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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끼 너머의 식탁
두 개의 부엌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하나는 가족의 일상을 영위하는 공간이라면, 다른 하나는 호기심을 안고 모인 낯선 이들이 재료 손질부터 요리, 뒷정리까지 함께 하며 넓은 의미의 ‘식구’가 되는 공간이다. 이 특별한 요리 교실 ‘구르메 레브쿠헨Gourmet Lebkuchen’을 15년째 이끌어오고 있는 나카가와 히데코는 반질반질 윤이 나는 솜씨로 사람들을 요리의 세계로 안내한다. 어깨너머 배운 아버지의 레시피와 자연스레 체득한 요령은 그릇에 소박하게 담겨 식탁에 놓인다. 그 주변에 둘러앉아 소소하고도 유쾌한 이야기를 음미하니, 좋은 맛을 완성하는 건 만든 이의 마음이라는 게 또렷해진다.
여기가 바로 히데코 선생님의 요리 교실이군요. 주말인데도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해요.
어서 오세요. 돌아오는 화요일부터 올해 첫 학기 요리 교실이 열려요. 오늘이 방학 마지막 날인 거죠.
그럼 마지막 휴식을 방해한 건 아닌지….
괜찮아요, 마음먹고 있었어요(웃음). 연희동에서 15년째 운영하는 요리 교실 ‘구르메 레브쿠헨’은 1월과 2월이 방학이에요. 쉬는 동안 곧 나올 책도 열심히 썼고 ‘북 레브쿠헨’이라는 출판사를 만들어서 요리와 일상을 담은 책들을 꾸준히 내보려고 준비했어요. 사실 저는 방학에 더 바빠요. 수업을 진행할 때와 달리 약속이 많거든요. 캘린더에 더 이상 메모할 칸이 없을 정도예요.
알차고 즐겁게 보내셨네요. 그러고 보니 연희동에 참 오래 계셨어요.
94년도에 한국에 왔으니까 올해로 30주년인데요. 처음 도착한 동네가 이곳이었어요. 예전에 연희3동이라고 불리던 동네인데 대학교 근처다 보니 하숙집이 많았거든요.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린 후에는 아이들 학교나 학원 때문에 강남으로 이사 갔었는데, 네모난 빌딩만 늘어서 있는 게 너무 답답하더라고요. 결국 연희동으로 다시 돌아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거예요. 처음 마주한 동네다 보니까 애착도 생기고, 특히 동네 마트인 ‘사러가’를 참 좋아해요. 크진 않지만 허브나 이국적인 재료가 많고 과일과 채소도 신선해요.
동네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마트 때문이라니, 장 보러 자주 가세요?
거의 날마다 가요. 그런데 요즘 마트에서 체감하는 물가가 너무 올라서 보통 장을 보던 비용의 반 정도로 줄였어요. 원래 마트에서 100만 원을 썼다면 지금은 50만 원만 쓰고, 남은 건 가락시장이나 허브 전문 농부들에게 직접 주문하거나 쿠팡 배송을 쓰는 거죠. 농담이지만, 사러가 마트의 매출액이 반으로 줄었을지도 몰라요(웃음).
집에 대한 설명도 간단히 들어볼까요? 1층과 2층으로 나뉜 주택인데, 마당으로 들어오는 문에 문어가 그려진 현판이 달려 있더라고요.
맞아요. 둘째가 어릴 때 문어를 좋아해서 그린 그림이에요. 우리 가족은 2층에 살고, 1층에는 원래 편집자로 일하는 친구들이 세를 들어 살았어요. 제 책 《지중해 요리》를 함께 만든 편집자죠. 요리 교실을 열기로 마음먹었을 때 연남동에 공간을 알아봤는데 영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어요. 때마침 편집자 친구들이 집을 비운다고 해서 어디 멀리 가지 않고 1층을 교실로 쓰게 됐죠. 1층 방 하나만 아이가 쓰고 남은 가족들의 공간은 모두 2층에 있어요. 아, 맞아요. 그리고 저 남편 있고 아들 둘 있어요. 자꾸 가족들 소개를 까먹네요. 저밖에 생각이 안 나요.
(웃음) 오늘은 선생님에게 요리를 만들고 나누는 일상에 대해 듣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우선 선생님의 부모님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무탈하게 지내고 계신가요?
어머니는 작년 12월에 돌아가셨어요. 치매를 10년 가까이 앓으셨는데, 몸이 약하기도 하셨고 폐렴이 찾아오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작별하게 됐죠. 어르신들은 갑자기 그런 일이 생긴다고는 하지만, 치매 증상 말고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터라 많이 놀랐어요. 특히 아버지는 전날까지 같이 아이스크림도 드셨는데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해서 충격이 크셨죠. 아버지는 올해로 아흔이세요.
아버지 마음이 많이 안 좋으셨겠어요.
장례식 마치고 부모님 댁에 가니까 뭔가 허전했어요. 엄마가 대단했던 게 그 와중에도 매일 아버지가 입을 옷을 챙겨주고 빨래도 스스로 하셨대요. 세탁기에 세탁물과 세제를 넣고, 까만 옷과 하얀 옷도 구분하셨고요. 어머니가 없는 아버지는 파자마가 어디 있는지, 어떤 양말을 꺼내 신어야 할지도 모르는 거예요. 지금은 아버지도 치매 환자들이 소규모로 모여 사는 요양원에 머무는데, 스무 명 중 할머니가 열아홉 분, 할아버지는 아버지 단 한 명이래요. 모이면 같은 얘기 반복하고, 영양사 선생님 도와서 조리실에서 요리도 하신다더라고요. 동생이랑 “엄마 벌써 잊어버린 거 아냐?” 우스갯소리도 하는데, 지금은 잘 지내세요.
