 메주 같았다. 주말이 되면 엎드린 자세로 메주를 등에 얹고 있을 내 모습이 훤히 보였다.
우리는 터벅터벅 숲으로 들어갔다. 약속장소에서는 꽤나 들떠서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일단 숲에 들어가 경사진 길을 오르면서부터는 정적이 흘렀다. 다들 겁을 집어먹었는지 옷을 너무 껴입었고, 무거운 가방도 하나씩 메고 있었기 때문에 농담을 던질 여건이 전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얼마간 시간이 지나니, 호흡도 가라앉고 꽤 안정된 상태가 되었다.
삼십분 가량을 걸었을까, 우리는 텐트를 세울 만한 적당한 땅을 찾아 짐을 모두 내려놨다. 두꺼운 옷 안에는 몸에서 만들어진 열기가 가득 차 있어서 얇고 희미한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언 얼굴을 녹이는 과정 때문인지 모두 볼이 발갛게 변해 있었다. 우리는 차가운 공기를 몇번이고 마시며 폐를 가득 채웠는데, 그러고 나면 몸안의 컨디션이 순식간에 좋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다음 눈을 감고서 맥주를 쭉 마셨다. 추운 날씨 때문에 여러번 고민하고 챙겨온 차가운 맥주에서는 거의 초콜릿에 가까운 단맛이 났다. 그렇게 10분 정도 쉰 다음,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이 느릿느릿 텐트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땅이 얼어 있어 고정 팩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부분 네 곳만 고정해놓고 나머지는 포기했다. 바람이 많지 않으니 그 정도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짐을 구분해놓으려고 동그란 텐트 안에 들어갔는데, 거의 맨바닥에 앉은 것처럼 차가운 기운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우리는 깜짝 놀라서 매트를 깔고, 가지고 온 모든 침낭과 담요를 펼쳐놨다. ‘이것들로 우리의 네모난 땅을 잠시 데울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들었다. 집에 있는 두꺼운 이불을 전부 가져와서 펼쳐놓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여기까지 기어서 온 아침의 일이 갑자기 생각나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텐트 안이 조금이라도 데워지길 바라며 우리는 지퍼를 올려 텐트의 문을 닫고, 서너 시간 정도 주어진 ‘한가한 시간들’을 마주했다.
숲은 조용했다. 물론 동물들도 어딘가에 숨어 있을 테고 나무들도 살아있는게 확실했지만, 어쩐지 다들 숨을 죽이고 있었다. 소리를 들으려고 애써 귀를 기울여보면 우리들이 내는 발걸음 소리나, 넘어지지 않으려고 나무를 잡고 늘어지는 소리, 가끔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오디오 볼륨으로 치자면 0과 1 사이를 오가는 정도로, 그마저도 거의 0 상태가 이어졌다. 나중에는 내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리기까지 했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겨울의 고요함을 듣고 있었다. 어쩐지 그건 며칠 전 들었던 ‘움츠러드는 소리’와 비슷했다. 친구들과의 통화중에 섞여 들리던. 겨울엔 정말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나역시 움츠러드는 수밖에.
해가 지기 30분 전쯤에 겨울숲은 거의 금색으로 변했다. 나뭇가지의 윗부분과 유리컵의 손잡이 부분이 유독 눈부시게 빛났다. 친구들의 어깨와 튀어나온 무릎에도 빛이 퍼지고 있었다. 그건 확실히 뭉개져 있어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빛이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그런 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봤다. 눈을 가늘게 뜨니 넓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멀리까지 내다보였다. 그렇게 바라본 숲은 오전에 봤던 것보다 전체적으로 풍성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물을 끓여서 컵을 데운 뒤 가지고 온 홍차와 커피를 꺼내 각자 요령껏 마셨다. 홍차 위에 그대로 물을 부어놓고 알맞게 기다리기도 하고 모카포트를 이용해 꽤나 기술적으로 진한 커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겨울이기 때문에 추위라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손안에 따뜻한 홍차가 있는 시간만큼은 왠지 추운 날씨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우리는 곧이어 수프도 끓였다. 혹시나 해서 챙겨온 옥수수 수프였는데, 다들 배가 고팠는지 포트 안에서 숟가락으로 원을 그리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수프의 구수한 냄새가 겨울숲의 일부로 퍼져나갔다. 다 끓인 수프를 모양이 다른 컵에 넣자니 양을 정확히 나눌 수가 없었다. 내가 수프를 컵에 따르는 동안 하도 쳐다보길래, 나는 최선을 다해 수프를 나눴다. 하지만 역시 자신의 컵을 받아들고서는 다들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분위기에서 모두를 만족시키려고 노력한 건 참 어리석은 일이었다.
