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탄생

멀리 달아나며 늘 함께

“잊히는 거.” 언젠가 술자리에서 사랑이 뭐냐는 질문에 내가 대답했다. 곤란한 마음과 한편으로는 편안한 기분이 드는 대답이었다. 그렇게 대답한 이유는 간단하다. 예전에 아주 중요하게 여기던 일들, 사랑하던 사람과의 순간들이 점점 희미해져 간다는 걸 오랜 시간에 걸쳐 인정했기 때문이다. 살면서 이런 종류의 일을 뼈저리게 느끼고 나면 약속이나 기록 같은 걸 덜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알면서도 계속해 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요즘 내 핸드폰 사진첩에 가장 많이 저장돼 있는 대상은 완두다.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나는 이 기록들의 쓸모없음과 애틋함에 관해 동시에 생각해 본다.

좀처럼

꺼내어 보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아무리 중요한 사진이더라도 일부러 꺼내보는 일이 참 드물다. 이미 너무 많아서, 오늘 찍은 것도 있기 때문에 그리고 예전에 내가 뭘 찍었는지도 대부분 기억나지 않기 때문에 ‘찾아본다’는 개념이 거의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기록을 더 많이 할수록 기록은 그 역할이 더 줄어든다. 과거 사진을 어쩌다가 보게 되면, 순간 어떤 기분에 휩싸여 몇 시간 내내 사진첩을 넘겨 보기도 하지만, 그런 일은 가끔씩만 일어날 뿐이다. 내 핸드폰에 완두를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이 천 장 가까이 저장되어 있다. “나중에 볼 거야.” 나한테까지 변명할 필요는 없으니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 나중에 보지 않을 거면서 계속해서 찍는 이유가 뭘까. 문득 내가 완두를 찍는 행위가 미래보다 오히려 현재와 더 관계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이라도 더 안아보고 싶어 하는, 만져보고 불러보고 싶어 하는 당장의 마음과 사진을 찍는 행위가 썩 닮아 있다. 셔터를 누르면서 지금을 더 지금답게 만들고 있는 중인 것이다.

기억은 없고

두려워하는 마음만 있다

그런데 자꾸만 보게 되는 완두 사진이 있다. 사진은 대부분 찍을 때 한 번 보고 영영 안 보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사진들은 배경화면으로 설정하고 따로 폴더링을 해놓고 심지어는 인화해서 액자에 넣어놓은 것도 있다. 잊히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어떤 한순간의 표정과 몸짓을 보고 또 본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눈을 뜨지도 못할 때 옹알이하는 영상이 그렇고, 내게 번쩍 들어 올려져서 멍한 표정을 지은 사진, 몸집이 커지기 시작할 무렵에 테이블 위 딸기를 집으려고 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그렇다. 유독 그 사진과 영상을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다. 다른 사진에도 완두가 담겨 있는데 왜 그 사진이 유독 더 좋은지 잘 설명할 수가 없다. 설명할 수 없지만, 완두를 떠올리면 먼저 생각나는 사진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과연 나는 더 잘 기억하고 있을까?’ 계속해서 찾아보는 사진이 있다는 것이 증명해 주는 사실은 내가 어떤 기억을 잊지 않는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그 반대에 가깝다. 기억하고 싶어도 결국엔 잊어버리게 되는 불가항력이 배경으로 깔린 삶 속에서, 나는 이것마저 잊어버리게 될까 봐 자꾸만 떠올려 보는 것 같다. 잃기 싫은 것을 상자에 숨겨두고서 전전긍긍하며 수시로 뚜껑을 열어보는 모습에 가깝다. 그러면 그럴수록, 잊히지 않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늘 변하고 있고 기억은 자꾸 편집되는 중이어서 내 손으로 또박또박 적어놓은 문장도 10년쯤 지나서 보면 믿을 수 없을 만큼 낯설어 보일 것이다.

“여러 작품을 쓴 소설가에게 오래전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묻거나, 디테일한 칭찬을 하는 것은 실례입니다.” 언젠가 김영하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에서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한때 가장 몰입하던 이야기도 그에게는 이제 잊힌 이야기고, 이야기뿐 아니라 작가의 생각도 그때와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었다(이 이야기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이야기의 힘, 어쩌면 ‘좋은 책’의 매력을 북돋아 주는 사례로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아주 강렬한 생각도 순간에만 존재한다. 그런 것들이 내 안에서 영원히 잘 간직돼 있다고 믿으면, 자기 자신과 타인에게 점점 더 크기가 커지는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게 아닐까. 어쩌면 과거에 관한 부분도 미래에 일어날 일처럼,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게 상식적인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잊힐 것을 알면서

기록하는 방식으로 기록하기

기억은 거의 거짓말에 가깝고 기록도 힘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지만, 기억하고 싶은 순간 앞에서 나는 또다시 카메라를 든다. 잊힐 걸 알면서도 계속해 나가는 것이 기록의 본질 아닐까. 헤어질 것을 알면서도 또다시 누군가를 만나고, 위험할 게 뻔하지만 모험에 뛰어들며, 결국 밝혀 내지 못할 걸 알면서 알아내는 데 시간을 다 쓰는 게 삶인 것처럼, 기록이 소용없다는 사실도 기록하기를 막지 못한다. 이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고 작동되는지, 거기서 내 생각과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영영 알 수 없으니까 하던 일을 함부로 멈추지 않고 그저 계속해 나간다. 따끔거리고 떨리고 땀이 나는 당장의 상황들에 충실하자고 한번 생각해 보면서 말이다.

잠든 완두, 나를 보는 완두, 어린 완두, 무언가를 먹거나 냄새 맡는 완두, 짖고 있는 완두, 멀리 뛰어가는 완두… 낳은 이가 아닌 키운 이가 진짜 엄마라는 이야기처럼, 그러니까 시간을 함께 보내는 방식으로만 망각에서 해방되니까, 우리 중 누구 하나가 세상에서 사라져 시간이 많이 흐르면, 우리는 우리를 점점 잊어갈 것이다. 서로 잠시 스쳤을 뿐이라는 것,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큰 고마움을 느낄 때 삶이 죽음보다 빛나는 게 아닐까.

완두는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지만, 나는 오늘도 기록한다. 망각의 힘으로, 무의식과 애틋한 억지로, 일방적으로, 용기 내어, 슬픔을 곁에 두는 방식으로 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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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