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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사람들이 사는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그들은 작은 화면 안에서 허구의 도시를 밟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전부 현실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어딘가에 존재하는 도시로, 사회로, 일상으로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음은 분명하다.
영화는 스즈코가 교도소를 나오면서부터 시작된다. 무척 억울한 계기였지만 이제 그녀가 전과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고, 그녀는 집을 떠나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도망친다. 그때 스즈코가 만든 인생의 룰은 간단명료했다. 한 도시에서 백만엔을 모으면 반드시 그곳을 떠나겠다는 것. 익숙한 모든 것을 뒤로한 채 홀로 약속한다. 그녀는 여러 곳을 이동하면서 자신이 세운 원칙을 곧잘 지키기도 했고, 끝자락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잠시 혼란을 겪기도 한다. 잦은 만남과 이별을 겪는 이 도시에서 헤어짐에 익숙한 사람은 드물다. 짧은 시간이라도 마음을 나눈 사람과의 이별은 언제나 먹먹한 감정을 남기는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크래딧이 올라갔을 때, 자신이 머물 곳을 찾아, 계속 옮겨 다니던 스즈코의 마음을 생각했다. 어쩌면 그녀가 매번떠났던 것은 이별에 좀더 익숙해지기 위해서, 무언가를 잃어도 자신은 언제나 ‘스즈코’일 것이라 기억하기 위함이 아닐까. 전과자가 되어 불투명해진 그녀의 미래는 애초에 정해진 것이 없었기에 두려워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스즈코가 잠드는 공간은 늘 바뀌었을지 몰라도 창문을 막아주던 커튼은 한결같았다. 그녀 주변은 변했을지 모르지만, 스즈코는 자신은 스스로의 모습을 확정 지어
S# 스즈코의 방 / 여름날의 아침
또다시 떠날 준비를 하는 스즈코. 물건을 정리하며 항상 들고 다니던 커튼을 뗀다. 그녀가 동생에게 전하는 편지의 내용이 들려온다.
정리된 방에 가만히 앉아 있는 스즈코. 옆에는 큰 짐 가방이 나란히 있다.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천천히 넘겨 본다. 그대로 한참, 창밖을 바라본다.
지금부터 약 30년 후, 미래의 워싱턴에서는 프리크라임이라는 제도가 사회를 지배한다. 세 명의 예언자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범죄를 예견해, 미리 예방하는 시스템이다. 끔찍한 사고를 막고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 있지만, 예언에 사로잡혀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이 통제되는 부작용 역시 따라온다. 주인공 존은 범죄를 막지 못해 가족을 잃은 아픔을 가지고 있다. 자신과 같은 비극을 만들지 않기 위해 프리크라임 제도 아래에서 경찰로 일한다. 과거에 갇혀 미래를 지키며, 그에게 현재라는 시간은 무의미해 보인다.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은 존이 누군가를 살해하는 예언이 발견되면서부터다. 그는 스스로 추격하던 예언 시스템으로 인해 용의자가 되면서, 제도의 심각한 오류를 찾아낸다. 그 과정엔 예견된 결과를 바꾸기 위해 현재의 삶을 조작하는 사람들의 단상이 있다. 과연 그렇게 맞이한 미래를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영화의 끝에서, 존은 자신이 과거도 미래도 아닌 그 사이의 시간 안에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 지금의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화려한 액션과 톰 크루즈라는 배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삶에서 스스로 하는 선택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질문이 아닐까.
S# 달리는 차 안 / 오후
통제실 밖으로 도망쳐 나온 존과 예언자 아가사. 존은 추격자를 피해 운전한다. 아가사는 추위에 몸을 떨며,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존: 추워? 내 말 알아듣지?
존의 물음에도 아가사는 대답이 없다. 모든 것을 처음 보는 듯한 표정으로 창 밖, 도시의 모습에 집중할 뿐이다.
존: (담요를 덮어주며) 약 기운 때문이니까 곧 괜찮아질 거야. 미안해. 네 정보가 필요했어. 찾아야 할 게 있어서. 혹시 레오 크로우를 알아?
그의 물음엔 관심이 없다. 그녀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아가사: 이게 지금인가요? 이 모든 건, 현재인가요?
존: 그래. 모든 게 현재야. 밖에 나가야 하니까 당장 입을 걸 구해줄게.
아가사: 난 그냥 지쳤을 뿐이에요. 미래를 보는 일에.
