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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작가 안녕달
DEAR, WH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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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를 전하고 싶은 이에게
안녕달
그림책 작가
다정한 그림과 정갈한 말씨로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 안부를 건네는 작가가 있다. ‘안녕달’ 작가의 그림책 안에서 마주한 세상은 따뜻하고 엉뚱하고 소란스럽고 어렵다. 손가락으로 그림을 하나씩 짚어가면서 어른과 아이의 세계가 조금씩 허물어진다. 잔뜩, 진하게 안부를 전하고 싶은 이에게 질문을 건네보기로 했다
안녕달 작가님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다양한 일러스트 작업을 보았어요.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활동이 먼저였던 것 같은데, 그림책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졌어요.
대학 다닐 때 서점에 전공 서적을 구경하러 종종 가곤 했는데, 정작 사서 들고 오는 책은 그림책이었어요. 그래서인지 과제로 그림책을 한 권 만든 적도 있어요. 그러던 중 그림책 공모전을 알게 되었고 졸업 후에 더미를 만들어서 보냈는데 잘 되지 않았죠. 그래도 일을 간간이 하다가 남는 시간에 그림책 더미를 만들어 공모전에 내거나 투고를 했어요. 그리고 다행히 첫 그림책이 나오게 되었어요.
홈페이지에서 일상 속 기억에 남는 일화를 그림과 짧은 글로 기록한 ‘빈종이’라는 항목이 무척 흥미로웠어요. 이런 작은 것들을 기록하는 삶이 안녕달 그림책을 만드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을까요?
그렇기도 한 것 같아요. 기록하지 않으면 대부분 잊어버리니까요. 그래서 지나가는 기억들을 잊지 않으려고 항상 일기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게으름에 지고 말아요. 이런 질문을 받으니 갑자기 게으름을 좀더 이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큰 사랑을 얻은 《수박 수영장》과 《할머니의 여름휴가》에는 따뜻하고 발랄한 상상력이 담겨 있어요. 이런 상상력의 첫 지점이 궁금해요.
사실 너무 오래 전이라 정확하게는 생각이 안 나는데 《할머니의 여름휴가》는 평범해 보이는 할머니의 숨겨진 즐거운 일상을 그려보자 하면서 시작했던 걸로 기억해요. 그리고 《수박 수영장》은 제가 수박을 너무 좋아해서 여름에 수박 먹다가 그 시원함과 수분 가득한 질감이 재미있다고 느끼면서 이야기가 생기고 살이 붙는 식으로 만들어졌어요.
예전에 온라인에서 유년시절에 보았던, 가장 기억에 남는 동화나 그림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글이 굉장히 뜨거웠던 적이 있었어요. 손가락이 성냥이 되는 이야기나 콩이 있는 이불 위에서 잠에 들지 못하는 공주 이야기 등이 다양했죠. 작가님 유년시절의 기억에 남는 그림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말씀하신 콩이 있는 이불 위에서 잠 들지 못하는 공주 이야기랑 단추 넣어서 수프 만드는 이야기 같은 건 읽은 기억이 나요. 제가 어릴 때는 지금처럼 책이 많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중고등학교 때 수학 과외 선생님의 아이 방에 그림책이 빼곡히 꽂혀 있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그때 본 가브리엘 뱅상의 《비 오는 날의 소풍》이라는 책이 좋아서 나중에 더 큰 뒤에 샀어요.
물 흐르고 경치 좋은 산속 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셨다고 했어요. 자연과 가까운 삶이 그림을 그리는 자세나 시선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나요?
그 학교에 다닐 때는 과제 하느라 매일 바빠서 산속 학교를 좀처럼 누려보지 못했어요. 그리고 그때는 번화가 하나 없는 산속 학교에 다니는 걸 좋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학교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라곤 가파른 등굣길을 등산객들과 오르면서 올려다본 현기증 나게 노란 은행나무들과 파란 하늘 같은 거예요. 그땐 그걸 누릴 시간도 없이 잘 못 보고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저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럽게 계절이 지나가는 걸 느끼며 살았나 봐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림에 계절 표현하는 걸 좋아해요.
