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rage To Say The Wrong Answer

오답을 말하는 용기
작가 무루

어릴 적 나는 늘 열 명 중 여덟 명에 속하는 아이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선택한 길의 대부분이 평범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간중간 가보고 싶던 길도 험난해 보이면 지레 겁을 먹고 돌아선 덕분일 테다. 아마 앞으로도 누구도 크게 반대하지 않고 깊게 우려하지 않는 길로 걸으며 나이 들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삶이 더 궁금했다. 열 명 중에 두 명이 되기를 선택한 사람. 나머지 여덟 명과 비교하는 대신 자신의 방식을 좀더 믿기로 한 사람. 오답이 정답이라고 우기는 게 아니라, 그저 오답 뒤의 세계를 말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수많은 일요일

안에서 지켜내는 삶

요즘 서점 곳곳에서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를 만나고 있어요. 어떻게 지내시나요?

처음에는 바쁜 줄 몰랐는데 이번 주가 마의 주간이에요. 그저께 EBS에서 〈신예희의 뭐하고 사세요〉를 녹음하고 오늘 《시사IN》 첫 마감이에요. ‘원고지 7-8매쯤이야.’ 하고 시작했는데 연재가 처음이어서 그런지 죽어도 안 써지네요(웃음). 인터뷰 끝나면 열심히 마감하고, 다음 주에는 최근 번역에 참여한 비올레타 로피즈Violeta Lópiz의 그림책 《노래하는 꼬리》 북토크를 해요.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읽기 안내자로 불리기도 해요. 어떤 수업을 하고 있나요?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읽기’와 ‘문장에 대하여’라는 수업이에요. 보통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한 번, 목요일과 토요일에 한 번씩 일주일에 세 번 진행해요. 그림책 수업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들과 함께, 문장 수업은 안에 있는 이야기를 밖으로 표현해서 어딘가에 닿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함께 해요. 처음에는 단순히 좋은 그림책과 문장을 읽는 거라고 여겼는데 결국은 각자의 이야기로 연결되는 것 같아요. 요즘 워크숍 형태로 창작을 시도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 하고,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등학교 때 무용, 작곡, 밴드에 발을 들였다 빼며 수많은 ‘삽질’을 해왔다고 했어요.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였나 봐요.

지루함을 못 참았던 것 같아요. 짧은 호기심을 자주 충족하는 방식으로 살았기 때문에 항상 산만한 아이라는 지적을 받았어요. 초등학교생활통지표에 ‘교우 관계는 원만하나 산만함’이라고 적혀 있었어요(웃음). 부모님께서 많이 걱정하셨죠. 당시에 산만하다는 건 공부를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의미였으니까요.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서 객관적으로 봐도 저는 집중력이 좀 떨어지는 편이더라고요. 사무직 아르바이트를 한 번 해본 적이 있었는데 죽도록 시간이 안 갔어요.

 

어떤 일이었는데요?

대학 1학년 여름방학 아르바이트였어요. 사무실에 앉아서 문서 작업을 하는데 ‘아직도 열한 시라고? 그럼 언제 여섯 시가 되지?’ 이런 생각을 계속했어요. 그때 나는 이런 일을 못 하겠구나, 생각했던 것 같아요. 매뉴얼대로 해야 하는 일을 시켜놓으면 꼭 시키지 않은 딴짓을 했어요.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사실은 계속 새로움을 찾으려는 시도를 한 거죠. 아이들 가르치던 첫 직장도 결국 1년 반을 다니다 그만 두고, 동네에서 혼자 아이들을 모아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을 15년 남짓 했어요. 그 아이들이 자라면서 파도에 밀려오듯 어른을 위한 수업을 하게 되었네요.

“비혼, 여성, 프리랜서, 집사, 채식지향주의자, 그림책 읽는 어른… 세계의 가장자리를 살아가는 마음가짐에 관하여”라는 책 소개 문구가 계속 머리를 맴돌아요.

