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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철
거짓말하지 마
장우철이라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는 패션매거진<지큐GQ>에서 10여 년간 피처 에디터로 일해왔다. 잡지를 만드는 일 외에도 책을 쓰고, 사진을 찍고, 라디오에 출연하는 그의 주변이 궁금했다. 그래서 그를 둘러싼 것들에 관해 가볍게 얘기 나눌 생각이었다. 그가 자주 가는 장소, 좋아하는 음악, 기억에 남는 여행지 같은 것들.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얘기들이 이어졌다.
피처 에디터라는 직업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 같아요.
2002년 봄, 스물아홉에 지큐 코리아 피처 에디터라는 명함을 받았어요. ‘피처 에디터’는 미국 잡지 판에서 쓰는 말을 그대로 쓰는 건데, ‘피처feature’는 특종이라는 뜻입니다만, 모르겠어요. 그들의 개념과 제가 하는 일 사이에 어떤 미묘한 차이가 있는지. 다만 한국 잡지 판에서 피처 에디터라면, ‘패션 에디터’나 ‘뷰티 에디터’와 구분해, 그 잡지의 이런저런 읽을거리들, 영화, 텔레비전, 음악, 스포츠, 자동차, 섹스, 사회, 경제 등등 그 잡지가 다루려 하는 거의 모든 분야를 아울러 기획하고 진행하는 에디터를 말해요. 누군가를 인터뷰한다거나 화보를 만든다거나 어떻게 보면, 패션에디터나 뷰티 에디터가 하는 일을 느슨하게 포함한 채 별의별 걸 다 하는 에디터라고 할 수 있죠.
<지큐>뿐만 아니라 집필한 책, <여기와 거기> 그리고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의 ‘철이와 진이’ 코너에서도 기자님만의 독특한 취향이 느껴졌어요.
글쎄요. 독특한 걸로 치면 누군들 그만큼 독특하지 않을까요? 과연 ‘평범한’ 사람이 있을까요? 모두 각자의 세계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 세계는 당연히 차이가 있겠고요. 뭔가를 한쪽에 무리 지어놓고, 그와는 다른 하나를 ‘독특함’ 등으로 포장하는 방식은 좀 게으른 관점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네요. 그저 하나하나를 따로따로 보고 싶어요. 제 취향에 영향을 미친 거라면 수많은 경험과 감각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렇게 하나하나 따로 보려는 노력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라디오에서 마우스 옆에 벼루와 먹을 놓고 먹을 간다는 얘길 들었어요. 왜 먹을 갈게 되었나요?
<브루투스Brutus>에서였나, 도쿄 긴자에 있는 오래된 문구점 ‘규쿄도’에서 파는 벼루 사진을 보고 한눈에 반했어요. 돌의 표면을 자연 그대로 살린, 뚜껑이 있는 작은 벼루였어요. 그걸 샀고, 먹을 갈았어요. 갈아보니 좋았어요. 향도 좋고, 기분도 좋고 다 좋았습니다. 언제 먹을 가느냐면, 생각날 때 갈아요. 딱히 어떤 기분일 때, 어떤 기분을 만들고자 그러진 않아요. 누구한테 보여주려는 일도 아니고요. 그저 책상에서 볼펜을 돌리고 싶을 때 돌리듯이 그런 거죠.
서울에서 좋아하는 장소를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창경궁을 추천해주셨어요. 창경궁의 어디가 좋은가요?
이렇다 할 공원이 없는 서울에서, 궁궐은 여느 대도시의 공원과 비슷한 역할을 해요. 그중 창경궁이 더 좋은 건, 뭔가 ‘관광지’로 덜 다듬어졌기 때문입니다. 홍화문에 들어서자마자 왼쪽으로 틀면 서울에서 가장 멋들어진 버드나무들이 여럿 있어요. 버드나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버드나무 밑으로 난 길도 좋아요. 창경궁은 거슬리는 것들이 적어요. 사람의 손을 탄 관광지라면 분명 포장을 한다거나, 미운 울타리를 친다거나, 뭔가 ‘조치’를 취했을 길인데, 그렇지 않아선지 오래된, 방치된 느낌으로 난 길이 그대로 있죠. 벚꽃이 질 때쯤이면 귀룽나무 꽃이 피어요. 그때가 또 그렇게 좋더라고요. 사실, 오래된 건 뭐든지 다 좋아요. 오래된 것들이 오래되지 않은 척할 땐 제일 미워요.
어떤 식으로 오래되지 않은 척을 하나요?
