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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카시스
여름이 막 저물어 갈 즈음, 친구와 나는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카시스Cassis로 떠났다. 어쩌면 프랑스에서 함께 보낼 마지막 여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열차를 찾아봤다. 전부터 꼭 지내보고 싶던 곳이어서 그랬을까, 모든 것이 삼십 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났다. 열차표가 싼 날짜에 맞추다 보니 그곳에서 머물 시간이 일주일이 되었다. 우리는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은 채 무작정 기차에 몸을 실었다.
매미 캠핑장
Camping Les Cigales
우리는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캠핑을 하기로 했다. 숙소를 이곳저곳 찾아보다가 그 마을에 캠핑장이 한 군데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캠핑장이라면 일주일 동안 머물러도 부담 없겠다는 생각에 별다른 고민 없이 그렇게 하기로 한 것이다. 캠핑에 대해 무지했던 우리는 ‘텐트만 있으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아주 어설프게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여벌의 옷, 세면도구, 버너와 코펠 그리고 약간의 음식들. 생존을 위해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책을 한 권씩 더했고 앉아서 쉴 의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근처 스포츠용품점에서 저렴한 접이식 의자를 각자 한 개씩 샀다.
약간은 어색한 모습으로 캠핑장에 도착한 우리는 자리를 배정받고 낑낑대며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텐트를 정리하고 있던 독일인 커플이 다가와 자기들은 이제 곧 떠난다며, 그들이 사용했던 각종 조미료와 새것인 채로 남은 파스타 면, 수프 등을 건네주었다. 마침 식재료가 부족할까 걱정하던 우리는 그들의 선물을 아주 소중하게 받았고, 따뜻한 마음에 감동해 한참 동안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도착한 첫날, 텐트를 친 후 샤워를 하고 냄비에 돌을 얹어 밥을 지어먹으니 금세 밤이 찾아왔다. 시골이라 그런지 하늘에는 별 무리가 가득했다. 외투를 여미고 별을 바라보는 동안 찻물이 보글보글 끓었고, 저기 멀리서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캠핑장의 분위기는 기대한 것보다 훨씬 낭만적이었고, 인간적이었다. 일주일이 길지 않을까 걱정도 됐었는데, 이대로라면 이곳에서 한 달이고 일 년이고 기약 없이 머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천국, 엉보
La Calanque d’En Vau
아름다운 것들은 돌연 사람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이 아득한 아름다움 때문에 우리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바위로 된 산을 올랐다. 험한 길이었지만 바위를 넘는 족족 예상치 못한 풍경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터져 나오는 감탄사로는 마음에 있는 것을 다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산을 넘고 넘을 때마다 정직하게 흐르는 땀방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고 결국 우리는 그 일을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
카시스는 칼랑크Les Calanques라고 하는, 바위로 둘러싸인 작은 만灣들로 유명하다. 이곳으로 향하는 길을 걷는 것을 ‘나는 칼랑크를 한다(Je fais les cal-anques).’라고 하는데, 이 하이킹 코스는 1시간부터 5시간까지 다양하며 총 네다섯 개 정도가 있다. 가는 길목마다 돌 위에 초록, 파랑, 빨강 등의 색깔로 방향이 표시되어 있다.
길 사이사이에 작고 예쁜 해변들이 많아서 우리는 매일 새로운 곳을 찾아 수영을 했는데, 그중 단연 아름다운 곳은 엉보En Vau라는 곳이다. 이곳으로 가려면 파란색 표시를 따라가야 하는데, 가는 것만 적어도 두세 시간을 잡아야 한다. 길이 하도 위험해서 처음엔 겁도 났지만, 오리발을 배낭에 끼고 씩씩하게 걷는 귀여운 아이들을 보니 금세 안심이 되었다.
높은 절벽 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숨을 고르던 중, 근처에서 옹기종기 모여 간식을 먹고 있는 어린 남자아이들 넷과 할아버지 한 분이 보였다. 눈인사를 나눈 후 출발을 하려는데 할아버지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칼랑크는 처음인지, 어디로 가는지 물으셔서 지도를 내보이며 우리는 지금 엉보에 간다고 말씀드렸다. 지도를 보더니 이 표시대로 가면 돌아가는 길이라고, 다른 길을 안내해 주셨다.
자신은 60년 동안 칼랑크를 해와서 이곳을 너무 잘 안다고, 프랑스에는 옛말로 ‘칼랑크를 주머니 속 들여다보듯 안다(Je connais les calanques comme ma poche)’는 말이 있는데, 자신 같은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라고 덧붙이셨다. 지금은 손주들을 데리고 칼랑크를 몸으로 익히게 도와주는 중 이어서 길 중간중간에 있는 유스 호스텔에서 하룻밤씩 머물고 있다고, 지금은 그곳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와 헤어지고도 우리는 한참을 걸어야 했다. 엉보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우리 앞엔 웅장한 돌길이 펼쳐졌다. 너무나 아름다운 길, 그래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길. ‘이 길의 끝에는 엉보가 나오겠구나….’ 표시 하나 없었지만 우리는 짐작할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정말 그랬다. 나는 그 풍경 안에 하나의 점으로 콕 박힌 채 지금 스쳐가는 몸 끝의 감각들이 영영 잊히지 않길 바라고 또 바랐다.
그렇게 걷고 걸어 ‘작은 천국’이라고 불리는 이곳, 엉보에 도착하면 돌로 된 하얀 산과 그 사이에 자리한 푸른 바닷물이 그 모습을 나타낸다. 내리쬐는 햇살, 바위와 몸이 섞여 제 나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바다, 그리고 이곳에선 영원할 것만 같은 우리의 시간들. 친구와 나는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 광경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훠이훠이 일어나 물속에 얼굴을 담가 보기도 하고, 졸음이 쏟아지면 낮잠을 자기도 하면서 천천히 천천히 우리의 시간을 만끽했다. 또 한 조각 짧은 여름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카시스로 가기 위해서는 일단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항구도시 마르세유Marseille로 가야 한다. 그곳에서 지하철을 타고 카스텔란Castellane 역에 내려 버스 정류장을 찾아야 하는데, 그때부터가 중요하다. 한 번에 정류장을 찾으면 괜찮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세 시간 정도 길을 헤매는 건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버스 정류장은 셀 수 없이 많고 동네 사람들, 경찰 아저씨, 심지어 버스기사에게 물어도 대답은 제각각이다. 우습게도 카시스로 가는 M8 버스의 정류장은 역에서 불과 5분도 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다. ‘Bus, Navettes’이라고 쓰여 있는 출구로 나와 바로 오른편에 있는 횡단보도를 건넌다.
그 후 큰길을 따라 좌측으로 계속 걷다 보면 이 문제의 버스 정류장이 나오는데, 똑같은 번호가 적힌 버스 정류장이 연달아 세 개나 있다. 왠지 이곳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계속 보이던 숫자 73, 74와 함께 M8이 추가로 쓰여있는 정류장이 나온다. 버스가 오는 시간 또한 일정하지 않아서 시간표를 확인하는 것은 필수다.
카시스에는 칼랑크 말고도 프레스크일Presqu’ile이라 불리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역이 있는데 이곳도 꼭 가보길 추천한다. 산책로를 걷다 보면, 어린 왕자가 사라졌다는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발견할 수 있다.
에디터 전진우
글·사진 강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