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Curation | 모험가

다운이 찍는 다큐멘터리 ‘다운큐멘터리’는 감정을 따라 흔들린다. 마음껏 나부낀다. 누군가의 떨리는 귓불 위로, 새하얀 양말 너머로, 빛나는 금색 손목시계 속으로, 땅바닥에 드러누운 여자들의 머리카락 곁으로. 영상 속에서 들려오는 다운의 웃음은 해사한 표정을 연상케 하고, 무심하게 던지는 질문은 그때 가장 선명할 감정을 닮아 있다. 정제되지 않은 영상에 안온함을 담아내는 다운의 공식은 언제나 하나다. ‘사랑’. 더도 덜도 말고, 오로지 그것이다.

저는 제가 보고 싶은 걸 보고, 그걸 찍어요.

그 사람의 목소리가 마음에 들면 입술을 찍고,

조명이 반사되는 머리색이 아름다워 보이면 머리카락을 찍죠.

불안한 모습을 발견하면 까딱거리는 손가락을 찍기도 하고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집 구조가 특이하네요. 

어제 열심히 치운 건데, 보여드릴 게 별로 없어서 머쓱해요(웃음). 만나서 반갑습니다. 

 

창밖으로 흔들리는 나무만 봐도 좋은데요(웃음). 요새 어떻게 지내요? 

요즘은 새로운 사람을 찍기 시작했어요. 세 달째 진행 중인데, 이젠 카메라 의식을 안 하는 시점이 와서 조금 편해진 상태로 작업하고 있어요. 처음엔 어떤 인물이든 카메라가 있다는 자체로 긴장하고 신경 쓰거든요. 경계가 풀릴 때까지 보통 한두 달은 걸리는 것 같아요. 지금 찍고 있는 분은 20년째 엠비언트 음악을 하는 분인데요. 요새는 좀 친해져서 전시도 함께 하고 텀블벅도 같이 준비하고 있어요. 지원 사업도 같이 알아보는 중이고요. 

 

이번 다큐멘터리는 어떻게 시작된 거예요?

제가 먼저 찍고 싶다고 연락했어요. 팀으로도, 개인으로도 활동하는 분인데, 팀으로는 이름을 알렸지만 개인 작업을 아는 사람이 한국엔 별로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져서 만나자고 했죠. 엄청 아름다운 여성분이어서 만나자마자 놀란 기억이 나요. 하고자 하는 게 정확하게 있는 분이었고, 음악에도 힘이 강력해서 꼭 다큐멘터리로 찍고 싶었어요. 올해가 데뷔 20주년이라 동화책이랑 앨범이 같이 나올 예정인데요. 처음엔 발매까지 촬영해 보려고 했는데 찍다 보니 호흡이 잘 맞아서 내년까지 이어 가면 좋겠다고 생각 중이에요. 

 

이번 작업은 호흡이 긴 것 같은데, 보통은 작업 기간이 어떻게 돼요?

별다른 작업이 없을 땐 한 달에 두 명 정도 찍는데, 규칙적인 건 아니에요. 찍다 보면 이야기가 계속 생겨나서 좀더 찍고 싶어지는 인물이 있거든요. 그럴 땐 작업 기간이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좀더 밀도 있는 작업을 하게 돼요.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보니 촬영 기간이 정기적이거나 규칙적이진 않죠.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달라서 아직 완성하지 못한 다큐도 많고요. 

 

좀더 찍고 싶다는 생각은 어떨 때 들어요?

솔직하게 얘기하면 이야깃거리가 많고 너무 열정적인 사람들은 길게 촬영하지 못한 것 같아요. 찍다 보면 어딘지 모르게 물리는 느낌도 있고, 이야기에 흥미가 떨어지더라고요. 오히려 “난 재미도 없는데 왜 찍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에게 관심이 가요. 자연스럽게 더 오래 찍게 되고요. 특이한 직업인을 찍기도 하지만, 직업이 뚜렷하지 않은 분을 촬영한 적도 있는데요. 특히 그런 분들이 종종 “난 보여줄 게 없다.”고 하시는데, 그 생활에서 재미있는 것들이 생겨나요. 같이 뭔가를 발견하게 될 때도 있고요. 

 

다운 씨는 다큐멘터리가 뭐라고 생각해요? 

