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동물원에서

Hang Around at the Zoo

한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코끼리 열차를 탄다. 어슬렁거리는 사자나 곰을 보며 반가워할 새도 없이 휘황찬란한 은색 돗자리 위에서 준비해온 김밥이니, 얼음물이니 주전부리를 꺼내 먹는다. 차가 막히기 전에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서두르는 어른들 사이에서 못내 아쉬운 얼굴을 한 아이들. 동물원에 대한 일련의 기억들은 얼추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여행지에서 발견한 동물원이 조금 특별했던 이유다.

나는 동물원을 좋아한다. 매년 봄이 되면 으레 연중 행사처럼 과천으로 향하는데 그저 동물들의 나른한 표정이나 몸짓들을 카메라에 담고 오는 것만으로도 흡족했다. ‘동물원’이라는 공간이 주는 일상의 해방감, 아프리카 대지에 뿌리를 둔 얼룩말의 원초적인 몸의 무늬, 어렸을 적 느꼈던 소풍 전 설렘 등이한데 버무려져 가슴을 붕 띄워놓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행을 시작할 당시에 동물원에 대한 특별한 계획이 있던 건 아니었다. 여행지에서의 일정은 늘 빠듯하고 돌아보아야 할 미술관이나 유명한 가게들을 꼽고 나면 그날의 하루가 꽉 차니까. 스위스 바젤Basel에 도착해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펼쳐 든 지도에서 동물원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바젤은 세계에서 가장 큰 미술 박람회인 ‘아트 바젤Art Basel’로 유명한 곳이다.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에 있는 이 작은 도시에 매년 6월이면 전 세계에서 모여든 개인 전용기만 300여 대가 닿는다. 그 배경에는 시민들이 있다. 바젤 시민들의 예술 사랑은 대단한 것이어서 세금을 모아 피카소Pablo Picasso의 작품을 구매하기도 할 정도라고. 미술관에서 언제든지 피카소의 걸작을 보고 싶다는 시민들의 순수한 열망에 감동한 피카소는 바젤 시에 자신의 작품들을 기증했다. 부러웠다, 예술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육신이 아닌 영혼을 살찌우겠다는 그 소박하면서도 가장 고차원적인 욕망이. 17세기에 세워진 세계 최초의 공공미술관, 바젤 미술관 역시 귀족이 아닌 시민의 손으로 설립된 명물이다. 

미술, 음악, 디자인 등 예술 분야의 순도 높은 사랑이 도시 곳곳에 자작자작 스며든 바젤. 나는 애초에 이곳을 방문하면서 머릿속에 그린 그림이 있었다. 장 팅겔리Jang Tinguely 분수에서 삐그덕거리며 움직이는 키네틱 아트 작품을 감상하거나 도시를 휘감으며 흐르는 라인 강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상상. 아니면 근방에 위치한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Vitra Design Museum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당연한 수순. 그러나 이 마을에 동물원이 있다는 사실은 꽤나 흥미롭게 다가왔고, 어쩌면 내가 계획한 미술관 투어보다 훨씬 더 재미있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바젤 동물원은 1874년에 문을 열었다.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이자 지금까지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이곳은 연간 평균 18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간다. 140년이라는 세월에도 불구하고 동물원의 컨디션은 최상이다. 잘 다듬어진 잔디밭과 나무들 그리고 깨끗한 모래가 얼마나 이곳이 잘 관리되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서울대공원에 비하면 매우 작은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공원 같은 분위기가 편하게 다가왔다. 동물과 사람 사이의 울타리는 낮아서 바로 코 앞에서 동물들을 보고, 만질 수 있다. 동물들의 관심이나 주의를 끌기 위해 박수를 치거나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은 여기에 없다. 오히려 사람이 친숙한 동물들이 먼저 다가와 재롱을 떨곤 한다. 동물 우리는 그들이 살던 환경과 최대한 비슷하게 꾸며 놓았다.

쇠창살이나 그물망도 없다. 동물들은 냄새나고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을 걷는 대신 부드러운 흙과 잔디를 밟으며 오후의 햇볕을 만끽하고 있었다. 문득 창경원 시절부터 국내 동물원의 역사를 함께 한 그랜드 고릴라가 떠올랐다. ‘고리롱 할아버지’라 불렸던 그는 생전 온도와 습도 조절이 안 되는 시설에서 기생충과 싸우다가 발가락을 절단한 적이 있다.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이 받는 스트레스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최근에야 환경도 많이 개선되었다지만 바젤 동물원은 그런 점에서 이상향 같은 곳이었다. 동물원이 이상향이라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곳은 동물을 수집하여 보여주는 감옥이 아니라 동물과 사람이 가깝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일 뿐이었다.