지금 제가 속해 있는 카테고리는 성장기에는 상상할 수 없던 범주예요. 아마 직장인이 아닌 채로 밥벌이에 성공한 순간부터 그 벽이 허물어진 것 같아요. 직장을 그만 두고 혼자 뭔가 해보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 친구들, 심지어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조차 제 선택이 좋은 결과를 낼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모두 걱정만 했죠. 직장생활은 노동 강도는 셌지만 급여도 비교적 높았고 안정적이었거든요. 그때 제가 50만 원짜리 적금을 넣을 때였는데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하고 생활비는 고사하고 적금도 못 넣었어요. 성공적인 시작은 아니었죠. 확신이 있었다기보다 그냥 배짱을 부렸던 것 같아요. ‘뭐, 할 만하네. 괜찮네.’ 정도였지만, 다른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는 일을 나 자신은 믿어 주었어요. 결과적으로는 후회하지 않았고요. 그 최초의 경험이 이후의 삶에 선택의 기준이 된 것 같아요. 어차피 불확실하고 불안하다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덜 후회하는 쪽이 낫다고, 꼭 모두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믿게 됐어요.

 

먹고 싶은 음식을 직접 만들고 자기 공간을 식물과 책으로 채우고 있어요. 좋아하는 것들을 가까이에 두는 모습이 좋아 보여요.

색, 맛, 향, 감촉 같은 감각적인 인풋을 좋아해요. 시간에 따라달라지거나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나면서 변하는 것도 그렇고요. 요리라는 게 열이나 염분 혹은 어떤 물리적인 방법으로 재료를 변화시켜서 완성된 맛을 향해 가는 거잖아요. 음식을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 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결과물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일이 재미있어요. 식물을 키우면 서는 또 새로운 세계가 열렸어요. 작업실 테라스에 식물을 두고 가꾸며 벌이 예쁘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옛날에 벌은 가까이 오면 위험한 곤충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무섭지 않아요. 벌들이 꽃에 앉아 꿀을 먹고 있을 때 물을 뿌리면 짜증내는 거 모르셨죠? 그런 걸 보고 있으면 내가 모르던 세계의 아름다움이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삶에 대한 태도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것 같아요.

잉여시간이 많아서 그래요. 직장을 다녔다면 이렇게 못 했을거예요. 직장인들은 소속된 공동체에 많은 부분을 기여해야 하잖아요. 프리랜서는 본인이 할 만큼만 일을 하면 돼요. 본인만 만족할 수만 있다면 일하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죠. 시간과 체력이 남으면 사람이 딴짓을 하게돼요. 어릴 때 교과서에서 배운 농업 혁명의 의미를 살면서 격하게 체감하고 있어요. 종일 일에 매달려야 했다면 새로운 것, 재미난 일을 찾아볼 궁리는 하지 못했을 거예요.

 

남는 시간에 나태해지지 않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저는 동료도 가족도 없는 형태의 삶을 선택했어요. 후회하거나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깨를 같이 걸고 보폭을 맞출 사람이 없으면 쉽게 허무에 빠지는 건 사실이에요. 10년 뒤에 죽으나 지금 죽으나 다를 게 없다는 생각도 들죠. 마음이 가라앉는 날에는 혼자가 아닌 사람들보다 우울감에 잠식될 확률이 훨씬 더 높기 때문에 스스로 삶의 의미와 기쁨, 그밖에 삶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중요한 동력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해요. 살아보니 그건 건강한 습관과 관계가 있더라고요. 삶을 건강하게 해줄 작은 습관을 잘 채워 넣어 보려고 의지를 많이 다지는 편이에요.

 

어떤 습관들인가요?

집 밖에 나가서 걷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 혼자 있더라도 집안을 너무 방치하지 않는 거요. 《나무를 심은 사람》에서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노인이 처음으로 화자를 만나는 장면이 있어요. 노인의 집에는 1년 동안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데, 생각해 보면 그 노인은 1년 동안 일요일 같은 날들을 산다는 뜻이잖아요. 그런데 화자가 마주한 집 안은 너무나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노인의 얼굴은 깔끔하게 면도가 된 상태였어요. 셔츠의 단추도 어느 하나 단단하게 끼워지지 않은 것이 없었고요. 그게 저한테는 좇아야 하는 이상처럼 느껴져요. 직장인의 관점에서 보면 제 삶에는 일요일 같은 날이 더 많이 주어져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고립될 수 있고, 사회성을 검증받을 필요 없이 나태를 누리며 살 수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는 인간이 나를 좋아하기 위해서, 내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근면함과 단정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이건 곁에서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있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하더라고요. 아무도 없는 일요일 아침에 드레스업을 하는 기분이랄까요?

선택한 길로 걸어가되

위를 둘러 보며

혼자 살기로 결심하면서 무엇을 얻고 포기해 왔는지 궁금해요.

