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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내 중년 인생 최고의 기쁨은 커피와 술이다. 그리고 매일 나는 커피와 술, 둘 중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 저울질한다.
하루 한 잔의 커피와 한 캔의 맥주. 이 둘은 내 중년 인생의 소박한 기쁨이며 위안이다. 아침에 눈을 떠 진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시원한 맥주를 한 캔 따는 것. 이런 기쁨과 위안마저 허락되지 않는 삶이란 얼마나 팍팍한가> 그러나 매일 나는 커피와 술, 둘 중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 저울질한다.
커피는 거의 90퍼센트의 확률로 속 쓰림을 유발한다. 커피는 만성적인 나의 역류성식도염과 위염의 원흉이다. 그렇다면 술은? 술은 살이 찐다. 뱃살의 주범이다. 커피보다 덜하지만 속이 쓰리기는 마찬가지다. 커피 대 술, 당신의 선택은? 나는 고뇌하기 시작한다. 커피를 마시면 최소한 제정신이기는 하다. 허나 술을 마시다 보면 결국 정신줄을 놓고 실언을 유발하게 된다. 커피값은 비싸 봐야 만 원이지만 술값은 오만 원, 십만 원, 이십만 원에 육박할 때도 부지기수다. 기분파인 나는 팬티 한 장 사는 데는 벌벌 떨면서, 술집에서는 지갑을 활짝 활짝 잘도 연다. 이렇게 살다가 패가망신하기 딱 좋지. 그래, 그러면 나는 술을 끊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더운 여름날, 지치고 쥐어짜인 채로 집에 돌아오면 차가운 맥주, 맥주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맥주를 마시며 야수의 본성을 겨우 잠재운 나는 또다시 고뇌에 빠진다. 커피와 술, 둘 중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 괴롭다. 이보다 더 괴로운 선택은 없는 것 같다.
이것들을 끊으면 지긋지긋한 식도염과 위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뱃살도 빠지고, 돈도 아끼고, 실언도 덜하게 되고… 그러나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커피와 술을 떠올리기만 해도 바람을 피우려는 여자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바람은 피우지 않습니다만). 나는 아무래도 커피와 술에 중독되어 버린 것이다.
“내 생각의 동력은 적절한 공간과 음악과 커피”라고 말하는 디자이너 이기준에게 카페는 사무실 겸 작업실이다. 아침부터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일을 하고,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다른 카페로 옮겨 저녁까지 일을 하는 이 성실한 직업인의 책 《단골이라 미안합니다》에는 커피와 카페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어깨에 힘을 빼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해 술술 써 내려간 글들을 읽는 기쁨이란!
이기준처럼 나도 아침 일찍 여는 카페를 사랑한다. 우리 동네에 있는 내 단골 카페는 감사하게도 아침 8시 30분에 문을 연다. 9시쯤 이 카페에 도착해 따뜻한 플랫화이트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글을 쓰다가 11시가 지나면 회사로 출근하는 것이 나의 일과(내게는 글 쓰는 일 말고도 생계를 위한 다른 일이 있다). 낯선 도시를 여행할 때도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카페부터 찾는다. 쿵쾅거리는 댄스 음악이나 울부짖는 발라드 음악을 틀지 않는 카페,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카페, 적당히 밝거나 적당히 어두운 카페, 차분하고 조용하고 깨끗한 카페, 무엇보다 커피 맛이 좋은 카페를 나는 항상 찾아 헤맨다. 그런데 그런 카페를 찾기는 어렵다. 왜일까? 나의 취향이 대중의 취향과는 거리가 있는 걸까?
이기준에게도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은 단골 카페의 리스트가 있다. 그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일을 하면서 짬짬이 낯선 이들을 훔쳐보고 때로는 그들과 친구가 된다. 무성의한 음악 선곡이나, 화장실에 걸린 비위생적인 수건에 대해 불평하기도 한다. 커피를 둘러싼 무수한 규칙과 법칙 같은 것을 사랑하기도 하고, 그것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기만의 유연한 기준을 가진 이들을 경애의 눈으로 바라본다.
커피라는 습관, 커피라는 의식. 커피콩을 갈고 그것에 물을 천천히 또는 빠르게 붓는 일. 걸쭉한 커피의 진액이 흘러나오거나 신선한 커피 가루가 부풀어 오르는 모습. 뜨거운 커피의 표면에 뜬 거품, 밝은색의 크레마, 탄내가 섞인 고소한 향기 같은 것. 그리고 어떤 음료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그 독하고 쓴맛을 우리는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 나는 커피를 마시는 나를 사랑한다.
커피를 즐기는 일에는 이렇게 외골수적인 기쁨이 있다.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아는 기쁨. 쓸데없는 일에 고집을 피우는 기쁨. 작은 것에 감동받고 실망하는 기쁨. 그 이해할 수 없는 기쁨이 우리를 끌어당긴다.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다. 긴 호흡의 이야기, 진지한 질문들은 더는 각광받지 못한다. 사람들은 점점 찰나의 즐거움에 빠져든다. 긴 글을 읽고 깊이 생각하며 세계의 부조리함에 의문을 품고 자신을 성찰하는 대신, 인스타그램을 스크롤하며 낄낄대거나 남을 부러워하고, 디저트처럼 달콤하고 짧은 글들에 빠지고, 마음에 찌꺼기를 남기지 않는 가벼운 영상이나 쉬운 전개의 드라마 같은 것들로 시름을 잊는다. 큰일이다. 세상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건가.
