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멀리 달아나며 늘 함께 :
완두가 소파에 늠름하게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사진을 액자에 넣어두었다. 그때 그 오후에만 잠시 볼 수 있던 장면이 변하지 않고 늘 볼 수 있게 침실에 놓여 있다. 하나의 순간을 멈춰놓고서 자꾸 지켜보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액자를 만들며 살아가기 위해 작업실을 마련한 지 이제 막 두어 달이 지났다. 몇 해 전 가구 회사에 다니며 이런저런 예술가 친구들의 부탁으로 틈틈이 액자를 만들었는데, 그 일이 잘 맞아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작가든 일반인이든 액자를 찾는 사람들이 꾸준히 있다. 하지만 액자는 늘 주인공이 아니다. 액자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액자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쥐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액자를 만드는 사람에게만은 액자 자체가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 어떤 재료를 쓸지, 크기와 두께는 어느 정도가 좋을지, 하는 식의 생각을 해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뒤편의 구조도 정하고 작은 철물들까지 결합하고 나면 쓰임 이전의 그 과정만으로도 제작자는 작은 성취를 느끼곤 한다. 액자를 바라볼 때 아주 조금은 더 기뻐할 줄 알게 된 것이 이 일을 하며 얻은 즐거움이다.
아직 이름도 없고 공유 작업실을 옮겨 다니며 액자를 만들던 시기에 낯선 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페이스북에서만 알고 만난 적은 없던 사람이었다. 쌀이와 보리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 살았는데, 나는 고양이들과 그분의 일상이 보기 좋아서 자주 구경하곤 했었다. 오래 잊고 있다가 받은 그들의 소식에는 얼마 전 쌀이가 죽었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며칠 후 쌀이의 사진을 넣어둘 액자를 의뢰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내 이메일로 사진 수십 장이 전달되었다. 액자에 넣고 싶은 사진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한 장이었지만 쌀이의 다른 모습이 담긴 사진들과 보리 사진들, 새로 가족이 된 굴비라는 고양이의 사진이 잔뜩 있었다. 액자가 완성되고 나서 전달하기 전 며칠 동안 쌀이 사진이 들어간 그 액자는 내 방 한쪽에 놓여 있었다. 처음으로 만나서 인사를 하고 액자를 건네준 그날 저녁에는 의뢰인 침실에 놓인 액자 사진이 메시지로 왔다. 서로 고맙다는 말을 주고받으며, 나는 어쩐지 이 일을 오래하게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사람들이 부탁한 액자를 만들다가 언젠가 한번은 나를 위해 B4 사이즈의 액자를 여러 개 만든 적이 있다. 무얼 넣을지 고르려고 지난 사진들을 찾아보다가 한참을 책상에 앉아 있었다. 오래전 사진 속에는 낯선 내 모습도 담겨 있고 이제는 사라진 것들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현재를 기준으로 보면, 잡히지 않고 사라진다는 면에서, 미래와 과거는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나는 사진 몇 장을 따로 분류해 인화했다. 그중에는 완두가 소파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사진도 있었다. 액자에 넣어놓고 보니 문득 그때 그 짧았던 시간에 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린 완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카메라 셔터를 누른 나. 우리 둘이 그때 함께 있었구나. 아무렇지도 않다가 괜히 울음이 날 것 같기도 했다. 그 시간이 생생히 기억날 것 같은 착각이 들다가 또 모든 게 꿈처럼 사라질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지금 내 옆을 걸어 다니는 완두가 수천 수만 장의 사진을 의미하기도 할 텐데, 왜 이 사진 한 장이 이렇게나 소중하게 느껴질까. 그러다 문득 ‘한계’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럴 수 없으니까.’ 내가 순간순간을 모두 감지할 수도 없고 또 하나하나 모두 소중히 다룰 수도 없으니까 한 장면을 골라서 의미를 두려는 게 아닐까. 마음속에도 공간이 부족하고 방 크기도 정해져 있으니 그런 한계를 자신도 모르게 감지하고 나름의 방법을 찾아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사진을 찍는 일, 그걸 액자 안에 넣어서 벽에 걸어두는 일까지 모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밀폐 용기나 작은 보석함, 액자와 서랍, 가구들과 집,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까지. 우리는 소중한 것을 각자의 방식으로 지켜가려는 본능이 있다. 그래서 가까이 두고 오래 쓴 물건에는 그런 마음들이 묻어 있다. 액자는 어떨까. 동묘시장이라든지 외국을 여행하며 마주치는 플리마켓에서 종종 오래된 액자를 파는 상인들을 마주치곤 한다. 벽에 걸어두기 때문에 손에 닿을 일이 거의 없는데도 대부분 부서져 있다. 나는 멀리서 그걸 보는 사람, 사지 않을 거면서 들었다 놨다 하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거리에서 팔더라도 누군가 금방 집어 들어서 자신의 집에 가지고 갈 만한 액자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었다.
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