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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빨대할머니한테 편지가 왔는데? 문보영, 아는 사람이야?” 어느 날 엄마에게 메시지가 왔다. 오키나와빨대할머니는 나이고, 문보영은 시인이다. 일기를 우편으로 보내주던 이 시인은 편지 봉투에 공룡이나 강아지 같은 귀여운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여준다. 누가 봐도 궁금한 봉투다. 편지를 열면 A4 용지에 깜지처럼 빼곡하게 쓰인 손글씨 일기가 있고, 가끔 그림도 들어 있다. 보영에게 일기란 무엇일까. 시와 일기의 경계는 무엇일까. 또 그가 항상 곁에 두는 ‘말씹러’는 무엇일까. 그는 왜 엄청난 양의 편지를 들고 우체국에 가는 걸까.
잠은 잘 잤나요? 악몽은 안 꿨어요?
네(웃음).
어제는 몇 시에 주무셨어요?
새벽 3시 반쯤 잠들어서 아침 10시에 일어났어요.
매일 새벽 5시에 잠들어서 ‘잠 못 자는 사람의 새벽 12시부터 5시’라는 불면 챌린지 브이로그도 하셨잖아요, 일찍 주무셨네요.
맞아요(웃음). 개운하게 자고 일어났어요.
보영 씨를 모르는 독자들은 ‘시인인데 브이로그를 해?’ 하고 생각할 것 같아요. 직접 소개해 주실래요?
시 쓰는 사람이고요. 독자들한테 편지도 보내고, 유튜브도 조금 하고, 하다 말고, 또 하고…. 아주 평범한 사람이에요.
한때는 평범한 일상을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 이젠 “평범한 사람”이라고 소개하시네요.
어느 순간 그렇게 됐어요. 근데 막상 평범하게 살아보니까 이렇게 살고 싶진 않은 것 같아요.
왜요?
예전에는 일상을 잘 살아내고 싶었어요. 제가 하는 일을 잘하기 위해 나머지 부분에서 건강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어느 순간 주객이 전도돼 버렸어요. 평범한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려고 애쓰다가 나중엔 일상을 유지하는 게 숙제처럼 느껴졌거든요. 결국 시 쓰기를 잘하려고 일상도 규칙적으로 살고 싶었던 건데, 시 쓰는 것보다 일상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해졌달까요. 그래서 요즘엔 다 놓아버리고 무신경하게 지내려고 해요. 설거지거리가 쌓여 있어도 그냥 작업실에 가요. 청소기도… 언제 돌렸더라….
그게 정상인 것 같은데요(웃음).한동안 일상이 중요 화두였는데, 그럼 요즘엔 어떤 화두를 품고 지내요?
(조용히) 미래가 불안해요.
미래가 불안하다고요?
네.
어떤 의미에서의 불안이에요?
지금까지는 이렇게 사는 게 괜찮은 것 같았는데, 더 먼 미래를 생각하면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가 생겨요. 제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요. 저는 원래 과거만 생각하던 사람인데 작년부터 자꾸 미래를 생각하게 돼요. 불안함이 일상이 되면 가끔 숨이 막혀요. 제가 해야 할 도리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아서요. 돈도 벌어야 되고, 저축도 해야 되고, 규칙적으로 잘 살아야 하고, 어른이란 걸 증명해야 하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올바른 삶 같은 걸 생각하면 종종 ‘에라, 모르겠다!’ 싶을 때가 있어요.
미래를 위해서는 현재를 잘 살아가는 게 아무래도 중요할 텐데, 지금 가장 중요한 키워드 세 가지를 꼽아 볼까요?
우선은 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최근엔 시와 좀 많이 멀어졌어요. 일부러 거리를 두려고도 했지만 해보니까 결국에는 시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시랑 너무 멀어지면 제가 좀… 슬퍼져요.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도 귀소 본능처럼 자꾸 돌아가게 되더라고요.
다음 키워드는요?
아침이요. 항상 정오가 지나 일어나다가 최근엔 10시에 줌으로 친구들을 만나면서 아침을 살아봤어요. 각자 글 쓰고 해산하는 화상 독서실 같은 걸 해보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일부러 나가지 않으면 사람 만날 일이 없어서 더 생산적이란 생각도 들어요. 며칠 전에 저한테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해줬어요. ‘깊이 있는 인간관계는 충분해 보이는데 얕고 넓은 관계가 없어 보인다.’고요. 근데 그게 너무 맞는 거예요.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다 보니 친구를 만나지 않는 날엔 종일 누구와도 이야기를 안 하는 날도 있고…. 그래서 아침을 이렇게 보내는 게 더 기뻐요. 누군가를 줌으로라도 만나서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도 그렇고, 그걸 위해 아침에 일찍 일어나려고 노력하는 것도 그렇고요.
