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SIT ZOO

방콕의 오래된 동물원

다섯 달 동안의 남미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대서양을 건너 스페인으로 이동했다. 보름은 바르셀로나에 머물렀고 나머지 보름은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을 여행했다. 두 명이 타면 꽉 차는 아주 작은 자동차를 빌려 이천 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달리는 동안 ‘다시 태어난다면 스페인에서 태어나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그들 각자의 동물원

어른이 되고 나서도 가끔 동물원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함께 한 사람들은 달랐다. 그리고 동물원을 보는 방법 역시 각자 달랐다. 나는 동물과 동물 사이 나무 아래 놓인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는 일을 좋아한다. 그러다가 간혹 나무를 타고 달리는 다람쥐라던가 담 위의 고양이, 하늘을 나는 새 같은 동물원 안에서 자유로이 움직이는 동물을 발견하는 일을 좋아한다. 동물원 안에서 살고 있지만 결코 갇혀있지 않은 이런 동물을 보면 어쩐지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S의 동물원을 둘러보는 방법은 매우 인상적이라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S는 입구에서 지도를 받아들더니 호랑이, 사자, 코끼리가 있는 곳을 찾았다. 다른 작은 동물들은 가볍게 지나치고 빠르게 이동해 일단 코끼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더니 “자, 이제 사자를 보러 가자.” 말하며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그런 식으로 호랑이, 사자, 코끼리 등 숲 속의 왕들을 차례로 구경하고서는 다 봤으니 그만 나가자고 했다. S는 체육을 전공하던 근육남이었다.

J는 타조를 특히 좋아하는 친구였다. 타조 외에 다른 동물들은 보는 둥 마는 둥 했고, 타조 앞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타조를 왜 좋아하냐고 물으면 “귀엽잖아.”라고 대답하는 게 다였다. 그는 혼자서도 가끔 동물원에 찾아가 타조만 보다 오기도 했다. 그때는 그런 J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지내던 그 시절의 J가 아프리카가 고향인 날지 못하는 커다란 새, 타조 앞에 앉아서 무슨 생각을 했을 지 이제는 조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D는 오래된 동물원에 가는 일을 좋아한다. 낡은 동물원에서 풍기는 냄새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 도착해 지도를 펼치면 항상 동물원이 어디인지 찾는다. 그리고 그 동물원의 나이를 헤아려본다. 방콕에서처럼.

방콕의 여름

여행지의 계절과 날씨를 알아보지 않고 떠나는 버릇은 고쳐지지가 않는다. 작은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도착한 방콕의 늦여름은 몹시 덥고 습했다. 이런 날씨에는 그 곳이 아무리 배낭여행자들의 성지, 방콕의 카오산 로드Khaosan Road라 하더라도 몇 걸음 걷다가 그냥 어디 그늘에 주저앉고 싶어질 뿐이다. 그날도 조금 걷다 말고 테라스가 넓은 카페에 반쯤 누워 쉬던 중이었다. 카페 안에는 각국의 여행자들이 우리처럼 빨갛게 익은 얼굴을 하고 늘어져 앉아있었다. 

나는 망고 슬러시와 맥주를 한 입씩 번갈아 마시며 종아리에 달라붙은 모기를 쫓고 있었다. 방콕 지도를 펼치고 가만 들여다보던 D가 지도 위쪽을 가리키며 동물원에 가자고 한다. 가만히 앉아있기도 힘들만큼 더운 날씨에 야외의 동물원이라니. 솔직히 나는 동물원이고 뭐고 그냥 에어컨이 쌩쌩 가동되는 실내에서 태국식 마사지를 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일어나자. 동물원 문 닫겠다.” “응….” 택시를 탔다. 기사 아저씨에게 ‘두싯 주Dosit Zoo’ 라고 말하니 잘 모른다. 태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카오딘Khao Din’이라고 말해야 더 잘 안다고. 복잡한 방콕의 도로를 십분 쯤 달렸을까, 과감하게 그린 동물 벽화가 있는 흰 담을 지나 동물원 정문 앞에서 택시가 섰다. 동물원 정문은 각종 동물 조각으로 장식돼 있었는데, 얼핏 보면 조잡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하나 만듦새가 섬세했다. 나무가 우거진 동물원에 들어서자 금세 사방이 조용해졌다. 방콕이 아닌 다른 도시로 잠시 여행을 온 것 같았다. 마사지를 받으러 가지 않고 동물원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원의 동물들

