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ly In Love

스튜디오펩스 김예찬 디렉터, 주부 이사랑

사람이 궁금해 영상을 찍기 시작한 김예찬 감독과 같은 마음으로 언제든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랑 씨. 부부는 세 아이와 함께 서로를 궁금해하며 매일을 보낸다. 밝고 다정한 목소리로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 부부에게 세 아이는 “사랑은 변하지 않아.”라고 답한다. 다섯 식구는 빈틈없이 들어찬 사랑으로 이어져 있다.

예찬과 사랑의 날들

“그 정돈 괜찮아. 아이들은 어른보다 훨씬 강해.”

집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소개 먼저 부탁드릴게요.

예찬 그린, 봄, 푸름이의 아빠 김예찬입니다. 다큐멘터리, 뮤직 비디오, 상업 광고 등의 영상 콘텐츠와 디자인 작업물을 제작하는 ‘스튜디오펩스’를 운영하고 있어요.

사랑 안녕하세요. 그린, 봄, 푸름이의 엄마 이사랑입니다. 저희 내년에 이사 가는데, 이 집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추억이 하나 더 생기겠네요. 너무 평범하고 정리가 안 된 집이라 보여드릴 게 있나 싶지만 이게 저희 집이니 어쩔 수 없죠. 지금이 제일 깔끔한 상태예요(웃음). 

 

자연스러워서 더 좋은 걸요. 두 분이 SNS와 유튜브에 남긴 기록들을 보면서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가족의 시작인 두 분의 만남부터 듣고 싶어요.

예찬 저희 둘 다 다큐멘터리를 배우던 시기에 처음 만났어요. 각자 다른 선배 PD님들과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다가 콘텐츠진흥원에서 진행하는 멘토, 멘티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어요. 사랑이 선배 PD님과 저희 선배 PD님이 같은 사무실을 쓰고 계셨는데 거기서 우연히 만남이 이루어졌죠.

사랑 어느 날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는데 남자 세 명이 벨을 누르고 들어와서는 마음대로 냉장고를 열고 아무렇지 않게 뭘 먹더라고요. 그중 남편이 있었죠. PD님들끼리 같은 사무실 쓰는 줄 모르고 ‘저 사람들 도대체 뭐지…?’ 했던 게 첫인상이니까 사실 별로 좋진 않았어요(웃음). 이후에 멘티, 멘토 프로그램 하면서 친해졌어요. 제가 원래 누구에게나 예의바르고 성품이 괜찮은 사람을 좋아하는데, 그런 면에 호감이 갔어요. 남편이 제 첫 연애 상대예요.

예찬 저는 밝고 쾌활하고 주관이 뚜렷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는데 사랑이가 딱 그런 사람이었어요. 사실은 그보다 먼저 예뻐서 반했지만요(웃음). 장비를 빌리고 돌려주고 하면서 계속 만날 구실을 만들었죠.

 

첫 연애에 첫눈에 반하다니 뭔가 운명적인데요.

사랑 저는 결혼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배 속에 그린이가 먼저 생기기도 했지만, 이 사람이라면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꿀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대처럼 행복했나요?

사랑 생각보다 훨씬 더요. 남편이 저희 관계에도, 일에 있어서도 많이 노력해준 덕분에 모든 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했어요. 아이들뿐 아니라 각자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의논하면서 지내거든요. 성향도 잘 맞는 편이고요. 사소한 걸로 다투는 일이 거의 없어요. 둘 다 만사에 별로 크게 신경을 안쓰는 편이라서 그런가 봐요(웃음).

 

다큐멘터리를 공부하다가 만났다고 했죠? 장면과 순간을 기록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나요?

