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In Seongsu

아이를 낳고 보살피는 마음으로
오르에르 김재원

성수역에서 내려 가장 먼저 본 건 오래된 미용실이었다. 그 옆엔 더 오래돼 보이는 호프집, 맞은편엔 아직 기름때가 묻지 않은 깔끔한 고깃집. 큰길 옆으로 살짝 방향을 트니 큼직한 공장 건물이 그대로 남아 새로운 역할을 해내고 있다. 오랜 시간을 먹은 간판 몇 개를 구경하다 보니 붉은 벽돌 건물이 눈에 띈다. 황동색 알파벳이 입구 상단에 정갈하게 걸려 있는 여기는 오르에르. 입구를 지나 뻥 뚫린 복도를 통해 돌바닥과 정원이 보이는 이 풍경은 자못 신비롭다. 벽돌 건물과 주택을 연결해 하나의 공간으로 만든 오묘한 세계에 입장하면 층층이 향긋한 커피, 다디단 디저트, 마음 가는 문구, 황홀한 수집품, 그리고 누군가의 전시까지 만날 수 있다. 이 공간 안에서는 모든 순간이 경험일 수 있도록 계단의 삐거덕 소리에도 신경 쓰는 사람. 화분에 며칠 물을 못 줘 오르에르에게 미안하다는 김재원 대표의 목소리엔 내새끼를 어루만지는 듯한 세심함과 사랑이 담뿍하다.

Brand Producing Company | 아틀리에 에크리튜Atelier Ecriture

1-2F Cafe | 오르에르or.er.
1F Dessert Shop | 오드투스윗Ode To Sweet
2F Stationery Curated Store | 포인트오브뷰Point Of View
3F Collection Space | 오르에르아카이브or.er. Archive

브랜드가 길어 올린

동네의 매력

요즘 엄청 바쁘게 지내시는 것 같아요.

아유… 일이 너무 많아서 거의 세상과 등지고 지내요. 요새 주변 사람들이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연락도 조심스럽게 해오더라고요. SNS도 잘 못 하고 그러니까(웃음). 연락 올 때마다 “조금만 기다려줘.” 하는 게 요새 일과예요.

 

이번 호에서 ‘서울의 브랜드’를 다루거든요. 꼭 만나고 싶었는데 시간이 잘 맞아서 다행이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서울의 브랜드, 가까우면서도 먼 것 같은 주제네요.

 

서울이라고 하면 너무 광범위해서 성수동과 연희동 위주로 접근해 보려고 해요.

되게 대조적인 두 동네를 골랐네요?

 

처음엔 두 동네가 어느 정도 비슷할 거라 생각했는데, 살펴볼수록 색도 느낌도 다르더라고요. 이번 호 주제를 듣고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세요?

서울의 브랜드… ‘아이 서울 유’? 진짜 별로죠(웃음). 서울을 기반으로 하는 브랜드는 많은데 그 브랜드가 서울의 에센스를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물론 빵집 태극당처럼 여러 세대에 걸쳐 오랜 시간 서울에 머문 브랜드도 있지만 모두 그런 건 아니잖아요.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특정 브랜드를 이야기하기 어려운 게 바로 서울인 거 같아요. 카오스의 서울이니까요. 특정할 수 없다는 게 서울의 매력 같기도 하고요. 일본만 해도 수백 년 동안 하나의 도시를 기반으로 지속되는 브랜드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잖아요. 특히 교토 같은 데는 다른 지역이나 나라로 진출하더라도 도시의 아이덴티티를 잃지 않는 브랜드가 참 많아요. 

근데 서울의 브랜드 중엔… 그런 데가 있나요? 먹거리 말곤 떠오르는 게 없어요. 공공 디자인 쪽은 특히 더 부정적인 것만 떠오르고요. 대답하다 보니 좀 슬퍼지네요(웃음). 그래도 몇 년 전부터 서울도 동네의 특징이 살아나고 있는데요. 동네가 하나씩 살아나면서 서울이란 도시가 재미있어지고 사람들도 그걸 재미있어하는 것 같아요. 지금은 여러 지역에서 동네 특징을 살리는 움직임도 많아요. 저희처럼 성수동스러운 뭔가를 한다든지…. 카오스의 서울이 점차 발전해 가는 단계라는 생각이 들어요. 브랜드의 이런 움직임은 너무 좋은데 지자체에서는 좀더 신중하게, 다각도로 동네를 생각해 줬으면 해요.

 

왜요? 무슨 사건이 있었나요?

최근에 ‘오르에르’ 앞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성수동이 예부터 수제화로 유명했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구청에서 빨간 구두가 올라간 조명 몇십 개를 이 거리에 쫙 깐 거예요. 아휴, 깜짝 놀라서 SNS에 사진을 올렸는데 더 놀라운 제보가 이어지더라고요. 온갖 도시에서 사람들이 “그래도 성수동엔 이런 거 없잖아요.” 하면서 그 지역의 공공 디자인 사진을 보내주시는 거예요. 혹시 ‘고추다리’라고 아세요? 청양에 있는 다리인데, 어떤 분이 이런 고추다리를 지나서 매일 출퇴근을 하신다더라고요. (사진을 검색해서 보여준다.)

 

아이구… 진짜 고추네요.

또 어떤 분은 ‘퍼플섬’이라는 델 알려 주셨는데 섬 전체를 온통 보라색으로 칠해뒀더라고요. 모든 집에 똑같은 보라색을 칠하고, 심지어는 원주민들에게 보라색 옷을 입도록 해서 연로한 주민까지 모두 보라색 옷을 입고 지내요. 보라색 옷 입고 오는 관광객은 입장료를 할인해 주기도 한대요. 퍼플섬 주민들은 만족해한다는 기사도 보았는데, 저는 처음 접한 문화라 무척 놀랐어요. 성수동 구두 조명에 충격받고 SNS에 올렸다가 더 다양한 지역의 공공 사례를 만나게 된 거죠(웃음). 근데 재미있는 게 뭔지 아세요? 구두 조명 사진을 SNS에 올리고 며칠 안 지나서 조명이 다 사라졌어요. 저뿐만 아니라 성수동에서 브랜드를 하고 있는 많은 지인들이 건의해서인지, 혹은 다른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불도 한 번 안 켜보고 일주일 만에 다 뽑아 가신 거예요. 조명을 설치한 것보다 그렇게 쉽게 뽑아갔다는 게 더 놀랍더라고요.

