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Curation

여름을 누리는 네 가지 방법

햇빛 찬란한 한낮 우리는 공원을 걸으며 아이스크림 가방에서 갓 꺼낸 몇 개의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하현은 봉투를 길게 찢어 아이스크림 바를 꺼내 들고 아삭아삭 무심하면서도 다정하게 씹는다. 강렬한 태양에 금세 녹아 뚝뚝 떨어지는 아이스크림을 능숙하게 어르는 한 손과 야무지게 먹는 그 모습을 넋 놓고 보다가, 나도 모르게 “행복해 보인다.” 자그맣게 읊조렸다. 작열하던 해가 저물어 갈 때쯤 옆에 쌓인 아이스크림 봉투는 벌써 여섯 개. 스크류바, 수박바, 메로나, 따옴바, 폴라포, 탱크보이…. 아, 이 끈적하고 귀여운 행복이여.

디저트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먹는 것’으로 생각하면 분위기가 중요하지 않은데,

‘행위’로 생각하면 더 많은 게 중요해져요.

공간의 분위기나 디저트의 생김새, 함께 먹는 사람 같은 거요.

온라인 서점에서 이런 소개를 읽었어요. 하현 씨의 글은 “따스하고도 섬세한” 글이라고, “늘 세상에 대한 다정한 관심으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섬세하게 관찰하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작가”라고요. 

참 감사하고 좋은 소개인데, 솔직하게 그건 하현이라기보단 하현이 되고 싶은 사람인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저 말고 다른 거엔 별로 관심이 없거든요(웃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자꾸 이런 생각이 들어요. ‘관심사가 내 안쪽으로만 향해 있는 사람은 별로 멋있지 못한 것 같다.’고요. 그래서 자꾸 다른 쪽을 보려고, 바깥을 보려고 노력하게 돼요. 그런 척이라도 하다 보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정리해 보면, 저는 따뜻하고 섬세한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그 노력은 잘 되어가고 있어요? 

아니요. 너무 어려워요. 저는 왜 이렇게 저만 재밌는지 모르겠어요. 다른 게 통 재미있질 않아서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돼요. 

 

왜 바깥을 봐야 더 재밌을 거라고 생각해요? 

에세이로 먼저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저는 소설을 쓰고 싶거든요. 소설은 결국 내가 아닌, 세상에 없는 사람 얘기잖아요. 근데 나만 아는 사람이 그런 얘기를 잘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좀더 나 말고 다른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저는 하현 씨 글이 잘 읽히고 재미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이런 이야기가 무척 의외예요. 

그럼 제 노력이 성공적으로 되어가고 있나 봐요(웃음). 

 

소설도 기대되는데요(웃음). 이름 이야기부터 해볼게요. 개명한 걸로 아는데 새 이름으로 사는 기분은 어때요? 

좋아요. 이름은 인생의 기본값인데 제가 결정할 순 없는 거잖아요. SNS에서 개명 이야기를 할 땐 제 이름 ‘하정아’에 들어가는 단정할 정姃 자가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조신함, 순종적인 언행과 연결되는 것이 스트레스라고 했는데요. 이름 뜻에 집중한 건 나중 일이고, 어려서부터 제 이름을 안 좋아했어요. 어떤 느낌이냐면 다들 “이거 네 거야.” 하는데 제 것이 아닌 듯한 느낌? 그러다 개명하고 나니까 인생의 한 부분 정도는 제가 선택한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게 참 좋았어요. 어릴 땐 친한 친구인데도 제 이름을 2년 동안 ‘하정’으로 알고 있는 친구도 있었어요. 편지 첫머리에 “하정이에게.”라고 쓴 걸 보고서야 알았죠. 

 

이럴 수가. 내 것 같지 않단 의미를 알겠어요. 하현은 ‘하현달’에서 따온 거라고 들었어요. 

어릴 때 멀미가 굉장히 심해서 아빠 차 타고 할머니 댁에 다녀올 때마다 힘들어했어요. 그럴 때 창밖에 있는 달을 집중해서 보고 있으면 좀 괜찮은 느낌이 들었죠. 어린 맘에 ‘저 달이 어떻게 나를 계속 따라올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계속 생각하다 보니 달이 친근하고 좋아지더라고요. 또 매일 변한다는 점도 좋아요. 특히 예측 가능하게 변한다는 게 다정하게 느껴져요. 상상하게 되는 존재라는 것도요. 옛날 사람들은 달을 보면서 그 안에 토끼가 살고, 방아를 찧어 떡을 만든다는 상상을 했잖아요. 그런 이야기까지 마음에 들어서 계속 달을 좋아하게 돼요. 