기록이요. 저는 기록을 좀 강박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어요. 얼마 전에 울산 본가에 내려가서 제 일기장을 다 가지고 왔는데요(웃음). 이거 보실래요?

이게 다 일기장이에요? 어림잡아도 50권은 훌쩍 넘는 것 같은데요. 

어릴 때부터 엄마가 일기는 꼭 쓰도록 가르치셔서 다섯 살 때부터 썼어요. 다른 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저녁 8시가 되면 일기를 쓴 것만큼은 생각나요. 제 방문을 열면 바로 앞에 화장실이 있었는데, 양치하고 곧장 방으로 들어와서 엎드려 쓰곤 했거든요. 그때 노트를 여백 없이 꽉꽉 채우는 버릇이 생겨서 지금도 첫머리부터 맨 마지막까지, 깜지처럼 채워서 쓰곤 해요. 그래서인지 촬영할 때도 테이프를 정말 많이 써요. 녹화 버튼을 누르면 끄질 않으니까 한 번 촬영할 때마다 엄청난 기록이 쌓이죠. 그러고 보니 일기와 영상을 합치면 기록해 온 양만 해도 어마어마하네요. 어릴 때부터 쭉 이어진 걸 보면 운명인가 싶기도 하고요. 

 

조금 다른 방향을 시도해 보고 싶진 않아요? 이야기를 만든다거나, 새로운 인물을 창조한다거나. 

저는 제가 창의적인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뭔가를 연출하거나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이렇게 있는 걸 기록해 나가는 게 잘 맞는 것 같아요. 매일 일기를 쓰고, 아무 때나 캠코더를 드는 식으로요. 이젠 습관이 되어버렸거든요. 

 

일기는 지금도 자기 전에 써요? 

아니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쓰는데 보통 시간대별로 써요. 강박적으로 쓰는 거기도 하지만, 기억력이 안 좋아서이기도 해요. 얼마 전엔 집 비밀번호도 까먹었어요(웃음). 분명히 제가 기억하고 있는 번호를 눌렀는데 문이 안 열리는 거예요. 다시 누르고, 또다시 눌러도 안 되니까 당황스럽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엔 일기장을 들고 다니면서 몇 시에 뭐 했고, 몇 시엔 뭐 했는지 쓰면서 지내고 있어요. 한두 줄만 쓰더라도 일상을 죄다 기록해 두는 거죠. 

 

그러고 보니 만나자마자 영상 얘기부터 했네요(웃음). 좀 늦었지만 소개해 주실래요?

안녕하세요, 정다운이에요. 요즘엔 작업 분야가 다양해져서 촬영 감독이나 상업 패션 필름 일도 하고 있는데요. 그래도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제 정체성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 같아요. 

 

왜일까요? 

가장 재미있어서요. ‘다큐멘터리’가 꼭 저를 설명하는 단어면 좋겠어요.

감독이라는 단어는 참 여러 분야에서 쓰이잖아요. 다운씨는 ‘감독’을 뭐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너무 어려워요. 잘 모르겠어요. 어떤 분야의 대장 같은 느낌이기도 한데,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사실 감독이라는 단어와 제가 잘 맞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럼 본인을 감독이라고 소개하지 않아요? 

캠코더 찍는 사람, 기록하는 사람, 촬영하는 사람… 보통 이런 식으로 이야기해요. 누군가 저를 감독이라고 부를 때 거부감이 드는 건 아닌데 묘하게 기분이 이상해요. “다운아.” 혹은 “다운 씨.” 하고 불러주는 게 훨씬 편해요. 

 

그럼 오늘은 다운 씨라고 불러 볼게요. 말하는 동안 햇빛이 계속 눈앞에서 흔들리는데, 눈동자가 엄청 갈색이네요. 

눈동자가 좀 밝죠. 근데 에디터님 눈동자도 그런걸요? 

 

서로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묘하네요(웃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고 알고 있어요.