예찬 2010년도쯤에 ‘모자이크’라는 이름으로 평범한 사람들을 인터뷰해 웹진 형태로 아카이빙하는 작업을 했는데, 그때 기록의 가치와 중요성을 많이 느꼈어요.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해 직접 콘텐츠를 기획하고 인터뷰도 진행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영상은 하나의 도구였고요. 일을 할수록 가만 두면 휘발되는 것들을 잡아두고 저장한다는 게 의미 있는 것 같았어요. 영상뿐 아니라 사진과 글에도 다른 매력을 느껴요. 영상은 순간의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담을 수 있고, 사진은 찰나의 장면으로부터 무언가를 상상할 수 있게 만들어줘요. 글은 내밀한 감정을 살펴볼 수 있고, 그림은 글과 섞으면 무엇보다 재미있는 표현을 할 수 있죠. 그렇게 기록의 재미를 알아가면서 영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그럼 벌써 10년이 지났네요. 한 가지 일을 오래 해오면서 일의 규모나 작업 스타일에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예찬 2010년부터 13년까지는 완전히 사람에 집중했어요. 사전 질문지 없이 인터뷰이에 관한 아주 대략적인 정보만 들고 기본 서너 시간씩 인터뷰를 진행했죠. 인터뷰이와 제가 대화를 나누면서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았어요. 13년부터는 《빅이슈코리아》를 만나게 되면서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그동안 정의해 온 ‘평범한 사람들’이 누군가에겐 평범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노숙인들의 평범한 일상을 동정의 시선 없이 보여주는 인터뷰를 작업했어요. 노숙인들이 축구를 통해 자활하는 국제적인 대회인 ‘홈리스 월드컵’에 우리나라 선수들이 출전하게 되면서, 3년 정도 동행해 <나는 홈리스 월드컵에 간다>라는 장편 다큐멘터리도 만들었어요.

 

사람에서 사회로 관심사를 확장했네요. 그다음 단계가 스튜디오펩스인 건가요?

예찬 맞아요. 모자이크 때 같이 했던 친구들이랑 우리의 색을 잃지 않은 상업 영상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따뜻하면서도 재기 발랄하고 약간의 트렌디함은 놓치지 않는, TVC와 스낵 콘텐츠 중간의 영상을 만드는 팀이 되려고 노력했죠. 다행히 생각하는 대로 잘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요. 상업적인 울타리 안에 중간중간 우리 색을 입힌 프로젝트를 배치하고 있거든요. 몇해 전에는 저와 장인어른이 함께 다녀온 아이슬란드 여행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만들었어요. 파타고니아, 에어비앤비, 고프로 등에 먼저 협찬과 협업을 제안해서 진행했는데, 그렇게 길을 만들고 나니까 결이 비슷한 곳에서 작업의뢰가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우리 색은 우리가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랑 씨는 옆에서 지켜보면서 어땠어요? 아이들을 돌보면서 한번씩 부러운 마음도 들었을 것 같아요.

사랑 그린이가 배 속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간단한 스케치 같은 건 도와줬는데, 첫 출산 이후로는 지금까지 일을 못 했어요. 그렇지만 부럽다기보다는 다행이라는 마음이 커요. 같은 업계에 있으니 남편을 보면서 제가 따라갈 수 있잖아요. 요즘 카메라는 뭘 쓰는지, 현장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그런 부분들요. 저는 여전히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나 제 이야기도 해보고 싶은데, 정말 시간이 없네요. 물리적인 시간을 뛰어넘어서 무언가를 해내는건 정말 힘든 일이더라고요. ‘우당탕탕 삼남매’라는 유튜브채널도 운영했었는데 업로드 못한 지 몇 년 됐어요(웃음).

 

그린이가 태어나고 그다음 해에 봄이, 또 그 다다음 해에 푸름이가 태어났어요. 연이은 출산만큼 아이를 대하는 스킬도 점점 늘었을 것 같은데요.

예찬 음… 생각해보면 저희가 첫째 때도 아등바등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사랑 육아에 관해 모르는 게 많았는데도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책을 찾아보진 않았어요. 그래서 걱정을 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옆에 있는 사람이 워낙 무덤덤하다 보니까 덩달아 더 평온했던 것도 있고요. 남편이 항상 “그 정돈 괜찮아. 아이들은 어른보다 훨씬 강해.”라고 말해줬거든요. 

예찬 ‘아이는 강하다’가 제 첫 육아 신념이었어요.