얻은 것은 자유죠. 자유롭고 싶어서 선택한 인생의 총합이 현재의 저예요. 포기한 것은 설명하기가 좀 어려운데요. 음…. 가끔 조카들을 보면 ‘아, 어쩌면 내가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성장의 한 단계를 포기한 걸 수도 있겠구나. 나에게 주어진 인생의 의미를 너무 좋아하는 방식으로만 찾아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어렴풋하지만, 부모가 되는 과정에는 굉장히 어렵고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지점이 있거든요. 제 동생은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로서, 부모가 되어 제 부모를 이해하는 성숙한 어른으로서 여러 사람에게 헌신하는 인생을 살고 있어요. 동생을 보며 ‘헌신’이라는 단어에 대해, 나는 인생에서 과연 무엇에 헌신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요. 그건 단지 더 힘들게 산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지혜를 터득해가면서 아름다운 것들을 나눌 줄 알게 된다는 의미인 것 같아요. 어쩌면 저에게는 그런 경험이 부재하거나 부족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혼에 관한 생각은 어때요?

한 번도 결혼에 대한 욕망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는 게 비혼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일 거예요.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있지만 제도가 싫은 게 아니고, 연애를 해도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이 안 들었어요. 결혼에 대한 판타지가 하나도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나 자신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에 내린 결정인 것 같아요. 좋은 관계의 기본은 이타심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거든요. 이기적이고, 자유가 너무 중요하고, 괴로운 것보단 외로운 게 나은 사람이죠.

 

결혼 말고 동거나 다른 형태의 결합도 꿈꿔본 적이 없어요?

동거하기 좋은 사람과 기회가 있었다면 시도는 해봤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다른 사람과 생활 공간을 공유하는 게 어떤 장점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연애는 떨어져 있어도 가능하잖아요. 가족이 되거나 동거를 하면 꽤 내밀한 생활을 공유해야 하는데 그게 왜 좋을까…? 그런 생각이에요. 이상한 게, 저는 어두운 걸 너무 무서워해서 밤에 불 끄고 잔 지도 얼마 안 됐거든요. 혼자 있을 때 여러 가지 공포를 겪는데도 생각이 바뀌질 않네요. 타인과의 물리적 거리가 너무 가까워지면 잘 견디지 못하는 것 같아요.

 

결심이 무척 확고해 보여요.

네. 분명 불행할 텐데 차라리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러면서도 마흔을 막 지날 즈음에는 문득 무서워지는 순간이 찾아왔어요. 어렸을 때는 나이 드는 게 뭔지 아무것도 몰랐던 거예요. 몸이 노화하는 걸 피상적으로 아는 것과 실제로 노화를 경험하는 건 다르거든요. 40을 몰랐으니, 50과 60과 70은 더 모르는 세계일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섣불리 확신하면서 산 건 아닌지 불안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 시기도 지나가더라고요. 누군들 뭘 알면서 결정하겠나 싶고요. 결국 딱 한 번만 선택할 수 있는 거라면 내 선택을 좀더 믿어주는 방향으로 가려고 해요.

그런 마음이 다시 들면 어떻게 하죠?

그럴 땐 넷플릭스를 봐야죠. 맥주 한 캔 옆에 두고요(웃음).

 

그럼에도, ‘혼자’가 ‘고립’을 뜻하지는 않기에 여러 관계를 맺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는 것 같아요. ‘주민 모임’ 얘기를 좀 들려주세요.

너무너무 심심해서 시작한 모임이에요. 일을 혼자 하면서 나처럼 사는 사람들과 만나서 얘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과 재미있는 일을 도모해 보고 싶었고요. 한 사람이 서른쯤 되면 고유하게 쌓아온 취미나 기술의 영역이 있는데, 여럿이 모여서 각자 가진 걸 나누면 좋을 것 같았어요. 2015년에 위켄드 베이커리의 베이커와 요리하는 ‘델리 후추’, 미추건축에서 건축하는 ‘송반장’, 지금은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한 분과 함께 주민 모임 1기를 시작했어요. 처음엔 엉망진창으로 굴러가는 것 같았지만 점점 사람이 모이고 경험이 쌓여가면서 어렴풋이 의미도 만들어졌어요.

 

지금은 그 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나요?

