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101

디자인개론

나는 오래전부터 빵 한 조각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암스테르담에서 기차 시간을 5분여 남긴, 촉박하지도 여유롭지도 않은 애매한 시점이었다. 흔하디흔한 마트의 계산대 앞에서 발견한 그 빵은 얇고 딱딱한 페이스트리를 사이에 두고 노란색 크림이 두툼하게 채워져 있는, 딱 봐도 부드럽고 달콤하고 촉촉해 보이는 녀석이었다. 실제로 케이크를 만져보지는 않았지만, 묵직하고 축축한 모습만으로도 그 무게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케이크 윗부분엔 분홍색 설탕이 두툼하게 발려 있어, 그것이 이빨에 닿았을 때의 감촉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이미 그곳에 오랫동안 살았던 내 친구는 그 케이크를 가리켜 애들이나 좋아하는 거라며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부끄럽지만 나는 그런 종류의 축축한 비주얼에 상당히 마음이 약한 편이다. 부끄러운 취향을 들킬까 염려되어, 또 한편으로는 케이크가 들어갈 네모 모양의 자리가 배 속에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곳을 그냥 지나쳐 올 수밖에 없었다. 어린아이가 문방구에서 장난감을 점찍어 두는 것처럼, 언젠가 배 속에 빈 땅이 생기면 돈을 들고 찾아와야지 생각했다.

어느 날 작은 탁상시계를 본 순간 마음이 홀려버렸다. 정사각형 모양의 아주 조그만 녀석으로, 이전에 본 케이크와 마찬가지로 묵직하고 단단해 보였다. 작고 선명한 숫자와 가느다란 노란색 초침, 그것이 가리키는 바는 너무도 명백했다. 소박하고 심플한 삶. 나는 곧바로 이것을 사야만 하는 이유를궁리하기 시작했다. 여행지에서 배터리가 떨어져 알람을 맞춰 놓지 못했던 기억과 매일 아침 핸드폰 알람을 끄고 나서 마주해야만 했던 눈부신 액정화면, 책상 위 묘하게 허전해 보이는 한 공간. 조금 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무척이나 유명한 독일의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제품이라고 한다.

‘나도 디자인하는 사람인데 이런 데 쓰는 돈은 아끼면 안 되지!’

배 속과 달리 마음속은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구석이 있다. 사랑하는 가족과 애인, 그리고 귀여운 강아지들이 마음을 한가득 채우고, 보람과 성취감, 사람들의 평가가 나머지 부분을 가득 채워준다. 그런데도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은 상자와 상자 사이에 빈틈이 아주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가방을 고르고, 신발을 고르고, 그리고 나머지는 자잘한 욕심들로 채워 넣을 준비를 한다. 아버지는 카센터에 차를 끌고 가 굳이 필요 없는 것들을 차에 붙이는 것으로 그 욕심을 채우곤 하셨다. 어머니는 예쁜 그릇으로, 때로는 귀여운 자수가 새겨져 있는 커튼으로 그 빈틈을 마구 메꾸어 놓으셨다. 지금 나에게는 탁상시계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그 자리에서 시계를 계산하고 바로 집으로 들고 와버렸다.


집으로 돌아와 시계 박스를 개봉했다. 그리고 곧이어 밀려오는 실망감. 시계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알차고 단단하고 무거운 존재가 어느 한구석을 채워주기를 바란 건데, 이 시계는 깡통처럼 가볍고 텅 비어 있었다. 가벼워서 나쁜 건 없지…. 생각하면서 애써 위안을 해보려 했지만, 가슴속엔 시계 속만큼 텅 빈 공간이 이미 다시 생겨버린 뒤였다. 알람을 설정하고 알람 버튼을 위로 올려봤는데, 어딘가 느낌이 허전했다. ‘딸깍’ 소리가 나지 않았다. 이것은 내 기준으로는 시장에서 산 것만도 못한 조악한 물건이었다. 정직한 공산품처럼 보이는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이었기 때문에 그 실망은 훨씬 더 컸다. 시계 안 텅텅 빈 공간은 실망으로 가득 차버렸다. 나는 곧바로 탁상시계를 구입한 곳에 전화를 걸어, 제품에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점원은 문제가 있으면 바꿔주겠다며, 어떤 문제인지 이야기해보라고 했다. 나는 버튼에서 ‘딸깍’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말하며 실제로 수화기에 갖다 대고 그 음흉한 소리를 들려주었다. ‘끄응’ 소리는 나지만 ‘딸깍’ 소리는 나지 않는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누르면 눌리긴 하지만 끝내 터지지는 않는 것이다. 수화기 맞은편의 점원은 잠시 기다려보라고 한 후 직접 시계 버튼을 눌러 그 소리를 확인해보았다. 마찬가지로 ‘딸깍’ 소리는 나지 않았다. 