어떻게 그런 확신이 있었어요?

예찬 제가 그렇게 자랐나 봐요(웃음). 어떤 아이든 자생할 수 있고 자기가 필요한 걸 찾아낼 수 있다고 믿어요.

 

‘아이는 강하다’는 말을 자꾸 곱씹게 되네요. 요즘도 전문 지식에 기대지 않는 편인가요?

사랑 아이들 24개월까지는 육아서를 전혀 찾아보지 않았어요. 욕구를 충족해 주고 안아주고 달래주고 같이 많이 놀아주고 사랑을 주면 무럭무럭 자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이 자아가 생기고 나니까 ‘나는 이게 맞는 것 같은데 얘는 왜 이렇게 나오지?’ 하는 상황이 계속 생기는 거예요. 책이나 티브이 프로그램을 찾아보면서 아이가 이런 상황에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정상이구나, 그동안 내 좁은 생각 안에 아이들을 가두면서 키운 것일 수도 있겠구나, 깨달았어요. 예를 들어, 그린이가 무슨 얘길 하다가 소리를 지르거나 대답을 너무 성의 없게 하면 좀 엄하게 “그린아, 엄마한테 그러면 안 되지.” 했는데, 그런 아이의 감정도 수용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잘못했어!” 하고 대충 사과하고 넘어가도 아이는 잘못을 인정했다는 거죠. 그런 부분을 이해하면서 관계가 훨씬 좋아진 것 같아요. “그래, 너 잘못했어? 알겠어.” 하고 끝이 나요.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한 게 이 아이에게는 아닐 수 있다는 걸 계속 배우고 있어요.

예찬 저 역시 처음엔 우리 안에서 답을 찾아보려는 생각이 훨씬 강했어요. 모든 아이는 다르고 모든 관계는 개별적이니까요.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으니 자연스럽게 아이가 원하는 걸 알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죠. 그런데 최근에 사랑이의 방식을 보면서 꼭 그게 답은 아니라는 걸 느껴요. 육아라는 게, 큰 방향성을 정해 놓으면 오랜 습관 속에서 잘못된 디테일들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방향을 더 잘 잡기 위해서 공부가 필요한 것 같아요.

 

아이의 마음만큼 엄마 아빠의 마음을 아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할 것 같아요.

예찬 저는 혼자만의 시간이 거의 필요 없는 사람 같아요. 내면에는 내향적인 성향도 있겠지만 극단적인 외향인이에요. 혼자 있는 것보다 가족들이랑 부대끼는 게 좋고 여행도 아들이라도 하나 데리고 가려고 해요(웃음).

사랑 저는 반반이에요.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하고 친구들 만나서 육아 말고 다른 이야길 하는 것도 좋아해요. 애들이 더 어릴 땐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서 수영을 갔어요. 낮에는 아무것도 못 하니까 그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었죠. 올해부터 막내 푸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6~7년 만에 처음으로 혼자만의 시간이 생겼어요. 그동안 병원에 가거나 운동을 하거나 정말 기본적인 것들을 못 하고 살았는데 할 수 있게 돼서 정말 행복해요. 아침 열 시부터 세 시 반 정도까지 수영, 필라테스, 도예를 해요. 남편이 바쁜 초등학생 같다고 해요(웃음).

초등학생보다 더 바쁘신 것 같은데요(웃음)? 최근 몇 년 동안 SNS에 해시태그 ‘#그린봄푸름모험일지’를 업로드하고있죠. 다섯 식구가 카누를 가지고 모험을 떠나는 프로젝트같은데, 어떻게 시작된 거예요?

예찬 아이들이 조금씩 커가니까 좀더 먼 자연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박, 캠핑, 이것저것 검색해 보다가 카누를 싣고 캠핑하는 분을 발견했어요. 예전에 배를 한 대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마침 그분이 막 공방을 차리고 수강생을 모집하던 때라 당장 연락해서 제가 첫 수강생이 되었어요.

 

카누를 직접 만드는 과정은 어땠어요?

