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Curation | 음악에 비친 내 모습

한때는 밤이 깊으면 라디오를 켰다. 밤의 틈새로 목소리를 보내오는 어느 뮤지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장난기 어린 말씨와 무해한 농담, 음악과 뮤지션의 또 다른 이야기, 담담히 읽어 내려가는 편편의 시, 청취자에게 보내는 정성 어린 답장…. 감정을 한 줌 덜어내 더 절절하게 이야기를 전하는 뮤지션 정승환은 음악으로, 시로, 말로, 글로 편지를 쓴다. 편지의 초안은 모두 두 개의 엄지에서 출발한다.

기록은 많은 걸 잊지 않게 해줘요.
그리고 동시에 완전히 잊게 해주는 일이기도 하죠.
어떤 감정이나 상황을 억지로 붙들고 있는 게 아니라
놓아주는 일 같다고 느낄 때가 있거든요.

인터뷰 전에 간단히 식사하시던데, 오늘 바쁘셨군요.

시간 날 때 빠르게 김밥 두 줄 먹었어요. 소고기김밥이랑 멸치고추김밥(웃음). 곧 음원이 나올 예정이라 부지런히 작업 중이에요. 코로나19 때문에 3년 정도 팬들과 만날 자리가 없었는데, 모처럼 팬미팅도 준비하고 있어서 바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어요.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인지 컨디션도 좋네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알람 없이 깨는 게 행복”이라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는데 오늘은 알람으로 일어난 하루였겠어요. 

맞아요. 알람 없는 날이 그리워지네요(웃음). 보통 쉬는 날엔 알람 없이 한낮에 깨서 거의 집에만 있어요. 밤낮이 바뀐 편이어서 새벽 5-6시쯤 자고 2-3시에 일어나죠. 약간 정리벽이 있어서 집 청소를 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가요. 멍 때리고, 집안일하고, 유튜브 보면서 시간을 때우는 편이죠. 소소해 보이지만 저한텐 너무 큰 행복이에요.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꽤 흘렀어요. 그때 “틀에 박힌 교육이 싫어서 노래 배우기를 거부했다.”고 이야기하신 게 기억나요. 

디션 프로그램에 나갈 땐 음악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어요. 방금 하신 얘기는… ‘이불킥’감이에요(웃음). 틀에 박힌 교육이 싫다는 생각은 여전하지만 제가 받은 교육이 틀에 박혔다는 발언은 오만했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엔 지금이랑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에너지가 넘쳐났어요. 그래서인지 음악은 무엇이다, 예술은 무엇이다, 정의 내리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했죠. 예술이 뭔지는 몰라도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으로 똘똘 뭉쳤었고, 매시, 매분, 매초 음악 생각만 했어요.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는 재미에 하루하루가 신나던 때죠.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음악에 대한 생각보다도 제 태도가 좀 바뀌었어요. 그땐 무언가 정의 내리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했다면 지금은 정의하고 싶다는 마음을 내려놓은 상태죠. 형식적인 정의는 있을지 모르지만 절대적인 정의가 과연 있을까 싶거든요. 있다 하더라도 제가 살아가는 동안엔 알 수 없을 것만 같아요. 그래서 규정된 어떤 것을 해나가기보다는 제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 맞다고 믿는 것들을 해보려고 해요. 혹시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되면 나중에 보완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됐거든요. 음악뿐만 아니라 삶 전체에서요. 

 

그때와 변한 점이 있어서일까요, 지금 오디션 프로그램에 다시 나가라고 한다면 못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죠. 

