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hood’s End

물건의 시간

유년의 기억을 오래된 물건에 담아 바라보는 마음에 대하여.

초여름의

기억


2019년 5월 4일, 이제 막 더위가 시작된 참인 토요일이었다. 이날을 위해 몇 달 동안 준비한 행사를 하나 끝내고 뒤풀이까지 마친 후 체력과 정신력을 모두 소진한 채 집에 들어와 긴 잠을 자면서 꿈을 꾸었다. 어릴 때 살던 집의 마당이 나왔다. 계절은 현실에서와 비슷한 초여름으로 생각되었다. 바스락거리는 대추나무 이파리 사이로 잔잔히 부서진 빛의 입자들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금은 빌라가 들어서 사라진 그곳은, 내 꿈속에서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화면처럼 찬란하고 아련했으며, 동시에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배경처럼 강렬하고 비장한 느낌도 들었다. 그 당시 종종 ‘옥수수 아줌마’가 ‘구르마’를 끌고 집 앞 골목을 지나면, 어머니를 졸라 찐 옥수수를 사 먹었다. 여름을 듬뿍 담고 있던 달콤하고 찐득하던 그 맛과 그때의 공기가 입안에 맴돈다.

다음 날인 2019년 5월 5일, 늦은 아침에 고양이들의 칭얼거림에 이끌려 몸을 일으켰다. 어린이날이었다. 어린이날에 우리 고양이 어린이들을 위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좋아하는 간식을 전부 꺼내어 조금씩 덜어 (사람의 만족을 위해) 예쁘게 플레이팅하여 주는 것밖에 없었다. 몇 살이 되어도 영원한 나의 어린이들일 고양이들에게도 그때의 옥수수를 맛보여주고 싶었다.

한여름의

물건

 

어른이 되고 난 후 호화로운 진미에 길들여져 그 시절 먹던 옥수수 맛은 다시 느끼기 어려워졌지만, 대신에 옛날을 추억하는 물건들을 모으는 취미가 생겼다. 더 이상 수납 장소가 마땅치 않은데도, 조약돌로 이미 가득 찬 병 안에 모래를 흘려 넣듯, 집 안에 물건들이 점점 쌓여간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프라모델이나 빈티지 토이, 레코드, 고색창연한 잡지들을 사들이는 데 열정을 갖고 꽤 큰돈을 쓰는 것은 남모를 일종의 길티 플레저다.

정확히는 그냥 옛날 물건들이 아니라 1980-90년대의 물건을 사들인다. 그 물건들의 속성 중 더 중요한 부분은 ‘옛날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에 보고 듣고 만진 것’이다. 그 물건들이 담고 있는 좀더 핵심적인 가치는 그 낡고 예스러운 운치가 아니라 그 안에 아로새겨진 기억과 정신이다. 모든 물건들이 시간을 거치며 점점 더해지는 가치가 있다면, 또 한편으로 점점 잃어가는 무언가도 있다. 전자가 희소성이라든가 그런 비슷한 것들이라면, 후자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옛날 물건들을 모으는 기분은 한여름철 손에 쥔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바라볼 때의 그것과도 비슷하다.

가을의

마음

2006년에 회사를 시작하기 전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회사가 점차 바빠지기 전까지 나는 조금씩 프라모델을 만들었다. 그것도 요즘 나오는 정교한 스냅타이트 방식의 크고 화려한 고품질 모형보다는, 잘 맞지 않는 아귀에 덕지덕지 본드를 발라가며 만들던 공룡, 스타워즈, 포장마차나 우체국 따위의 옛날 골목 디오라마, 60년대 승용차, 80년대 건담 등이 구미에 맞았다. 하지만 욕심껏 잔뜩 쟁여놓은 모형들은 어둡고 꿉꿉한 부모님 집의 창고 속에서 뽀얀 먼지를 뒤집어 쓴 탑塔이 되어, 내 기억과 함께 조금씩 퇴색되어가고 있다. 미처 만들지 못해 처치가 곤란해져 버린 그 소중한 기억의 조각들을 생각하면 거리에 쌓인 고엽이 떠오른다. 지난여름에는 찬란한 햇살을 작은 입자로 걸러내며 한껏 존재감을 뽐내던 이파리들.

얼마 전에는 9인치 CRT 텔레비전(SONY Trinitron KV-9PT50)을 어렵사리 구했다. 패미컴 비디오 게임기를 더 완벽하게 연결하기 위해서다. 깨진 부분이나 변색, 얼룩 같은 훼손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 받침대까지 포함된 완벽한 컨디션을 구하기 위해 꽤나 품을 들였다. 공들인 만큼 보람도 큰 법이라, 새하얗고 앙증맞은 자태의 화면에 재현된 팩맨Pac-Man이나 슈퍼마리오Super Mario Bros는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렵게 구한 이 물건 또한 그리 자주 사용하지는 않으리란 것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쓰기 위해서라기보다 기억을 전시하기 위한 장치에 가까운 물건들을 찾고 모아 바라보는 내 마음을 그리 간단히 표현할 수 없다.

겨울의

우리들


혼자 컴컴한 2층 방에서 처음 턴테이블에 바늘을 올리던 순간도 기억난다. 집에 원래 놓여 있던 하드락 음반들로 시작했고, 듀란듀란이나 보이 조지 같은 팝 음악도 들었다. 요즘엔 주로 50-60년대의 재즈를 듣고 모으는데, 더 이상 새로운 음반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부분에 조금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인류가 처음 석탄이나 석유 에너지를 발명했을 때처럼, 아직 내 알량한 지식과 일천한 경험으로는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12인치 바이널이 CD보다 좋은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커다랗고 시원한 아트워크의 크기도 좋고, 디지털화 되지 않은 오래된 음악들을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지만, 무엇보다 긴 쇠퇴기를 거치는 동안 완전히 소멸되지 않은 생명력에 안심이 된다. 음반은 음악 자체보다도 그 아트워크나 물리적 소재, 꺼내고 집어넣는 자잘한 행위나 절차 위에 여러 가지 것들을 얹은 것을 두고두고 회자할 수 있어 좋다. 끈질긴 생명력의 바이널 레코드는 내 추억을 백업하기에 다른 것들보다는 조금 더 안심이 된다.

더운 계절에 들으려고 챙겨둔 음반들을 절반도 즐기지 못했는데 벌써 추운 계절에 들으려고 구입한 음반들이 방 한쪽에 새로 쌓여간다. 도쿄에서, 베를린에서, 상하이에서, 밴쿠버에서, 누군가의 시간이 아로새겨진 납작한 물건들이 빈번히 집으로 날아든다. 간혹 예전 소유자가 가사지의 마음에 드는 부분에 줄을 그어놓거나, 누군가에게 선물로 건넬 때 써놓은 인사말 같은 게 적혀 있는 경우도 있다. 다른 사람의 시간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 손안에 놓여 있다. 어떤 사연이 있길래 어떤 과정으로 이런 시간의 흔적들을 포기하게 되었을까.

계절은 이제 겨울로 접어들었다. 한때 뜨겁고 반짝이던 모든 것들은 노랗고 빨갛게 마지막 의기를 불사른 후 바싹 말라 새카맣게 변해가려 한다. 소설가 김연수의 말처럼, 이 모든 것들은 곧 시들시들 사라져 버리고 말 텐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좋은 기억을 상기시키거나, 좋은 기억을 남길 수 있는 것들을 만들고 싶다. 내 물건을 소유하는 한편으로, 남들이 소유할 물건을 만들 때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다. 집에 있는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모두 꺼내어 조금씩 접시에 덜어주는 행위와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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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재민(스튜디오 f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