“이 제품이 원래 그러세요, 고객님.” 

제품에 대한 불만을 말투에 대한 불만으로 옮겨 놓기 위해 백화점에선 이런 엉터리 존댓말을 쓰는 게 아닌가 잠시 생각했다. 세상을 손에 쥘 수 없는 사람들은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세계에 유달리 집착한다. 볼펜과 만년필, 시계와 문손잡이 등…. 흔하디흔한 것들, 널리고 널린 것들인데 그것들을 정성스럽게 만지고 소중하게 보관한다. 사람이 세상을 손에 쥘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와도 같다. 현실은 너무도 복잡하다. 우리가 배운 것은 왼쪽과 오른쪽이지만 실제 세상은 열 시 방향, 열한 시 오십 분 방향으로 움직인다. 좋은지 싫은지 모르겠고, 달면서 짠맛이 느껴지는 일상이 진짜 일상인 것이다. 반면 우리가 손에 쥔 작은 세계는 아주 단순하게 돌아간다. 왼쪽 아니면 오른쪽, 네 아니면 아니오, 그 세계는 우리의 이해범위 안에 있으며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다. 우유부단함이나 어정쩡함처럼 골치 아픈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샤프의 뒤 꽁지를 누를 때 짤깍짤깍 하며 샤프심이 나오는 그 단순한 원리는 참으로 정직하다. 집에서 전등을 끌 때, 운전석에서 좌회전 깜빡이를 넣을 때, 리모컨 건전지를 갈아 끼울 때 아는 ‘딸깍’ 소리는 우리의 질문에 대한 이 세계의 정확한 대답이다. ‘왼쪽-오른쪽’, ‘온-오프’.

흔히 디자인에 대해 착각하는 것이 그것이 실제보다 좋아 보이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디자인의 중요성은 차라리 실제보다 더 좋아 보이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디자인의 기본은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다. 꽉 차 보이는데 텅 빈 제품을 만났을 때, 단단해 보이지만 가벼운 제품을 만났을 때, 정직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유부단한 제품을 만났을 때 사람의 마음은 실망을 넘어 배신감으로까지 번진다. 그래서 나는 디자인을 디자인으로 이해할 수만은 없다. 그것은 명백히 기술이며, 대화의 방식이어야만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날, 공항으로 가는 기차역에서 친구를 먼저 돌려보내고 몰래 마트로 발걸음을 향했다. 분홍색 설탕과 노란색 크림을 입에 한가득 깨물고 나는 천재가 아닌가 생각했다. 어쩜 나는 먹어보지도 않고 이 맛과 질감을 상상해낼 수 있던 걸까? 내가 상상한 맛과 내가 상상한 촉감과 정확히 일치했다. 어린애들이나 좋아하는 맛이었지만 사실은 그런 걸 원했다. 물론 겉으로도 그래 보였다. 어쩌면 내가 먹고 있는 것은 맛있는 케이크가 아닌 맛있는 디자인인지도 모르겠다.

“물에 뛰어들 때 첨벙 소리가 나지 않고, 싸대기를 날릴 때 찰싹 소리가 나지 않고, 공을 찰 때 뻥 소리가 나지 않는다면요, 나의 이런 답답한 기분을 조금은 이해해주시려나요? 이런 시계라면 알람 버튼을 누르고 잠에서 일어나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해도, 절대로 깨어날 수 없을 거예요.” 

“이 제품이 원래 그러세요, 고객님.” 

점원은 어떤 마찰음도 만들지 않으려는 듯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생각해보니 이 이상한 높임말도 조악한 버튼과 다를 게 없다. 존경도 비아냥도, 긍정도 부정도 아닌 상태로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네.”

나는 누굴 탓하는 대신 차가운 대답만을 남기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철커덕!’ 소리와 함께 수화기를 내려놓아 나의 분노를 들려주고 싶었지만, 나는 대신 아이폰 화면을 밀어서 잠금을 해지하고 홈 버튼을 누른 후 엄지손가락으로 통화 종료 화면을 눌러 연결을 해지해야 했다. 나의 분노는 세상에 나와보지도 못한 채로 어디론가 증발해버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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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한승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