지금 주민 모임은 휴지기예요. 모임을 이대로 유지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는 마음이 너무 컸고 계속됐거든요. 누가 저한테 감투를 씌워준 것도 아닌데 제안자로서 가지던 중압감이 있었어요. 어느 순간 우리가 계속 돌고 돈다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몇 년 전부터는 주민 모임에서 가까워진 번역가 친구와 함께 《할머니의 팡도르》, 《섬 위의 주먹》 등 오후의소묘에서 출간하는 비올레타 로피즈의 책들을 번역하고 있어요. 오후의소묘 대표님 역시 주민 모임 친구인데, 모임을 하다 보니 이렇게 작은 곁가지들이 알아서 생기더라고요. 모임의 의미가 실은 새로운 가지를 내는 기둥이 되는 데 있었고, 그 가지를 내면서 의미를 다 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친구들에게 이 마음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채로 너무 투박하고 서툴게 의구심을 드러낸 게 마음에 걸리지만, 꾸준히 관계를 이어가고 있으니 언젠가는 또 무엇이 만들어질 거예요.

 

뜻이 같아 만난 친구들이니 서로 많이 의지하고 있겠어요.

그 친구들은 결혼식은 당연히 화려해야 하고, 애는 당연히 낳아야 하고, 연봉은 당연히 높아야 한다는 사회적인 통념에서 조금 자유로워요. 주류의 삶을 선택하지 않거나 그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이 느끼는 군중 속의 외로움 같은 게 있는데, 특히 사랑하는 사람한테 이해받지 못하면 되게 외롭거든요. 저는 가족들과 관계가 좋은 편인데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에 대해 충분히 대화하는 기쁨을 누리지는 못해요.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 “여기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어.” 하고 서로 응원하는 거죠.

 

관계에 대해 조금 더 물을게요. 책에서 초등학교 때 따돌림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봤어요. 그 시기에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소외의 경험을 하고 나니까 친구는 너무 소중한 존재고, 친구가 없으면 괴롭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친구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중요해서 내가 그들에게 어떤 친구인지, 그 친구가 나에게 어떤 친구인지를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성장기 내내 인간관계를 좀 미성숙한 방식으로 이어 온 것 같아요.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를 충분히 실험해 보거나 확인해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남들이 10대에 할 고민을 20대에, 20대에 할 고민을 30대에 했어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요.

무슨 고민이요?

그걸 모른다는 게 문제예요. 지나고 나야 알아요. 예를 들면, 누가 저한테 무례하거나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해요. 그러면 ‘아, 내가 몇 년 전에 했던 실수인데….’ 하면서 지난 잘못을 알아채는 거예요. 그러니까 막 화가 나는 게 아니고 등골이 서늘하죠. 사람이 꼭 경험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성숙하는 과정 에서 알게 되는 지혜가 있을 텐데 저는 모든 걸 너무 뼈아프게 경험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넘어지면서 배우는 건 참 어렵고 괴롭거든요. 아주 박박 긁어 모아서 유의미한 점을 찾자면 남의 실수에 관대해진다는 점이에요. 어마어마한 실수를 하고 크게 후회해 보거나 스스로 얼마나 미숙한 사람인지를 깨닫고 괴로워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실수를 쉽게 용인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반대로 많이 실수하는 사람은 남이 어떤 실수를 해도, 때로 화가 치밀고 관계가 망가지더라도 그 안에 약간의 연민을 느낄 수 있겠죠.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되는 이야기네요. 고양이 탄이는 지금 집에 있나요?

춥다고~ 춥다고, 에어컨을 끄라고~ 끄라고 해서 이불을 덮어 주고 왔어요. 요즘 제가 계속 바쁘니까 서운하다고 시위를 하는데, 그래도 수업 공간이 분리된 뒤로 되찾은 평화를 무척 좋아해요. 집에서 수업할 때는 낯선 사람들이 많이 와서 좀 힘들어했거든요. 탄이에게는 3년 동안 누적된 셔터 소리가 큰 스트레스가 되었던 모양이에요. 저조차도 탄이 사진을 다시 찍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이제 좀 컨디션을 회복하고 있는 것 같아요.

 

둘의 첫 만남이 궁금해요.

포토그래퍼 ‘정멜멜’님이 어느 날 트위터에 까만 고양이 사진을 하나 올렸어요. 아는 선배의 고양이인데 사정이 생겨 가족이 필요하다고요. 고양이를 키워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는데 팔로워가 많은 계정이어서 아무래도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았죠. 약간 방심하면서, 아무도 원하는 사람이 없으면 연락을 달라고 했는데 운명처럼 저한테 연락이 온 거예요. 약간 꿈꾸는 기분으로 탄이를 만났어요. 태어난 지 5개월 정도 됐었고, 한창 이갈이를 할 때라 유치를 막 흘리면서(웃음) 저희 집에 왔어요.