저희 엄마는 위암 판정을 받고 악화 속도가 빨라 굉장히 일찍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시기 전 반년 동안은 제가 옆에 계속 붙어 있었는데요. 그때 이야기도 많이 나눴지만 솔직히 지금은 제가 엄마한테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나요. 이런 일을 겪고 나니까 모든 게 허무하더라고요. 근데 어느 날 엄마가 찍힌 영상을 봤는데 꼭 살아 있는 것 같았어요. 글도, 사진도 그렇지 않았는데 영상만큼은 엄마가 생생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영상이 단 두 개밖에 없다는 게 아쉬워서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많이 찍어놓을걸….’ 후회도 했는데요. 문득 제 곁에 있는 소중한 친구들을 기록하는 게 남은 인생의 숙명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찍기 시작했어요. 친구들이랑 보내는 일상을 계속해서 기록해 나간 거죠. 쉬지 않고 찍다 보니 순식간에 자료가 쌓여서 윈도 무비 메이커로 조금씩 편집하면서 정리를 시작했어요. 이 파일들을 어디에 보관해야 하나 싶을 때쯤 유튜브를 알게 됐죠. 그땐 유튜브가 지금처럼 대중화되지 않았을 때여서 공짜로 차곡차곡 정리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그때부터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죠. 보통은 친구들이랑 노는 영상에 제가 즐겨 듣는 음악을 입히는 식이었는데, 특별한 걸 하는 것도 아니었어요. 다 같이 마포대교를 걷거나 집에서 춤추는 걸 찍었거든요. 그런 영상이 지금의 다큐멘터리로 발전한 거예요. 

 

다운큐멘터리의 뿌리엔 엄마가 있는 셈이군요. 다운씨한테 엄마는 어떤 존재였어요?

엄마를 생각하면 사랑받은 기억이랑 너무 무서웠던 기억이 같이 떠올라요. 저는 엄마를 좋아했어요. 고등학생 때까지 뽀뽀하고, 친구보다 엄마랑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죠. 엄마는 저를 일찍 낳으셔서 생각이 열려 있고 이야기도 잘 통했어요. 제가 일본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할 때도, 모델이 되고 싶다 할 때도 편견 없이 제 이야기를 들어주셨어요. 한 번도 틀에 박힌 말을 하신 적이 없어요. 대신 예의범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호되게 혼이 났어요.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셨죠. 저는 어릴 때 할아버지·할머니부터 육촌까지 함께 살았는데요. 그 누구도 제가 맞고 자라는 줄 몰랐대요. 혼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다운이가 착하게 크는구나.’ 생각하셨다는 거 있죠(웃음)? 

 

그런 엄격함도 애정에서 비롯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맞아요. 엄마는 제가 주도적으로 자라길 바랐어요. 학원을 보내거나 억지로 진로를 정하려고 하신 적도 없죠.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엄마한테 진짜 멋이 무엇인지를 배웠어요. 졸업 사진 찍을 때 친구들이랑 옷을 사러 가기로 했는데 엄마가 그러시는 거예요. “라코스테 피케를 입는 게 진짜 멋있는 거다.” 초등학생 땐 딸기 운동화를 갖고 싶다고 졸라도 나이키 코르테즈를 사주던 분이셨어요(웃음). 그땐 코르테즈가 얼마나 신기 싫었는지 몰라요. 그래도 그거 신고 맨날 1등 했어요. 어릴 때 육상부여서 달리기를 꽤 열심히 했거든요. 

 

엄마가 정말 멋쟁이셨군요. 근데 다운 씨, 엄마 얘기를 하는 내내 눈이 웃고 있는 거 알아요(웃음)? 저는 ‘다운큐멘터리DQM’라는 이름이 참 좋아요. 한 번 들으면 찰싹 달라붙어 잊히지 않는 이름이어서요. 

이 이름은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면서 짓게 된 거예요. 다큐멘터리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이 이름, 저 이름 생각해 봤는데 다운큐멘터리가 제일 좋겠더라고요. 처음엔 ‘downqmentary’였어요. 근데 친구들이 ‘dawn’이 더 멋있다고 해서 2-3년 전에 ‘dawnqmentary’로 바꿨죠.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 초등학생 때 쓴 일기를 올렸죠. 초등학생 때 방송반에서 카메라를 담당했는데,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웃음). 

