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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연의 사랑에는 모서리가 없다. 그의 사랑은 멈출 수 없는 바퀴처럼 쉴 새 없이 굴러가고,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처럼 거듭하여 팽창한다. “심장이 뛰고 있으니까, 어떤 대상을 향한 마음도 죽지 않고 이어지는 거겠죠.” 그의 맞은 편에 앉아 지난한 세계 속에서도 사랑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듣는 동안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을 본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렇게나 행복해 보이는구나 싶어진다.
종강하셨죠? 방학 라이프를 즐기고 있나요?
방학한 지는 얼마 안 됐어요. 연재 요청이 많이 들어와서 최근까지도 글 쓰면서 바쁘게 지냈어요. 틈틈이 영상 작업도 하고요.
<성덕>(2021)을 세상에 선보이고 난 뒤 시간이 조금 흘렀어요. 몇 년간 영화를 만들고 상영하면서, 과거의 오세연을 이해하고 행복을 빌어주는 시간을 보냈을 것 같은데요. 회고해 보자면 어떤 시간이었는지 궁금해요.
<성덕>을 만드는 과정도 굉장히 길었고, 개봉까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거든요. 대부분의 감독님들께선 개봉하고 나서 한두 달 이후에 극장에서 영화를 내리는 시점에 복잡미묘한 감정을 많이 느낀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오히려 개봉 전날 뒤숭숭했어요. 그때 많이 울었거든요. <성덕>이 개봉까지 하고 나면 더 이상 이 영화로 할 수 있는 일이 끝나는 것 같았어요. 영화를 찍을 땐 미션이 계속 주어지잖아요. 그날까지 잘 살아서 달려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개봉을 앞두고 나니 이제 진짜 끝이다, 싶었어요.
뭔가 자식 다 키운 부모의 마음처럼 느껴져요.
그 비유가 딱 맞는 것 같아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할 때부터 물가에 내놓은 애 보듯이 제 영화 뒤를 졸졸 따라다녔거든요. 매번 영화관에 가서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보면서 ʻ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까?’,ʻ이 장면에서 사람들이 웃을까?’ 하고 궁금해했어요. 그렇게 지내다 보니까 떠나보낼 때가 오더라고요.
걱정이 무색하게도 <성덕>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죠.
개봉하고 나서 엄청 많은 일들이 일어났어요. 사실 지금 하는 모든 일들이 <성덕> 덕분에 시작하게 된 거거든요. 저한테 많은 기회를 열어준 영화니까 너무 고맙죠. 때로는 두렵기도 해요. 제가 <성덕>을 만든 오세연이 아니라 ʻ성덕’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요. 저도 메일 보낼 때 “안녕하세요, 성덕 오세연입니다.”하고 보내게 되더라고요.
내가 만든 영화를 뛰어넘어야 하는 상황이 왔군요.
맞아요. 영화의 존재감이 저보다 더 커진 거죠. 제가 가보지 못한 데에도 자기 혼자 가 있고요. 때로는 성덕 오세연이라고 소개하는 게 부담도 되고 영화가 미울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 모든 게 이 영화가 저한테 가져다준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애증의 관계죠.
내 이야기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걸 보면 어떤 기분이 들어요?
고맙다는 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됐어요.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고맙다는 인사를 하거든요. 버스를 탈 때도, 누가 자리를 비켜줄 때도,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나올 때도요. 그만큼 제게 일상적인 인사나 다름없었는데, 이 영화를 만들고 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영화에 출연해 준 친구들도 우리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영화를 본 관객들도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줘서 감사하다고 이야기해 주시는데 그 말의 무게가 정말 무겁게 다가오더라고요. ʻ내가 만들고 싶어서 만든 영화인데 이런 말을 들어도 되나?’ 싶긴 했지만, 큰 울림이 느껴졌어요.
<성덕>은 ‘덕질’하던 최애가 성범죄자가 된 이후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린 그의 팬들에 대한 이야기죠. 위에서 말씀하셨듯 세연 씨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기도 하고요. 제목은 기획 단계 때부터 성덕이었나요?
맞아요. 이 제목이 되게 재미있었거든요. 전 친구들을 사귈 때마다 매번 제가 성덕이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고 다녔어요. 그런데 모두가 알고 계시는 ʻ그 사건’을 겪고 난 뒤 처음으로 그 수식이 부끄럽게 느껴지더라고요. 아시다시피 성덕은 계를 탄 팬을 의미하잖아요.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성덕이라는 사실이 영광스러웠는데, 하루아침에 내가 좋아하던 오빠 때문에 ʻ실패한 덕후’가 돼버렸으니 그 단어에 의문이 들 수밖에요. 그때부터 <성덕>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 같아요.
