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Curation | 내가 나일 수 있도록

이번 호 주제는 ‘집’이에요. 시리즈에 등장한 집들을 소개해 줄래요?

대부분 이전에 살던 조지아에서 찍은 집들이에요. 지금은 시카고에 살고 있지만요. 조지아에는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이 많아요. 마당이 넓고, 창고나 지하 공간을 가진 집들이요. 문을 열고 나가면 수풀과 나무가 눈에 들어오고, 언제든지 산책할 수 있는 조용한 모습이 조지아에서는 가장 흔한 풍경이에요. 

 

지금 어떤 집에 사는지도 궁금하네요.

미국 가정집에서는 신발을 벗지 않는 경우가 적잖게 있는데요. 저희 집은 신을 벗고 들어와요. 집에 들어서면 마스크를 벗고, 손을 소독해요. 그러고는 현관에 있는 거치대에 겉옷을 벗어두죠. 가방과 카메라와 휴대폰을 소독하고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집에 들어서면 아내가 맑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반겨줘요(웃음). 지금 집은 거실과 방 하나만 있는 구조예요. 집 내부가 어두운 편이라 불은 늘 켜두어요. 저는 집 안의 조도가 정서와도 이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음악과 영화가 꽤 중요해서 큰 스피커와 음향 기기가 있고, 그 옆에 책상이 있는데 여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요. 스탠딩 데스크를 두고 앉아서 작업하다가 책상을 높여서 글을 쓰기도 하면서요.

 

집을 물리적인 실체로 보지 않는다는 느낌도 들어요.

맞아요, 물리적인 것 이상이에요. 저에게 집은 ‘내가 나 될 수 있는 장면’ 같아요. 집은 안전한 곳이기도 하고, 마구 느슨해지는 시간이기도 하고, 낡지 않는 기억이기도 하거든요.

 

집을 정의해 줄래요?

이민 오기 전부터 그런 건 아니었는데 이국에 머물면서 집은 ‘정서적으로 가능해지는 상태’가 되는 것 같아요. 이국에서 그런 순간은 드물거든요. 정서적으로도 완전한 집이라고 느끼는 순간은, 그런 공간은 늘 멀리 있다고 느껴요. 그게 반복되면서 집은 필사적으로 하나의 시공간에 묶이지 않는 단어가 돼요. 그래서 저에게 집은 언제나 모국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글자예요. 

 

작업 소개 중에 “이국에 자리 없다는 것이 도리어 집을 여러 군데로 만들어준다.”는 문장이 인상 깊어요. 이국에 정착하지 못한다는 말인 동시에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는 역설 같기도 하고요. 

정확해요. 두 마음 모두 대변해요. 이국에서 집을 가져도 영혼한 구석은 모국을 향하는 걸 느꼈어요. 남은 생을 이국에서 보낸다면 아마도 완전한 집은 영영 갖지 못하겠다는 걸 깨달은거죠. 모국에 정착한대도 어쩌면 비슷한 맘이 들 거예요. 실제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난 이곳에서도 이방인이구나.’ 하고 느낄 때가 있었거든요. 결국 어디에 있든 그곳이 온전한 내 자리 될 수 없음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는데요. 그때부턴 불완전하더라도 어디든 머물 수 있게 되었어요. 오히려 조금 더 집인 것처럼 살 수 있게 된 것 같고요. 집의 영원성은 소실되었지만 흩어질 수 있게 된 거예요. 기구한 역설이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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