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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영화 읽기, 혹은 영화로 대만 읽기
중국인이 중국인을 만나면 이야기는 역사가 된다. 대만 영화는 오랜 동안 아시아 영화에도 변방에 놓여있었다. 이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1947년 12월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과 함께 대만으로 건너온 본토 세대들의 자식들이 자라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우리들은 어디서 왔는가? 홈리스가 되어버렸다는, 고향을 잃어버린 향수.
우리들은 어떻게 이곳에 왔는가? 도착하자마자 번성런本省人(대만 토착민들을 그렇게 불렀다)을 상대로 국민당은 무자비하게 ‘빨갱이 사냥’의 이름으로 대규모의 학살극을 벌였고(그게 허우 샤오시엔의 <비정성시>의 배경이다), 그런 다음 함께 이주했지만 국민당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을 간첩으로 몰아서 숙청하였다(그게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배경이다). 피비린내 나는 역사. 이 위대한 두 편의 영화. 국민당은 독재 정치를 했지만 동시에 대만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龍 중의 하나로 불릴 만큼 성공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근대화가 겪는 빈부의 격차와 도시화의 소외는 고스란히 이 작은 섬나라 국민들의 몫이 되었다. 수많은 대만 영화의 배경.
그 과정에서 대만 영화는 일상생활을 자신들의 미학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단지 리얼리즘의 영화를 찍는 데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좀 더 멀리 나아갔다. 대만 영화는 생활 안에 잠겨있는 경험의 미학으로까지 밀고 나아갔다. (경험의 미학이라고 했나요? 그렇습니다.) 마치 뜨거운 차에서 우러나오는 것과 같은 경지가 그들의 목표인 것처럼 오래된 중국 예술의 대가들의 교훈을 따라갔다. 그러면서 다른 어떤 나라의 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장소의 미장센을 자신들의 대상으로 삼았다. 수많은 디테일이 있지만 나는 그중에서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그 하나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집이다. 허우 샤오시엔도, 에드워드 양도, 리안도 항상 집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하였다. 누가 그 집에 머무는가, 누가 그 집을 떠나는가(리안의<음식남녀>), 누가 그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가(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 그리고 누가 결국 돌아오는가(허우 샤오시엔의 <연연풍진>). 그들은 세상이 집 안과 바깥 둘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구성했다. 그들에게 가족이 머무는 장소로서의 집은 기억이 모이는 장소이자 세상에서의 유일한 피난처처럼 보인다. 모두가 모여서 함께 사는 집. 이상할 정도로 대만 영화는 그래서 대가족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삼았다. 할아버지의 시간, 아버지의 시간, 아들의 시간. 켜켜이 쌓여있는 시간. 마치 물이 고이듯이 시간이 하나의 그릇에 담기는 것처럼 집을 찍었다. 이 더할 나위 없는 유교적 시간. 그때 그들은 대만에 이주했을 때 머물렀던 전통적인 가옥 구조에서 이야기를 진행했다. 그 집이 아파트로 옮겨갔을 때 거기서 아무도 머물지 못했다(에드워드 양의 <타이페이 스토리>). 혹은 그게 누구든 그 집의 손님이 된 다음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기를 반복하면서 타이베이의 길거리를 그저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차이밍량의 <애정만세>).
그들은 자기의 집에서 고향을 잃은 홈리스였고, 도시의 아파트 숲속에서 갈 곳 없는 유목민들이었다. 심지어 갈 곳 없는 이들이 한밤중에 극장에영화를 보러 가서는 귀신들을 만난다(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 그들의 삶은 표면적으로는 고요하고 서로 예의 바르며 모두에게 평화롭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부서져가는 중이다.
다른 하나는 밥상이다. 이 테이블은 술상이 되기도 하고 차를 함께 마시는 자리로 변주되면서 대만 영화가 자기를 표현하는 하나의 전형적인 장면이 되었다. 심지어 서방 세계 비평가들은 전 세계에서 밥상을 가장 잘 찍는 건 대만 영화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핵심은 ‘이때 여기에 누가 누구와 앉느냐’라는 질문이다. 혹은 누가 앉지 못하느냐의 문제이다. 이번에는 여러 편의 예를 드는 대신 한 편의 영화를 통해서 설명하겠다. 허우 샤오시엔의 <비정성시>는 밥상만으로 찍은 영화이다. 영화가 시작할 때 밥상에 온 가족이 모여 앉아 활기차게 저녁을 먹는다. 영화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밥상으로 돌아온다. 그때 이 영화를 보는 유일한 방법은 밥상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뿐이다.
임씨 집안의 네 형제. 1948년 2월 28일 빨갱이 사냥의 밤. 장사를 하는 첫째는 동업자의 칼에 찔려 죽고, 둘째는 해방이 되면서 일본군에 끌려갔다가 뒤늦게 사망통지서로 돌아온다. 지식인이었던 셋째는 빨갱이로 몰려 고문 후유증으로 미쳐버리고. 귀머거리인 넷째는 반정부 활동단체를 돕다가 발각되어 어디론가 끌려간 다음 소식이 끊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다시 밥상에서 끝난다. 그러나 네 형제의 자리는 비어있고 침울하고 아무도 대화하지 않는 어두운 저녁 밥상으로 끝난다. 그때 그 밥상은 하나의 역사가 된다.
이것을 대만 영화는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정한 거리만큼 물러나서 지켜보듯이, 아무것도 손댈 수 없다는 듯이,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 삶을 느껴보는 것이라는 듯이 바라보았다. 만일 당신이 시네필이라면 대만 영화라는 말을 듣는 순간 떠오르는 장면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 카메라와 오랜 시간 편집하지 않는 롱 테이크 촬영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미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이들에게 세상과 만나는 방법이자 태도인 것이다. 역사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거리. 그 앞에서 견뎌야 하는 시간. 비 내리는 타이베이의 저녁 시간, “당신에게 영화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허우 샤오시엔은 내게 대답했다.
“영화는 내게 세상을 대하는 예의와 같은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의 세계관으로서의 거리, 그리고 시간. 이때 인물과의 거리, 사건과의 거리, 장소와의 거리는 서로 다른 대만 감독들의 세상에 대한 태도가 되었으며 그들의 미학이 되었다. 위대한 이름들. 허우 샤오시엔, 에드워드 양, 리안, 차이밍량. 물론 그들 중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각자의 취향의 문제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대만 영화는 자신들의 영화가 이해되기보다는 경험되기를 원했다. 그들의 영화는 그렇게 보아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Words Jung Sungil(Film Critic, Film Director)
Words Jung Sungil(Film Critic, Film Direc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