그리고 나는 밤마다 침대에 모로 누워서 인스타그램을 스크롤하며 남의 인생을 부러워하거나 낄낄거리고, 세계 각국의 드라마에 빠져 당면한 과제와 매일의 시름을 잊는다. 큰일이다. 내 인생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건가. 그렇게 내 침대 위의 기쁨 중 하나가 된 넷플릭스의 <선술집 바가지>는 딱 그런 드라마다. 마음에 찌꺼기를 남기지 않는, 딱히 대단할 것도 없고 깊이도 없는, 쉽고 가벼운, 그러니까 잠들기 전 멍청하게 누워서 보기 좋은 드라마.
바가지 선술집의 주인은 부모님에게서 가게를 물려받은 젊은 여자 미네와 그의 여동생 가오루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지나치게 고지식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남자여서, ‘이런 평범한 가정식 요리를 돈을 받고 팔다니, 나는 손님들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요리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 바가지가 바가지로 남지 않도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술집의 이름이 ‘바가지 선술집’이 된 것이다. 그러나 손님들은 이 바가지를 바가지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라도 이런 선술집이 있다면 매일 들르고 싶을 것이다. 쾌활하고 친절한 젊은 주인들이 맛깔스러운 가정식 요리를 즉석에서 만들어 낸다. 가게 안은 언제나 따뜻하고, 누구라도 환영받으며, 모두가 이 가게를 사랑한다. 작은 상점의 주인, 일용직 노동자, 말단 샐러리맨, 그냥 할머니인 단골손님들 중에서 형편이 넉넉한 사람은 없어 보인다. 저 사람들, 벌어서 이 술집에 다 갖다 바치는 게 아닐까 내가 다 걱정스러울 정도다.
이 드라마는 나처럼 지친 노동자들에게 판타지를 선물한다. 자, 여기로 오세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따뜻한 정이 살아 있는 곳으로. 골목길 이름 없는 선술집 주인도 정성을 다해 손님을 대접하는 곳. 진상 손님 따위는 없는 곳. 선의로 가득 찬, 예의와 범절을 아는 이들만 입장할 수 있는 곳. 사람들은 누군가의 응원과 연설만으로도 쉽게 마음을 바꾸고, 마음을 바꾼 사람의 삶은 그렇게 쉽게 달라지는 곳.
그래, 어딘가에는 저런 장소가 있을 거야.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고 응원하는 장소가. 매일 선술집에 들러 먹고 마셔도 가계나 위장에 구멍이 나지 않는 삶이. 나는 인류와 삶에 대한 믿음을 어느 정도 회복한 채, ‘내일은 드라마에서 가르쳐준 대로 만두를 구워봐야지.’ 하고 다짐하며 눈을 감는다. 이런 드라마는 내게 영양제와 항우울제, 그리고 수면제를 더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매일 약을 먹지 않으면 잠재워지지 않는 병이라면, 과연 그 약은 치료에 도움이 되는 걸까? 아니면 그저 병의 증상을 잠시 억누르는 것뿐인 걸까? 내 고통은 과연 치유될 수 있는 것일까? 술을 마셔 시름을 잊으려다 결국 시름이 빚처럼 불어나 빚더미에 깔리는 알코올 의존자처럼, 잠깐의 기쁨에 중독된 나는 찜찜한 기분으로 남은 날들을 살아가게 된다. 이렇게 잠시 잊어버린다고 해서 문제들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드라마는 내게 인민의 아편이나 같다. 그러나 아편 없이 이 고된 인생을 어떻게 버티리.
하루하루의 시름을 무엇으로 잊을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연애를 하고 어떤 사람은 교회나 절에 간다. 또 다른 사람은 역기를 들어 올리고 누군가는 춤을 추고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린다. 인간의 앞에는 홀로 견뎌야 할 너무나 많은 시간이 똬리를 틀고 있다. 아침이면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신다. 내일 출근할 생각을 하면 마음에 먹구름이 끼는 것 같다가도, 또 내일 아침에 맛 좋은 커피를 마실 것을 생각하면 먹구름은 이내 물러난다. 퇴근을 하고 집안일을 모두 마친 후에는 냉장고에서 꺼낸 차가운 맥주 한 캔을 들고 티브이 앞에 앉아 드라마를 튼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아저씨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캬, 이게 인생이지!
세상 사람들의 대부분에게 관심이 없고, 그들 중 일부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 중 극소수를 좋아한다. 드라마 속의 사람들을 본다. 비뚤어지거나 뒤틀린 데라고는 없는 착하고 올바른 사람들이 정성껏 요리를 만들고 그 요리를 음미하는 모습을 본다. 오이시이! 스고이! 우마이! 온몸이 오그라든다. 하지만 참으려고 노력한다. 드라마마저 미워하면 나는 이제 갈 곳이 없다. 커피와 술을 벗해 나는 이 인생을 살아간다. 그리고 나는 또 둘 중 무엇을 포기해야 좋을지 무의미한 저울질을 해본다. 어찌 됐든,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글 한수희
일러스트 서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