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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The Window
커다란 창문에 대한 이야기.
방문을 열어 둔 채로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방문이 닫혀 있는 것보단 한 뼘 정도라도 열려 있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 많은 시간 동안 그 좁은 책상에서 무엇을 했는지 지금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몸을 뒤틀어가며 시간을 허비하던 강한 집념과 의자 위 위태로운 자세들만 정확히 기억날 뿐이다. 문틈 사이로 누군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리면 의자에 바로 앉아 문제 푸는 시늉을 했다. 연필을 쥔 손은 습관적으로 책의 오른쪽 윗부분에 고정되었다.
좁게 열린 문틈을 통해선 텔레비전 소리가 조그맣게 새어 들어왔다. 리모컨의 음량 버튼을 누르면 나타나는 초록 작대기의 개수는 언제나 다섯 개 혹은 여섯 개로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방청객의 웃음소리 같은 효과음 말고는 어떤 소리도 또렷하게 들리지 않았다.
6시 무렵 집으로 걸려오는 벨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전화를 받은 아버지는 한참 동안 말이 없으셨다. 잠시 후 “그 이야기가 정말 확실한 것인지”, 거듭 물어보고, 또 한참을 말씀이 없으셨다. 텔레비전의 웃음소리가 중단되고, 텔레비전 전원을 끄고 나면 들려오는 고주파의 전파가 한동안 새어 나왔다. 나는 숨을 참은 채로 거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였다. 쩌억 쩌억 장판에 발바닥이 달라붙는 소리가 방으로 향하고, 이윽고 방문이 열리기까지 그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중학교 시절, 나에겐 물건을 훔치는 못된 버릇이 있었다. 문방구나 슈퍼마켓에서 최대한 터무니없는 물건을 훔쳐서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아이들은 황당해하며, 한편으로는 재밌어했다. 나는 ‘훔친다’는 말 대신 ‘뽀린다’는 말을 사용해 도둑질을 어린 시절의 짓궂은 장난처럼 포장해 버렸다. 그런 장난이 나를 ‘독특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다.
“학생 가방 좀 이리 줘 봐.”
그날은 레코드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발각된 날이었다. 내 신발주머니에는 재밌어 보이는 앨범 재킷의 카세트테이프가 두 개 담겨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 친구는 갸우뚱하는 사이, 나는 재빠르게 그곳에서 도망해 버렸다. 물건을 훔치다 걸리면 무조건 도망쳐야 한다는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그 후 등 뒤에서 벌어진 상황은 알 수 없었다. 친구가 멀뚱히 서 있다가 공범으로의심받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모든 일이 원만히 해결되어, 학교 혹은 집으로 전화가 오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방문이 열리고, 고개를 돌려 마주한 것은 난생처음으로 도둑을 본 아버지의 깨끗한 눈동자였다. 아버지의 선한 눈동자가 글썽거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긴 설명 없이 당장 옷을 챙겨 입고 나오라고 하셨다. 나는 되묻지 않고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현관문으로 향하는 등 뒤로 “내가 그동안 도둑놈에게 밥을 먹였다.”며 오열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레코드 가게의 주인아주머니와 아버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는 주인아주머니를 통해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주인아주머니는 아버지를 통해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주인아주머니 곁엔 그의 아들이 함께 있었다. 아들은 종종 아주머니를 대신해 가게를 지킨 사람으로, 돌처럼 단단한 체구를 가진 듬직한 남성이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는 단단한 체구와는 다르게 의기소침하고 몽롱해 보이는 사람이기도 했다.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고, 어머니 질문에 순하게 대답하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로서 레코드 가게의 주인아주머니는 상냥하고 근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서 원망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아들을 가리켜 “예전엔 이 녀석도 사고를 많이 치고 다녔다.”며 오히려 아버지를 위로해 주기도 했다.
나에게 그들은 커다란 상가 유리 뒤편에 서 있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그들과 종종 눈을 마주치고, 때로 거스름돈에 대한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그들의 표정과 사소한 말씨가 이렇게까지 가까이 들리지는 않았었다. 내가 재미 삼아 휘젓고 다닌 것들은 가까운 사람들의 짧은 대화와 말투, 그리고 인내심 어린 표정들이었다.
한쪽 구석에서 고개 숙이고 있는 내가 보기 불편했는지, 주인의 아들은 나를 어딘가로 데리고 갔다. 범죄자는 자신의 거취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없기에 나는 조용히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그를 따라간 곳은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면 언제나 보이는 상가의 초록색 옥상이었다. 위에서 보던 것과 마찬가지로 황량한 우레탄 바닥 위에는 재떨이 하나만 삐뚤게 서 있었다. 위에서 보이지 않는 한구석에는 음료수 캔과 통조림 등이 빼곡히 적재되어 있었다.
그곳에서는 아파트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가깝게 보였다. 뜬 화장처럼 하얗게 분리된 조명 아래서 저녁이 되어 다시 만난 가족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벽에 기대어 섰고, 나는 판결을 기다리는 모양으로 두 손을 모으고 그의 옆에 어정쩡히 섰다. 그는 잠시 후 지나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편하게 있어.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거지….”
그 시절, 저녁 무렵이 되면 왠지 모르게 목구멍이 꽉 막히는 느낌이 들곤 했다. 아파트 꼭대기 층이 붉게 물들고, 어느 집 작은 창문을 통해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면, 마음속 어딘가 부어오르는 것처럼 기분이 이상해지곤 했다. 모든 사물의 얼굴을 시체처럼 창백하게 만들어 버리는 거실의 형광등 불빛과 6시 정보 프로그램 속 일상적인 웃음소리, 점점 고조되는 밥솥의 진동 소리. 그런 것들이 숨을 참고 지나가야 하는 터널처럼 무겁게만 느껴졌다. 그의 한마디에 가슴 어딘가가 뚫려버려 어깨가 들썩여졌다. 목이 메어 대답할 수는 없었기에 고개만 크게 끄덕거렸다.
글·그림 한승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