 

동네의 매력은 국가 차원에서 만들어지긴 힘든 것 같아요.

동네 특성은 그 동네에서 실제로 브랜드를 꾸려가는 사람들이 만들어 간다고 생각해요. 구청은 동네 브랜드들이 이 동네에서 더욱 편히 머물도록 행정적인 걸 도와주면 좋을 텐데…. 이런저런 이유로 도시나 지역 브랜드라고 하면 공공 디자인적인게 제일 먼저 떠올라요. 브랜드를 운영하는 분들 중엔 잘하는 분들이 워낙 많아서 누가 더 잘한다고 말하기가 오히려 더 힘든 것 같아요.

앞서 “성수동스럽다”는 이야길 하셨어요. 그게 어떤 의미예요?

제가 들어올 당시 의미와 지금 의미는 좀 다를 것 같아요. 초기 매력은 역시 공장지대라는 점일 거예요. 저도 그게 좋아서 이 동네를 선택했거든요. 성수동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동네가 평지라는 건데요. 성수동에 터를 잡기 전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던 동네가 경리단길이었거든요. 친구들 만날 때 구두를 신고 가면 경사가 져서 다니기 여간 힘든 게 아니었어요. 발이 너무 아픈데 태연한 척하면서 걸었죠(웃음). 근데 성수동에 와서 평지를 밟는데 그게 너무 매력적인 거예요. 게다가 2호선 라인이어서 접근성도 좋았고요. 성수동은… 원자재라고 해야 하나, 땅의 컨디션이 무척 좋은 동네예요. 그리고 그 당시 매력의 정점으로 ‘대림창고’를 빼놓을 순 없겠죠. 2016년에는 카페로 개조하여 오픈하기도 했는데요. 그전까진 일반 창고로 사용되는 공장 건물이었어요. 그런데도 단층 벽돌 건물이 주는 매력이 어마어마했죠. 이렇게 규모감 있는 동네가 서울 외곽으로 빠지지 않고 서울에 속해 있다는 게 재미있었어요. 정비소가 많아서 고급 차량이 많이 지나다니는 동네였는데, 지게차가 그 옆을 같이 돌아다니는 모습은 다른 동네에선 보기 힘든 장면이잖아요.

 

그때랑 지금이랑 좀 달라졌다고 했는데 어떤 변화가 있었어요?

중간중간 과도기라고 생각한 시기가 있었어요. 벽돌 건물이 사라지고 지식산업센터가 들어올 시절엔 매일매일 이게 뭐냐며 한탄도 했죠.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또 성수동의 매력이 된 것 같아요. 준공업 지역이라 지을 수 있는 되게 높은 지식산업센터랑 단층 공장이 어우러진 풍경은 다른 동네에선 쉽게 보기 힘들잖아요. 성수동의 이런 모습도 서울의 카오스 중 한 축을 맡고 있지 않을까요?

 

색이 없던 동네들이 하나둘 색을 찾아가는 데는 어떤 영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저에게 서울은 깨끗하게 만들어진 도시 그 자체였어요. 심심한 건물이 가득한 특색 없는 곳이었죠. 그러다 서울에 색이란 게 입혀진 게 2010년대부터라고 기억하는데, 여기저기 생겨난 카페들의 역할이 특히 큰 것 같아요. 서울의 카페, 아니 대한민국의 카페들이 공간을 보는 눈높이를 상향 평준화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전에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복사하듯 생겨났다면, 그 이후론 개인 카페가 늘어나면서 동네 특성을 살리고 자기만의 인테리어를 해나가기 시작했어요. 동네 자원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아졌고요. 만일 이런 역할을 카페가 아닌 갤러리가 했다면, 손님들이 보다 큰 비용을 내고 찾아야 해서 활성화되기 어려웠을 거예요. 하지만 5천 원이면 향유할 수 있는 카페였기 때문에 대중을 겨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저도 성수동에 복합문화공간 ‘자그마치’를 세우고 카페를 꾸릴 때 합정의 ‘앤트러사이트’나 ‘카페 리브레’ 같은 데서 영향을 많이 받았거든요. 지금도 카페들 수준이 아주 높기 때문에 공간 보는 눈높이는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어요. 단순히 공간만 꾸리는 거라면 얼마든지 지금보다 더 멋지게 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브랜드로 유지되는 카페들은 동네와의 어울림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동네 특성을 살리면서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거죠. 그래서 서울의 동네들이 하나씩 색깔을 찾고, 재미있는 공간들이 완성되는 것 같아요.

 

많은 매체에서 대표님을 ‘성수동의 개척자’라고 소개하곤 해요. 동네의 정체성을 새로이 했다는 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개척자, 선구자는 물론이고 ‘시조새’라는 말도 들어봤고 “아직도 있어?”도 들어봤어요(웃음). 사실 제가 처음으로 성수동에 카페를 연 개척자는 아니에요. 프랜차이즈 카페나 동네 카페가 몇 곳 있기는 했거든요. 하지만 브랜딩을 하고 디자인적인 요소를 갖춘 브랜드로서의 카페는 자그마치가 처음이 맞는 것 같아요. 그건 누구나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웃음). 그런데 만일 여기 자그마치만 달랑 하나 있었다면, 개인이 하는 작은 브랜드기 때문에 성수동에 이런 힘이 생기긴 어려웠을 거예요. 자그마치를 오픈한 게 2014년 2월이었는데요. 성수동에서 브랜드를 시작한 건 자그마치가 처음이었다 해도, 거기 불을 지펴준 브랜드가 참 많았죠. 대표적인 게 앞서 이야기한 대림창고예요. 2016년 5월 경에 대림창고에서 카페를 오픈하고 ‘어니언 성수’가 생기고…. 사실 타이밍이 좋았던 거지 성수동은 워낙 매력 있는 동네기 때문에 꼭 자그마치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출발을 열었을 거거든요. 결과적으로 성수동을 개척했단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제가 성수동을 위한 특별한 목표를 가지고 여기 온 건 아니에요. 그저 하고 싶은 재미있는 일을 시작했을 뿐이었죠. 만약 자그마치를 비즈니스로 생각했다면 론칭할 용기를 얻지 못했을 거예요.