구성하는 단계에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고 들었어요. 사적인 이야기에서 대중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로 변한 시점은 언제였어요?
그 지점이 영화를 만들면서 제일 어렵게 느껴졌어요. 내 분노로 시작된 영화지만, 제 영화가 저 혼자 보는 일기장은 아니잖아요. 나의 호기심과 질문들을 따라가기는 하되, 관객 또한 제 여정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처음부터 생각했어요. 그러려면 제가 겪은 일들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해야 했죠. 저는 영화를 만들면서 여러 기록을 많이 남겨두는 편인데요. 노트에 보면 온갖 고민이 다 적혀 있어요. ʻ사람들이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ʻ내가 이 사람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어디까지 설명해 줘야 할까.’ 같은 것들요. 그 정도로 보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의식하려고 했어요.
그럼 어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볼 거라고 생각했어요?
안 그래도 타기팅 고민이 정말 컸어요. 아이돌 산업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만 노려야 할지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설득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죠. 영화에 참여한 모두가 다양한 사람들이 봐주길 바랐지만, 저는 ʻ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 있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공감해 줬으면 좋겠어.’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팬들한테는 꼭 인정받고 싶었거든요.
만들면서 욕심이 커지진 않았어요?
되게 웃긴 게, 상영하기 전까지만 해도 ʻ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고 스스로 많이 다독였거든요. 그런데 영화가 세상 밖에 나오고 나니까 팬들뿐 아니라 덕질을 해보지 않은 분들도 재미있게 봐주시는 거예요. 국내 관객들 사이에서 그런 반응이 들려오니, 괜히 평론가나 해외 관객한테도 인정받고 싶어지더라고요. 그 마음이 저를 꽤 힘들게 했어요. 한창 고민이 많던 시기에 아는 다큐멘터리 PD님께 ʻ이게 영화적으로 좋다고 말할 수 있는진 잘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인 것 같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어요. 그때 그 감독님께서 묻더라고요. 이 영화를 만들 때 목표가 뭐였냐고요. 그래서 처음의 마음을 말씀드렸더니 곰곰 생각하다가 “그럼 성공하신 거 아니에요?”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웃음).
최초 목표를 달성했으니까요. 저도 누군가의 덕질을 해본 사람으로서 <성덕>을 정말 재미있게 봤는데요. 영화 중간중간 공감되는 포인트도 정말 많았지만, 말미에 나오는 세연 씨만의 해석이 정말 좋았어요. 그 사람을 덕질한 추억을 오래오래 웃으며 간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성덕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어요. 이 이야기의 결론은 언제쯤 지어졌어요?
영화를 처음 기획할 땐 ʻ우상화’라는 단어에 조금 더 집중해 보고 싶었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범죄자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남아서 추종하는 팬들을 보면서 기이한 기분을 느꼈거든요. 그 의문점을 파고들기 위해서 저처럼 떠난 팬들만 만나는 게 아니라, 아직 남아서 그 사람을 지지하는 팬들 이야기도 들어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영화를 만들다 보니 그 사람들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어요.
왜요?
그분들을 만나 뭔가를 찍고 이야기를 들은 뒤 제가 그 이야기를 가지고 뭘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니 남은 팬들을 놀림감으로 만드는 건 아닌가 싶더라고요. 애초에 ʻ아직도 왜 좋아해? 이해할 수 없어.’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거니까요. 그런 마음으로 그들을 만나는 건, 그 사람들한테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프레임에 가둬놓고 누군가를 재단하고 싶지 않았던 거군요.
네. 스타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사람들 반응이 갈리잖아요. 욕하는 사람이 있고, 그래도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죠. 물론 세상에 두 가지 반응만 있는 건 아니지만, 전자가 후자를 마구 비난하는 장면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 사람이 정말 잘못한 걸 알고 있지만 한순간에 등을 돌리기엔 쉽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 복합적인 마음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주변 친구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내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는 이들한테 있는데 왜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나 싶었어요. 영화에도 나오지만, 사실 친구들 모두 어떻게 보면 아직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더라고요. 그 정도만 담겨도 충분하다는 걸 인터뷰하면서 많이 느꼈어요. 다만 그 결정을 내리는 데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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