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 '김범수'와 보낸하루
‘일을 아주 잘해요’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만나봤지만, ‘쉬는 거라면 자신 있다’는 이는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나중엔 몰라도 처음에는 조금 의아해할 것 같다.
그 사람을 앞에 둔 채로 ‘쉰다는 건 정말 간단한 일인데 도대체 뭐가 자신 있다는 거야’ 하는 식으로 생각하게되지 않을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잘 쉬는 사람(그게 뭔지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 사실 일을 잘하는 사람보다는 잘 쉬는 사람을 좋아하고,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니까 만약에 잘 쉬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꼭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얘기다.

그의 기록들
캠핑을 하는 사람들에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자연을 느끼고 여유를 만끽한다는데, 막상 그 모습을 지켜보면 그리 좋아 보이는 것만은 아니다. 대부분 짐을 챙기는 것부터 어설프고, 장소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모습이 어쩐지 불편해보이기도 한다.
무리라고 생각되는 음식들과 ‘굳이 바깥에 나와서까지 해야만할까’ 싶은 행동들도 적지 않다. 물론 자신이 원하는 캠핑이라는 게 있겠지만, 그들에게 물어보면 안타깝게도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캠핑장에서 군더더기 없이 주변을 꾸미고 ‘적당히’ 행동하는 게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범수’라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는 내가 지켜보는 몇 안되는 캠퍼 중 한 명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켜보고 싶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서는 대부분의 캠퍼들이 말하는 어려움이, 부자연스러움이 별로 없었다. 그는 여유를 즐기기에 좋은 장소를 고를 줄 알았고, 그 장소에서 어떤 장비가 필요한지도 알고 있었다.
장비를 그저 늘어놓고 자랑하기보다는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빛을 발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특별한 놀이나 ‘의미두기’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혹시 잘 쉬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모든 걸 멈추는 것
그에게 캠핑이라는 취미가 어떻게 시작된 건지 물었다. 그는 진지함과 설렘이 반쯤 섞인 듯한 표정으로 어머니와 함께 지낸 포천에서의 밤을 이야기했다. 여러가지 일들로 힘들어하시던 어머니와 함께 지켜본 밤하늘과 아빠 손을 잡고 별구경을 하는 어느 가족의 모습. 그런 게 자신에게 많은 감동을 줬다고.
“또 어떤 날은 화로대 앞에 앉아 있는 아버지와 아들을 봤어요. 약간 쌀쌀한 날씨에 손에는 각자 따듯한 차를 들고서 마주앉아 있었죠. 둘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앉아 있었어요. 꽤 오래 그렇게 시간을 보내더라고요.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이런 취미라면 가족들과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겠구나, 캠핑이란 건 멋진 일이구나’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기분좋게 고조된 목소리로 그는 말을 이어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해요. 할 수 있다면 서로 아무것도 시키지않고, 천천히 움직이고 주변을 바라봐야죠. 그런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의 캠핑생활은 이제 5년이 넘었다. 그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풍경을 사진으로기록했으니, 아마도 많은 사람에게 보는 즐거움과 함께 실용적인 도움도 줬을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노하우 역시 쌓였으리라. 그런 건 어떤 것이 있을까.
가지고 다니는 물건 중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물건이 있는지 물었다. 잠시 후 그는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산 나무상자를 집어들었다. 원래는 쌀 한 되를 담을 수 있도록 만든 물건이었는데 그는 그걸 조미료통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밖에서 자주 있다 보면 뭐가 불편한지, 뭐가 필요한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요.이 조미료통처럼 ‘적당한 크기의 상자가 필요하다’ 혹은 ‘의자 등받이가 조금더 앞쪽으로 기운다면 훨씬 편할 텐데’ 하는 식의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 보면굳이 캠핑장비로 이름 붙여진 것들만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되죠. 이미 구매한 장비들을 변형시켜보기도 하고 나아가서는 직접 만들기도 해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었다. 캠핑이라는 행위 자체가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경험인데, 장비를 고를 때 ‘이게 아니면 안된다’는 식의 딱딱한 생각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는 장소에 대해서도 비슷한 식으로 얘기했다.
“어딘가에 꼭 가야 한다는 강박은 없어요. 누구와 함께하는지 생각해보고, 그때그때 정하죠. 다만 장소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자면 전기가 있는 곳, 없는 곳으로 볼 수 있어요. 저는 후자가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그게 좋죠.”


각자의 시간
밤이 깊어지도록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눴다. 처음 산 캠핑장비가 텐트가 아니라 타프였다는 사실, 친구들에게 장비를 빌려서까지 바깥으로 나와서 잠들던 이야기, 처음 설렘을 다시는 느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아쉬운 마음까지.
12월 31일에 남자 셋이서 강행했던 겨울캠핑 이야기를 들을 땐 덩달아 신이 나서 겁도없이 ‘나도 꼭 데려가달라며’ 억지 대답을 듣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주위는 어두워지고 주변공기가 약간 부드러워졌다. 그는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몇번인가 일어나서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와 앉았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말했다. “여기함께 온 사람들에게 집중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꼭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길 바래요.
그거 참 중요한 일이거든요.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혼자 산책도 나가고 저쪽에 가서 주변소리도 들어보세요.” 그런 이야기를 하고 나서 그는 내일 일찍 일어날 요량인지 먼저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남은 사람들은 자리에 앉아 참나무장작을 열 개 가량 더 태웠다. 어느순간부터는 모두 말 없이 장작이 타는 소리를듣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잠시 후 모닥불 주변을 정리했다. 탈만한 것을 주워모두 화로대에 던져넣은 뒤 각자의 잠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아침에 나가보니 불을 피웠던 자리는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주변에 마른 풀이 많고 바람이 연신 불어대는 우음도에서는 특별히 불을 조심해야 한다던 그의말이 떠올랐다(그는 작은 소화기를 챙겨서 다닌다).
정신이 맑아지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기지개를 여러번 켜고 텐트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불을 피웠던 자리뿐만 아니고, 우리가 머물렀던 장소 전체가 어느정도 정리가 된 후였다. 아마도 의자에 앉아 있는 그가 정리해놓은 모양이었다.
새벽 안개에 대해서도 얘기하는 걸 보니 일찍 일어나 산책도 다녀온 것 같았다. 이제 막 커피를 마시려는 참이었는지, 핸드밀커피 분쇄기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런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는 이 공간에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모든 장소에 잘 어울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비록 내가 새벽 산책을 했다거나 잔잔한 음악을 듣고 있던 건 전혀 아니지만, 그날 아침 그가 만들어 놓은 차분한 공간 안으로 끼어든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김범수 blog.naver.com/coudinky
그는 ‘코딩키’라는 또다른 이름으로,
캠핑과 일상의 이야기를 위 블로그에 기록하고 있다.
에디터 전진우
포토그래퍼 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