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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야기
더 스미스The Smiths 노래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에는 “10톤짜리 트럭이 우리 둘을 치어 죽인다고 해도 네 곁에서 죽는다면 그건 내 기쁨이자 특권일 거야”라는 가사가 있다. 타인에게 그토록 빛나는 마음을 가진 적이 있는가 곰곰 곱씹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잘 모르겠는데, 남들은 어떨까? 당신의 사랑을 들여다보고 싶다고 살짝 운을 떼볼까?
결혼 비슷한 것을 위한 마음의 준비 중 | 시인 송승언
중학생 때였나, 결혼 같은 건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닮은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으니까.
고등학생 때였나, 결혼 같은 건 절대로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같이 살면 여러모로 서로 상처만 주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귀찮은 일이고 나는 귀찮은 건 질색이니까.
대학생 때였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나는 대학에 다니느라 자취 중이었다. 살면서 한 번도 만난적 없는 외삼촌이 너를 데리러 갈 테니, 외삼촌의 차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오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조금 특이한 사람이다, 너처럼.” 어머니는 덧붙였다. 쉰 살 넘는 동안 독신으로 살았다는 그의 자동차 트렁크에는 취미 생활의 흔적으로 보이는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장례식장으로 이동하면서 그와 무의미한 대화를 좀 나누었는데, 그 대화 중에 알 수 없는 이유로 나는 그의 성 정체성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고, 미약한 친밀감을 느꼈다. 장례식 이후 그를 다시 본 적은 없다.
그를 보았을 때, 결혼 같은 건 역시나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서른 중반인 나는 지금 결혼 비슷한 것을 앞두고 있다. 결혼이면 결혼이지, 결혼 비슷한 것은 또 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단순하게 생각하면, 결혼은 결국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가족이 된다는 것 아닌가?
그러면 또 가족은 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떠한 일에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책임을 지고, 구성원들의 몸과 마음 상태를 잘 돌보고, 공동의 일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조금은 포기하고, 그러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경제 활동을 이어 나가는… 공동체의 최소 단위를 가족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이 그리 틀리지 않는다면 나는 지금 결혼 비슷한 것을 통해 가족이 되려고 하는 중이다.
우리 세대가 점점 일반적인 결혼의 형태를 원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만큼은 분명하다. 사랑하는 남녀 두 사람이 때가 되면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구청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아이를 낳고 또 키우는… 그런 결혼식 말이다.
번잡한 예식을 생략하거나, 예물을 생략하거나, 아이를 낳지 않거나, 법적으로 신고를 하지 않거나, 남녀 사이가 아니거나, 두 명이 아니거나… 이들 중 일부 혹은 전부에 해당하더라도 가족을 이룰 수는 있지 않을까? 사회에서 요구하는 특정한 양식에 따라야만 가족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라 공동체구성을 위한 가치관의 합의와 그 실천만으로도 가족이 될 수 있는 세상이 와야 한다고, 나는 강력하게 주장한다. 어쩌면 이미 그러한 때는 계속해서 도착하고 있는 중인지도.
결혼 7년 차 | 뮤지션 계피
짧은 글이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결혼한 게 적성에 맞다. 어린 시절부터 여성의 성공적인 사회생활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품은 채 자라났지만, 가끔 ‘이 사람이랑 매일매일 뒹굴뒹굴 놀기만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진심으로 든다. 쉬고 싶기 때문이 아니라 이 사람이 좋기 때문이다. 누구와 있어도 이처럼 편안하지는 않다. 잘 긴장하고 자주 불안해하는 나는 그만큼 내 편인 사람에게서 얻는 정서적 충전을 필요로 한다. 나는 그런 내 의존성을 잘 알기에 가끔 남편이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하면 좀 서운해도 재빨리 일어나 내 할 일을 한다.
남편과 성격이 맞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진솔한 대답을 했을 때 “우리 성격은 잘 맞아요.”라고 대답할 수 있는 부부가 과연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부부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를 두고 대립하는 관계다. 돈도 성공도 명예도 이 이해관계보다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누군가가 당신에게 진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는 것’이라는 이해관계다. 서로 의지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부부 간 혹은 연인 간의 갈등상황을 떠올려보라. 각자 자기 의견을 상대가 받아들여 주길 원하지만 열이 오른 각자의 주장과는 달리 객관적 정답이란 것은 없다. 목소리는 높아지고 갈등의 골은 깊어진다. 해소는 어느 한쪽이 먼저 진심으로 공감하면서 마음을 열어주었을 때만 일어난다. 그러면 상대도 마음이 누그러지면서 상대를 공감하기 시작한다. 반드시 어느 한쪽이 먼저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누가 먼저 공감해 주느냐는 건별로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번갈아 가면서 타자를 정하는 것도 가능할까?
가능하지 않다. 나도 가능할 줄 알았다. 왜 아니냐고? 말 그대로 어느 한쪽은 관용적이고 공감능력이 뛰어나지만, 어느 한쪽은 상대적으로 화가 더 많고 공감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한계를 인정하는 데 아주, 아주 오래 걸렸다. 저번에 상대가 먼저 공감해 주었다는 사실은 화가 난 상태에서는 기억이 잘 안 난다. 기억이 난다 해도 이번 일에서 상대의 잘못이 그에 비해 대단히 크다고 느껴지기 십상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공감능력은 훈련이 가능하긴 하지만 선천적인 면도 크고, 기본적으로는 유아기 때 받은 양육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그렇기에 당신이 파트너보다 공감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면 당신 잘못만은 아니다. 내가 남편보다 공감능력이 좀 떨어지는 것도 내 잘못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아무리 노랫말에 공감하고 그를 표현하는 걸로 먹고산다고 한들, 그 치열한 이해관계에서는 내 공감능력도 힘이 달린다. 사견이지만 더 의지하는 쪽이 아이러니하게도 더 상대에게 공감하기 힘들어하는 것 같다. 의지하는 만큼 기대도 크기 때문에.