띵 시리즈 여름 삼부작 중 하나로 《아이스크림: 좋았던 것들이 하나씩 시시해져도》를 출간했죠. SNS에서도 자주 눈에 띄고, 출퇴근길 전철에서 읽는 사람을 종종 만나기도 했는데요. 일명 ‘아이스크림 책’을 낸 소감이 어때요? 

크게 변한 건 없는데… 제 주위에서만 그런 거지만 뭐랄까, 아이스크림의 권위자 같은 게 돼서 “요새 무슨 아이스크림 맛있어?”, “아이스크림 좀 추천해 줘.” 그런 얘길 많이 들어요. “너는 아이스크림 갖고 책 한 권 쓴 사람이잖아.” 하면서요(웃음). 그게 너무 귀엽고 재미있어요.

 

카페에서 파는 고급 디저트가 아니라 동네 슈퍼마켓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종류를 이야기해서 더 귀엽단 느낌이 있어요. 요샌 어떤 거 많이 추천하세요? 

빙그레에서 나온 따옴바 패션후르츠맛이랑 책에서도 적극적으로 추천한 건데 해태에서 나온 아이스팜 자두맛이요. 정말 맛있어요. 맛없는 자두보다 훨씬 자두 같아요. 아, 하나 더 추천할게요. 어제 먹은 것도 맛있었거든요. 피코크에서 나온 요거트 아이스크림인데, 너무 맛있어서 한 통을 다 먹었지 뭐예요(웃음). 

 

지금 추천해 주신 게 다 ‘수채화’ 종류네요. 아이스크림 이야기할 때 꾸덕꾸덕하고 밀키한 아이스크림을 ‘유화’, 맑고 가벼운 베리류를 수채화라고 말씀하시잖아요.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어떤 파예요? 

아… 저한테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같은 질문인데요. 자주 먹는 건 수채화 쪽인데, 제 안에서 아이스크림이란 단어를 딱 꺼낸다면 그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유화예요. 투게더나 소프트아이스크림 같은 거요. 자주 먹는 건 수채화지만 좀더 애정 있는 건 유화. 

 

띵 시리즈를 처음엔 ‘쌀국수’로 제안받았다고 들었어요. 

음식 에세이를 참 좋아해서 이전부터 띵 시리즈를 쓴다면 뭘 쓸 수 있을까 생각을 많이 해봤어요. 그래서 제안이 정말 반가웠고 꼭 하고 싶었죠. 근데 쌀국수로는 항상 같은 가게만 가고, 같이 가는 사람도 비슷해서 다채롭게 쓸 이야기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새 소재를 찾아 꼭 합류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아이스크림을 골랐어요. 

 

그 전에 소재가 하나 더 있다고 들었어요. 과자! 

(활짝 웃으며) 과자는 저한테 기쁨이에요. ‘얘가 날 기쁘게 하지 않을 리 없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음식이죠. 저는 어릴 때부터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면 항상 과자를 먹으면서 했어요. 과자가 너무 좋으니까 그 싫음이 좀 상쇄되더라고요. 실은 아직도 그래요(웃음). 

 

그래서 SNS에 작업하는 사진 옆에 꼭 과자나 과일이 끼어 있던 거군요. 

맞아요. 장을 볼 때 항상 ‘작업 과자’를 사요. 그게 뭐냐면, 똑같은 새우깡이어도 평소엔 아무 때나 먹을 수 있지만, 작업 과자라 이름 붙이면 작업할 때만 먹어야 하는 거예요. 저와의 약속이죠. 그래서 요새는 일부러 좀더 특이한 과자나 신기한 과자를 작업 과자로 사두곤 해요. 그걸 먹으려면 작업을 해야 하니까 과자를 먹기 위해서라도 마감하게 되거든요. 요새는 올리브 영에서 파는 수입 과자에 꽂혀 있어요. 폴트에서 나오는 살구 타르트. 우리나라 과자는 짜거나 달거나 둘 중 하나인데 프랑스 과자는 새콤달콤한 맛이 많거든요. 이 살구 타르트 과자도 필링이 새콤달콤한데 전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꼭 드셔 보세요. 강력 추천(웃음). 