 

비즈니스랑 브랜드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같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지금은 그 둘을 잘 맞춰서 조율해 나갈 수 있는 상태가 되었는데요. 초창기 저에게는 비즈니스 마인드는 없고 브랜드 생각만 있었거든요. 지금은 브랜드를 읽어 나가면서 비즈니스가 발을 맞추어 가야 한다는 걸 늘 염두에 둬요. 비즈니스라는 건, 내가 얼마를 투자해서 얼마의 수익을 내야 하고, 그걸로 어느 정도 재투자를 해서…의 숫자 개념을 뜻해요. 팝업 스토어를 열어도 수수료 없이 했거든요. 자그마치에서 팝업을 열고 지금은 유명한 브랜드가 꽤 되는데요. 그때는 브랜드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슬로우 파마씨’도 자그마치에서 팝업을 열고 성공적인 결과를 거뒀고, 정인혜 작가도 그림을 전시했는데 유화 작품을 다 팔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순수하게 재미있던 시절이었어요.

 

본격적으로 아웃풋이 난 시점은 언제예요?

F&B 비즈니스로 수익을 창출하는 게 브랜드 운영의 핵심은 아니었어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카페 비즈니스로 수익을 얻으려고 했다면 자그마치 이후에 오르에르라는 브랜드를 또 만들지 않고 자그마치 1호점, 2호점… 식으로 구성하는 게 운영 면에서는 좀 더 쉽지 않았을까요? 저희가 하려는 브랜드의 중심은 콘텐츠예요. 그 콘텐츠를 담는 공간의 문턱을 낮춰주려고 카페 브랜드를 하고 있는 거죠. 일종의 마중물 역할인 건데, 이왕 할 거라면 잘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F&B 쪽으로 수익을 창출하고자 했다면 얼마든지 길은 있었어요. 자그마치가 잘된 이후로 여기저기서 들어오라는 제안도 많았거든요. 그걸 다 안 한 이유는 F&B로 수익을 창출하겠다고 비즈니스에 욕심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엔 한계도 있었고요.

 

어떤 한계요?

제가 F&B 쪽 전문가가 아니라는 거요. 제가 바리스타라면 직원들이 그만두더라도 제가 그 자릴 메울 수 있을 텐데 그게 안되는 분야거든요. 저는 대표라면 직원들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반면 문구 브랜드 ‘포인트오브뷰’를 비롯한 다른 영역은 직원들이 자리를 비워도 제가 판매나 디자인 같은 건 할 수가 있거든요. 근데 커피나 디저트 쪽은 제가 그럴 수 없는 영역이에요. 그래서 이쪽 분야로는 F&B 비즈니스를 하는 다른 분들과는 마인드가 좀 달라요. 오히려 공간이나 콘텐츠 적으로 접근하는 편이죠.

 

공간 얘기를 좀더 해볼까요? 공간에 관심을 가진 건 유학할 때 집을 옮겨 다니면서부터였다고 들었어요.

유학 생활은, 정확히는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예요. 공간에 관심을 가진 건 제 전공 때문인데요. 저는 영국에서 텍스타일을 전공했는데, 영국에선 텍스타일을 패션과 인테리어 두 종류로 나누어요. 그중 저는 인테리어 쪽 텍스타일을 전공해서 공간에서의 패브릭을 공부했어요. 공간에서 패턴이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어떻게 텍스타일을 적용할지 고민하는 일이었죠. 영국에선 잘 살다가도 집주인이 나가라면 나가야 하는 떠돌이 유학생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주 부동산을 다닐 수밖에 없었는데요. 영국에서는 한국과 달리 모든 가구가 다 세팅되어 있고 몸만 들어가는 형태거든요. 집을 렌트한다고 보면 되는데, 저는 그게 남의 살림을 구경하는 기분이어서 너무 재밌었어요. 나중엔 재미가 들려서 집을 안 구해도 되는데도 궁금한 동네의 집들을 보러 다녔어요. 괜히 부자 동네 한번 가서 집들을 구경해 보는 거죠. 영국은 주 단위로 집세를 내는데, 100만 원짜리 집밖에 못 보는 신세면서 괜히 1천만 원짜리 집들을 보러 다녔어요. 그때 SNS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만일 SNS가 지금처럼 발달했다면 저는 절대 졸업 못 했을 거예요. 음… 아니, 어쩌면 SNS를 엄청 잘해서 인플루언서가 되어 있거나 지금과는 다른 방향으로 대성했을 것 같기도 해요(웃음). 

내 아이의

태도와 말씨

오르에르, 포인트오브뷰, 오드투스윗… 많은 브랜드를 한꺼번에 운영 중이에요. 어느 인터뷰에서 브랜드를 시작할 때 “비주얼보다 텍스트 작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했는데요. 그 이야기를 좀더 들어보고 싶어요.

그 모든 브랜드를 총괄하는 디자인 기획 컴퍼니 이름이 ‘아틀리에 에크리튜Atelier Écriture’예요. 이 이름을 만들 때 저희가 일하는 방식을 좀더 세세히 돌아보게 됐거든요. 회사마다 고유의 프로세스가 있을 텐데, 우린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지 정리하다 보니까 뭔가를 계속 ‘쓰고’ 있더라고요. 무엇이 되었든 아이디어를 확장할 때 시작은 쓰기였던 거죠. 키워드로 나열할 때도 있고, 소설 문장을 발췌해서 시작할 때도 있어요. 브랜드들 이름을 정할 때도 그랬고요. 그래서 회사 이름을 쓴다는 행위랑 연결 짓고 싶었어요. 문체, 서체 같은 단어를 나열하다 쓰기, 쓰인 것, 문자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에크리튀르를 넣어 정하게 된 거죠.

