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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der, Wonder : 가우디에서 길어 올린 빈티지
빈티지는 휴먼스케일이다.
일상에서 자주 쓰지만 정작 무슨 뜻인지 모르는 말이 있다. 내겐 빈티지가 그렇다. 빈티지 옷, 빈티지 자동차 등 비슷한 의미 같지만 똑같지 않은 듯한 말. 사전에서 ‘빈티지’를 검색하니 “특정한 해에 생산된 와인이나 와인이 만들어진 특정한 해”, “오래됐지만 품질이 좋은 것”, “품질이 좋고 가치가 오래 지속하는 물건 또는 어떤 물건이나 그것을 만든 인물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특히 과거의) 것” 등이란다. 예문으로 “빈티지 카”, “<Sophisticated Lady>는 빈티지 듀크 엘링턴이다” 등이 나왔다. 상황을 정리해봤다. ‘빈티지 카’가 단지 중고차를 가리키는 말일까? 아니다. 오래된 ‘프라이드’는 옛날 차일 뿐 빈티지라고 하지 않는다. 유달리 성능이 좋거나 개성이 강해 역사에 각인된 모델 또는 어떤 식으로든 의미 있는 모델에 ‘빈티지’ 자격이 주어진다. ‘빈티지 숍’에서는 오래된 물건을 판다. 딱히 물건의 품질과 역사적 의미를 지닌 물건만 취급하지 않는 것 같다. 나만 헷갈리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중고’와 ‘빈티지’를 구분하지 않고 대충 섞어 쓰는 모양이다.
난 지금 곤경에 처했다. 첫째, 여섯 달 예정이던 첸나이 레지던시가 예기치 못한 건강 문제로 갑자기 막을 내렸다. 지난 두 호는 눈앞에 펼쳐지는 현지 상황을 갈무리만 해도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었지만 더 이상은 곤란하다. 둘째, ‘빈티지’라는 주제. 빈티지가 무슨 뜻인지 몰라 사전을 찾아야 할 정도로 ‘빈티지 바보’ 주제에 뭘 쓸 수 있을까.
사전 검색에 이어 집 안을 둘러봤다. 허투루 나마 빈티지라는 말을 갖다 댈 수 있을 만한 물건은 1960년대에 북유럽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는 티크 소재 콘솔뿐이다. 모서리마다 각을 둥글려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일부러 사그라뜨린 10여 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독서용 의자를 사려고 가구점을 기웃거렸다. 곡선이 미려한 불그스름한 갈색 의자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한번 앉아보세요. 정말 편해요. 저희 집에서 가장 저렴한 의자지만 만듦새가 기가 막혀요. 소재는 로즈우드인데요, 한국에선 장미목이라고 부르죠. 번역된 이름 때문에 많은 사람이 장미가 피는 나무인 줄 착각하는데, 아니, 그 얇은 장미 나무 가지로 어떻게 가구를 만들어요? 안 그래요?”
나 역시 그제야 장미 나무가 그 장미 나무일 리 없음을 깨달았지만 침묵을 지켰다. 침묵은 금이다. 그보다 가장 저렴하다는 말에 일말의 희망을 품고 가격을 물었다.
“700만 원이요.”
나는 약 1천 4백억 원에 낙찰된 뭉크의 ‘절규’처럼 녹아내리며 소스라쳤다. 비단 빈티지 가구뿐 아니라 일반 가구에 대한 관심은 통제하고 요알해야 하는 것으로 분류되어 소각 처리되었다.
갑작스러운 귀국으로 취소해야 했던 북인도와 스리랑카 휴가 계획을 만회하고자 바르셀로나에 왔다. 가우디의 유산을 하루에 한두 곳씩 방문하며 ‘절규’ 중이다. 이번 절규는 꽤나 복합적이다.
먼저 건물의 조형성에 압도되었다. 다채로운 곡면으로 넘실거리는 형태는 이 세상 것이 아니었다. 한 인간이 품을 수 있는 배포의 규모에 탄복했다. 게다가 이런 말도 안 되는 구상이 실현되다니 기적이랄 수밖에. 건물의 세부를 볼수록 아찔했다. 건물 내부의 벽과 천장도 불규칙한 곡선으로 구불거렸고 계단실 하단에 덧댄 나무 역시 물결처럼 굽이쳤다. 소라나 고래의 뱃속에 들어온 듯했다. 가우디의 지시에 따라 일하는 사람들이 받았을 우주적 스케일의 고난을 짐작해보려다 몸서리쳐져 그만두었다. 가우디를 상관으로 두는 인생은 지옥 자체였으리라.
황당할 만치 뜬금없지만 가우디와 빈티지를 버무려 이 난관을 파헤쳐 보기로 작정하기에 이르렀다. “<Sophisticated Lady>는 빈티지 듀크 엘링턴이다”라는 예문이 가능하다면, 디터 람스의 제품을 빈티지라 부를 수 있다면, 가우디 역시 빈티지라 여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스스로 세뇌했다. 내 눈은 묘하게 꼬인 문손잡이에 가닿았는데 이 손잡이들은 점토를 손에 쥐어 나온 모양으로 주물을 떠 만들었단다. 건물과 가구의 결이 맞아야 하기에 가구 디자인에도 깊이 관여했다는 가우디는 의자 역시 인체의 선을 본떠 제작했단다. 인체는 온통 곡선이니 가구에 직선이 들어갈 여지가 없음은 자연스러운 결과일 테다. 어떻게 이어질지 예측 불가능한 가우디의 다채로운 곡선을 훑으며 걷는 기분은 푸근했다. 카사 밀라의 복도에 설치된 전화기 옆에 마련돼 있는 팔꿈치를 기대거나 수첩을 놓을 수 있는 작은 대에서 가우디의 치밀한 관찰력과 거주자 생활의 질을 높이려는 의지가 엿보였다. 아무래도 산업 규모가 문제인 모양이다. 우리는 직선에 갇혀 산다. 직선은 곧 효율이니까. 이따금 사용되는 곡선마저 컴퓨터로 계산된 기하학이다. 가우디의 건축은 효율을 무시하고 지은 무모한 건물이다. 가구에, 물건에, 관습에, 타인의 기대에 억지로 맞춰 사는 우리 모습이 안쓰러운 나머지 가우디의 담대한 기획과 실행이 상쾌했다. 우리가 빈티지에 매료되는 이유는 이제는 요원한 방향의 발상이 휴먼스케일로 구현된 물건이기 때문은 아닐까.
인간의 생활에 초점을 맞춘 주거용 건물과 달리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는 인간을 넘어서는 기운이 공간을 채운다. 기둥은 거대한 나무처럼 솟아올라 가지를 뻗어 잎으로 하늘을 덮고 그 사이로 빛이 쏟아진다. 구상과 추상이 절묘하게 결합된 거대한 숲 곳곳에 박힌 가우디의 ‘빈티지’ 그래픽 역시 정수를 보여준다. 인간계에 아마도 다시는 구현되지 못할 형상과 물성에 취해 절규할 뿐이었다.
글·사진 이기준(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