패턴이 조금씩 바뀌고 있군요. 시, 아침, 그리고 마지막 하나를 꼽는다면요?
음… 아마… 편지요.
이번 호 주제어가 ‘편지’인데 마침 편지 이야기를 하시네요(웃음).
꼭 짜고 치는 것 같네요(웃음). 편지 봉투에 일기를 넣어 우편으로 보내던 ‘일기 딜리버리’가 아무래도 가장 오래 해온 활동이다 보니 중요 키워드에서 빼놓을 순 없을 것 같아요. 구독 신청을 받아서 일기를 보내드리는 프로젝트인데요. 첫 원고는 일반우편으로 발송하고, 나머지 원고는 매주 정해진 요일에 이메일로 발송하고 있어요. 잠깐 쉬는 기간을 가졌는데 조만간 다시 시작하려고 해요. 일기 딜리버리만을 위한 새로운 봉투도 만들었거든요. 항상 직사각형의 일반 편지 봉투를 사용했는데, 이번에 친구가 캐릭터를 그려 주어서 크래프트 봉투에 인쇄해 제작했어요.
구독자로서 무척 반가운 소식이네요. 《준최선의 롱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나의 생계는 크게 세 가지로 지탱된다. 일기 딜리버리, 시 수업, 원고료, 그중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일기 딜리버리다.” 가장 큰 수입원이기도 한데 지금은 왜 쉬고 있는 거예요?
에세이랑 일기를 보내는 프로젝트다 보니까 구독자가 늘어날수록 부담이 생겼어요. 제가 살아온 삶이나 경험은 한정되어 있어서 해나갈수록 밑천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죠. 또 구독자는 늘어나는 반면 제가 성장을 못하고 있단 느낌도 있었어요. 초반에는 누가 봐도 상관없을 글들을 써서 부쳤다면,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보게 되니까 구독자를 의식하게 됐거든요.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구독자들이 듣고 싶어 할 말들을 골라서 쓰고 있더라고요.
듣고 싶어 할 말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
저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반응도 잘해주는 성격이어서 피드백에도 영향을 많이 받아요. 예컨대, 어떤 사람이 제 글을 읽고 따뜻하다고 반응하면 계속 따뜻한 글만 쓰게 돼요. 제가 쓰고 싶은 글이 어떤 건지 제대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요. 그래서 잠깐 쉬면서 제 글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기로 했어요. 근데, 어느새 제가 일기 딜리버리를 하면서 마감에 맞춰 글 쓰는 게 익숙해져 버렸더라고요. 마감이 없으면 안 쓰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일기는 잠시 쉬고 몰래 ‘시 딜리버리’를 시작했어요. 구독자는 최소한으로 두고 마감은 있는 중간 지대를 찾은 거죠. 구독자들이 많이 유입되는 인스타그램엔 홍보하지 않고 블로그에만 조용히 알리고 시작했어요.
안 그래도 시 딜리버리 신청 링크를 발견했는데, 이미 신청 기한이 지났다더라고요. 딜리버리 프로젝트는 불특정 다수를 두고 편지를 보내는 작업이잖아요, 아무리 일기를 부친다고 해도 일기장에 쓰는 것과는 좀 다를 것 같아요.
제 글쓰기는 모두 일기장에서 시작돼요. 시도, 소설도, 일기도, 메모도요. 글을 쓸 땐 이게 일기가 될지, 시가 될지, 소설이 될지 저도 몰라요. 거기서 ‘이 이야기는 나만 알면 되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거야.’ 싶은 건 덜어내고, ‘이건 좀 웃긴데? 나 이걸로 누구 웃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글들은 타이핑하면서 장르를 정해요. 저는 사실 글 쓰는 걸 좋아한다기보다는… 펜과 종이가 마찰하는 소리나 손을 움직였을 때 글자가 적히는 걸 즐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일기장에 글을 쓰는 거고요. 딜리버리를 시작한 것도 휴대폰이나 컴퓨터로 뭘 적는 걸 힘들어해서 메시지든 원고든 종이에 쓰고 다 편지로 보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어요.
‘보내고 싶다’는 건 받는 사람을 늘 염두에 둔다는 거네요.