다행이에요. 아버지는 프랑스 요리 셰프로 일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임페리얼 호텔의 프렌치 셰프셨는데 항상 바쁘셨죠. 어릴 때 바다나 유원지에 놀러 갔던 기억을 더듬어보면 엄마랑 저, 동생밖에 없어요. 서비스업이라는 게 남들 놀 때, 쉴 때, 즐길 때 일해야 하는 거잖아요. 게다가 그때는 요즘 젊은이들이 워라밸을 말하는 것과는 일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랐고요. 쉬는 날이 돌아오면 나폴리탄이나 오므라이스, 햄버그스테이크, 가츠샌드 등을 해주셨던 게 떠올라요. 빵 사이에 튀긴 고기를 넣는 아버지표 가츠샌드는 식빵 하얀 부분의 겉면을 살짝 구웠는데 그게 참 고소해서 맛있었어요. 명주 씨도 한번 해봐요. 돈가스는 튀긴 거 사 오면 되니까 쉬워요.
가츠샌드 좋아하는데 팁 꼭 기억할게요. 아버지가 바쁘시니 어머니와 보낸 시간이 많았겠어요.
음, 그렇지만 어머니랑 친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사이가 안 좋은 게 아니라 그다지 가깝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어요. 만들어주신 요리도 잘 떠오르지 않고요. 엄마가 치매에 걸린 후에 제가 한번 물어본 적 있어요. “엄마는 무슨 요리를 잘했어? 뭘 좋아했어?” 하니까 그냥 싫대요. 카레나 양식처럼 아버지의 전문 분야라고 생각하는 요리는 절대 직접 하지 않고 아버지께 부탁하셨어요.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배우거나 해보고 싶었을 텐데 그렇진 않았던 거죠. 저도 요리는 아버지한테 배운 거예요.
아버지는 호텔 셰프를 그만둔 후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하셨다는데,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해져요.
도쿄 도심에 연남동을 닮은 동네가 있는데 거기서 조그만 프렌치 비스트로를 열었어요. 다채로운 색깔이 많은 곳이었죠. 젊은 사람들이 바글바글 오는 것보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이는 곳이랄까요? 할아버지들이 신문 보면서 생토마토로 만든 나폴리탄 스파게티 먹고, 일본식 모닝커피가 서빙되는 곳 말이에요. 아버지가 일흔여덟 살이 될 때까지 운영하셨는데, 직원은 주방 일을 도와주시는 아주머니 단 한 분이었어요. 그리고 아버지는 운전을 못 하셔서 재료를 사러 갈 때마다 자전거를 타셨던 게 아직도 떠올라요. 그때 레스토랑을 도와드리면서 요리를 배웠기 때문에 그 공간이 참 좋았는데, 2011년 도쿄 대지진이 일어난 뒤 어머니가 너무 불안해하시고 아버지도 연세가 많으셔서 문을 닫게 되었죠. 아버지가 그 후로 저한테 택배를 보내셨어요.
뭘 보내신 거예요?
주변 정리라고 할까, 가지고 있는 식기나 조리 도구들을 보내주신 거였어요. 백자로 된 찻잔과 티팟, 에도 시대에 만들어진 그릇과 술잔도 있고 여러 종류의 식칼도 있었죠. 배에 실어 가져온 거라 여기저기 금이 가거나 이가 나가서 ‘킨츠기’ 공예법으로 붙여두고 아직까지 쓰고 있어요.
전부 귀한 것들이네요. 왜 주신 걸까요?
쓰라고 주는 거지 뭐(웃음). 당신은 아끼느라 박스에 넣어두고 평생 단 한 번도 꺼내 쓰지 못했대요. 저랑 남편이 가져가서 맘껏 쓰라고 하시더라고요. 요리 서적들, 레시피 노트도 있었어요.
아버지한테 요리를 배우셨다고 하셨죠. 좀더 자세히 듣고 싶어요.
아마 요리에 대한 모든 걸 배웠을 텐데요. ‘베샤멜 소스béchamel Sauce’(버터와 밀가루에 우유를 넣어 만든 화이트소스로 프랑스 요리에 자주 쓰임)와 고기 굽는 법, 파이지 반죽법, 달걀과 버터를 섞는 요령 같은 것도 알려주셨어요. ‘오늘 이걸 가르쳐 줄 거야!’라고 포고하듯 한 게 아니라 어깨너머로 가르치고 배운 거죠. 이런 말 써도 되나 모르지만, 전 요리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니 일명 ‘야매 요리’를 만들어요.
그렇기에 더 자연스럽고 다정한 맛이 느껴지는 게 아닐까요(웃음)?
그럴지도 모르죠. 셰프들은 대부분 비법이 있어도 기록해 두는 일에 더딘데 아버지는 일찌감치 컴퓨터로 정리하셨어요. 그 덕에 《아버지의 레시피》라는 책이 탄생할 수 있었죠. 아버지가 만든 토대에 한국 사람들이 쉽게 만들 수 있고 좋아할 만한 맛을 제가 조금씩 더해서 완성한 책이에요. 요리사로서 큰 호텔에 있으면 안정적이잖아요. 그렇지만 아버지는 세상이 자기를 셰프라고 불러도, 스스로는 요리를 만들어서 가르쳐 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하셨어요. 몸이 안 좋아지신 후에 같이 비프스튜를 끓인 적 있는데, 그 와중에도 당신이 무얼 만들고 있는지 잊으시더라고요. 그런데 저한테 생선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지 못해서 아쉽다고 하시는 거예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제가 생선에 좀 약하거든요(웃음). 아버지는 알게 모르게 제게 영향을 많이 주신 분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아마 요리 교실도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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