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Curation | 이별이 남긴 것

그녀와 나눈 대화엔 공백이 가득했다. 긴 침묵과 오래 곱씹는 생각 사이사이 숱한 감정이 모였다 흩어지고 뭉치고 사라졌을 테다. 이 긴긴 침묵에서 뾰족한 답이 나왔느냐 하면, ‘아니’다. 우린 내내 “모르겠네요.”라거나 “그러게요. 어렵네요.” 같은 모호한 문장만 반복했다. 당연하다. 사랑은 그런 거니까. 모르겠는 기분으로 대화하던 시간이 전혀 위태롭지 않았다. 그걸로 충분하다.

건강히 지내고 있습니다

3집 준비 중이라고 들었어요. 한창 바쁘시죠?

올가을에 정규 3집이 발매될 예정이라 잔뜩 긴장하고 있어요.작년 말부터 작업했는데 발매를 앞두고 돌아보니 어딘가 죄송한 마음이 들어요.

 

응? 죄송이요?

작업할 당시에는 세상이 이렇게까지 침체되어 있지 않았어요.그래서 그땐 제가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제 안에 있는 우울하고 침침한 감정을 꺼내 작업했거든요. 근데 발매를 앞두고 현실이 점점 막막해져서 이런 어두운 앨범을 내는 데 죄송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일말의 책임감도 생기고 걱정이 앞서기도 하고, 좀 복합적인 마음이에요. 3집 앨범 제목은 [헤븐]인데요. 이 세상이 천국이 아니어서 제목을 이렇게 짓게 됐어요.

 

앨범을 만드는 데 “완벽보다는 자유를 추구한다.”고 말한 적이 있죠. 이번 작업은 자유로운 작업이었나요?

예전에 했던 인터뷰를 다시 보면 내가 이런 말을 했나, 이렇게 시니컬 했나, 싶을 때가 많아요(웃음). 과거의 저에게 “도대체 자유가 뭔데?” 하고 묻고 싶은 심정이네요. 지금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다시 이야기해보자면, 제가 추구하는 건 자유보다도 ‘스스로 생각했을 때 후회 없고 싶다.’는 감정인 것 같아요. 최고가 되고 싶다, 완벽해지고 싶다는 욕망보다… 후회를 좀 덜하고 싶어요. 아마 그런 마음을 그땐 자유라고 이야기한 것 같고요. 당연히 자유롭거나 후회 없이 지내진 못했어요. 그래도 최선은 다하려고 한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하면 후회도 덜하지 않아요?

아니요. ‘이게 내 최선인가?’ 싶어서 또 후회가 돼요. 그래도 나이를 먹다 보니 욕심을 좀 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서 전보다는 후회가 많이 줄었어요. 예전에는 앨범을 낼 때 패기로 똘똘 뭉쳐 있었거든요. 지금은 너무 욕심을 부리면 사람이 우울해진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걸 알아도 욕심은 자꾸 생기는 것 같아요. 지금 사월 씨의 욕심은 뭐예요?

(한참 정적이 흐른다.) 몸과 마음의 건강? 3집을 무사히 발매하고 나면, 예전처럼 활발한 공연은 어렵겠지만 작은 공연에서라도 건강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관객들이 ‘김사월은 건강히 지내고 있었구나.’ 하고 느낄 수 있게요.

 

오늘은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사월 씨는 “외롭고 슬퍼서 음악을 시작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죠. 외로움과 슬픔에 대해 이야기해 줄래요?

(크게 웃는다.) 저 정말 감당하지 못할 말을 많이 쏟아냈네요. 그때는 분명히 진심이었는데, 세상이 워낙 빠르게 바뀌다 보니 생각도 자꾸 변하는 것 같아요. 음… 맞아요. 외롭고 슬퍼서 음악을 만들었어요. 그런데요, 예전엔 ‘난 그러고 싶지 않은데 왜 이렇게 외롭지? 왜 자꾸 슬프지? 나아지고 싶어.’라는 마음이었다면, 요즘은 사람이라면 태어난 그 순간부터 외로워진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외롭고 슬프다는 생각에 너무 빠져 살고 싶진 않지만… 기쁜 일이 있으면 슬픈 일도 있다는 걸 경험하고 나니 슬픔에 대한 감각이 노래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건 맞는 거 같아요.

 

사람들은 슬프거나 우울할 때 일기를 많이 쓴대요. 사월 씨도 그런가요? 음악도 일기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언젠가 이런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사람은 기쁨과 슬픔을 똑같이 겪어도 슬프거나 괴로운 상태가 훨씬 길게 느껴진대요.같은 양이어도 기쁨보단 슬픔의 시간 축이 훨씬 긴 거죠. 생각해 보면 행복한 건 쉽게 잊어버리게 되고 빨리 지나가는 느낌이에요. 반대로 슬픈 건 아주 오래 가요. 행복한 순간을 믿으며 살아야 하는데 저는 슬픔의 시간 축에 영향을 많이 받고 사는 사람 같아요.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도 있지만 그 시간이 정말 길잖아요.