평일 낮의 동물원을 떠올려보면 나른해진다. 천천히 걷다 만나는 동물들을 보고 반가워하다가 어느 순간 문득 내가 그들이 된 것 같은 마음이 들기 시작하고 조금 서글퍼진다. 그러다 그마저 이내 지루해져서 또 다른 동물들이 있는 곳을 향해 걷는다. 두싯 동물원에서도 역시 그랬다. 제일 처음 만난 동물은 원숭이. 몸에는 회색 털이, 얼굴에는 주황색 털이 나있는 모습이 귀엽고 예뻐서 한참을 쳐다봤다. 자신의 꼬리를 가지고 장난치는 아기 원숭이를 보며 ‘꺄르르’ 웃고, 얼굴만 한 과일을 두 손에 들고 ‘와그작와그작’ 먹는 원숭이를 보며 정말 사람과 비슷하구나, 새삼 신기해했다. 그러다가 한 구석에 원숭이 한 마리가 먼 산을 보며 가만 웅크리고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철창 너머로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으니 어쩐지 쓸쓸해지고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뜨거운 태양을 핑계로 서둘러 그 자리를 떴다. 

그 뒤로 우리는 커다란 검은 곰을 봤고, 기린, 하얀 호랑이, 그리고 하마를 봤다. 온갖 종류의 뱀과 거미도 봤다. 그때마다 그들의 마음이 되어보는 버릇은 여전했지만 더 이상 서글퍼지지는 않았다.

신기하게도 그들은 갇혀있다기 보다 한가롭게 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비교적 담도 낮은 편이라 한 걸음만 움직이면 우리를 빠져 나와 내 옆에 설 수 있을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카오산 로드의 카페에 늘어져 쉬고 있던 여행객들이 떠올랐다. 나도 언제든 그들 옆에서 누워 쉴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으로 녹음이 우거진 열대의 빛 바랜 동물원을 마저 걸었다. 그러다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 모형을 발견했다. 아무 안내문도 없는 모형이었지만, 나는 이걸 가져다 둔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다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쩐지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만난 듯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태국 거리에는 고양이와 개가 많았는데, 여기저기 내놓은 사료 역시 골목골목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불교 국가인 태국의 국민들은 사람이 다시 동물로 태어날 수도 있다고 믿는데, 그래서 어떤 동물이라도 하찮게 대하지 않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동물과 사람을 다르게 보지 않는 마음. 두싯 동물원에서 내가 느낀 자연스러운 편안함도 그 때문이 아닐까. 태연하게 전시되어있는 사람 모형을 보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방콕에 가게 된다면

동물원은 그리 크지 않아서 둘러보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동물원을 나올 때까지 마주친 관람객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나는 동물원 안의 대부분의 사람들과 눈 인사를 나누었다. 도마뱀이 태연하게 일광욕을 하던 호숫가에 앉아 아주 조금씩 움직이던 도마뱀을 지켜보았고, 고양이와 새가 벌이던 시시한 신경전을 구경했다. 그것 뿐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방콕의 오후. 사람보다 동물이 많던 두싯 동물원. 그런데, 이번 방콕 여행에서 나는 이 동물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동물도,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도, 관람객도 모두 하릴없던 낡고 빛 바랜 동물원. 방콕에 다시 가게 된다면 꼭 한 번 더 가보고 싶은 곳에 두싯 동물원이 추가 되었다. 그때는 동물 대 동물로, 코끼리도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DUSIT ZOO

두싯 동물원은 1938년에 설립된 태국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이다. 방콕 시내 카오산 로드에서 택시를 타면 10분이 조금 넘게 걸린다. 태국 사람에게는 ‘카오딘’이라고 해야 안다. 

운영시간 08:00~18:00 입장료 외국인의 경우 150바트 (1바트 = 약 30원) 

주소 71 Rama V road Chitriada Sub-district, Dusit District, Bangkok 10300

웹사이트 dusitzo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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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전진우

글 정다운 사진 박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