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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성이 살아가는 세상의 절반은 달리기가 구성한다. 달릴 때 그를 지나치는 숱한 풍경, 달리면서 피어나는 산뜻한 활력이 예전엔 몰랐던 세계의 문을 열었다. 그 문 앞에서, 장인성은 달리기를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나둘 꺼내 놓기 시작했다.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너무 춥지 않아 다행이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장인성입니다. 저는 러너이자 배달의민족에서 일하는 마케터이고, 최근엔 유튜버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직접 자기소개를 하려니까 좀 민망하네요(웃음).
러너라는 소개가 가장 먼저 나오네요. 달리는 자아가 가장 강한가 봐요.
어, 막상 그런 질문을 받으니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 자아끼리 싸우거나 비교할 일이 잘 없거든요. 일할 땐 마케터 자아가 강하고 달릴 때는 달리는 자아가 강해요. 마찬가지로 유튜브 할 땐 유튜버 자아가, 글 쓸 때는 작가로서의 자아가 가장 강하죠. 그림 그릴 땐….
그림도 그려요?
네(웃음). 요새 즐겁게 배우고 있어요. 저는 저를 더 나아지게 하는 데 관심이 많아요. 기술을 배워서 성장하고 그걸 느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수영도 좋았어요. 저는 원래 수영을 전혀 못 하는 사람이었는데 배우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200미터를 헤엄칠 수 있게 되고, 숨 쉬는 것도 처음보다 훨씬 잘되고, 접영은 꿈도 꾸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할 수 있게 되었어요.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이 과정이 너무 즐겁고 재밌더라고요. 그때 제가 성장하는 걸 좋아한다고 깨달았어요.
표정만 봐도 좋아하는 게 느껴져요(웃음).
성장하는 것만큼 좋아하는 게 표현하는 거예요. 제가 직접 만든 것들을 사람들이 봐준다는 데서 매력을 느끼거든요. 《마케터의 일》을 출간한 것도 그런 맥락이었고, 유튜브 채널 <인성아 뭐 샀니?>도 그래서 시작한 거죠. 제가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직접 촬영하고 편집하는 과정, 그리고 송출했을 때 반응이 온다는 게 재밌더라고요.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흥미롭지만 제가 좀더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는 게 특히 즐거워요.
달리기도 그런 의미인가요?
음… (곰곰이 생각한다.) 맞아요. 정확히 ‘나를 표현하는 행위’라고 하긴 어렵지만, 성장한다는 느낌을 직접적으로 주는 활동이 바로 달리기예요. 지금은 많은 사람이 저를 러너라고 부르지만, 처음 달릴 땐 아주 엉망진창이었어요(웃음). 지금 생각하면 우스울 정도죠. 그게 벌써 13년 전 일인데 그때만 해도 제 주변에 달리기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달리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하는 방법도 전혀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실은 방법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어요. 완전히 깜깜한 상태로 무작정 10킬로를 달린 거죠. 요령 없이 킬로 수만 채우고 나니 ‘나는 못 하겠다.’ 싶더라고요. 제 일이 아닌 것 같았어요.
어떤 기준으로 10킬로를 달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큰 의미는 없었어요. 달리기에 목적을 두거나 대단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건 아니어서 막연하게 정한 거였죠. 제가 달리기 위해 준비한 건 옷이랑 신발밖에 없었어요. 달려 봐야겠다고 마음먹기 전까진 그 어떤 운동에도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 청바지랑 구두밖에 없었거든요(웃음). 아무리 그래도 달리려면 복장은 갖춰야 할 것 같아서 운동복이랑 러닝화부터 샀어요. 그러고 나서 집 주변으로 달릴 만한 장소를 알아봤죠. 저는 아주 기본적인 것만 준비한 건데도 달리기를 한다는 건 마음과 시간을 쓰는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운동과는 전혀 관계가 없던 제가 ‘이렇게까지’ 하고 나온건데, 10분만 뛰고 들어가는 건 용납이 안 되더라고요. 등산도 한 시간은 하는데 달리기도 그 정도는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무작정 달렸어요. 그렇게 달린 게 10킬로였던 거죠.
달려보겠다는 마음은 어떻게 먹게 된 거예요?
일하다가요(웃음). 마케팅 업무를 하다 보면 케이스 스터디를 하는 일이 많은데요. 어느 날 애플과 나이키의 컬래버레이션에 대해 알게 됐어요. 각 분야에서 1등인 두 브랜드가 조합을 이룬다니까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때 제가 공부한 게 나이키플러스Nikeplus라는 IT제품이었는데요. 나이키플러스시리즈 운동화 바닥에 애플이 센서를 장착해서 아이팟 나노로 신호를 송신해 주는 컬래버레이션 제품이었어요. 굉장히 획기적이었고 광고도 멋있었어요. 그 당시 클라이언트에게 이 컬래버레이션 사례를 소개하는 일이 좀 많았는데, 말로만 소개하는 게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해보지도 않은 걸 클라이언트에게 보여 주면서 “이런 게 있대요.” 하는 게 좀… 멋이 없어 보였거든요(웃음). 그때 직접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체험을 결심한 거죠. 처음에 10킬로를 달렸다고 했지만 사실 뛰다 걷다 한 거여서 달리기를 했다고 이야기하기도 민망해요. 어릴 때 오래달리기를 하면 처음에만 빨리 달리고 나중엔 헉헉거리면서 걸어 들어오는 애들 있잖아요. 제 첫 달리기가 꼭 그랬어요. 다음 날 몸져눕기까지 했죠.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거예요. 그러고 나서는 못 하겠다 싶어서 한동안 달리지 않았어요.
근데 어떻게 다시 달리게 됐어요?