 

아틀리에 에크리튜만의 쓰기 방식이 있는 것 같아요. 포인트오브뷰에서 판매하는 《어라운드》 소개 글을 읽으면서 남다른 느낌을 받았거든요.

포인트오브뷰에 있는 물건들이 세상엔 없고 여기에만 있는 건 아니에요. 어디에나 있을 만한 물건들인데 저희가 한 공간에 모아 큐레이션을 하는 거죠. 그래서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텍스트 소개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큐레이션은 직관적으로 이미지를 보여주는 데서 그칠 수도 있지만, 우리만의 집필 방식을 활용하면 그 특징이 더욱 돋보일 거라 생각했거든요. 브랜드를 하나의 집필 과정이라고 본다면 우리의 시작은 빈 노트거나 컴퓨터의 빈 화면이에요. 그리고 ‘무엇을 쓰지?’라는 데서 출발하는 거죠.

 

브랜드 운영이 집필 과정이라면 이름을 정하는 건 제목을 정하는 일이겠네요.

그렇죠. 근데 브랜드를 저 혼자 해나가는 건 아니니까 팀원들과 공유하면서 집필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올바른 방향을 찾기 위해서는 서로 의견을 모아야 하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각자의 경험치가 중요하죠. 팀원들이 어떤 경험을 하면서 살아왔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답이 정해진 걸 제시하는 건 다양한 상상을 가로막거든요. 가령, 라벤더 나무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런 나무를 우리 공간에 놓으면 좋겠어.”라고 하는 건 너무 정해진 틀을 제시하는 거예요. 비주얼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는 건 상상력을 가로막는 일이니까요. 반면, 언어로 “이 공간에는 매끈한 바디감을 가진 향이 좋은 나무를 놓으면 좋겠어.” 한다면 누군가는 라벤더 나무를, 누군가는 바오밥 나무를 가지고 올 수가 있는 거죠. 비주얼적인 것으로 시작하면 한계가 분명한데, 텍스트로 출발하면 훨씬 재미있는 방향으로 풀어져요. 우리 브랜드뿐만 아니라 외주 작업을 할 때도 텍스트에서 출발해 브랜딩 작업을 해나가고 있어요. 이게 우리 회사가 에크리튜를 만들어 가는 방식이에요.

 

브랜드는 이름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이 많은 브랜드의 이름을 어떻게 지었어요?

떠오르는 키워드를 다 적어봐요. 문구점이라고 하면, 문구랑 관련된 걸 일단 쭉 적고 다른 장르의 단어까지 다 적어보는 거죠. 스포츠나 클래식이랑 연결하기도 하고, 재즈랑 연결 짓기도 하고요. 영화 분야에서 힌트를 얻기도 해요. 외주 컨설팅은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저희 브랜드를 만들 땐 이름을 먼저 짓고 철학을 궁리하는데요. 이를테면 포인트오브뷰는 “나는 포인트오브뷰라고 부르는 문구점을 할 거야.”라고 먼저 공표한 뒤 스토리 라인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오르에르는 처음에 ‘자그마치 애들이 뭘 또 한대.’ 하는 소문이 있어서 본의 아니게 자그마치 2호점으로 불리기도 했는데요. 지금 와서 하는 생각이지만 자그마치라는 브랜드 아래 자그마치 1호점, 2호점, 자그마치 스테이셔너리, 자그마치 테이블… 식으로 브랜드를 확장했다면 운영이 좀 편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근데, 당시엔 브랜드를 새롭게 만드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특히 어떤 게 재미있었어요?

브랜드가 인격체처럼 느껴졌거든요. 아이를 낳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자그마치라는 애는 강인하고 인더스트리얼 한 데서 태어난… 좀 감성적인 오빠 느낌? 반면 오르에르는 정원도 있고, 풀도 기르는 여동생 느낌이죠. 얘한테 자그마치라는 오빠 이름을 그대로 붙이면 오빠 이미지도 흐려지고 여동생 고유의 분위기도 사라질 것 같았어요. 자그마치는 발음도 좀 독일어 느낌으로 거칠잖아요. 근데 저는 여동생 이름을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발음으로 지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2호점으로 붙일 생각은 애초에 없었죠. 오르에르를 만들고 나니까 브랜드를 대하는 제 태도도 달라지더라고요. 자그마치에선 통바지를 입고 척척 걸어 다녔다면, 오르에르에선 좀 사뿐사뿐 걸어 다니게 되고…. 에크리튜라는 단어에는 문체나 글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도 있지만 말투나 에티튜드도 다 포함되는 거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회사 이름이 우리 브랜드를 다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럼 지금은 아이가 엄청나게 많아진 거네요.

완전히 다른 인격체의 아이를 여럿 키우고 있죠. 어떤 애는 머리를 땋아줘야 하고, 어떤 애는 항상 깔끔하게 커트 머리를 유지해 줘야 해요. 근데 만일 제가 자그마치라는 이름으로 모든 브랜드를 통일했다면 하나의 인격체로 기분만 달리 세팅해 줘도 되는 거였겠죠? 지금보다 재미는 덜했을 것 같지만요(웃음).

 

여러 인터뷰를 읽으면서 경험에 큰 가치를 둔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실패도 귀중한 경험 중 하나일 텐데, 그간 어떤 실패를 해왔어요?

음, 무슨 실패를 했지…. 뭔가 많이 실패했겠죠? 근데 ‘난 망했어, 실패했어.’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렇다고 제가 성공의 아이콘이라는 건 아니에요. 망한 것도 분명 많을 테지만… 실패라는 건 목표가 있고 달성하지 못했을 때 판가름 나는 일 같아요. 브랜드를 시작하고 목표가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그럴 때마다 할 말이 없었거든요. 뭔가를 달성해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딱히 없어서요. ‘브랜드 열 개를 할 거야.’라든지 ‘서울의 문구계를 평정하는 브랜드를 만들 거야.’ 같은 목표나 기준은 지금도 없어요. 한때는 이거 심각한 건가, 대외적인 목표라도 만들어야 하나 생각한 적도 있거든요. 근데 그게 없어서 오히려 실패했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저는 목표를 세우고 일을 하기보다는 일단 ‘해보자!’예요. 그렇다고 ‘해보고 안 되면 말지.’는 아니고 할 거면 잘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되게 열심히 해요. 