어쨌든 수프는 정말 맛이 있어서 다들 크게 감탄했다. 그러다보니 친구들은 그순간 정말이지 오묘한 표정이 됐다. ‘굉장히 맛있는 억울함’ 정도로 설명하면 좋을까? 알맞은 표현이 전혀 떠오르지 않지만, 실제로 보면 그건 굉장히 웃긴 표정이다. 우리는 동시에 웃음이 터져나와서 한참을 웃었다. 겨우 웃음이 그쳐도 눈이 다시 마주치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그만 웃고 싶어서 도망을 다녀야 했다. 한 친구가 ‘망할 수프’라고 말하면서 그걸 너무 맛있게 먹었는데, 그 부분에서는 너무 웃어서 다른 기억은 거의 나질 않는다. ‘왜 여기에 와서고생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한참을 웃고 나니 역시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컵의 바닥이 드러나는 사이 주변은 점점 빨갛게 변하더니, 순식간에 해가 없어져버렸다. 숲은 곧 어두워졌다.
드디어 밤이 왔다! 평소 같았으면 걱정이 많았겠지만, 우리에겐 힘들게 운반 해온 침낭이 있었다. 사용직전에 놓인 두꺼운 침낭과 매트는 그야말로 근사한 모양이었다. 출발 전에 쏟아 부은 원망은 하나도 남김없이 날아가버린 뒤였다. 우리는 침낭에 몸을 끝까지 집어넣고 번데기처럼 나란히 누웠다. 이제 그동안 말 못했던 수위가 높은 진실들을 털어놓거나, 지난 날 추억을 적당히 반복하다가 잠이 들 일만 남았다. 내일 아침엔 또 어떤 절망감이 몰려들지 모르는 일이지만, 그런 걸 지금 걱정하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정리하듯 하루를 돌아보니, 무거운 짐을 이곳으로 운반한 뒤 따뜻한 차를 한잔 마시며 숲을 구경한 게 전부였다. 별다른 건 없었다.
신나게 수영을 한 것도 아니고,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나무들을 구경한 것도 아니었다. 이제는 단풍잎들도 전부 생기가 빠져서 주변도 그저 따분한 갈색이었다. 겨울숲이라는 건 정말이지 별 볼 일 없는 공간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게,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떠오른 순간은, 홍차가 든 따뜻한 컵을 쥐고 있던 때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침낭 안에 들어와 있으니, 기분이 아주 좋았다.
새삼스레 강조하지만, 겨울엔 역시 침낭이다. 말도 못할 정도로 무겁더라도 겨울 캠핑엔 두꺼운 침낭이 있어야 한다. 국자라든지 접이식의자는 12월엔 전혀 필요가 없다.
고민 끝에 남겨져, 결국 배낭 안에 넣은 물건들을 소개한다.
01 길리케틀Ghillie Kettle
아일랜드 전통방식의 케틀, 뚱뚱한 겉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안쪽은 사실 비어 있다. 불기둥이 올라올 수 있도록 가운데가 뚫려 있고, 그 둘레에 물을 채운다. 날씨와 관계없이 물을 빨리 끓일 수 있고, 불이 바깥으로 향하지 않기 때문에 화재의 위험도 적은 편이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호루라기 소리가 크게 들리는데 그때 손잡이를 잡고서 요령껏 물을 컵에 부으면 된다. 소리가 날 때 체인이 달린 뚜껑을 열어놓고 그대로 두면 따뜻한 난로가 된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케틀이 흔들리기 때문에 반드시 지면이 반듯한 곳에 놓고 사용하자. 8만원대
02 솔리드 스테이트 랜턴Solid State Lantern
‘튤립’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랜턴은 모양과 기능면에서 만족스러운 제품이다. 3단계로 불빛의 양을 조절할 수 있고, 고리가 달려 있어 세울 수도, 천장에 걸어놓을 수도 있다. 가장 밝은 상태로 놓으면 9시간, Low모드에서는 놀랍게도 300시간 동안 꺼지지 않는다. 노란 빛을 내는 전구와 전구를 둘러싼 부드러운 실리콘셰이드 덕분에 켜놓기만 해도 아주 편안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24만원, Snow peak
03 리엑터 스토브Reactor Stove
‘세계에서 가장 빠른, 가장 연료를 효율적으로 소비하는 스토브’ MSR 리엑터 스토브를 수식하는 문장이다. 우리 눈으로 확인해본 결과가 어떤가 하면, 정말이지 굉장한 속도로 물이 끓는다. 포트에 얼음처럼 차가운 물을 가득 채웠는데, 1분이 채 되지 않아서 물이 보글보글 끓었다. 작은 포트 안에 가스 카트리지와 스토브가 모두 들어 있어서 백 패킹용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제품이다. 크기가 더 작은 왼쪽 제품은 2013년 출시 예정이다. 24만9천원, MSR
04 마이크로 로켓Micro Rocket
여태까지 본 스토브 중 가장 작다. 가스카트리지를 제외하고 스토브만 보자면 주머니에 넣어도 될 정도다. 그런데 화력이 정말 놀랍다. 조절레버를 끝까지 돌리면 볼꽃이 10cm도 넘게 올라온다. 작은 분화구에서 이렇게 막 뿜어져나와도 될까 할 정도로 불꽃은 가득 뿜어져나온다. 그래도 크게 걱정할 건 없다. 분화구 쪽에 설치된 윈드클립이 불꽃을 안정적으로 보호한다. 물 1리터를 끓이는데 걸리는 시간은 3분 30초 정도. 9
만8천원, MSR
글 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