 

얘기만 들어도 벌써 맛있는데요(웃음). 과자는 누구나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먹고 사는 음식일 것 같아요. 꾸준히 좋아하는 과자 있어요? 

꼬깔콘이요. 아이스크림에 비해 과자는 취향이 왔다 갔다 하는 편인데 꼬깔콘만큼은 변함없이 계속 좋아하는 과자예요. 고소한맛은 안 돼요. 무조건 군옥수수맛. 

 

이번에 디저트를 주제로 여러 사람과 대화하면서 ‘디저트가 뭐라고 생각하는지’를 자주 물었거든요. 근데 대부분이 ‘달콤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꼬깔콘은 짠 과자잖아요. 디저트라고 생각하세요? 

아니요. 저도 디저트는 달콤한 거란 인식이 있어서 봉지 과자는 디저트보단 간식 같아요. 

 

간식이랑 디저트랑 뭐가 달라요? 

어, 그러게요. 밥 먹고 나서 먹고 싶은 건 디저트고, 밥 먹기 싫을 때 먹고 싶은 건 간식? 저한텐 그래요. 근데 봉지 과자는 간식이지만 상자 과자는 디저트예요. 초코송이 같은 거. 

 

그럼 꿀꽈배기는요? 

와…, 애매하네요. 아닌 쪽에 가까워요. 디저트보단 간식 같아요. 제 기준으로 정리를 해보자면, 식사하고 먹는 달콤한 게 디저트니까 너무 배부르지 않은 거여야 해요. 반면, 간식은 식사하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거고요. 그러니까 간식은 좀 묵직하거나 짭짤해도 괜찮은 거죠. 

 

그럼 아이스크림은 디저트네요? 

둘 다 돼요. 디저트에 가까운 것 같지만 저는 밥 대신 한 끼 정도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도 있으니까 저한테는 디저트자 간식이자 식사예요(웃음).

〈헤어질 결심〉(2022) 보셨어요? 극중에서 탕웨이가 식사 대신 홈 아이스크림을 먹잖아요. 

그 장면 너무 좋아해요. 탕웨이는 한 가지 아이스크림으로 식사를 대신하는데 저는 식사 대신 먹을 땐 여러 종류를 먹어요. 빵또아를 먹고, 월드콘을 먹고, 스크류바로 끝낸다든지, 나름의 흐름이 있죠. 아이스크림을 먹는데도 순서가 중요하거든요. 물론 한 종류만 연달아 먹을 수도 있지만 유화만 계속 먹으면 너무 묵직하고 무겁거든요. 

 

아이스크림으로 배가 불러요? 

네. 엄청 부르다기보다는 뭐를 더 먹고 싶지 않은 상태가 돼요. ‘이거면 됐다.’ 상태. 

 

“아이스크림을 안 먹을 수는 있어도 하나만 먹을 수는 없다.”라는 얘기 자주 하시잖아요. 아이스크림을 한 번에 최대 몇 개까지 먹어 봤어요? 

어… 우리가 하루에 물을 몇 잔 마시는지 굳이 세진 않잖아요. 저한텐 아이스크림이 그래요. 너무 자연스럽게 먹는 거라 세보지는 않았는데, 최근에 기억나는 건 다섯 개? 작년에 자다 말고 너무 아파서 깬 적이 있어요. 온몸을 적실 정도로 땀이 나서 눈을 떴는데 너무 아프니까 못 움직이겠더라고요. 어떻게든 진료를 받아야 살겠다 싶어서 아침까지 견디려고 냉동실에 엉금엉금 기어가선 아이스크림을 다섯 개 연달아 먹었어요.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구구콘은 먹은 기억이 나요. 무슨 일이 있어도 침대에선 음식을 안 먹는데 그날은 너무 아파서 구구콘 가루를 침대에 떨어뜨리면서까지 먹었거든요. 

 

아이스크림을 삶의 일부라고 말씀하시는 게 이런 의미였군요. 

네. 시도 때도 없이 먹는 음식이어서요. 디저트는 친구랑 밥을 먹고 “케이크 먹으러 갈까?” 하고 목적을 띠고 가는 거라면 저한테 아이스크림은 정말 삶처럼 이어지는 거거든요. “너는 휴지를 하루에 몇 번 써?” 이런 질문과 다르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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