그림은 자신의 내면을 시각화하는 작업이기도 해요. 언제 가장 그림이 그리고 싶어지나요?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처럼 아무것도 안 하는 빈 시간에 종이와 펜을 들고 낙서하는 것을 좋아해요. 잘 그릴 필요 없는 그림 낙서는 좋은데 그림책 마감 할 때는 잘 그려야 돼서 그때는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마감 같은 거 안하고 평생 낙서만 하고 살면 좋겠어요(웃음).
그림책의 가장 큰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누구나 볼 수 있을 만큼 어렵지 않고 다시 쉽게 꺼내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두껍고 어려운 책들은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다시 꺼내 읽기가 부담스러운데 그림책은 책 정리를 하는 중간에도 ‘이런 책이 있었네.’ 하면서 슬쩍 열어 읽어보고 다시 넣어둘 수 있어요.
어른들에게도 그림책을 권한다면, 왜 어른들에게 그림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누군가의 집에 놀러 갔을 때 문제집으로 가득 찬 책장을 보면 쉴 틈 없이 바쁘게 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돼요. 다들 바쁘게 사는데 얼마 안 되는 휴식 시간에 두꺼운 책을 읽는 건 쉽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하루하루 사는 데 치여서 어느새 책과 너무 멀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그림책으로 다시 시작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림책은 모든 연령이 읽을 수 있을 만큼 어렵지 않지만 어른이 돼서 보는 그림책에는 전에 보지 못한 더 많은 것이 담겨 있거든요.
할머니 집의 개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메리》에서 평온함을 넘어선 슬픔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메리는 실제로 제가 좋아하던 할머니 집 개 이야기예요. 그래서 책 속에 실제로 있던 사건도 담겨 있어요. 처음 메리가 집으로 오던 날 풍경과 할아버지 장례식 날에도 메리가 꼬리를 흔드는 모습이 담긴 장면이요. 제가 본 있는 그대로를 담았죠. 진짜 세상에 존재하던 메리의 삶의 부분이 담긴 이야기여서 아름답지만은 않게 표현 된 것 같아요. 그림책의 주 독자층이 아이들이어서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제가 만들고 싶은 그림책은 행복만 가득한 낙원 같은 세상은 아닌 것 같아요.
사람들에겐 저마다 자신만의 터닝 포인트가 있어요. 인생의 결이 달라지게 된 전환점이 있는 거죠. 작가님의 터닝 포인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림책 중에는 첫 책 《수박 수영장》이요. 다행히 《수박 수영장》이 잘돼서 《안녕》처럼 조금 난해할 수 있는 책을 낼 여유가 생겼어요. 대중적이지 못한 책도 가끔 낼 수 있는 쿠폰을 받은 것 같아요. 다양한 책을 만들 수 있는 이 쿠폰을 잘 쓰고 싶어요.
매일 맞이하는 하루지만 내게 가장 맞는 시간이 있어요. 작가님은 하루 중 언제를 가장 사랑하나요?
세상이 조용해지는 밤 시간이요. 그때 창문 열어놓고 창밖을 보면서 빈둥대는 걸 제일 좋아해요. 저희 집 앞에 아카시아 나무들이 있는데 요새는 그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걸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안해져요.
안녕달 그림책 시리즈는 모두 상상력 넘치는 이야기로 사랑을 받았어요. 그림책 스토리를 처음 구상할 때 가장 먼저 염두에 두는 것이 있나요?
처음부터 뭘 염두에 두고 구상한다기보다는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풀어가요. 이야기를 만들 때 보통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이어져서 어떻게 만들어야지 하기보다는 생각이 흐르는 대로 두는 편이에요.
《안녕》에서는 지금까지와 다르게 가장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어요. ‘죽음’이라는 소재는 어디서 영감을 얻었나요?
《안녕》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죽은 누군가가 살아 있는 이의 새로운 만남을 지켜보는 이야기였어요. 그래서 그 누군가의 죽음이 전제되어야 했죠. 주인공이 죽지만 죽음에 무게가 실린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죽음보다는 헤어짐이라고 해석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아요.