아, 엊그제 자그마치가 영업을 종료했거든요. 어떤 사람은 이를 두고 실패라고 할지도 몰라요. 근데 자그마치를 만들 때 저는 이 동네에도 재미있는 걸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했고, 거점을 만들었으니까 이건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과연 저는 뭘 실패했을까요? 입시? 입시도 실패한 적이 없고, 음… 근데 실패를 이야기할 수 없는 건 낙천적인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직 모든 게 현재 진행 중이라 그런 것 같아요. 최종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실패라 할 텐데 여전히 모든 게 과정에 있고, 목표 자체가 수치로 나타내는 게 아니라 ‘재미있는 걸 하고 싶어!’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는 계속 재미있는 걸 하면서 돈을 벌고, 이 돈으로 제가 재미있어하는 걸 계속 하고 싶거든요.

 

아, 좋네요. 그럼 삶에 도움이 된 경험이 있다면요?

저는 지금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학생들이 유학에 관해서 상담 요청을 많이 해오거든요. 그럴 때 어디로 가는지를 가장 먼저 물어봐요. 저는 어느 학교를 가느냐보다 어떤 도시로 가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술이나 디자인 영역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도시에서 배우는 게 훨씬 많다고 믿어서요. 제가 그랬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도시로 많이 나가보라고 이야기하죠. 특히 제가 있던 런던은 차보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기 때문에 도시를 더 깊숙이 둘러볼 수 있었는데요. 저는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센터로 나오면 교통수단을 따로 이용하지 않고 내내 걸어만 다녔어요. 그때 도시에서 배운 것들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죠. 그러면서 하도 뭘 많이 사서 저희 엄만 유학 시절 저한테 들인 돈이 어마어마하다고 하시는데(웃음) 그렇다고 제가 백화점에서 사치품을 쇼핑한 건 또 아니거든요. 동네 슈퍼마켓에서 이국적인 잡동사니들 구경하고, 스티커나 생활용품 같은 걸 많이도 샀어요. 사실 제가 계속 학교를 다니고 오래 공부하긴 했지만 학교에서 뭘 배울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유학 시절 도시에서 보고 배운 게 너무 크고 귀한 경험이었거든요.

 

런던에서 브랜드를 하고 싶진 않았어요?

하고 싶었어요. 영국에서도 계속 살고 싶었고, 그래서 런던 회사에도 입사했었거든요. 그러다 부모님 권유로 한국에 들어오게 됐는데 그 후론 런던에서 살 수 없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릴 땐 런던에 비가 자주 오는 것도 좋았고 남들이 맛없다고 도리질 치는 음식까지 다 좋아했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좀 길게 여행을 가면 생활이 불편했어요. 학생 땐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니까 경험할 게 많아서 좋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문화가 아닌 것도 새삼스럽게 불편하더라고요. 그리고 이젠 제 비즈니스를 하니까 마음만 먹으면 어느 나라든 갈 수 있게 됐잖아요. 내가 번 돈으로 내 마음대로 나갈 수 있게 되니까 ‘이게 훨씬 나은데?’ 싶었죠. 한국인은 역시 한국에서 사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유학 시절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어릴 때 모습이 궁금해지는데, 어떤 어린이였어요?

좀, 말하자면 ‘오타쿠’스러운 애였어요. 이런 캐릭터는 엄마가 자극한 면이 없지 않아 있어요. 저 어릴 때 ‘선생님 시리즈’라는 지우개가 대유행해서… 혹시 아시나요(웃음)? 하나씩만 가져도 다들 행복해하던 지우개였거든요. 근데 저희 엄마는 그걸 박스째로 사서 집에 들여놓는 분이셨어요. 그러고는 오빠랑 제 친구들을 불러다가 전과를 펼쳐서 문제를 내고 맞히는 사람에게 하나씩 주는 스타일이셨죠. 그때부터 제가 뭐든 낱개로는 만족을 못 한 거 같아요. 시리즈별로 모든 걸 모으거나 박스셋으로 쟁여두어야 만족하는 사람이 된 거죠. 어쩌면 엄마는 제가 세트로 가지길 원하는 애란 걸 이미 알고 있던 것도 같아요. 그러지 않고서야 시험 볼 때마다 박스셋을 걸리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웃음). 이런 식이었어요. “이번에 백점 받으면 72색 색연필 사줄게.” 하고요. 이미 12색도, 48색도, 63색도 가지고 있는데 저는 72색을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이라는 걸 알고 계셨던 거죠.

 

그래서 어릴 때 꿈이 문구점 주인이었던 거군요. 포인트오브뷰로 꿈을 이룬 기분이 어때요?

어… 이룬 건가(웃음)? 기분이 어떻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어릴 때부터 하고 싶던 일을 했구나, 정도로만 생각하지 너무 기쁘다거나 그런 건 없어요.

실패를 크게 생각하지 않는 만큼 성공했다는 감각도 크지 않나 봐요.

제가 성공을 했는지, 잘하고 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브랜드를 론칭하면 사람들이 잘했다, 잘했다, 해주는데 저는 오픈할 때까지 계속 봐온 사람이니까 그런 말들이 잘 안 와닿더라고요. 사람들은 ‘짠’ 하고 공개된 모습만 보니까 잘했다고 칭찬부터 해주는 것 같아요. 물론 개중에는 입바른 말로 칭찬하는 분들도 있겠죠. 근데 저는 어떤 칭찬이든 무감해지려고 해요. 사람들이 저한테 잘했다, 잘했다, 해주는 걸 즐길 때도 있지만 그 기분을 오래 가져가고 싶진 않거든요. 진짜 잘한 건지, 진짜 좋은 건지 끊임없이 의심하다가 칭찬이 최고조에 이르면 꼭 습관적으로 런던이나 도쿄 같은 델 가요. 프로젝트를 하나 마칠 때마다 디자인적으로 훌륭한 도시에 가서는 깔아뭉개지는 거죠(웃음). 어마어마한 기획이나 디자인을 보면서 ‘난 세상에 먼지 한 톨도 안 돼.’라는 걸 느끼는 게 너무 좋아요. 내가 한건 도대체 뭔지, 이 정도로 잘했단 소리나 듣고 있는 건지, 한심해지는 그 순간을 즐기는 거죠. 저 좀 변태 같나요(웃음)?