여기 보세요. 이 길에 이런 울타리를 치는 것 자체가 안 예뻐요. 수백 년 된 나무에 걸린 저 이름표의 디자인 좀 보세요. 오래된 것은 오래된 것으로서 저절로 멋이 나는 법인데 거기에 뭔가 더하는 방식은 항상 눈을 썩게 만들어요. 한 번도 마음에 든 적이 없어요. 혐오합니다. 사실 서울에 있는 많은 것들이 가짜죠. 서울은 점점 미워질 거란 생각을 해요.
그나마 좀 예쁘게 남아 있는 곳이 창경궁 말고 또 있을까요?
글쎄요. 왜 그걸 묻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아요. 뭔가를 찾으려 탐험하는 시기가 있죠. 서울의 아름다움을 찾고 싶은 거죠. 미처 몰랐던 의미 있는 건축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은 ‘그래서 그 아름다움으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이어가고 있나?’하는 거예요. 무슨 근대 건축물, 조선의 전각, 그냥 거기 덜렁 있는 거잖아요. 그곳에서 눈을 조금만 돌려도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풍경이 미친 듯이 펼쳐지잖아요. 그런데 그곳에만 간신히 카메라 프레임을 들이대 찍어놓고 ‘서울에 이런 아름다운 곳이 있다’고 말하는 건 일종의 거짓말이죠.
우리가 과거의 어떤 것들을 보고 ‘옛날엔 예뻤구나’라고 느낄 수 있지만, 그걸 정말 좋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거기서 이어진 ‘지금의 풍경’이 있어야 해요. 하지만 완벽하게 갈아엎었죠. 숭례문이니 광화문이니 창덕궁이니 그걸 아름답다고 느끼고 말하는 건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가 아닐까요?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서울에 지은 건축물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정작 건축 자체보다 더 추하다고 생각하는 건, 그 앞에 소나무 몇 그루를 심겠다는 생각과 심은 모양새예요. 소나무를 심으면 이질적으로 생긴 그 건물이 ‘한국적인’ 느낌과 어우러지나요? 말로는 그럴싸한 의미가 될지도 모르죠. 하지만 보는 즉시 눈이 거절하죠.
사실 우리 주변에는 그런 게 많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불만을 스스로 어떻게 달래나요?
못 달래요. 그래서 화가 나고 계속 화를 내요. 우리는 좋게 말해야 하고 긍정적인 전도사가 되어야 하고……. 얼추 그런 강박을 갖고 있죠. ‘착한 커피’ 옆에 ‘더 착한 커피’가 생겨요.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착한 커피 옆에 더 착한 커피라는 간판을 달겠다는 의도처럼 안 착하고 못돼 먹은 게 어디 있어요? 그게 과연 ‘센스 있는’ 건가요? 언젠가 서울 사람을 지칭하는 외국어가 필요하단 얘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나온 말이 ‘서울러, 서울라이트, 서울지앤느’ 그냥 서울 사람이라고 쓰면 되잖아요. ‘SEOUL SARAM’. 그런데 지금은 다른 생각이 들어요. 서울이란 도시에 어울리는 단어는 어쩌면 서울지앤느 같은 말인 것 같아요. 그게 이 도시의 솔직한 모습 아닐까요. 이런 식의 얘기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짐작하는 바는 있어요. “저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이군.”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긍정/부정 간단한가요? 그런 잣대는 제가 먼저 거절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잘 지내고 있을 것 같아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여기에 제 친구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에요. 서울은 제 친구들이 사는 도시에요. 그래서 나도 덩달아 살 수 있어요. 외국에 가서도 어떻게든 살겠죠. 그런데 친구들은 서울에만 있어요. 직업도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종로구의 쓰레기 봉투 디자인은 마음에 들어요(웃음). 제 방도요. 눈이 엄청나게 쌓일 때도, 밤에 술에 취해 택시를 타고 가며 흐르는 풍경을 볼 때도 좋아요. 가을에 창경궁 쪽에서 나는 냄새도 좋고요. 맛있는 것도 많고 얼마나 좋아요. 닭도 시켜먹고, 당연히 좋죠. 좋은 거 많죠. 서울……. 그런데 좋은 것들만 요렇게 핀셋으로 골라서 얘기하면 어딘들 똑같지 않겠어요? 어떤 의미에서 거짓말이죠, 그건. 좋은 말 외의 것들을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친구들과 이런 얘기 많이 하세요?
네. 2007년이었나? 어느 날, 공항에 가다가 친구가 “촌스러워.”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뭐? 누가?” 이러니까 “모든 게.” 그랬거든요. 그 순간 그게 굉장히 좋았어요. 정말 모든 게 촌스럽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누구한테 “내 친구가 이렇게 말하잖아. 들어봐.” 하며 설득하려는 얘기가 아니라, 그냥 누구에게나 친구와 나눌 수 있는 얘기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게 필요하고요.