예찬 저는 ‘스트레스를 푼다’는 개념 자체가 별로 없는 사람이었어요. 스트레스가 쌓여도 자고 일어나면 그냥 잊고 지냈는데 카누 만들면서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게 뭔지 처음으로 알게 됐어요. 스트립을 하나 올리고 그 위에 또 올리고, 올리고, 사포질을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계속 밀고 닦는 단순 반복 작업에 가까워요. 가끔 밤에 애들 재우고 공방에 가면 정말 고요한 상태에서 두세 시간을 땀 뻘뻘 흘리며 집중할 수 있어요. 대화도 없고, 일 생각도 안 하고, 그 순간만큼은 뇌가 완전히 쉬는 거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땐 오히려 생각이 많아져 뇌에 스트레스가 많이 주어진다고 하더라고요. 오랫동안 손에 잡히지 않는 영상 작업을 해왔는데, 물성이 있는 작업을 한다는 쾌감도 있었어요.

 

아빠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었네요. 카누로 뭘 할 건가요?

예찬 아이들이 들으면 안 되는 거라 조용히 이야기할게요. 카누를 타고 진짜 보물찾기를 하는 거예요. 전국에 갈 곳을 미리 정해 놓고, 구석구석 보물을 숨겨 놓으려고 해요. 보물과 보물 상자도 만들 거예요. 모험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예상치 못한 가치들을 발견하게 되겠죠. 인내를 배우거나 고요함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런 가치가 진정한 보물이라는 메시지를 담아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어요. 놀러 다닌다는 핑계로 답사는 계속하고 있고, 기록도 조금씩 하고 있기는 한데 시간이 너무 없어서 진도가 안 나가네요. 정확한 기약은 없지만 일하지 않을 땐 머릿속이 그 생각으로 가득해요.

함께하는 시간의 농도

“엄마가 화내도 우리는 엄마를 사랑해.”

그린이, 봄이, 푸름이, 각자 어떤 아이들인가요?

사랑 일곱 살 그린이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책과 자연을 좋아하는 아이예요. 긴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고요. 늘 엄마, 아빠랑 함께해서 그런지 무엇이든 어른처럼 해내고 싶어 하는 완벽주의적인 성향도 있어요. 참, 종이접기를 엄청 잘해요. 세 살 때부터 아빠랑 종이접기를 했거든요. 

 

봄이와 푸름이는요?

사랑 봄이는 정말 긍정적인 여섯 살에요. 뭘 해도 하하하 웃고 받아들여요. 엄마가 봤을 땐 속상한 일도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단단한 마음을 가졌어요. 오빠와 동생에게 양보도 잘하고요. 쑥스러움을 많이 타지만 본인이 해야 하거나 할 수 있는 일은 “혼자 할 수 있어!”라며 끝까지 해내요. 네 살 막내 푸름이는 자기 주장도 강하고 아주 다부진 친구예요. 언니, 오빠랑 함께 자라서 또래 친구들보다 눈치도 빠르고요. 가장 어린데도 전혀 꿀리지 않고 놀이를 리드하기도 해요.

 

아이들 특성이 참 달라요. 물론 사랑이 베이스겠지만, 엄마, 아빠가 아이들에게 갖는 감정의 형태가 조금씩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랑 막내는 언니, 오빠와 엄마, 아빠의 사랑을 넘치게 받고 있어서 아직까지는 그저 귀여울 뿐이고 (웃음) 봄이는 늘 무던하고 양보하는 타입이어서 오히려 마음 쓰이는 부분이 있어요. 그린이에게는 첫째라서 드는 미안함, 애틋함이 있어요. 그린이랑 봄이 둘 키울 때는 골고루 사랑을 주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하는데, 사진 속 그린이를 볼 때면 마음이 아파요. 고작 17개월에 오빠가 된 거거든요. 첫째여서 더 의지하고 다그쳤던 것 같아서 늘 마음에 걸려요.

 

그래도 엄마, 아빠와의 유대감이 무척 깊어 보여요.