 

자신에게 호되게 굴 때 오는 자극은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더 잘하고 싶어지거나, 다 망해버려라 싶어지거나.

저는 ‘더 잘하고 싶다.’예요. 그럴 때 오는 자극이 너무 좋아요.

 

외국에서 확실하게 찌그러져 본 경험은 뭐였어요?

일본에서 ‘미나 페르호넨minä perhonen’이나 ‘아트앤사이언스 ARTS&SCIENCE’에 갔을 때요. 아, 그리고 오드투스윗을 오픈하고 런던에 갔었는데 ‘블루마운틴스쿨Blue Mountain School’이라는 델 다녀왔거든요. 패션을 기반으로 하는 공간인데, 어유…어나더레벨이에요. 예약을 하거나 벨을 눌러야 입장할 수 있는 프라이빗한 공간인데요. 이런 부분에서도 자신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지금 운영하는 공간에서는 소비도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로만 끝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공간마다 다른 꽃들로 장식하고, 한때는 24시간 플레이리스트를 일일이 만드셨다고 들었어요. 이상적인 소비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건 많이 사봐야 알 수 있는 일 같아요. 가장 좋은 끝판왕 물건을 보고 나면 그 분야의 다른 물건은 생각나지 않는 것처럼, 제일 좋은 물건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인 경험에 따른 거라고 보거든요. 이를테면 저에게 키친타월 같은 건 가성비가 중요한 기준이에요. 싸게 잘 사면 그게 잘한 소비죠. 근데 수건을 산다면 이야기가 좀 다를 거예요. 다양한 수건을 경험해 봐야 어떤 물건이 진짜 좋은지 알 수 있거든요. 그러려면 좋은 것뿐만 아니라 나쁜 제품까지 다양하게 써봐야 수건에 대한 기준과 욕구가 생기게 돼요. 그래서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정보를 많이 얻는 게 중요해요. 지식과 경험, 정보가 있어야 좋은 소비의 기준을 얻을 수 있거든요. 그런 점에선 리뷰도 중요하죠. 디자인 리뷰가 필요한 영역이 있고, 성능 리뷰가 필요한 영역이 있기 때문에 그걸 잘 분류해서 살펴봐야 해요.

 

아틀리에 에크리튜의 모든 브랜드는 공간을 소비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오프라인 공간에서 어떤 경험을 하기를 바라요?

온라인이 점차 발달하고 힘이 세져도 오프라인에서 줄 수 있는 게 분명히 있어요. 그러니까 온라인이 강세라고 오프라인이 죽는 게 아니라, 둘은 함께 성장해야 하는 관계인 거죠. 오프라인 공간은 상점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강점을 극대화하는 게 중요해요. 예컨대 계단을 밟으며 나는 삐거덕 소리나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풍기는 향기나… 오감으로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것들을 꾸려야 하는 거예요. 사실 저는 오감뿐만 아니라 물건을 어디서 어떻게 샀느냐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스토리가 부여되면 그 물건이 더 좋아지지 않나요? ‘이 노트를 살 때, 초록색 책 옆에 있어서 더 눈에 띄었어. 그 옆에 초록색 볼펜도 사려다가 참았지.’ 같은거요. 그래서 저희는 뭔가를 장식으로 놓을 때도 소비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민해요. 이를테면 문진을 고심해서 올려놨는데 손님들이 그 문진을 찍어서 SNS에 업로드할 때 소비경험에 스토리가 더해진다고 봐요. 근데 온라인에서는 이런 경험을 할 수가 없거든요.

 

브랜드가 자식이라고 했지만 똑같이 깨물어도 특히 안 아픈 손가락이 있을 것 같아요. 지금 가장 애착이 가는 브랜드는 뭐예요?

음… 지금 가장 아끼는 건 오르에르예요. 포인트오브뷰가 오르에르 안에 있어서 더 애착이 가나 싶기도 한데, 만일 포인트오브뷰가 다른 데 있었다면 오르에르랑 포인트오브뷰 중에 고민했을 것 같아요. 오르에르를 더 잘 돌봐주지 못하는 미안함 때문에 애정이 더 가는 지도 모르겠어요. 잘해주면 덜 미안한데, 요새 신경을 통 못 쓰고 있거든요. 정원도 가꾸고, 물도 줘야 하는데 오늘도 보니까 파삭 말라 있더라고요. 반면, 포인트오브뷰는 직원들이 워낙 잘해줘서 제가 미안할 틈이 없죠. 그래도 다 같은 제 자식이에요.

품으로 낳고

살뜰히 보살피는

지금 운영 중인 모든 브랜드의 거점이 성수동이에요. 다른 동네를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많았죠. 자그마치를 할 때 성수동에서는 계약의 기본 평수가 무척 크다는 걸 경험해서 작게 임대가 가능한 곳들을 알아본 적이 있거든요. 제주도랑 구리까지 검토했었죠. 그러다가 나중엔 을지로를 보러 다녔는데요. 그땐 을지로가 지금처럼 알려지기 전인데, 돌아다니면서도 계속 성수동이 생각나더라고요. 을지로에도 성수동이 가진 단정하지 않은 느낌이 있었지만 너무 휑해서 결국엔 다시 성수동으로 돌아오게 되더라고요. 사실, 다른 동네로 고개를 돌리기엔 성수동만 해도 너무 넓어요. 서울숲 성수가 있고, 연무장 웨스트 성수, 연무장 이스트 성수, 북 성수, 성수역 성수, 뚝섬 성수… 성수동만 해도 이렇게 넓고 재미있는데 여기 좀 더 있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수동에서만 있으니까 다들 제가 성수동을 꿰고 있는 줄 알거든요. 근데 이젠 이 동네도 여러 브랜드가 생기고 없어지고 있어서 모르는 곳투성이예요. 오히려 지인들이 “여기 가봤어?” 하고 물으면 “우와, 여기가 어디예요?” 할 정도죠. 게다가 서울숲 쪽에 계신 분들은 이쪽에 잘 안 오시고, 저는 또 그쪽엘 잘 안 가요. 그래서 어쩌다 만나게 되면 “여기 왜 이렇게 변했어요?” 하면서 눈이 휘둥그레지죠. 성수동에서만 브랜드를 론칭해서 다른 동네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저는 아직 성수동에 있어야 하나 보다 싶어요.