제가 놀이기구를 겁 없이 잘 타거든요. 안전바가 있어서 무섭다는 생각이 잘 안 들어서 어릴 때부터 놀이기구 타는 걸 좋아했어요. 근데 놀이공원을 안 간 지 오래되다 보니까 요즘은 놀이기구 타는 상상을 하면 겁부터 나요.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면서 많은 걸 알게 되는데, 그러면서 예전엔 느끼지 못한 공포도 느끼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겁도 많아지고요. 오디션 프로그램에 다시 나간다면… 그때보다 좀더 경직되고, 좀더 긴장하고, 좀더 어려워하지 않을까 싶어요. 당연히 그때보다 자연스러워지고 깊어진 면도 있겠지만, 지금은 음악이 업이 되었기에 그땐 몰랐던 두려움이 생겼어요. 그전에도 음악은 취미 이상이었지만 그래도 일은 아니었잖아요. 

 

람은 변하기 때문에 잘해오던 걸 어느 순간 못 하게 되고, 할 수 없던 일들을 갑자기 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 듯해요. 살아 있는 이상 완성형은 없다는 생각도 들고요. 

맞아요. 그래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묻는 질문이 항상 어려워요. 답도 매번 바뀌고요. 찾아가는 중이라는 게 제가 답할 수 있는 최선이죠.

그럼 지금의 정승환을 이야기해 본다면요?

지금도 시시각각 바뀌고 있겠지만,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해 보자면 게으르고, 무디고, 그러면서도 예민하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늘 앞서는 사람이에요. 

 

어떤 걸 잘하고 싶어요?

너무 많아요. 그래서 그게 잘 안될 때 저한테 짜증이 나요. 실수하거나 그 실수가 반복될 때마다 제가 너무 못나 보이고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아, 이때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고 후회할 때도 많아요. 제가 올해로 스물일곱 살이 됐는데… 물론 아직 어린 나이지만, 제가 살아온 날 중에선 가장 나이 먹은 때잖아요. 최근에는 ‘지금까지 난 뭘 해온 거지.’ 그런 생각을 자주 해요. 사실 돌아보면 제20대는 이러저러한 일들로 꽉 차 있거든요. 뮤지션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만 해도 굉장히 큰일인데, 왠지 모르게 공허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떤 점에서요?

이제 20대 후반이 되었으니 ‘두 번 다시 나에게 20대 초반은 없구나.’ 싶어서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막막해지는 것 같아요.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생각이 떠나질 않아요. 머리로는 ‘그래, 지금도 어리니까 남은 20대 잘 보내고 30대에 더 멋진 일들을 해보자.’ 하는데 왜 자꾸 아쉬워지는 걸까요? 

 

10대 때는 이런 고민이 없었어요?

그때는 오히려 빨리 20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어… (침묵) 근데 생각해 보니 20대 초반에도 다시는 10대가 없구나, 생각하면서 며칠 정도 우울에 빠진 적이 있네요. 제가 좀… 느려요. 한 발도 아니고 몇 발자국씩 느려요. 뭐든 나중에 후폭풍이 밀려오는 편이고 반응이 더디죠. 시간이 지난 후에 뒤를 돌아보는 일이 많고, 그제야 감정이 밀려와요. 그럴 때 특히 아쉬워지곤 해요. 안 그러려고 하는데도 속수무책이죠. 

 

그게 음악으로 표현된다는 생각도 들어요. EP [다섯 마디]를 발표하면서 “음악은 하지 못한 한마디 말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라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맞아요. 어떤 일이 벌어지던 당시에서 벗어나 바깥에서 바라보면 좀 차분해지고 냉정하게 보게 돼요. 예를 들어 사랑할 당시에는 잘 모르던 것들이 이별하고 나서야 보일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못다 한 말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아요. 청춘이라는 단어도 그래요. 청춘을 보내고 있는 사람은 청춘이란 말에 감흥이 없어요. 청춘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그 시절을 지나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지 싶어요. 무언가 그리워하고 정의한다는 건… 그 세계를 벗어났을 때에야 가능한 게 아닐까요? 상황을 제대로 바라보게 되었을 때에야 못 한 말들이 떠오르는 거죠. 제가 스무 살을 계속 생각하는 것처럼요. 

 

계속 과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미래보단 과거를 좀더 생각하는 편이에요? 

안 그러고 싶은데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저 되게 미련이 많은 사람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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