아가사는 이제껏 바라던 현재를 담아두려는 듯, 창밖에 둔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자크 데미의 <로슈포르의 숙녀들>은 영화 <라라랜드>가 오마주한 작품이다. 좋은 작품의 바탕이 된다는 건 그만큼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리라. 1967년,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이 영화는 화면을 채우는 모든 구조물과 소품, 배우를 감싸고 있는 비비드한 색감의 의상까지, 지금 봐도 오래된 것에 대한 거부감이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로슈포르의 풍경과 뮤지컬의 분위기가 어우러져, 전에 없던 새로운 장르를 보는 듯 했다. 사랑을 찾는 이들의 모습이 꾸밈없이 담긴 것만으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 영화다. 아마도 감독인 자크 데미가 자신의 아내이자 영화감독인 아그네스 바르다와 함께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들은 ‘새로운 물결’, 프랑스 말로 ‘누벨바그’라는 영화 사조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누벨바그는 기존의 영화들이 따르던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흐름을 쫓아 길을 개척한 영화사의 중요한 동향이다. 이토록 도전적인 영화인들과 그들이 일궈낸 작품들 덕에 지금의 우리가 <라라랜드> 같은 소중한 영화를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속 로슈포르는 무척 아름다웠고 이 도시 속 어딘가엔, 그들의 빛나는 열정이 반짝이고 있었다.
S# 마을 축제 공연장 / 화창한 오후
마을 축제가 열렸다. 델핀과 솔랑쥬 자매가 빨간색 원피스를 맞춰 입고, 무대에 오른다.
그동안 그들이 쫓았던, 사랑을 마음껏 담은 노래를 시작한다.
삶을 사랑하고 꽃을 사랑하고 웃음과 눈물을 사랑해 낮과 밤, 햇빛과 소나기 모두 사랑해
이렇게 사랑한다면 우린 행복할 수 있어 새로운 무엇을 찾을 때
내 안의 두근거리는 모든 것을 느껴 사랑은 다시 찾아와 따뜻한 여름날 같아
사랑의 노래 꽃들의 노래 웃음과 울음의 노래
낮과 밤의 노래 비와 태양의 노래
노래가 끝나면, 춤을 춘다. 자매의 모든 동작은 서로의 호흡에 맞춰 함께 움직인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같은 영화.” 검색 창에 가장 먼저 뜨는 문장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영화를 찾았던 걸까. 나 역시 중학생 시절, 이 영화를 보며 도시에 관한 환상을 품었다. 거대한 건물들 사이에서 한 손엔 베이글을 들고 도로와 인도 사이를 총총거리며 뛰어다니는 사람들. 어른의 삶이란 이런 걸까 하며 막연히 동경했다. 주인공 앤디는 기자가 되고 싶었지만 어쩌다 보니 ‘런웨이’라는 대형 패션 매거진의 편집장, 미란다의 비서가 됐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잦은 실수를 반복하며, 뭘 하든 허둥댄다. 완벽하고 냉정한 그녀와 함께 일하며 수없이 부딪치지만 그 사이, 미란다의 숨겨진 일부분에서 자신의 조각을 찾기도 한다. 그렇게 앤디는 자기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 보게 된 것이다. 가파른 도시 안에서 우리는 종종 타인과 부딪치며 원치 않은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무턱대고 속상해하기 전에, 나도 누군가에게는 낯선 타인일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앤디처럼 무조건 버티기만 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지에 대한 고민 역시 필요하다. 도시 속 사람들의 여러 얼굴이 궁금하다면, 그녀들의 이야기를 꺼내보자.
S# 잡지, 런웨이 작업실 / 오후
눈물을 닦으며 들어온 앤디. 나이젤의 위로를 받으려 한다.
앤디: 미란다는 날 싫어해요.
나이젤: 그게 나 때문인가? 아니지. 내 문제는 아닐 거야.
앤디: 정말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한 건 무조건 당연한 거고 어쩌다 실수하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에요.
나이젤: 그럼 그만둬.
앤디: 뭐요?
나이젤: 그만둬. 새 비서는 널렸어. 지금도 5분 만에 구할 수 있어.
앤디: 내가 왜요? 너무 불공평해. 제 말은, 그냥 노력한만큼 인정받고 싶다는 거죠.
나이젤: 앤디, 솔직히 네가 뭘 노력했는데? 계속 징징대기만 하잖아. 위로를 원해? ‘아이고 불쌍한 것, 미란다가 심했지. 가여워라.’ 이런 거? 정신차려. 미란다는 자신의 일을 하는 거야. 우린 최고의 예술가들과 작업하고 있어. 할스톤, 라거펠트, 드 라렌타. 이들은 예술보다 더 위대해. 우리 삶의 일부를 창조하지. 물론 너에겐 아니겠지만. (테이블 위로 쌓인 런웨이를 들며) 이 잡지 말이야. 런웨이. 이건 그냥 책이 아니야. 로드아일랜드 촌구석에서 6형제의 막내로 태어난 소년이 축구 대신 몰래 봉재를 배우며 읽던 반짝이는 희망의 불꽃 같은 거야. 전설적인 디자이너들이 수없이 거쳐 간 이곳을 위해 남들은 죽는 시늉도 하는데, 넌 아니잖아. 너에겐 그저 스쳐 가는 자리지. 그러면서 미란다가 널 예뻐해주길 원해? 꿈 깨. 앤디.
글 김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