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t take my eyes off you

시선이 머문 자리

시선이 머문 자리

친구와 헬싱키를 걷고 있을 때였다. 아무 말없이 한참을 있다 보니 ‘이 친구와 제법 가까워졌구나.’ 싶어 조심스레 비밀 아닌 비밀을 털어놓았다. “나, 실은 방금 화장실에서 변기 사진 찍고 나왔어.” 그녀는 그걸 왜 찍느냐고 웃었다. 그냥 찍게 되었다는 내게 슬며시 내민 그녀의 카메라. 그 안에는 쓰레기 사진이 가득했다.
한참 잊고 지냈는데, 누군가 그 기억을 되살려줬다. “선아 씨, 저는 사실 다 먹은 테이블을 찍어요.” 쓰레기를 찍는 친구가 생각남과 동시에 자전거 사진을 찍는 남자가 생각났다. 창문 사진을 자꾸 찍게 된다던 편집장님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각기 다른 눈을 갖고 사는 사람들, 그들의 시선이 머문 자리에는 어떤 이야기가 놓여 있을까.

THROUGH
THE WINDOW

김이경

“너는 왜 이렇게 창문을 찍는 거야?” 내 사진을 보고는 친구가 말했다. 특정한 무언가를 찍고자 했던 건 아니었는데, 다시 보니 정말 그랬다. 그날 그 동안 찍어온 몇 만장의 사진을 밤새도록 봤다. 나는 왜 이렇게 창문에 집착했던 걸까. 그런 생각과 동시에 내 눈은 집안의 굳게 닫힌 창문을 향했다. 단단하고 커다란 유리문은 넓은 밖의 세상과 나를 단절하고 있었다. 답답하다고 느꼈고, 더 이상 창문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그해 유럽여행을 떠나게 됐다. 북유럽에서 서유럽까지 도는 꽤 긴 여정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마음 가는대로 움직이며 사진을 찍다 창문 앞에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지금 이걸 왜 찍고 있는 거지. 다시 그 생각을 하게 됐고, 주변을 둘러보며 창문을 보기 시작했다. 밖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고 있는 사람, 문틀에 걸터 앉아 맥주를 마시는 사람. 물론 굳게 닫힌 문도 있었고, 빨래를 널어 놓거나 식물로 가득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곳의 창문은 우리 집에서 보던 단단한 모습과는 달리, 아주 약해 보였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소리가 시끄럽고, 툭 건들면 깨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바로 그런 점이 안과 밖의 온도를 비슷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나는 숙소로 돌아와 내 방 창문을 활짝 열었다. 순간 시원한 바람이 온 몸을 스치며 들어왔다. 문이라고 하면, 밖으로 나가거나 안으로 들어오는 통로인데, 창문으로는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다. 바람이 통하고, 햇볕이 들어올 뿐. 나는 바람의 시원함과 따듯함을 느끼며 밖을 내려다 봤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 봤을 때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는데, 반대로 안에서 밖을 내려다 보니 특별할 게 없었다. 이 길로 갈지, 저 길로 갈지 망설이던 내 모습도 아주 작아 보였다. ‘내가 저기에서 그냥 길을 잃어도 좋았겠구나.’ 바람이 통하는 작은 문으로 보이는 넓은 세상은 나를 좀 더 느긋하게 만들어 줬다.

DIRTY DISHES
OF THE TABLE

박소영

보기 좋게 잘 내어진 테이블의 차림새를 사진으로 담은 건 ‘예쁨’을 담고 싶어서였다. “그런 거 왜 찍어?” 하고 묻는 사람에게 “그냥, 예뻐서.”라는 대답을 하기 싫었던 나는 “잘 내어준 사람에 대한 예의랄까?”라며 허세 가득한 대답을 잘도 했었다. 정성 가득 차려진 엄마의 생일밥상은 사진으로 남겨본 적이 있던가, 생각하며 “아… 이 허세녀, 아니 이 된장녀.”라는 말을 자신에게 해버렸다. 그럼에도 난 꿋꿋이 잘 내어진 테이블 사진을 자주 찍었다. 그렇게 꽤 시간이 지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시선도 점점 다른 곳을 향했다. 잘 내어진 테이블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 시간의 흔적이 남은 테이블. 어느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그걸 찍고 있었다.

오랜만에 예전 사진들을 들추어보다 보면 필름 한 롤에 한두컷은 빈 커피잔이다. 어지럽게 혹은 다소 지저분하게 끝이 난 자리의 테이블 사진이 꼭 있다. 시간이 꽤 흘러 7년 전의 사진을 보아도 누구와 함께한 자리였는지 그리고 그날의 대화나 우스웠던 사건들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비워진 커피잔, 다 먹은 접시…. 지나치면 아무것도 아닐 끝이 난 자리를 찍는 일에 점점 애정을 갖게 되었다. 이런 행동을 자주 지켜보던 친구가 진지하게 물은 적이 있다.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끝이 난 이 자리를 사진으로 남겨 이어가고 싶어.”라는 식의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친구는 ‘역시 박허세’라는 비웃음이 내포된 콧방귀를 뀌었다.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필름사진을 찍는 모습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거기다 찍는 게 먹고 마신 테이블이라니…. 이런 취미가 낯선 친구들은 그런 날 “역시 박소영은 남달라.”라며 좋은 뜻인지 나쁜 뜻인지 모를 애매한 말로 표현하곤 한다. 별난 사진을 찍는 별난 친구인 나는 그게 썩 나쁘지 않다. ‘그게 뭐 어때서, 찍은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 뭐.’

