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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미와 일이는 문득 떠오른 질문을 이리저리 쪼개어 함께 고민한다. 보챔 없이 느긋하게 상대방의 말을 기다리다가 자신의 말도 살포시 얹는다. 마침내 완성한 키미의 그림과 일이의 문장, 그 위를 넘실거리는 분위기는 내 앞에 마주 앉은 그들과 꼭 닮아 있다. 하나의 이름이든 둘의 이름이든, 서로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각자의 예술을 응원하는 사이. 녹빛의 산과 중얼거리며 흐르는 천 사이에서 나는 몰래 시샘을 떠올렸다.
부산이라는 도시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어요?
일이 저는 고향이 부산이에요. 서울에서 일을 하다가 부산으로 내려온 게 2014년인데, 키미 그러니까 희은이를 만나면서부터 이곳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죠.
키미 저는 울산에서 자랐어요. 울산은 공업 도시라 온 주변이 공장이에요. 그 공장 지대를 항상 벗어나고 싶어했어요. 그런데 제가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근처인 부산이고, 오빠의 고향이기도 하니까 친근감이 들더라고요. 물론 부산으로 내려와 지내면서 어떤 부분에선 한계를 느껴 서울에도 갔었는데, 어딜 가든 내가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디에 있었든, 과거에 무얼 했든 언젠가 다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같은 점도, 다른 점도 가진 두 사람이 ‘키미앤일이’라는 하나의 이름을 사용했죠. 이유가 궁금해요.
키미 저는 원래부터 키미라는 이름으로 작게 그림도 그리고 물건도 만들었어요. 대일 오빠를 만나면서 같이 무언가 해보자는 마음으로 키미와 일이를 붙인 거죠. “나 키미 있으니까 그럼 네가 붙어라!” 하면서요. 사실 별생각 없이 지은 이름인데, 1-2년 지나니까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고 찾아주시면서 아예 팀명처럼 굳어지더라고요. 그게 계속 이어져 온 거예요.
작년부터는 하나의 이름을 다시 둘로 나눠 가졌어요. 마음에 어떤 물결이 흘러왔기 때문일까요?
일이 키미앤일이라는 이름이 올해로 9년이나 됐어요. 한 5년간은 제가 디자이너로서 열심히 활동했는데, 그 일이 점점 힘들어지더라고요. 실력이 바닥난 것 같고 흐름을 쫓아가기도 버거웠고요. 패션 전공을 하다가 시작한 디자인이다 보니 슬슬 밑천이 드러난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일을 멈추고, 키미에게 들어오는 일을 조율하는 걸 도맡았죠. 글을 쓰기도 하고요. 사실상 하는 일이 변했는데 이름은 그대로니까 혼란스럽더라고요. 용기가 나진 않았지만 무언가 결단이 필요했어요.
키미 이런 애매모호한 상황이 결국에는 제가 가려고 하는 방향에도 걸림돌처럼 보이더라고요. 우리한테는 그냥 단순한 이름인데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니까.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키미 저는 계획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만약 운전을 한다고 치면, 예쁜 풀밭에서 좀 쉬었다 가고 싶고 저쪽 길도 구경해 보고 싶고 이 집도 예쁘고 저 나무도 궁금해요. 작업을 그런 방식으로 했던 거죠. 반면에 키미앤일이라는 이름은 저한테는 내비게이션 같았달까요. 내가 가야 하는 곳, 최적의 경로를 안내해 주니 물론 좋지만 그게 과연 내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하고 싶은 걸까 싶었어요. 이곳저곳 자유롭게 둘러보고 만끽하는 게 그림에 생동감을 주니까요. 그래서 처음의 마음을 따라가 보자고 선택한 거예요. 우리의 사이나 일상에는 변한 게 없는데 이름과 함께 앞으로의 할 일도 정리한 거죠.
이름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나를 정의하고 구성하는 방법 중 하나였네요.
일이 그러게요. 이름 하나를 둘로 나눠 가지는 게 별일인가 싶었는데 느낌은 조금 다르더라고요. 설명하기 어렵지만 흐름이 달라진 것 같아요. 이제 누군가가 너는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저요? 저는 뭐 하는 사람일까요.”라고 답해요. 나의 이름으로 무얼 하고 싶은지 이것저것 시도해 보려고요.
키미 하나의 이름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으니까 나만의 전문성이나 진지한 고민 등을 미뤘던 것 같아요. 이제는
스스로 고민을 풀어보고 각자 역할을 찾는 데 힘을 써야죠. 그래도 여전히 서로의 존재가 큰 응원일 텐데요. 어때요? (서로를 바라본다)
일이 우리는 항상 하는 표현이 있어요. 그냥 베스트 프렌드. 최고의 친구라고요.
