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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담
냉장고와 자가용 없이 사는 사람, 한때 전기와 수도를 모두 끊고 지낸 사람, 매년 <녹색여름전>을 열어 그린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 윤호섭 선생님께 인터뷰를 제안하니 전화가 왔다. “윤호섭입니다.” 중후하지만 어딘가 개구지고, 그러면서도 단단한 목소리다. “인터뷰 좋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제 작업실에 방문하려면 《나무를 심은 사람》을 필사해야 해요.” 흔쾌히 “할 수 있어요!” 대답했는데, 책이 생각보다 길고 내용이 방대하다. ‘쓸 수 있어요.’가 ‘너무 긴데….’로 변하는 건 삽시간이었는데, 양손 주무르며 필사를 마치고 나니 투덜거림이 부끄러워진다. 써본 사람은 안다. 왜 《나무를 심은 사람》인지, 선생님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앞으로 우리가 이 지구를 위해 어떤 책임을 다해야 하는지.
여전히 자동차랑 냉장고 없이 살고 계신다고요.
옛날에는 자동차도 있었어요. 포니, 스텔라, 쏘나타…. 근데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린 디자인 과목을 개설하고 공부하면서 승용차는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자전거를 타면서 지냈어요. 대중교통 사용을 전파하려고 캐릭터를 만들어서 활동도 했죠. 사람 크기만 하게 뽑아서 외국에서 전시도 하고, 스티커로 배포도 하고요. 냉장고도 그래요. 그게 꼭 필요할까요? 겨울이면 영하 10도 아래로도 내려가는데 그땐 주변이 다 냉장고 아니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채소나 과일이 과연 냉장고에 들어가고 싶어 할까요? 저 어릴 때는 냉장고라는 제품이 아예 없었어요. 냉장고 없이 산다는 얘기가 알려지고 나서는 “냉장고 없이 어떻게 사느냐.”는 소릴 참 많이 들었는데요. 처음엔 그 말이 굉장히 좌절스러웠어요. 없어도 될 것에 의지하고 사는 것 같아서요. 그렇지만 이제 냉장고는 당연한 가전제품이 되었으니까 그 질문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고 대답을 찾기로 했죠. 우리는 바깥이 영하로 떨어지면 보일러나 난로를 틀어 집 안을 영상으로 만들잖아요. 그렇게 만든 따듯한 공간 안에 냉장고를 넣고 일부러 영하 온도를 만들어서 음식을 집어넣는 거예요. 인위적이지 않나요? 음식은 냉장고에 들어가면서부터 부패하기 시작해요. 사실 영하 10도면 아파트여도 뒤 베란다가 냉장고 기능을 할 수 있어요. 저는 안채가 영하 6도 정도 되니까 음식을 거기다가 두거든요. 그렇게 하면 음식이 부패하지도 않고, 오히려 신선한 상태로 먹을 수 있어요. 냉장고를 열흘만 꺼보면 어떻게 될까요? 세상의 10퍼센트만 냉장고 가동을 멈춰도 우리가 사는 환경은 훨씬 나아질 거예요.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우리가 세상에 어떤 형식으로 존재하고 있느냐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요.
심각하고 어려운 얘기는 아니에요. 우리는 이 넓은 태양계 중 지구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어요. 이 우주엔 화성, 금성, 목성, 명왕성… 수많은 행성이 있는데, 그중에서 하필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거잖아요. 신기하지 않나요? 이 광활한 우주 중 하필 여기서, 하필 지금, 하필 우리가 만났다는 것이. 우주의 수십억 역사 속에서 오늘 이 자리에서 대화하고 있다는 건 기적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잊고 살아요. 그러니까, 내가 존재하는 상태를 좀더 인식하고 이해하면서 살자는 의미예요. 우리 삶이 경이롭다는 걸 알게 되면 남을 속이거나 생명을 고통스럽게 할 수 있을까요? 내가 한 아주 작은 행동으로 하천이 오염되거나 생명이 죽어나간다면요? 우리는 지능이 있는 인간이니까 내가 존재함으로써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살아야 해요. 저는 그걸 자존심自存心이라고 말해요. 스스로 자에 있을 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향한 존중은 물론이고, 환경에 대한 책임도 다해야 한다는 거죠.
오늘날 환경 문제는 많은 사람이 알게 됐지만,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느냐는 환경 감수성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인사동에서 헌 티셔츠에 그림을 그릴 때 “윤 교수가 티셔츠에 그림 그리면 지구가 살아나?” 같은 말을 심심치 않게 들었어요. 환경 감수성은 얼마나 많이 배웠느냐랑은 관계없이 사람마다 다른 거라고 봐요. 진정한 인식이 있을 때 환경 감수성을 발휘하고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거죠. 자신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어떤 책임이 있는지 아는 사람일수록 더 예민하고 민감해질 거예요.
적극적으로 환경을 위한다고 말하긴 머쓱하지만, 다들 일회용 컵 쓰는데 혼자만 텀블러 쓸 땐 생각이 많아지기도 해요. “너 하나만 실천해서 뭐 하냐.”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할 말이 없어지고요.
너무 일차원적인 발상이에요. 아주 곤란한 상태죠. ‘나 혼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해야 할 일인데, 왜 안 된다는 생각부터 하는 걸까요. 그건 그저, 불편하니까 안 하고 싶은 거예요. 실천에는 불편이 따르니까, 남들은 불편한 걸 안 하려 하는데 나만 하면 억울하니까 나는 하고 싶지 않다는 논리거든요. 하지 않으려는 행위를 합리화할 뿐이지요. 사실 남이 하고 안 하고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스스로 판단하고 실천해야 할 일이죠. 제가 녹색 실천을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냉장고 없이 산다고 해서 지구가 금세 깨끗해질까요? 환경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될까요? 제 목표는 지구를 구하는 게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거예요. 우리가 이 별에 존재하는 이상 쓰레기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건, 환경을 한 번 더 생각하는 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자 책임인 거죠.
가장 기본적인 책임을 하나만 이야기해 주신다면요?
밥 먹을 때 남기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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