그런 것 같아요. 맨 처음 블로그에 글을 썼을 때 친구들이 제 글을 읽고 “너 좀 웃긴다.”라는 말을 많이 해줬거든요. 저는 살면서 웃긴다는 말을 그때 처음 들어봤어요. 대화하면서는 들을 수 없던 말인데 글을 썼을 때 누군가를 웃긴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어요. 저한테 글이라는 건 처음부터 내밀하면서도 외적인 요소였던 것 같아요. 저를 만족시키는 동시에 타인을 웃기는 일이었던 거죠.
웃긴 글이 꼭 웃긴 상태에서 나오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적당히 슬플 때 글이 잘 써진다는 이야길 하신 적이 있죠.
맞아요. 처음 글을 쓴 게 되게 힘들 때였거든요. 힘듦을 글로 표현하는데 상처가 봉합되는 듯한 쾌감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제가 자학 개그 같은 글을 자주 쓰는 것 같아요. ‘내 한 몸 자빠뜨려서 누군가 웃길 수 있다면….’ 그런 마음이 있는 거죠. 근데 항상 이렇게 글을 쓸 순 없어서 글쓰기가 좀 어려워진 적이 있어요. 일기 딜리버리도 그래서 잠시 쉬고 있는 거고요. 너무 힘들면 다 하기 싫어지잖아요. 글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행복할 때는 글이 잘 안 나오는 편인데, 진짜 힘들 땐 그보다 더 안 써져요. 적당한 스트레스가 저에겐 글쓰기의 동력이거든요.
행복한 날엔 일기장에 사실만 적는다고 하셨죠. 그날의 날씨, 거리, 먹은 음식, 음식의 맛, 색깔, 모양… 같은 것들이요. 행복하다는 감정은 따로 기록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받았어요.
어, 그러네요. 행복할 때는 나를 행복하게 만든 대상이 보통은 물리적으로, 또 구체적으로 존재해서 그런 것 같아요. 사람이랄지, 물건이랄지, 날씨랄지….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있기 때문에 사실만 기록해도 만족스럽고 행복해지는 거죠.
재미있는 이야기예요. 저는 행복할 때 더 많은 글을 쓰고, 감정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거든요. 슬픈 건 굳이 기록하지 않고요. 왜 쓰는 사람마다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요?
어쩌면… 제가 행복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가 아닐까요?
불행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고요. “글을 쓰고 받는 모든 돈이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글쓰기를 노동으로 생각한 다음부터는 원고료를 받는 게 부끄럽지 않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바뀐 계기나 에피소드가 있어요?
사실 요즘엔 글쓰기를 노동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아니, 좀 덜 생각하려고 하죠. 노동보다는 놀이처럼 생각할 때가 많아요. 글쓰기로 삶을 지탱해야겠다는 강박이 많이 사라졌거든요. 일기 딜리버리로 생계를 유지해 왔는데, 글쓰기라는 본질에 도움이 되냐고 물으면 사실 잘 모르겠어요. 가끔은 송구스러워요. 제가 어떤 글을 쓰느냐에 따라 그 무게감은 다른 것 같고요. 만족스러운 글을 써서 보내드리면 꽤 괜찮은 노동 같고, 그렇지 않을 땐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 만족감은 어떨 때 와요?
쓰고 나서 ‘열심히 했다.’는 기분이 들 때요. 웃긴 걸 썼고, 이상하고, 새로운 걸 썼다는 느낌이 들 때. 저는 그럴 때가 제일 좋아요. 글쓰기가 저한테 노동이기도 하고, 놀이인 면도 있고, 나를 위한 행위이기도 하고, 타인을 위한 것도 있어서 모든 요소가 뒤섞여 매번 생각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직접 김승일 시인을 인터뷰한 적이 있죠. 일기와 떼어놓을 수 없는 두 분 대화가 참 재미있었는데, 김승일 시인이 그때 이런 얘길 했어요. “중2병 같은 일기를 많이 쓴다. 그게 나중에 보면 흑역사 같은데, 그걸 씀으로써 문장력이 늘었다.”고요.
(웃음)동감해요. 피아노도 며칠 안 치면 손이 굳는다고들 하잖아요. 그것처럼 일기든 뭐든 글을 한 사흘 정도 안 쓰면 펜 잡을 때 느낌이 딱 어색해요. 글을 계속 쓰면 머릿속에 단어들이 떠돌아다니거든요. 그 사이에서 최적의 단어를 골라야 하는데, 단어가 생각이 안 나고 문장 구조가 막 엉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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