 

성수동에서 계속 브랜드를 할 수 있는 건 로컬 문화를 해치지 않고 동네 브랜드와 어우러지는 것도 한몫하는 것 같아요.

사실 애써서 그렇게 하고 있진 않아요. 초기나 지금이나 상생하자는 마음보다는 저희가 편해서 주민들과 함께하는 경우가 훨씬 많죠. 금속 가공이나 레이저 같은 기술 분야는 주로 성수동 업체와 협력하고 있는데요. 상생한다는 목적보다는 다른 데보다 이 동네가 훨씬 저렴한 데다가 사장님들이 “이것 좀 해주세요.” 하면 되게 잘해 주셔서예요.

 

성수동에 새로 자리 잡은 손님인데도 주민들의 반응이 긍정적인 게 흥미로워요.

자그마치를 오픈할 때부터 저를 걱정해 주셨어요. “우린 돈 주고 커피 안 사 먹는다.”면서 잘 안될까 봐 저보다 더 많이 걱정하셨거든요. 근데 저희가 들어오고부터 조용하던 이 길에 활력이 도니까 좋아하시더라고요. 특히 오르에르가 있는 연무장길은 5시가 되면 모든 상점이 영업을 종료해서 죽은 도시 같았거든요. 근데 오르에르가 생기면서 식당들이 저녁 장사를 시작했어요. 요 앞 에이스 상사 분들은 오픈 초기엔 건물 맞은편에 앉아서 러닝셔츠 차림으로 계속 구경을 하시더라고요. 우중충하던 골목에 젊은 사람이 많아져서 재밌다고 하시는데 그런 반응을 보는 것도 즐거워요. 

사실 처음 오르에르를 만들고는 이 거리의 디자인적인 부분 때문에 고민이 많았어요. 바로 옆에 ‘팔방미인 미용실’이랑 ‘파랑새 노래방’이 있는데 간판이 다 촌스러운 폰트로 디자인된 90년대식이잖아요. 그래서 오르에르 주변 상점들 간판을 예쁘게 디자인해 볼까도 싶었는데 이게 선을 넘는 행동인지 아닌지 가늠이 잘 안되더라고요. 고민하는 동안 시간이 흘러 오르에르가 오픈했고, 제가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사람들이 미용실 간판과 오르에르 간판을 한 프레임에 담기게 찍어 ‘성수동의 매력은 이런 거지.’ 하면서 SNS에 올리시더라고요. 동네 매력을 잊고 예쁜 것에만 집중한 제 생각이 모자랐다는 걸 깨달은 거죠.

이야기 나눌수록 브랜드는 복합적인 존재 같아요. 이쯤에서 브랜드의 정의를 들어보고 싶은데요.

어려운 질문이에요. 브랜드…, 브랜드…, 인격체? 애를 하나 낳는 거라고 생각해요. 직접 브랜드를 운영하기도 하고 브랜드 컨설팅도 하고 있는데 하다 보니 브랜드를 ‘낳기’는 쉬운 것 같아요. 비용을 투자해서 잘하는 데 맡기면 예쁜 애를 낳는 건 어렵지 않거든요. 근데 그걸 ‘잘 키우느냐’는 다른 문제 같아요. 지금은 너무 많은 브랜드가 태어나요. 그렇지만 잘 크는 브랜드는 많지 않죠. 브랜드는 살아 있는 애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계속 돌봐주고 보살펴줘야 해요. 

생각해 보면 브랜드는 시대마다 정의가 좀 다를 것 같은데요. 과거엔 브랜드에 주입식 성향이 있었어요. 홈페이지를 만들고 포장만 잘해도 어느 정도는 먹혔거든요. 실상은 착하고 예쁜 애가 아닌데 세련되게 만들어놓고 예쁜 애라고 포장해 두면 대중이 그렇게 인지하는 시대였으니까요. 그런데 SNS가 발달하면서 지금은 사람들이 브랜드를 스스로 평가하고 이야기해요. 내가 아무리 이 브랜드는 예쁘고 착하다고 이야기해도, 사람들 평가가 그렇지 않으면 예쁘고 착한 브랜드로 이미지 메이킹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요즘 브랜드는 이전보다 운영과 관리가 어려워요. 훨씬 면밀하고 디테일하게 접근하는 브랜드만이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거죠. 아이를 낳은 이상 방치해선 안 돼요. 나만 잘 살피면 되는 게 아니라, 밖에 나가서 어떤 말투로 어떤 행동을 하는지까지 돌봐야 하는 거죠. 모든 게 노출되어 있는 시대니까요. 그래서 브랜드를 운영할 때 진정성이 없으면 안 돼요. 구멍이 생기면 바깥이든 안이든 어디에선가 새기 마련이거든요. 쫀쫀하게 모든 걸 잘 짜서 키워나가지 않으면 브랜드는 존속하기 어려워요. 생각보다 복잡한 일이고, 그걸 잘 만들어 가는 게 제 일이죠.

 

오래 브랜드를 키워내려면 다른 브랜드와는 차별되는 무언가가 필요할 텐데요.

