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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우리가 사는 곳을 삭막하고 외로운 회색 도시라 부른다. 엇비슷하게 네모난 건물과 콘크리트 빌딩들, 깊숙이 내려앉은 어둠과 잠들지 못하는 이들을 이유라 말하며. 도시의 일상을 캔버스에 옮기는 페인터 이슬아의 두 눈은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른 풍경을 그린다. 고유한 삶이 스미는 이야기를 응시하는 그의 그림에서는 이 큰 도시를 채우는 수많은 사람의 생명력이 흐른다. 섬세한 표현으로 일상의 목격담을 작품으로 연결해 내는 이슬아에게 자신을 이룬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 답에서는 낯선 도시에서 비롯된 산뜻한 바람 내음이 난다.
반가워요. 얄궂게 봄비가 내리는 날에 만나게 됐네요.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그림 그리는 이슬아입니다. 여기는 저와 연인이 함께 꾸려나가는 그래픽 스튜디오 ‘그래픽캐뷰러리Graphicabulary’의 작업실인데, 한편에 제 그림 작업을 위한 공간이 있어요. 비가 많이 와서 오는 길에 고생하셨죠? 어제는 정말 날이 좋았거든요. 작업실 채광이 좋은 편이라 오후 네다섯 시 정도 되면 저 안쪽까지 노랗게 물드는 게 참 아름다운데, 아쉽네요. 테라스에 꾸려둔 작은 텃밭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대신 비 오는 날의 차분한 작업실을 볼 수 있다는 걸 위안 삼을게요. 텃밭에는 무얼 키우고 있어요?
로즈마리나 바질 같은 허브요.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먹으려고 키우는 거예요(웃음). 지난 주말에도 스콘을 만들어 먹었어요. 유독 달콤한 걸 먹고 싶은 날에는 바나나 케이크를 구워요. 집과 작업실이 자리한 이 동네를 오가는 것 외에 특별한 취미나 루틴은 없어요. 그림을 업으로 삼은 이후에 얻는 스트레스는 음식을 만들거나 베이킹을 하면서 푸는 것 같아요.
원래는 나고 자란 부산에서 그림을 그렸죠. 서울 생활은 충분히 익숙해졌나요?
동대문 근처로 전입 신고한 지 2년 반쯤 되었으려나요. 제가 살던 곳은 부산 남천동에 자리한 ‘삼익비치 아파트’였어요. 부산에도 높은 건물이 많지만 그 동네는 전혀 아니었거든요. 생활 반경이 넓은 편도 아니라 집 바로 앞에 있는 광안리를 보며 자연을 곁에 두고 지냈죠. 당시 그린 그림에도 바다가 전부예요. 생경한 이 동네에 잘 적응할 수 있던 이유는 주택가라 한적하고, 그때처럼 자연과 계절을 잘 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이맘때 되면 아카시아 같은 꽃향기를 맡고, 여름이면 녹색으로 우거진 나무들을 봐요. 가을이면 감나무가 풍성해지고, 겨울이면 그 위에 눈이 쌓인 걸 보고요.
미처 떨어지지 못한 감은 주황빛 알전구 같은데 그 위에 눈이 쌓이면 참 예쁘죠.
맞아요. 부산은 눈이 잘 안 오니까 그런 풍경을 마주하면 새로운 동화를 보는 것 같았어요. 새삼스레 다시 한번 계절을 깨닫고요. 내가 머무는 곳과 친하게 지내면서 애착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이곳에서 작업 중인 슬아 씨 모습을 상상하면 ‘파란색 작업복’이 떠올라요. 저기 의자에 걸린 거요.
상하의가 하나로 연결된 점프슈트 형태의 작업복인데요. 저걸 입을 수밖에 없는 게 큰 그림을 그리면 조금만 움직여도 물감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묻어요. 캔버스 곁을 지나가다가 묻고, 붓 빨다가 묻기도 하고요. 예전엔 인터넷에서 열심히 검색해서 적당한 작업복을 찾아 입었다면, 저 파란색 옷은 2년 전 도쿄에서 좋아하는 화방에 갔을 때 발견했어요. 얼룩덜룩 물감이 묻어서 많이 더러워졌죠? 하루 종일 저 옷을 입는 건 아니고 보통은 작업실에 도착하자마자 노트에 연필로 드로잉을 해요. 큰 그림을 채색해야 할 때 작업복을 입는 거죠.
그렇군요. 누군가의 일터 혹은 집일 건물과 거리 풍경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잖아요. 엇비슷한 모양으로 늘어선 빌딩 속 사람들도 담고요. 도시의 일상을 그리기 시작한 이유가 있어요?
특별히 의식해서 그린 건 아니예요. 굳이 구분하자면 저는 추상회화가 아니라 구상회화를 하는 사람이에요. 실제로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게 그대로 그림에 반영되곤 하죠. 부산에 머물 때는 바다나 자연만을 그렸던 것처럼요. 한번은 미국에 있는 미술관이 좋다던 친구들 말을 듣고 난생처음 뉴욕에 갔는데, 빛을 따라 시선이 닿는 곳곳의 색깔이 알던 것과 다르게 보이는 게 매력적인 거예요. 그리고 그 대도시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별달리 할 일이 없으니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장면이 참 많더라고요. 커피나 술, 담배 그리고 휴대폰을 꼭 가까이 두거나 반려동물과 산책하는 일상적인 모습이요. 다들 아파트나 빌딩처럼 네모난 공간 안에 머무는데, 누구는 바닥에 붙어 있고 누구는 공중에 떠 있기도 하다는 걸 알아채기도 했죠. 주어진 공간이 저마다 다른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다는 게 큰 영감으로 다가왔어요.
관찰로 알아낸 재미있는 장면에 대해 더 듣고 싶어요.
사람들이 다른 모습으로 비슷한 행동을 한다는 걸 아세요? 저는 생김새나 거주지, 직업 등이 달라도 결국 사는 건 다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환경이 같아진다면 행동의 선택지가 더욱 비슷할 테니, ‘도시’에 사는 이들의 일상은 닮아 있을 거예요. 그 생각이 굳어진 게 뉴욕에서 머무르던 팬데믹 시절인데요. 당시 접촉 제한으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한정되니까 답답한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왔어요. 공원이나 집 안에서도 테라스, 옥상 같은 곳으로요. 하루는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지상철을 타고 있는데, 발밑으로 다들 자신의 집 옥상에 올라와 바람 쐬는 모습이 보이는 거예요. 그걸 보고 괜히 웃음이 터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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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