예찬 어린 봄이를 신경 쓰는 만큼 제가 그린이를 챙겨야 하는 시간도 길었어요. 그래서 세 아이중에 개인적인 유대가 가장 깊죠. 그린이와는 성격과 취향이 비슷해요. 무엇을 만들거나 자연 속에서 뭔가를 찾아내는 걸 둘 다 엄청 좋아하거든요. 대부분의 상황에서 서로 아무 말 없이 있어도 마음이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받아요. 아마 둘만의 시간을 보내면 하루 종일 엄청 행복할 거예요.

 

두 분 모두 아이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알아차리고 소통하시는 것 같아요. 평소 아이들과 어떻게 대화하나요?

예찬 자기 전에 대화를 워낙 많이 해요. 그린이 말 못 할 때부터도 다 알아듣는다고 생각하고 말했어요.

사랑 누워서 한 시간쯤 수다를 떠는 것 같아요.

예찬 엄청나게 다양한 주제가 쏟아져 나와요. 과학, 동물, 세상, 종교, 철학… 거의 호기심 천국이죠. 최근에는 그린이가 덧셈이 궁금했나 봐요. 5 더하기 7처럼 한 자릿수에서 두 자릿수로 넘어가는 계산의 과정에 대해 대화를 나눴어요. 5에서 5를 더하면 10이 되니까 남은 2를 10에 더해주면 된다는 식으로요. 숫자도 정확히 모르고 더하기나 이퀄 기호도 모르는 상태에서 머릿속으로만 그걸 그려내고 이해한다는 게 저도 신기하고 재미있더라고요.

 

또 다른 관심사는 뭐예요?

사랑 요즘 친구들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 안에서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요. 여섯 살 무렵부터 관심이 확실히 커졌어요. 그린이에게 친구란 그 전까지만 해도 유치원 안에서 끝나는 관계였는데 지금은 자기 삶에 끌고 들어와서 같이 만나고 싶다거나 이래서 속상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하더라고요.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나요?

예찬 그린이 반에 이란성 남녀 쌍둥이 친구가 있는데, 어떤 친구가 “야, 너 동생 좋아하냐?” 하고 놀렸나 봐요. 그린이가 그걸 보곤 “가족끼리 서로 사랑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말해줬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친구들이 고마워했다고요. 유치원에서 겪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곧잘 이야기하는데, 하루는 자기가 힘이 약하다고 느껴져서 속상하다고 하기에 ‘힘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고 힘만이 전부가 아니고 중요한 것들이 많이 있다’고 말해줬어요. 친구들한테 엄마, 아빠한테 들은 이야기를 하며 잘 이겨는 모습이 참 기특해요.

 

부부 간의 소통도 중요할 것 같아요. 서로 갈등이 있을 땐 어떤 식으로 풀어요?

사랑 같이 언성을 높이는 싸움은 거의 없고 저만 혼자 다다다 말하고 마는 편이에요. 사실 저는 불편한 대화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어서 친구들한테도 속 깊은 얘기나 고민은 잘 안 털어놔요. 그래서 남편한테도 기분 나쁜 일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이걸 말해도 되나? 이게 기분 나쁜 일이 맞나?’ 사람이 너무 쪼잔해 보이고 자존심도 상하고…. 그래서 한 1년을 그거 때문에 속앓이를 했어요. 말은 안 하는데 티는 다 나고(웃음). 남편이 그 시간을 많이 기다려줬어요. 속마음을 스스로 꺼내서 이야기할 수 있도록요.꾹 참기만 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흘러가 버리는 거지. 불만을 밖으로 꺼내는 게 자존심 문제가 아니라는걸 깨닫고 나서부터는 엄청 잘 얘기해요. 저희 집 음식물 쓰레기는 남편 담당인데요. 예전엔 “오빠 저거 버려야지.”가 입 밖으로 안 나왔지만 지금은 “오빠 저거 많이 쌓였다. 버려야겠어!”라고요(웃음).

예찬 저는 감정적인 대화조차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요. 내 잘못만 먼저 생각하고, 상대 의중을 파악하려고 집중하는데 쉽지는 않죠. 저도 속은 부글부글 끓는 상태지만 그걸 드러내려고 하지는 않는 편이에요.