이 집으로 얼마 전에 이사 왔다고 했죠. 짐 정리는 끝났나요?
키미 딱 일주일 되었어요. 급하게 결정한 집이라 가구를 어디에 놓고 무얼 꾸미고 이런 걸 생각할 시간이 많지 않았어요. 그저 우리의 목표는 무조건 인터뷰 전까지 끝낸다는 거였죠(웃음). 덕분에 정리도 모두 끝났네요. 인터뷰 아니었으면 한 달 동안 난리 났을 거예요.
일이 한 달이 뭐야, 지난 집에서는 일 년째 못 푼 박스가 있었어요. 잘 쓰지도 않고 버리지도 못하는 그런 짐들.
부산에서도 외곽에 자리한 정관읍이라는 마을이에요. 뒤에는 산이 서 있고 앞에는 천이 흐르네요. 어떻게 이 마을로 오게 됐어요?
일이 여기는 정관읍에서 두 번째 집이고 첫 번째로 살던 집이 있었어요. 그때 저희가 남프랑스에 여행을 갔는데 코로나19가 터진 거예요. 처음으로 팬데믹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위기가 마구 부풀어 오를 때였죠. 그러니 프랑스에서도 전부 봉쇄되고 숙소 안에서만 지냈어요. 비행기도 취소되고요.
키미 숙소가 2층이었는데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면 마당 있는 옆집이 보였어요. 가끔 할아버지가 나와서 식물에 물을 주는데 자기 집이 있다는 게 참 안락한 거라는 걸 크게 느꼈죠.
일이 그래서 한국 오면 집을 사야겠다고 마음먹고 그중에서도 테라스 있는 집을 찾아봤어요. 막 찾다 보니까 정관읍이 눈에 보이는 거예요. 가격도 합리적이라 이곳에서 평생 살자는 마음으로 샀죠.
키미 그런데 집이 너무 안락하고 편하니까 그냥 그대로 있고 싶은 거예요. 작업도 하고 새로운 걸 보면서 살아야 되는데, 누가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아무런 자극도 의욕도 불편함도 없이 지낸 거죠. 그림도 도무지 뭘 그려야 할지 모르겠고 이렇게 나이가 드는 건가 하다가 이게 맞나 하는 의문이 떠올랐어요. 우리가 하고 싶은 게 뭔지 고민하면서 거길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고요.
도대체 어떤 집이었길래 일시 정지 상태가 된 걸까요?
일이 베란다 창문을 열면 테라스가 있고 그 뒤로는 산책로가 보여서 풀도 많고 나무도 많고 고양이들도 다녔어요. 외부 소음도 전혀 안 들리고 자동차 소리 같은 것도 없고 공간도 넓어지니 작업하기도 좋았죠. 뭐든 충만한 곳이었어요.
키미 은퇴한 노부부처럼 살았던 거죠. 소파도 하필 깊고 푹신한 거라 누우면 빨려 들어가듯 일어나기가 힘들었고요. 소파 앞에 테이블 펼쳐 두고 밥 먹고 다 먹으면 다시 소파로 올라가고. 시공간이 멈추고 우리만 있는 기분이었어요.
일이 공간이 우리 성향과 똑 닮아서 오히려 자극 없는 생활이 되어버렸던 것 같아요. 다른 성질의 성향이 필요했어요.
그곳에서 쉼이 아닌 일상을 보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프랑스로 떠날 계획을 세웠다고요.
일이 장기 비자를 받아서 떠나려고 1년 동안 프랑스어도 열심히 공부했어요. 서류 심사를 기다리며 집을 처분하고 정리하기 시작했죠. 짐을 점점 줄이던 와중에 승인이 불가하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키미 살던 집에는 이미 친구가 들어오기로 했으니, 차라리 빨리 다음 액션을 취하자고 했어요. 바로 이 집을 보고 그다음 날 계약을 한 거예요. 이왕 짐까지 가벼워진 김에 우리 그냥 여기저기 가고 싶은 데서 살자면서요. 여행 온 것처럼요.
여행자의 마음으로 도착한 이곳에서는 어떤 하루들을 보내는지 궁금해요.
키미 사실 이사 때문에 한동안은 온종일 청소에만 몰두했어요. 그래서 앞으로의 루틴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웃음) 그럼 내일부터의 일상을 들려줄래요?