첫 달리기를 하고 나서 1년 정도 지났을 즈음 신발장에 방치된 러닝화를 보게 됐어요. 기껏 시간과 비용을 들여 산 신발인데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더 해보자싶어서 러닝화를 신고 나갔어요. 잊지 않고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뛰었는데, 작년과 올해의 평균 속력이 나오는 거예요. 그걸 보고 올해 더 잘 달렸다는 걸 알게 됐죠. 두 그래프를 비교하는데 문득 ‘두 개가 뭐야, 셋은 돼야지.’ 싶은 마음이 들었고, 세 번을 뛰어 그래프 세 개를 만들었더니 평균 속도랑 상승하는 곡선이 보이는 거예요. 그런 흐름을 보는 게 재밌어서 한 번 더, 한 번 더, 하면서 계속 뛰게 됐어요. 시각적으로 제가 어떻게 뛰는지가 보이니까 거기에 흥미가 붙은 거죠. 초반엔 그런 재미로 쭉 달렸는데 꾸준히 하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그냥 몸을 움직이는 자체가 즐겁더라고요.
운동을 무척 좋아할 것 같은 인상인데 의외네요(웃음). 어린시절엔 어땠어요?
반에서 체육을 제일 못하는 애였어요. 못한다고 말하긴 싫어서 12월생이어서 그렇다고 핑계를 대곤 했죠(웃음). 서른 살쯤 되면 30년이나 30.9년이나 그게 그거 같지만, 여덟 살 때는 그 차이가 엄청나거든요. 사실 초등학교 1학년생과 2학년생의 발육이나 운동 능력에는 차이가 크잖아요. 저는 한 학년 아래 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이니까 못하는 게 당연했어요. 근데 제 입으로 못한다고 말하는 건 또 싫어서 안 한다고 우기면서 체육 수업도 잘 참여하지 않았죠. 못하니까 열심히 안 하고, 그러다 보니 더 못하게 되고, 못하면 더 안 하고, 안하니까 계속 못하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이 모드가 계속됐어요.
그래도 운동회는 축제 같지 않았어요?
어휴, 아니요. 어떤 종목이든 선수로 나갈 일이 전혀 없었고 몇 시간 동안 앉아서 응원만 하는 거잖아요. 어릴 때부터 스포츠 경기를 구경하거나 응원하는 데는 취미가 없었어요. 사람들이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볼 때도 저는 음악을 듣거나 공부하면서 시간을 보냈죠. 몸을 써서 승부욕을 자극하는 행위보다는 감정의 오르내림과 철학, 예술 이런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광고도 그렇게 시작하게 된 건데, 영화에 관심이 있어서 영상을 공부하다 광고를 알게 됐어요. 제가 여태 보아온 아름다운 화면이나 멋진 음악, 카피가 압축된 예술이 바로 광고였던 거죠. 그래서 광고 동아리에 들어가서는 쭉 예술에만 꽂혀 지냈어요.
운동에 경쟁이 있다는 게 싫었던 건가요?
맞아요. 만일 달리기가 경쟁하는 종목이었다면 절대 도전하지 않았을 거예요. 제가 생각하기에 달리기의 중심은 ‘나’거든요. 내가 이번 달에 몇 킬로를 뛰었고, 내 속도가 어떤지가 중요한 거지 남들 기록이 그렇게까지 중요하진 않아요. 러너라면 대부분 사용할 애플리케이션 NRC Nike Run Club에는 친구들 기록까지도 나오지만, 제가 처음 나이키플러스를 사용해서 달렸을 때만 해도 오로지 제 기록만 알 수 있었거든요. 그게 어쩌면 다행이었는지도 몰라요. 그때부터 제 기록에 집중했기 때문에 나중에 친구들 기록을 보게 되었을 때도 부수적인 재미로만 여길 수 있었어요. ‘그래서 뭐!’ 하고 넘길 수 있게 된 거죠. 취미로 달리는 데는 이기고 지는 승부가 없어요. 굳이 경쟁해야 한다면 상대는 예전의 나뿐이에요. ‘지난 10킬로 마라톤 결과는 50분대였는데, 이번엔 48분이네?’ 하는 식의 비교를 하는 거죠. 제가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열심히 하는 만큼 성과로 돌아오기 때문이에요. 10킬로를 뛰던 사람이 연습을 통해 하프 마라톤에 출전하게 되고, 풀코스마라톤까지 완주하게 되는 것. 이런 부분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상당하거든요.
나와의 싸움이네요.
그렇죠. 달리기를 시작하고 한 10년 동안은 나를 이기는 게 굉장한 즐거움이자 달리는 동력이었어요. 그래서 해마다 마라톤 대회도 많이 나갔어요. 처음엔 10킬로, 그다음엔 하프, 그다음엔 풀코스…. 어떤 대회든 기록은 둘째 치고 열심히 달리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쭉쭉 생기거든요. 달리는 사람들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해도 에너지가 모이고 신이 나요. 마라톤 대회는 달리는 사람들의 축제예요. 그동안 연습한 걸 펼쳐 보이겠단 마음으로 모인 러너들이 ‘탕!’ 소리를 듣고 일제히 출발하는 그 짜릿함. 나만의 번호표를 달고, 내 페이스를 찾아 달리다가, 중간중간 물도 마시고, 레일 옆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서 응원도 받고. 마라톤을 해본 사람들은 알 거예요. 준비된 마라톤은 진짜 멋진 경험을 하는 거예요. 처음엔 그 축제의 느낌이 좋아서 나가기 시작했는데요. 완주할 때마다 제 기록을 알게 되니까 더 빨리, 더 잘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음 대회, 그다음 대회에 계속 도전하게 되었어요. 완주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나를 몰아붙이고 훈련시키면서 안 되던 것들을 달성하는 게 재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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