제가 초등학생 때 전학을 가서 학교를 두 군데 다녔는데, 두 번 모두 방송반을 했더라고요. 기억이 전혀 안 나는데, 일기를 읽으니까 방송실에 들어간 기억이 나는 것도 같았어요. 근데 일기장엔 체육대회 날 영상을 찍었다거나 6밀리 캠코더로 촬영했단 내용이 있는데 그런 기억은 전혀 없어요. 읽으면서 엄청 신기하고 재미있었죠. 

 

어릴 때부터 카메라와 가까이 지낸 셈인데, 다운큐멘터리를 시작하기 전까진 영상에 관심이 없었어요? 

전혀요. <인간극장>을 챙겨 보는 것 말고는 드라마나 영화에도 관심이 없었어요. 

 

그럼 다큐멘터리가 내 업이 되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 있었겠네요.

이걸로 돈을 벌었을 때요. 마포대교에서 친구랑 노는 영상 올리던 시절인데, 아디다스에서 그 포맷 그대로 영상을 찍어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그때 제안을 받고 ‘이걸로 돈을 벌 수 있으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저는 책상에서 작업할 때 굉장히 산만해지는 편인데, 유일하게 영상을 편집할 땐 몇 시간, 며칠이고 앉아 있을 수 있어요. 마음에 들 때까지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영상이라면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땐 이름을 알리기 전인데 어떻게 제안이 들어온 거예요? 

계속 주변 사람을 찍다 보니까 여러 사람을 촬영하게 됐어요. 포토그래퍼나 보더도 있었죠. 그때 한창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주목하던 시절이어서인지 제가 눈에 들어왔나 봐요. “로우파이 하게 촬영하는 애가 있는데, 짧은 다큐멘터리 같은 걸 찍어.” 이런 대화가 오가지 않았을까요(웃음). 브랜드가 선정한 인플루언서를 촬영하는 내용이었는데, 그 당시 활동하는 힙스터 언니·오빠들을 찍는 게 재미있었어요. 디제이 360사운즈, 포토그래퍼 구영준 씨, 스튜디오 콘크리트 식구들도 있었어요. 잡지에서만 보던 사람들을 촬영하면서 궁금한 걸 물어볼 수도 있으니까 신기하면서도 긴장됐어요. 

 

친구를 촬영하는 거랑은 다른 느낌이었겠어요. 

청 달랐죠. 저는 지금도 촬영할 때 손이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찍고, 앵글도 제 마음대로 정하면서 묻고 싶은 걸 막 질문하면서 찍거든요. 친구를 찍을 땐 반말로 이것저것 거침없이 얘기하는데, 그분들한테는 존댓말을 써야 했고, 질문 내용도 한 번씩 더 고민해야 했어요. ‘이런 걸 부탁해도 되나?’ 싶어서요. 브랜드 영상엔 분명히 목적이 있거든요. 어디에 어떤 식으로 업로드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찍히는 사람들이 일단은 호의적이에요. 유대 관계가 깊은 사람을 촬영할 때의 내밀함은 없지만 그래도 제가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마주하고 알아가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어느 인터뷰에서 “픽션은 픽션 나름대로 재미와 멋이 있지만 픽션보다는 진실을 그대로 바라보고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는 게 목표다.”라고 했어요. 

(웃음)머쓱하네요. 그때랑은 생각이 조금 바뀐 것 같아요. 작년에 영화 <너와 나>(2021)를 촬영하면서 뭐가 진짜고, 뭐가 가짠지를 모르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가 보는게 정말 사실인지, 제가 경험한 게 진짜인지, 허상인지… 문득 아무것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좀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했는데요. 제가 찍는 다큐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인지, 아닌지도 의심이 되더라고요. 그런 생각들이 쌓이면서 바뀐 것 같아요. <너와 나>를 찍으면서 픽션이라고 할지라도 만드는 사람들의 경험이나 성격이 투영된다는 걸 배웠거든요.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사실과 픽션을 나누는 걸 이젠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예전에는 사실 쪽에 관심을 두었다면, 지금은 그 경계가 약간 허물어진 거네요.

맞아요. 

 

그럼 지금은 작업하는 이야기가 픽션이어도 괜찮아요?

네. 완전요. 엄청 많이 바뀐 거죠. 그렇다고 해도 영화는 못 만들 것 같아요. 글을 잘 못 써서요(웃음). 그렇지만 영화 현장에서 함께하는 건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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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