사랑 아니에요! 제 뒤통수에 대고 욕한다고 했어요.

예찬 (웃음) 출근할 때 특히 이만큼씩 욕 먹으면서 나오는 날이 있는데요. 그때는 이제 뒤에다 대고….

사랑 저는 아직 한 번도 못 봤는데 듣고 나니 자꾸 뒤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눈 마주치면 또 웃기고, 금방 풀려요.

ⓒ김예찬

안 보이는 데서 해결하시네요. 그럼 됐죠 뭐.

사랑 그럼요. 사람이 그럴 수 있죠(웃음). 음, 다른 건… 저는 남들한테는 말을 상냥하게 하는데 남편한테는 그게 잘 안 돼요.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존중하고 좀더 부드럽게 대해야 하는 건 아는데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올해 자유 시간이 생기고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면서 모든 게 많이 좋아졌어요.

 

다둥이 가족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온전히 집중할 시간이 없다는 것, 그래서 아이들 마음이 다칠까 걱정하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두 분도 이런 고민하고 계신가요?

사랑 그렇죠. 그래도 평소에는 가끔 한 명씩 몰래 빼내서 데이트를 해요. 그린이는 아빠 안 바쁜 날엔 거의 한 시간씩 같이 만들기를 하고, 푸름이랑 봄이는 둘이 너무 돈독해서 잘 놀더라고요. 작년부터 아이들 생일엔 유치원에 안 가고 엄마, 아빠랑 셋이 종일 노는 날로 정했어요. 사실 한 명씩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는 못하지만 저희가 함께하는 시간이 워낙 길고 농도가 짙어서 아이들이 크게 부족함을 느끼지는 않는 것 같아요. 오히려 제가 아쉬워요.

 

가끔은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엄마 아빠의 마음을 헤아려 주기도 하죠?

사랑 최근에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엄마도 사람이니까 화낼 때도 있고 지칠 수도 있어. 하지만 화는 났어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아.” 아이들이 그러더라고요. “엄마가 화내도 우리는 엄마를 사랑해.”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아, 아이들이 엄마의 짜증 내는 마음을 이렇게 받아주는구나. 내 마음을 알아주고 있구나.’

 

마지막 질문이에요. 아이들과 어떤 관계로 나아가고 싶어요?

예찬 같이 있으면 즐겁고 계속 놀고 싶은, 제일 친한 친구이고 싶어요. 지금 아이들에게 제안하는 놀거리도 제가 같이 즐거울 만한 것들이에요. 물론 아이 시선으로 고르기는 하지만 재미없는 걸 같이 하는 건 너무 고역이거든요. 거기까지가 끝인 것 같아요. 아이들이 저를 울타리로 느끼거나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아버지의 품으로만 생각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없어요. 할 수 있는 만큼 재미있게 놀 거예요. 아이들은 나중에 살고 싶은 대로 잘 살 거라고 믿어요.

사랑 저는 아이들에게 어떤 상황이든 자신을 공감해 줄 수 있는,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그래서 무슨 이야기든 털어놓을 수 있고 그래도 비난받지 않는다는 확신이 서는 존재요. 기쁨, 슬픔, 모든 마음을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김예찬

다정하게 마음을 나누고 전하는 법

기타 치며 노래 이어 부르기

기타 치는 게 취미라 세 아이들의 노래를 하나씩 만들어 줬어요. 가끔 모여서 함께 노래를 부르곤 하는데, 순서대로 한 소절씩 이어 부르며 이야기를 만들어 갈 때가 참 재미있어요.

들꽃 선물하기

아이들이 엄마에게 잘못했을 때는 제가 슬쩍 들꽃을 선물해 주면 좋겠다고 귀띔해 줘요. 워낙 자연에서 채집하는 걸 좋아해서 아이들도 좋아하고, 꽃과 마음을 함께 받는 엄마도 좋아해요.

에디터 이다은

포토그래퍼 정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