 

혼자 탄이를 키우면서 이것저것 변화가 많았을 것 같아요.

우선은 여행 없는 삶을 살게 되었고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낯선 존재와 살아가며 서로를 알아가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고양이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했던 선택이 뜻밖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때가 있어요. 고층에만 살다가 저층으로 이사를 한 경우가 그래요. 집에서만 지내는 고양이를 위해 나무와 새가 많은 곳에서 살게 되었는데 저에게도 좋은 일이더라고요. 어떤 일이든 선택의 이유가 내 밖에 있을 때 삶의 지형이 크게 달라지는 것 같아요. 더 넓어진다는 느낌이랄까요.

 

같이 나이 들어가는 기분은 어때요?

개도 고양이도 나이 들면 털이 세잖아요. 탄이가 네 살인가 다섯 살 때 등에 하얀 털이 딱 하나 나있는 걸 발견했는데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거짓말이야!” 이러면서 뽑아버렸어요(웃음). 이제 여덟 살이니 털이 꽤 많이 셌죠. 전에는 탄이를 두고 외출할 때 혹시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서 내가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나, 매뉴얼을 만들어놔야 하나, 하는 걱정을 꽤 오래 했어요. 가족들 중에는 고양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없거든요. 다행히 지금은 주변 사람들이 고양이의 존재를 잘 아니까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불안함이 좀 무뎌진 걸 수도 있고요. 한편으로는 먼저 떠나보낼 걱정도 되지만 제가 먼저 떠나는 것보다 백만 배는 나아요. 어릴 때 오래 키운 개를 먼저 보낸 경험도 있고 그게 어떤 슬픔인지도 잘 알지만, 그래도 사랑이 더 큰 것 같아요. 탄이의 시간이 훨씬 빠르니 이제 저와 나이가 얼추 맞겠네요. 우리 둘이 같은 나이를 산다는 건 또 그것대로 좋아요.

 

탄이는 참 거대한 존재네요.

탄이는 저에게 재미있고 새로운, 계속 알아 나가야 할 우주예요. 탄이를 통해 고양이를 싫어하는 누군가의 마음과,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밉보일까봐 날아드는 비둘기를 싫어하는 제 마음이 실은 같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사랑하는 일이 어떤 건지 조금씩 배워나가고 있고, 기쁨이라는 감정이 인과관계를 통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기쁨은 순간적이고 신비로운 감정이에요. 탄이는 제 인생에 가장 잦고, 유의미하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형태의 기쁨이고요.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나면, 지금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작작 좀 해(웃음).” 뭔지는 모르겠는데 항상 필요 이상으로 넘쳐서 후회하던 순간이 많았거든요. 차분하게 주위를 잘 둘러보라고, 봐야 할 것들을 보면서 살라고도 말해주고 싶어요.

나를 두 발로 서 있게 하는 것들

©무루

함께 읽고 쓰는 사람들 

“제가 하는 일들은 모두 책을 둘러싸고 일어나는데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 동지로, 혹은 동료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시간이 힘이 돼요. 함께일 때도, 혼자일 때도요. 건축가인 친구 S의 집 마당에서 그림책 수업을 하던 가을도 그런 날 중 하나였고요.”

©무루

새로운 시도

“처음 하는 일을 위해 용기를 내고 우여곡절을 겪고 그 일을 해본 사람의 경험을 품는 일은 다음을 기대하게 만들어요. 프로젝트 ‘이상한 일상’을 함께 꾸려가는 동료와 했던 마을정화사업은 어떤 의미로 정말 고약했는데, 동시에 배운 것이 아주 많아요. 그 방식이 아니고서는 얻을 수 없는 배움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무루

식물 생활 

“일상의 공간 곳곳에서 자라는 식물들을 돌보고 관찰하는 일이 재미있어요. 식물을 돌보기 전에는 아름다움이란 완성된 상태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모든 변화하는 과정이 아름답다고 느껴요. 세상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어떤 식으로든 성장하고 있구나, 생각하면 나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루

조카들

“이모가 어떤 사람인지 탐구하려 드는 조카들을 보면서 건강한 사람으로 잘 살고 싶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질문을 던질 때마다 일종의 프리즘이 된 기분이에요. 저라는 어른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 같아서요. 내가 이 세계에 어떤 책임을 가지고 있구나 어렴풋이 느껴요. 무엇보다 ‘다음에 또 놀자’는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 애쓰게 돼요. 그런 애씀이 저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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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다은

포토그래퍼 이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