그래서 슬픔이 우리에게서 사라지지 않고 늘 붙어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누구나 잘 지내고 싶어 해요. 태어난 이상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나쁜 감정을 떨칠 돌파구를 찾으며 살아가죠. 하지만 세상은 참 야속해요. 슬픔이나 괴로움은 떨치고 싶어도 쉽게 떨쳐지지 않잖아요. 저는 어떻게든 떨칠 방도를 찾다가 결국에는 음악을 만드는 것 같기도 해요.

 

그 말을 듣고보니 행복의 시간 축을 늘리고 싶어서 사랑을 찾는 것 같기도 하네요. 사월 씨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요?

어…. 정말 모르겠어요. 이 세상에 사랑은 계속 있었고, 있고, 있을 거고, 우리는 계속 사랑하고 있어요. 근데 요즘은 연인을 만들고,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하는 게 꼭 필요한가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미움을 거두고

책 《사랑하는 미움들》에 “꾸미지 않는 힘을 믿고 싶다.”고 썼죠. 꾸미는 것에 대해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옛날 사진을 보면 ‘이때 참 예쁘고 좋아 보이는데 나는 왜 나를 싫어했을까?’ 싶어요. 저는 오랫동안 긴 머리였는데요. 머리를 자른 뒤에 사람들이 이유를 많이 묻더라고요. 긴 머리가 여성성을 강조하는 일종의 ‘코르셋’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를 접하면서, 제 긴 머리가 여자들이 세상을 사는 데 조금은, 진짜 조금은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잘랐고요. 그런데 머리를 자르고 나서 ‘난 이제 해방됐어!’ 하는 느낌이 들었느냐고 하면, 아니요. 안 그랬어요. 오히려 다른 고민이 꼬리를 물었어요. 제 생각은 계속 달라지고 있는데요. 지금하고 있는 생각은 ‘어떤 모습이건 누구나 차별 받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옛날엔 나의 어떤 점을 싫어했어요?

자기만족이 부족했어요. 지금보다 훌륭해야 하고, 지금보다 멋져야 하고…. 기준도 없이 계속 더 높은 곳만 바라보며 지냈어요. 생각해보면 ‘남들이 보는 나’에 기준을 두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거 같아요.

 

책에 “쓸모 있는 것이 되려면 욕망 받아야 한다.”는 말도 있는데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사람들은 제가 생각하는 것만큼 저한테 그렇게까지 신경쓰지 않거든요. 기준을 ‘나’에 두고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하는걸 하고, 겉모습에 상관없이 나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걸 했다면 그런 생각을 덜 했을지도 몰라요. 남한테 너무 잘 보이고싶어 했던 것 같… 음, 잠깐만요. 정리가 잘 안 돼서요.

 

천천히 생각해도 돼요. 쉬운 이야기는 아닐 것 같아요.

….

질문을 좀 바꿔볼까요?

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건 어려운 일 같아요. 사실 저는 있는 그대로의 내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저도 그래요. 그래도 예전보다는 좀더 알게 된 것 같아요.

 

어떻게요?

강연 같은 데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라.’ 그런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예전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잘 몰랐어요. 저는 이것도, 저것도 부족해 보이는데 이 부족함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뜻인지…. 지금도 어렵게 느껴지지만 조금이나마 알게 된 건,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다면 좀더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요. 나만의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나를 굳이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비교가 없다면 내가 그렇게까지 못나 보일 것도, 미울 것도 없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요, 아직도 잠들기 전에 제가 초라해지는 기분을 느낄 때가 종종 있거든요. 그럴 땐 이렇게 생각해요. ‘내 삶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는데 꼭 나를 이렇게 미워해야 하나?’ 누구나 살아만 있다면 행복을 찾을 수 있어요. 저는 행복하기 위해서 나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기 위해 남과 비교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거죠.

 

세상은 ‘남을 사랑하려면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요.이 말이 진실이라면 사랑할 자격을 갖추는 건 너무 어려운 일 같아요.

사실 저는 혼자 서 있는 것도 잘 못 하겠는데 어떻게 남하고 같이 서 있는 게 가능하지 싶어요. 그렇지만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어떻든 사랑은 할 수 있다고 봐요. 사랑하면서 방법을 찾고 배우는 거 아닌가, 꼭 완벽하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을 시작할 수 있나 싶고요.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자신을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 서로 사랑하면 좋겠고, 그렇게 배워가면 더 좋겠다는 마음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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