일이 저희가 달리기를 꾸준히 하고 있어요. 그리고 세 달 전부터 수영을 시작했거든요. 새벽에 일어나서 식사 간단히 하고 달리기를 한 후에 아침 6시 반 수업을 들으러 수영장으로 가요. 오전을 운동하며 보냈으니 오후에는 점심 든든히 먹고 작업을 시작해요.
하루를 부지런히 시작하네요. 달리기를 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키미 보통 운동할 때, 잘 맞는 선생님을 만나는 게 좀 어렵더라고요. 수업을 꾸준히 듣는 것도 쉽지 않고요. 여기 앞이 좌광천이라고, 달리기 좋은 산책로가 있거든요. 별다른 준비 없이 할 수 있는 거라서 시작했어요. 제가 처음에는 5분도 못 달렸거든요. 근데 꾸준히 하니까 되더라고요. 지금은 한 시간에 10킬로미터 정도 달릴 수 있고 얼마 전에 마라톤도 나갔어요. 달리다 보면 고통스러운 순간이 오지만 목표 지점까지 달성하고 멈추고, 이런 행위를 반복하다 보니까 일상에서 힘들 때마다 괴로움을 참고 끝까지 간 걸 떠올리게 돼요. 할 수 있다고 마음을 다잡고요.
그 김에 수영도 시작한 거고요?
일이 프랑스에서 머물려고 했던 곳이 니스였어요. 당연히 거기 바다에서 놀아야지 하면서 배웠죠. 원래 우리는 물놀이를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어요. 수영을 배우고 나니까 아니더라고요. 수영을 못했을 뿐이지 물은 좋아했던 거예요. 비록 프랑스엔 못 갔지만 그걸 계기로 얻은 게 되게 많아요.
그렇네요. 두 분이 함께 하니 운동도 더 재미있게 느껴질 것 같고요.
키미 오빠가 저한테 라이벌 의식이 있어요(웃음). 제 수영 실력이 이만큼 발전하면 자기도 이만큼 더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일이 그럼요! 희은이가 운동 신경이 좋은 편이에요. 수영에서 평영 같은 건 저보다 좀 잘하거든요. 그럼 제가 “너 이거 어떻게 했어?” 물어보면서 견제하죠.
방금 눈빛에서 질투가 느껴졌어요(웃음). 키미와 일이가 되기 전, 그러니까 희은이와 대일이의 인연의 시작을 묻지 않을 수 없네요.
일이 2008-09년 언저리니까 꽤 오래전 이야기네요. 부산에서 열린 플리마켓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그때 희은이도 나와서 서로 아는 사이가 됐죠.
키미 모르는 사람에서 그냥 아는 사람.
일이 이후에 제가 서울로 일하러 가게 됐어요. 희은이와는 블로그 이웃이니까 거리가 멀어져도 근황을 나눌 수 있었죠. 제가 뭔가를 시작하면 희은이가 응원해 주고, 반대가 되면 제가 응원을 보내고요. 그러다가 희은이가 친구 보러 서울 온 김에 만나서 밥도 먹고 놀다가 잘 곳도 얻어줬어요. 저는 직장 다닐 때니까 얘보다는 여유가 있었거든요. 잘 가 하고 헤어졌는데, 며칠 후에 택배가 하나 도착했어요. 열어보니 희은이가 고마워서 작은 선물을 보낸 거죠. 만년필과 쪽지요.
마음이 간질간질한데요. 혹시… 서로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닌가요?
키미 아니에요. 단호하게 그런 건 없었어요(웃음). 제가 보낸 선물에 오빠가 답장과 선물을 보내고, 저도 답장을 보내고 그럼 또 답장이 오는 거예요. 이후에는 손으로 쓴 편지만 오갔던 것 같아요. 편지로 다양한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되게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고 가까워졌어요. 맹세코 처음에는 특별한 호감은 없었어요.
일이 각자 꿈이 있고 그걸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상황이었다 보니까 서로 잘 이해하고 공감했던 것 같아요. ‘네가 잘되길 바라!’라는 마음도 들고요.
응원에서부터 자라난 사이네요. 서로 비슷하다고 생각한 지점은 무얼까요?
키미 그야말로 어떤 형태의 대화가 간절했는데, 그런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었어요. 예를 들어 제가 지금 손으로 둥근 받침을 만들고 이런 모양의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하면 오빠와는 가능했죠. 그게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했어요.
일이 무언가를 바라보고 대하는 태도가 비슷했어요. 같이 살면서부터는 우리가 다른 점도 많다는 걸 깨달았지만, 덕분에 상대방을 폭 넓게 이해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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