우리 환경이나 풍토 자체가 너무 그런 식의 얘기가 없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얘기보다 내가 이걸 좋아하면 어딘가에 낄 수 있을 것 같은 얘기들을 하잖아요. 그런 게 보이니까 자꾸 거절하게 돼요. 다수가 되어 누리는 안락함을 일절 차단하고 싶어요. 좋아서 좋은 게 아니라 유명하다니까, 다들 줄을 선다니까 나도 따라가야 할 것 같아서, 거기에 못 끼면 ‘따’가 될 테니까 거기 끼는, 그런 분위기를 단호히 잘라낸 개인이고 싶어요. 그러면 “어차피 너도 대중이잖아.” 그러죠. 알아요. 하지만 대중으로부터 항상 벗어나려는 개인이 되고자 심지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머니를 인터뷰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언젠가 한 번 정색하고 해본 적이 있어요. “아버지랑 처음 만났을 때, 어땠어? 어떤 옷 입고 계셨어?” 이런 걸 물어보면 부끄러워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계속해서 물어보면 “이건 어디서 맞춘 얼마짜리 옷이고…….” 이런 얘기를 다 기억하세요. 놀라웠어요. 엄마와 아빠의 역사가 그 대화 속에 다 나오는 거예요. 이걸 내가 물어보지 않았으면, 엄마가 누구에게 얘길 했겠어요. 중요한 건 ‘역사’가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게 없으면, 아무리 멋있어도 유행이 지나면서 끝나버려요.
<지큐>에서 제가 조선 시대 물건들을 보여주고, 인기와는 상관없이 나이 든 배우를 인터뷰하고 그 사람들의 옛 모습을 보여줬던 이유도 사실 그런 생각 때문이었어요.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에도 역사가 바로 서야 지금이 가치를 가지는 거라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해요. 아무것도 없이 그게 그냥 우리의 역사라고 말하고, 서울의 본 모습이라고 말하면 거짓말이에요. 내가 어머니의 연애 시절을 알아야죠. 아버지와 어떤 날 영화를 보셨는지 알아야 해요. 어떤 사회가 개인에게 관심을 가지겠어요. 개인이 개인에게 관심을 가져야지. 친구, 엄마, 선생님과 하는 말들이 더 많아져야만 하고 그렇게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시던데, 필름을 가장 많이 썼던 여행이 있어요?
제일 많이 쓴 곳은 벨기에의 앤트워프Antwerp였어요. 처음 유럽 여행을 할 때 거의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곳에서 ‘논산’이 떠올랐어요. 제 고향 논산. 모든 풍경이 저를 공격하지 않아서 편안했죠. 거리낌 없이 셔터를 누를 수 있었어요. 사실, 모든 도시는 살지 않는 이상 어떤 계절, 어떤 날, 어떤 기분으로 도착해서 그 순간의 인상을 보게 되잖아요. 그래서 갈 때마다 다른 걸 느끼게 되는데, 앤트워프는 가고 또 가고 또 가고 또 가도 좋았어요. 계속 뭔가가 생겨요. 못 봤던 것도 생기고, 봤던 걸 또 보게 되고.
반대로 필름을 가장 적게 썼던 여행은 어디인가요?
아이슬란드Iceland요. 많이 찍을 줄 알았는데, 못 찍었어요. 제가 감당할 수 없는 풍경이었거든요. 제 작은 카메라를 거기에 대서 부분을 찍고, 그걸 아이슬란드라고 말하는 건 거짓말 같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아이슬란드가 제주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때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조금 편하게 느껴졌죠. 그래도 여전히 제주도로 생각하기 전에 찍었던 사진은 거짓말 같아서,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진 않아요.
거짓말이 없는 사진은 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사진가는 아니지만 아티스트 권부문 선생님으로부터 카메라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배운 적이 있어요. 사진을 찍는 문제에서, 사진기를 들고 나서며 ‘오늘은 뭘 찍게 되려나’ 사냥꾼처럼 되는 걸 경계해야 한다는 거예요. “나무를 찍고 싶어”라고 했을 때, 누구나 나무는 찍잖아요. 그런데 나는, 어떤 나무를 찍고 싶어하는지, 열망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러면 그 나무가 나타나요. 신비롭게 홀연히 나타나는 게 아니라, 보고 싶어했기 때문에 보인다는 거죠.
슬슬 돌아다니다가 얻어걸린 사진을 보여주는 게 사진가의 입장일 수 있을까요? 같은 맥락에서 ‘어떤 사진을 버릴 줄 아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가끔 포트폴리오를 갖고 오는 사진가들을 보면, 첫 사진에 ‘와’ 했다가도, 뒤에 있는 것들을 보고 나면, 처음 본 사진도 믿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어쩌다 찍힌 거거든요. 과감히 버리더라도 단 한 장의 사진을 보여줄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을 담아서 인지, 사진을 보면 ‘자신만의 세계가 확고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독 자주 찍게 되는 것들이 있을 거 같은데요.