우리나라는 특히 좀더 그런 편인데, 공간 브랜드는 사람들이 빨리 불붙고 빨리 식는 경향이 있어요. 콘텐츠를 주기적으로 주입하지 않으면 힘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공간을 기반으로 하는 브랜드라면 콘텐츠적으로 뭔가를 계속 보여주는 게 중요해요. 이벤트든, 팝업이든, 어떤 식으로든 움직이고 있다는 걸요. 

 

방금 ‘공간 브랜드’라고 했는데, 단순히 카페에 와서 쉬고 물건을 사는 것만으로 공간의 쓸모를 생각하진 않는 것 같아요. 

각기 성격이 다른 아이들을 낳았지만, 저는 이 공간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모든 것에 일관성이 있다고 느끼면 좋겠어요. 우리만의 색깔을 알아주길 바라는 거죠. 단적인 예로, 포인트오브뷰를 처음 시작할 때 그래도 문구 브랜드라고 오픈한 거니까 우리나라 문구 브랜드로 이미 잘 알려진 기업이랑 컬래버레이션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단순히 그쪽 물건을 포인트오브뷰에서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근데 연락하는 기업마다 퇴짜를 놓더라고요. 정말 거들떠도 안 봤어요(웃음). 회신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고, 제안을 거절하는 곳도 많았고요. 

근데 더현대서울에 포인트오브뷰가 입점한 뒤로 온갖 대형 브랜드에서 연락해 오기 시작했어요. 저희가 제안했을 땐 거절했던 곳들까지요. 그러다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자기네 캐릭터와 컬래버레이션을 하자고 연락이 왔는데요. 포인트오브뷰의 색깔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공중파 방송이니 당연히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포인트오브뷰의 성격은 전혀 그런 쪽이 아니거든요. 저는, 돈을 벌어다 주지 못해도 제 자식들의 고유한 가치와 색깔을 지켜나가고 싶어요. 저는 어떤 브랜드가 저 같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면 그걸로 너무 좋은 사람이에요. 있어 줘서 고맙고, 더 있어 주길 바라게 되고요. 우리도 그런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그걸 유지하면서 재미있는 걸 또 해볼 수 있을 정도로만 벌면 좋겠어요. 큰 욕심은 없어요.

그럼 모든 브랜드의 타깃이 대중이 아니네요?

저는 대중을 타깃으로 삼은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아주 소수만 좋아하더라도 우리 브랜드를 진심으로 좋아해주면 만족스러운가요?

‘아주 소수’는 안 될 것 같고요(웃음). 그래서 포인트오브뷰 같은 문구점이 좋은 게, 문구는 아주 소수만 대상으로 할 순 없는 카테고리거든요. 오드투스윗 같은 디저트 브랜드는 “단 거 절대 싫어!”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문구는 남녀노소 “절대 싫어.”라고 하는 사람은 없어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계속 사용하는 게 문구잖아요. 문구점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팀을 설득할 때도 그랬어요. “너 문구 진짜 싫어하는 사람 봤어?” 하고요. 그래도 이미 사람들이 드나드는 큰 대형 문구 브랜드들이 있으니까 잘 될 수 있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는데요. “대형 문구점 가면 재밌어?” 하고 물으니까 다들 아니래요. 필요한 것만 사서 나온대요. 그래서 ‘이런 관점으로 문구를 바라보는 브랜드도 있어.’라는 걸 보여주자면서 오픈한 게 포인트오브뷰예요. 사실 성수동에 있는 포인트오브뷰는 오르에르 건물 2층에 있는 데다가 2층에서도 한 번 더 문을 열고 들어와서 구석을 바라봐야 문이 어디 있는지 겨우 찾을 수 있어요. 만일 얘가 1층이었다면 더 잘되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도 있죠. 그런 아쉬움으로 더현대서울점을 오픈했는데, 어… 너무 힘들어요. 이 상태에서 10월에 오픈할 또 다른 것들을 준비 중인데, 몸이 남아나지를 않네요.

 

10월엔 어떤 공간을 오픈해요?

하….

 

출산의 고통을 겪고 계시는군요.

그것 때문에 SNS는 커녕 사람들 연락도 못 받고 생활이 없이 지내고 있어요. 프로젝트 규모가 꽤 크거든요. 다음 공간도 성수동에 생기는데요. 자그마치나 오르에르처럼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생길 숍이에요. 한 기업과 함께 하고 있는 프로젝트로 이름은 ‘LCDC SEOUL’이에요.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뜻을 가진 ‘Le Conte Des Contes’의 약자죠. 처음엔 60평 정도 규모의 편집숍으로 계획된 프로젝트였는데, 연면적 500평 정도로 커지면서 A동, B동, C동 세 개 동으로 꾸리게 됐어요. A동 1층엔 카페, 2층엔 패션 브랜드, 3층엔 작은 가게 일곱 개, 루프탑엔 바가 들어서게 돼요. B동은 팝업 공간, C동은 기존 브랜드가 입점하는 형태를 구상하고 있죠. 현재 브랜딩도 모두 끝난 상태고요. 카페, 바, 패션, 편집숍 등 다양한 브랜드를 여럿 낳는 일이다 보니 1년째 여기에만 온몸을 바치고 있네요. 기존의 훌륭한 브랜드들이 입점하여 공생하는 프로젝트라 더욱 신경을 많이 쓰게 돼요. 건축과 인테리어도 그 공간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을 찾아서 세세하게 맡겼죠. 오늘 거기서 오픈할 바의 음식 시식회가 있어서 또 정신없을 예정이에요.

 

아이가 엄청 많아지네요.

거의 여섯 쌍둥이를 출산하는 거죠(웃음). 

오는 10월, 새로 낳을 자식 중에 ‘이페메라Ephemera’라는 카페가 있단다. 하루살이라는 어원을 가진 이 단어는 기능적인 수명은 다했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것들을 뜻하는데, 카페에 ‘누군가의 이페메라’가 계속해서 전시될 거라는 흥미로운 이야길 들었다. 앞으로도 성수동에선 재미있는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 동네를 숨 쉬게 하는 브랜드란 이런 거겠지. 다가올 10월, 성수동은 또 얼마나 풍성해질까?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