외국의 동물원, 뭔가 색다른 동물을 보게 되리라는 은근한 기대가 있었다. 어차피 세계 각지에서 데리고 올 테지만 유럽에서 나고 자라는 동물들도 있을터. 부푼 기대만큼이나 설레는 경험이었다. 스코틀랜드 북부가 원산지인 셰틀랜드 포니나 독일이 고향인 까만 양, 웨일스 산에서 자라는 웨일스 포니, 유럽 전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멧돼지가 곁을 지나가는 순간을 상상해본 적 있는가. 카메라를 잡은 내 손길도 덩달아 그들을 담느라 분주했다.

 다리에만 얼룩 무늬가 남아 있는 소말리 당나귀는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등에는 회갈색 털이 나 있고, 다리는 얼룩말처럼 얼룩무늬를 띄고 있었다. 반은 당나귀, 반은 얼룩말 같은 신기한 모습에 한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 꼬마 아이가 그 모습을 보더니 나에게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독일어라 알아 듣진 못했지만 그저 주고 받는 미소만으로도 충분했다. 꼬마는 익숙하게 말의 콧잔등을 쓰다듬으며 내게 이름을 소개했다. 

동물 앞에 서면 누구나 어린 아이가 된다고 했던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동물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쫓고, 입으로는 자꾸만 그들에게 말을 건넸다. 동물원을 찾은 사람 중에 동양인은 아무리 봐도 나와 일행밖에 없었는데 뭐, 이곳이 알려진 관광지가 아니다 보니 그러려니했다. 아이들은 신기한 눈으로 다가와 “꺄르르” 하며 웃고, 누군가는 심지어 우리를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잘 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무작정 카메라에 담고 싶은 심리, 나도 그렇고 그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말과 염소, 늑대, 곰, 기린, 코끼리 등 평생 봐온 것보다 더 많은 동물을 만났다.

그러다 ‘사자가 태어난 곳’이라는 뜻인 ‘감고아스 하우스’에 다다랐다. 이곳엔 동물원의 역사와 동물의 습성을 그래픽 이미지로 알려주는 전시 공간이 있었다.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안내판 하나에도 뛰어난 디자인 감각이 드러나있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바젤은 타이포그래피로 유명한 디자인학교가 있고, 시내 곳곳의 간판들조차 범상치 않음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이런 감각을 수용하며 자랄 아이들을 생각하니 마냥 부러웠다.

잠시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는데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말을 끌고 잔디밭으로 나왔다. 아이들은 자신이 맡은 가축들을 산책시키고 먹이도 주며 보살피고 있었다. 돼지와 닭을 기르는 축사에는 돼지나 병아리에게 쓴 편지와 그림들이 벽면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는데, 아이들은 ‘돼지’를 구경하러 간 것이 아니라 ‘잭’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를 사귀는 중이었다. 

일 년에 한번, 그것도 특별한 날에 큰 맘 먹고 동물원에 갈 수 있었던 나의 어린 시절과 비교하면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내 기억 속 동물원은 눈대중으로 훑어만 보기에도 벅차고 드넓은 공간이었고, 동물들과는 어떤 교감도 나눌 수 없었으니까. 기념 사진 찍기, 기념품 가게 둘러보기를 해치우고 나면 어둑어둑한 해질 무렵이 되어 온 가족이 지쳐 돌아가곤 했었다. 어린 나에게는 그저 동물들과 좀 더 가까이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비슷비슷한 관람 동선과 풍경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바젤의 동물원은 그래서 특별했다. 거기엔 현지인, 여행자, 볼거리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동물과 아이 그리고 아이가 된 어른만 있을 뿐이었다.

바젤 동물원

www.zoobasel.com

주소. Binningerstrasse 40 4054 Basel, Switzerland

가격. 성인 18프랑, 청소년 12프랑, 어린이 7프랑

시간. 8:00 ~ 18:00(계절별 변동 있음)

동물원은 시내 중심에 있는 Basel SBB(남부역)에서 도보로 5~10분이 소요된다. 트램을 이용할 경우 ‛Zoo Bachletten’행 1, 8번 혹은 ‛Zoo Dorenbach’행 2번 트램을 이용하자.

바젤 카드

www.basel.com/en/baselcard

가격. 24시간 : 성인 20프랑, 어린이 10프랑

48시간 : 성인 27프랑, 어린이 13.5프랑

.

하루에 여러 곳을 둘러볼 계획이라면 바젤 카드Basel Card는 필수다. 시내 20여 개의 미술관 입장료가 50프로 할인되며, 바젤동물원 입장권 무료, 시내 대중교통 이용시 할인 등의 혜택이 있다.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글 사진 이소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