혼자 있는 것들. 나한테 다가서지 않을 것이 확실한 것들. 나 역시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것들. 그러니까 뒷모습. 제 필름을 아무리 뒤져도 여행지에서 마주친 사람을 정면으로 찍은 건 없어요. “저기 사진 좀” 할 용기가 없거든요. 그러면 솔직하게 뒤를 찍어야지. 어쩌겠어요. 여행지에서 거침없이 사람들의 얼굴을 찍은 사진을 보면 참 용기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이게 ‘진짜일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어떤 여행 에세이 같은 걸 보면, 처음 만나 지나치는 사람들이 마치 인생의 나침반이 될 것 같은 특별한 얘기를 무슨 도사님처럼 던져주고 그러잖아요. ‘진짜?’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만난 사람들은 전혀 그러지 않던데(웃음).
부끄러움을 많이 타실 것 같아요. 여행하며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던 적 있나요?
한번은 파리에서 그랬어요. 보이는 모든 풍경이 멋지고 그 사이에 내가 있다는 것도 좋았어요. 그러다 문득 가게 유리에 비친 저를 보고 “으악!” 소리를 질렀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 속을 나는 이런 꼴로 다니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니 정말 부끄러웠어요. 당장 옷부터 갈아입었죠. 그걸 예의라고 생각해요. 아름다운 것을 대하는 태도요, 그런 마음이 필요한 거 같아요. 석굴암을 보러 가면서 운동복에 슬리퍼를 끌고 가는 걸 저는 무례라고 느껴요.
인터뷰 내내 놓지 않는 그 노란 봉투는 도대체 뭔가요?
두바이에 출장을 갔다가 어제 돌아왔거든요. 한 가게에서 물건을 담아준 봉투인데, 마음에 들어서 계속 들고 다녀요. 처음에는 두바이몰, 이런 것만 있을 줄 알고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구시가지에 가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살 것 같았어요. 사람들이 하는 말들, 표정, 파는 물건들. 보이는 모든 풍경이 복잡한 채로 질서를 갖추고 있어요. 어느 도시에서든 저는 택시를 타려고 해요. 택시를 타면 길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흐름이 보여요. 파노라마로 그 도시가 펼쳐지는 걸 볼 수 있죠.
두바이는 택시 값이 정말 쌌어요. 기본요금이 6백원쯤. 그래서 구시가지에서 어마어마한 쇼핑몰이 있는 곳까지 몇천원 정도예요. 그러니까 저로서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도시죠. 극단적인 현대 문명이 이쪽에 이렇게 있고 다른 쪽에는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많은 것들이 남아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 두 곳을 잇는 택시비가 몇천원이고. 완벽해!
지금까지 많은 일들을 해오셨는데 앞으로의 꿈은 뭔가요?
결국엔 책을 만들고 싶어요. 저는 뭘 생각하든 두 페이지로 펼쳐지는 모양에서 시작하는 것 같거든요. 편애하는 사진가가 있는데, 그 친구와 뭔가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혼자서 막 설레발을 쳐요. 책을 만들자는 얘기만 겨우 했을 뿐인데 혼자 집에서 표지 디자인을 하고 있는 거예요. 지난주에도 혼자 표지를 세 개 만들어서 그 친구에게 보여줬어요.
그럴 때, 그 친구가 하는 말이라는 게 있잖아요. “아 이런 건 좀 나중에 하시고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 친구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이거 꼭 표지로 해요!”라고 말하죠. 그게 나중에 표지로 안 될 확률이 훨씬 더 높지 않겠어요? 그래도 저는, 나니까 너에게 그리고 너니까 나에게 할 수 있는 그 말들을 정말 사랑해요. 우리가 친구니까 서로를 믿으니까 하는 말이잖아요. 끼리끼리 뭔가를 생각하고 만들어내는 게 좋아 보여요. 그리고 중요해요.
거짓말, 거절, 혐오, 거슬림 그리고 한숨.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한 말들이었다. 그와의 대화는 불편했다. 원고를 옮기다 보니, 비단 불편한 것이 나뿐만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편안한 게 정말 좋은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 불편함을 누군가에게 떠들고 싶지가 않다.
그가 내게 해준 말 중, 몇 가지 불편했던 것들을 적어서 책상 위에 붙여두었다. 잊지 않기 위해서. 그 단어들이 편해지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 이것이 편하지 않다고 해서 피해버리면, 나는 그리고 이 도시는 정말 미운 것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에디터 박선아
포토그래퍼 박선아·전진우 사진 장우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