《안녕》은 네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 지금까지 책 중에서 가장 분량이 길어요. 조금 느리고 긴 호흡을 설정한 이유가 있나요?
그림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만들기 시작해서 길어졌어요. 원래는 챕터3과 4를 그렸는데 그걸로 설득하기 힘든 부분들이 있어서 이야기를 보충하려고 하다 보니 챕터2와 챕터1을 차례대로 그리게 됐어요.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긴 이야기를 쓴 게 아니라 도저히 짧게 쓰기 힘들어서 길어지게 됐죠.
《안녕》의 등장 인물들은 말이 거의 없어요. 그 여백은 오롯이 독자에게 전해지는 듯한 느낌도 들고요.
글이 필요한 부분이 별로 없었어요. 그림책을 읽을 때 보통 글을 읽은 뒤 그림을 보게 되는데 불필요한 글이 있으면 주인공의 감정을 따라가는 데 방해가 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글을 굳이 넣지 않았어요. 챕터4에 글이 들어가게 된 건 그 부분의 원형이 애니메이션이었기 때문에 내레이션 파트를 글로 넣은거고요.
소시지 할아버지는 결국 세상을 떠나 사후 세계로 향했지만, 사람들에게 여전히 자신이 ‘안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우리 각자의 안녕과, 또 안부를 묻는 안녕. 많은 생각이 오가더라고요.
작업할 때 원래 가제는 ‘만남’이었어요. 그러다 완성할 때쯤 제목을 정해야 하는데, 이야기를 쓰다 보니 만남과 헤어짐에 관한 이야기가 되어버려서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은 ‘안녕’이 되었어요. 제목이 검색되기 어려워서 이대로 출판되지 못할까 봐 걱정했는데 편집자님이 열심히 설득해주셔서 다행히 《안녕》으로 나왔어요.
폭탄 아이와 불과의 만남까지, 소시지 할아버지가 이들을 만나게 한 이유가 있었나요?
원래는 강아지가 폭탄 아이와 불과 만나는 것을 소시지 할아버지가 지켜보는 내용이었는데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소시지 할아버지 이야기가 길어져 버렸어요. 그렇기 때문에 소시지 할아버지 서사에 다른 만남을 넣은 것이라기보다는, 어쩌다 보니 이야기가 소시지 할아버지 서사가 된 것에 더 가깝죠.
더 길어진 분량만큼 힘든 점도 있었나요?
아무래도 마감할 때 제가 봐야 하는 분량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어요. 하지만 저만 힘든 게 아니라 저를 담당한 편집자님과 디자이너님 모두 힘들어하셨어요. 양이 많다 보니 마감쯤에는 두 분 다 휴일에 나와서 늦게까지 일하셔서 정말 죄송했어요.
아티스트의 아티스트가 궁금합니다. 작가님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책 작가는 누구인가요?
그림책 《감기 걸린 날》과 《잘 가, 안녕》을 그리신 김동수 작가님을 좋아해요. 낙서한 듯이 그린 그림도 너무 좋아하고 이야기도 귀여워요. 전에 《감기 걸린 날》을 무척 좋아해서 그 책이 나온 공모전에 열심히 더미를 냈을 정도였어요.
이번 겨울, 작가님의 책을 선물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떠오릅니다. 작가님의 책 앞장에 적을 단어 하나를 떠올려본다면, 어떤 단어를 추천해주고 싶은가요?
제목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겨울에 어울릴 책으로 《안녕》과 《메리》가 떠오르네요. ‘안녕’은 제목이 인사 같아서 따로 글을 적지 않아도 많은 걸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메리’도 듣기만 해도 추억에 젖는 이름이라 그대로 좋을 것 같고요.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가요?
가끔 다시 꺼내보게 되는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희 집에는 공간이 많지 않아서 다시 읽지 않을 것 같은 책은 버려야 하는 순간이 종종 와요. 다른 누군가도 그럴 텐데요. 제 책이 그 누군가가 책 정리할 때 언젠가 또 읽을 것 같아서 다시 꽂아 두는 책이 되면 좋겠습니다.
안녕
글·그림 안녕달ㅣ창비
에디터 ***
포토그래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