SIT IN SILENCE

박선아

언젠가부터 나는 변기를 찍었다. 지금 이 문장을 쓰자마자 낯이 뜨거워졌다. 아마 이 페이지를 막 펼쳐본 사람도 비슷한 마음일 것 같다. ‘이 더러운 사진들은 뭐지?’ 하고 눈동자가 커졌을지도 모른다. 한때, 떠돌이 생활을 한 적이 있다. 목적이나 방향은 없고 그저 가고 싶은 쪽을 선택하며 가던 시절. 복잡한 일들을 뒤로 하고 떠나면 확실한 행복이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았다. 행복과 슬픔은 어디에나 존재했고 오히려 그럴 때마다 선명해진 것은 덤덤함이었다. 화장실 사진은 그런 기분을 알아차렸을 때 찍기 시작했다. 파티에 갔다 취한 나는 어딘가에 앉아 쉬고 있었다. 쭈그리고 앉아 땅을 고개로 박고 있으니 이곳이 어딘지 혼란스러웠다. 

어쩐지 이러다 밖을 나가면 아빠와 엄마가 있을 것만 같기도 하고, 내 한 몸 누일 서울의 자취방이 나올 것 같기도 했다. 한참 그런 생각을 하며 앉아있다 보니 허공에 떠있던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좋은 기분이구나, 생각하다 노크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앉아있던 곳은 좁은 화장실이었다. 유명하다는 가우디의 건축물 앞, 반짝거리던 에펠타워 앞, 히말라야의 산중턱, 뉴욕이 내려다 보이던 높은 빌딩 같은 곳에선 좀처럼 생기지 않던 마음이 어째서 이런 곳에서 생겨버린 것일까. 그 기분을 남겨두고 싶었다. 취했고 손은 사정없이 흔들렸지만 일단 찍어두었다. 그리고 그 후, 매번은 아니고 가끔 화장실에서 카메라를 꺼낸다. 

이제는 마음 내키는 대로 떠돌던 삶은 멀어졌다. 달력과 항공사 사이트를 여러 번 오가며 겨우 떠날 수 있는 일정을 잡곤 하는데 그것도 그리 나쁘진 않다. 대신, 어디에서든 슬퍼지면 화장실로 향한다. 요즘엔 주로 사무실 화장실에 앉아 있는다. 비데가 있어 따뜻한 곳. 종종 볼일(그 볼일)이 없어도 그곳에 앉아 책을 보거나 멍을 때린다. 사진은 종종 찍기도 하고 아닐 때가 더 많다.

FIND
YOUR BICYCLE

양윤모

언젠가 이 사진들 속에서 당신의 자전거를 발견할 수도 있겠지요, 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Find your bicycle’. 자전거를 좋아하니 자전거 사진을 찍자, 자전거 타는 모습이 좋으니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찍자, 이런 다짐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머무르는 동안 찍어둔 사진들을 보면서 아, 내가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구나 깨달았다는 표현이 맞다.

뭐든지 꾸준히 오래 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 날이 갈수록 싫어할만한 작은 것들과 귀찮게 여길만한 작은 것들을 찾아내는 감각은 정교해지고, 그만큼 온전히 좋아하는 것들은 적어진다. 꾸준히 오래 하고 싶다. 자전거를 타는 것도, 자전거 사진을 찍는 것도.

YOU
DUMP ME

이해인

우연히 사진 수업을 듣게 되었다. 한 학기 정도 수업을 듣고 나면 자신만의 사진집을 만들어야 했는데, 주제를 잡는 게 어려웠다. 이런 내게 교수님은 조언을 하나 해주었다. “일단 주위에 관심이 가는 것을 찍어보는 게 어떻겠니?”라고. 그래서 나는 무작정 시선이 멈추는 곳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텅 빈 창고나 옥상, 사람 없는 강의실, 버려진 담배꽁초, 재개발로 인해 사람이 떠나간 집들이 찍혔다. 그런 사진들을 모아 만들었던 내 사진집의 제목은 ‘사라지다’였다.

이후에도 사람의 온기가 남아있는 모습으로 버려진 것들에 관심이 갔다. 손이 타 버려진 것들을 보면 하나같이 사연이 있어 보였다. 나란히 버려져 있는 종이컵과 담뱃갑을 보면 그것들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을 오래된 친구의 모습이 그려지곤 했다. 비어진 유리병을 보면 여행하다 지쳐 눈 앞에 보이는 카페테리아에 앉아 목을 축였을 이가 떠올랐다. 돌을 쌓아 만든 담장에 담뱃갑을 쑤셔 넣은 모습을 보면 쓰레기 통을 찾지 못해 허둥지둥 하다 돌담 사이에 억지로 끼워놓는 아저씨의 모습. 공원 화단에 떨어진 인형 팔 한 짝을 보며 팔 한쪽을 잃어버려 슬퍼하는 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순간순간 그런 상상을 하다 보면 늘 끝엔 알 수 없는 미소가 흘러나오곤 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친구가 쓰레기 사진을 좀 모아달라고 해서 오래된 사진 파일을 뒤져보았다. 지난 사진들을 보며 이제서야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이 사진을 찍을 때, 주로 혼자였다는 것. 처음 이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게, 이별한 직후였으니 아마 나는 외로웠나 보다. 쓸쓸한 마음에 주위를 두리 번 거리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것들을 찍으며 그들에게 얽힐 이야기를 홀로 묻고 답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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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선아

글·사진 김이경 박선아 박소영 양윤모 이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