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Curation | 그대로의 나예요

함께 있는 동안 아방은 몇 번쯤 어깨를 으쓱했다. 한쪽 어깨를 올리거나 골반을 퉁기면서 리듬을 타는 것이었다. 촬영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먼저 저 멀리 달려가 포즈를 잡고, 가방에서 책을 꺼내 소품으로도 쓰고, 쓰러진 나무 위에 올라 아이처럼 뛰기도 했다. 자유분방한 그녀와 함께하는 내내 사위엔 생기가 가득했다. 주변의 모든 정물이 춤을 추는 듯 넘실거렸다.

뻔하지 않아서 아름다운

생활과 예술이 공존하는 공간이네요. 초대해 줘서 고마워요.

작업을 하다 보면 금방 어질러져서 어수선한 곳이에요. 손님이 온다고 해서 열심히 치웠죠(웃음). 사용하던 작업실을 정리하고 요즘은 집에서 작업하고 있어요. 작업은 어질러놓고 하는 게 편한데 그림이나 재료가 쌓이면 다 버리고 싶어져서 얼른 작업실을 구해야 할 것 같아요. 작업 공간과 주거 공간을 명확히 분리하지 않아서 조금 부끄럽네요.

 

아방의 색깔이 군데군데 묻어 있어서 좋은걸요. 만나서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일러스트레이터 아방이에요. 아방이란 이름은 고등학생 때 ‘어벙하다’고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인데, 지금까지 쓰고 있네요. 그 이름이 워낙 강렬해서 친구들, 선생님, 심지어 친구네 부모님들도 저를 아방이라고 불렀어요. 학년이 바뀌어 새 친구들을 만나도 “네가 아방이야?” 하더라고요(웃음). 이름보다 아방으로 더 많이 불려서 아마 본명으로 활동했다면 지인들도 저인 줄 잘 몰랐을 거예요. 근데… 혹시 지금 사진도 찍나요?

 

그러려고 하는데 불편하신가요?

아니요(웃음). 모자를 좀 쓰려고요.

 

얼마든지요.

모자를 좋아하거든요. 사진 찍을 때 쓰려고 준비해 뒀어요.(거울을 보고 모자를 쓴다.)

 

오늘 신은 스타킹이랑 잘 어울려요. 10년 차 일러스트레이터의 내공이 보이는 것도 같고요.

그러고 보니 벌써 그림을 그린 지 10년이나 됐네요. 제 전공은 환경디자인이었어요. 복수전공으로 시각디자인을 배워서 첫 사회생활은 디자인으로 시작했죠. 다른 디자인 회사로 이직을 준비할 때 비전이 뭐냐는 질문을 들었는데요. 그때 회사에서는 제 비전을 찾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디자이너로서 커리어를 쌓는 데도 크게 관심이 없어서 다른 일을 생각해 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도 회사 생활을 계속하는 건 아닌 것 같았어요. 회사 일을 해주고 딱 그만큼의 돈을 받으려고 매일 똑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싶진 않았거든요. 그렇다고 철저히 준비하고 회사를 뛰쳐나온 것도 아니었죠(웃음).

 

그럼 어떻게 그림을 그리게 됐어요?

회사를 다니면서 취미로 밴드를 했는데 그때 함께하던 멤버들이 제 그림으로 굿즈를 만들자고 제안한 적이 있어요. 따로 일러스트레이터를 구하기는 어려우니까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저한테 티셔츠 만들자, 포스터 만들자, 하면서 이것저것 요청한 거죠. 그 제안이 재미있게 느껴져서 그림으로 다양한 작업을 하게 됐어요. 그러다 문득 이걸로 돈을 벌 수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멤버들은 제 그림을 예쁘다고 하는데 과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제 그림이 팔리는지, 이걸로 돈을 벌 수 있을지 궁금한 마음에 그림을 그려서 이것저것 만들기 시작했어요.

반응은 어땠어요?

처음엔 지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하나둘 팔아주니까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자신감을 얻고 마켓에 나갔는데 참패를 당했어요. 단 하나도 못 팔았거든요(웃음). 주변에 있던 셀러들이 몇 점 팔아 준 게 전부였죠. 마켓을 마치고 4천 원짜리 핫도그를 하나 사 먹고 나니 남는 게 없더라고요. 제 그림 실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울리지 않는 그림을 갖고 나가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가족이 타깃인 마켓에 속옷만 입은 배트맨 그림을 내놨으니 잘 팔리는 게 이상하죠(웃음).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첫 시도가 지지부진해서 한 발 더 내딛는 데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그래도 몇 번은 더 해야만 했어요. 퇴사하면서 엄마한테 그랬거든요. ‘두 달 동안 50만 원을 벌면 조금만 더 하게 해달라’고요. 지인들의 도움으로 무려 100만 원이나 벌었지만 도움 없이 스스로 해보겠다고 나간 마켓의 결과를 보니 좀 막막했어요.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아가는 게 쉽지만은 않다는 걸 실감한 거죠. 그래도 엄마한테 해놓은 말이 있으니 후퇴는 못 하겠고… 몇 개월만 더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부딪치니까 그래도 반응이 있더라고요. 사실 생각보다 반응이 빠른 편이었어요. 그림을 그리고 6개월 만에 첫 작업을 의뢰받았거든요. 그땐 정말 기뻤죠.

초기 그림은 어떤 스타일이었어요?

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주로 사람을 그려왔어요. 사람을 그리기 시작한 건 사람의 모습이나 형태에 관심이 있어서였어요. 주로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을 그리곤 했죠. 스타일을 생각하면서 그린 건 아닌데, 하나둘 그림을 쌓아가다 보니 제 그림이 좀 못생겼다는 걸 알게 됐어요. 못 그리는 거랑은 별개로 사람의 모습이 예쁘지가 않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예쁘장하게 그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어떤 게 예쁜 건지 그 기준은 잘 모르겠지만, 눈이 크고, 머리가 길고, 얼굴이 작은 사람의 형태는 아니었던 거죠.

 

왜 좋아하지 않았어요?

첫째는 뻔해서요. 많은 사람이 예쁜 걸 좋아하는데 예쁜 것들은 대개 뻔하더라고요. 사람들은 왜 뻔한 걸 좋아하지, 싶은 마음에 저는 예쁜 그림에서 좀 멀어지고 싶었어요. 대다수가 좋아하거나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제가 또 그릴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둘째는 제가 잘 못 그린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림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묘사나 세밀화는 저보다 잘하는 사람이 훨씬 많거든요.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틈새시장을 노려야 했어요. 저는 최대한 ‘이상하게’ 그려보자 싶었죠(웃음).

 

용기 있는 시도인걸요. 걱정은 없었어요?

없었어요. 사람들이 제 그림을 좋아하고 말고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거든요. 기존에 이미 만들어져 있는 시장에 제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데만 집중했어요.

 

내 그림을 믿었기 때문에 할 수 있던 일은 아닐까요?

만일 그랬다면 그 믿음은 지인들이 만들어 준 걸 거예요. 제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시기에도 “네 그림은 희한해. 그래서 좋아.”라고 말해줬거든요. 전문적이라거나 잘한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오로지 제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 믿고 부딪쳐볼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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