쓰다 보니 결혼한 게 적성에 맞는 사람치고 좀 건조하게 표현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풋풋한 대만영화 <청설>(2009)에서처럼 “사랑과 꿈은 기적 같은 것이다” 풍으로 쓰고 싶기도 했다. 다만 부부간에 지지고 볶을 시간이 충분했던 결혼 7년 차 가라사대, 그게 전부가 아니었을 뿐이다. 당신이 결혼을 고민 중이라면, 상대가 얼마나 당신과 끝까지 갈등해 줄 용의가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 권하고싶다. 미쳐버릴 것 같은 갈등을 함께 넘어왔기에 알콩달콩하던 결혼 전보다도 남편이 진심 더 좋다.
결혼 1년 차 | 뮤지션 송재경
연애 9년을 풀로 채우고 올 초 결혼을 했다. 대학생이던 아내는 해외 순회공연을 다니는 포스트록 밴드 리더이자 방송사 PD가 됐고, 갓 데뷔한 인디밴드 보컬리스트이자 신입 사원이던 나는 중견 뮤지션, 아이돌 작사가, 그리고 회사의 중간 관리자가 됐다. 서로의 산전수전을 목도하며 밀어주고 당겨주고 싸우고 화해하던 시간을 거쳐 우린 각자가 원하던 만큼, 어쩌면 그 이상 성장했고, 관계가 알차게 영근 지금 가족이 됐다.
‘결혼에 골인했다.’라는 표현을 많이 들었다. 결혼이 일생일대의 빅 이벤트는 맞는 것 같은데, 그 자체가 관계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닌 것 같다. 단지 각자가 추구해 온 삶의 목표들을 이루기 위한 든든한 조력자를 얻는 일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공동의 목표들을 만들고 조금씩 같이 이뤄나가는 것. 결혼식은 가족과 지인들을 위해 둘이 기획한 작은 축제였다. 둘 다 나름 ‘뮤지션 부심’이 있어 선곡에 무엇보다 신경 썼다. 바르셀로나에서 같이 본 테임 임팔라Tame Impala부터 아내의 인생 밴드 시규어 로스Sigur Ros(허니문을 아이슬란드로 이끌기도 한)까지, 그리고 루 리드Lou Reed와 M83, 본 이베어Bon Iver,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 더 내셔널The National…. 지난 10년 우리 삶을 가득 채워온 노래들이 식 내내 울려 퍼졌다. 주례가 없는 대신 서로를 위해 정성스럽게 쓴 글을 낭독했고, 축가가 없는 대신 같이 만든 곡을 기타 배틀 형식으로 연주했다. 무엇보다 특별했던 순서는 ‘MOU 체결식’으로, 살아가며 함께 지켜내고 싶은 평등, 환경과의 공존 등의 가치를 다섯 개 조항으로 정리하여 하객들 앞에서 낭독하고 서명했다.
최근 둘의 삶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건 사실 결혼보다 고양이 ‘민채’다. 고단한 거리의 삶을 살던 민채와 우리가 가족이 된 건 작년 봄이었고, 올해 결혼을 통해 우리 세 식구의 본격적인 동거가 시작됐다. 고양이와 같이 살면, 얼굴의 기본 표정이 무표정이 아닌 미소가 된다. 집 안의 기본 소리가 정적이 아닌 조잘거림이 되고, 추운 날 실내 온도가 기본으로 몇 도 올라간다.
결혼 1년 차 우리의 최대 목표는 오랫동안 구상만 해 온 듀엣 프로젝트 ‘열섬’의 미니 앨범 발표다. 같이 살다 보니 짬이 날 때마다 각자 작업방으로 가서 조금씩 작업을 진행하고 바로 공유하고 수정, 또 바로 피드백하는 등 무척 효율적이다. 다만 작업 외에도 집에서 할 수 있는 재밌는 일이 너무 많아서(테이블마다 산을 이룬 신간들, 항상 켜져 있는 넷플릭스, 김치냉장고를 가득 메운 하이네켄 등) 시간이 없다.
결혼 7년 차 | 뮤지션 오지은
어쩌다 보니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해야겠다!’고 어디서 계시가 내려온 것은 아니다. ‘이만큼 잘 지냈으니 앞으로도 잘 지낼 수 있겠지? 그럼 결혼이라는 제도에 한번 묶여볼까?’ 하는 마음이었다.
결혼식은 하고 싶지 않았다. 깨끗한 옷을 입고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만 하고 싶었다. 기념사진 한장이면 좋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국의 부모님들은 로망이 많다. 결국 많은 사람을 한자리에 모으고 말았다.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 애써 정신 승리를 해보았다. 그래, 결혼이 쉬운 일이 아니니까 험난한 길 잘 가보라고 많은 사람이 모여서 축복해 주는 거야. 축복은 멋진 일이니까.
우리는 서로 호칭을 고민했다. 그가 나를 부를 호칭 중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아내, 부인, 마누라, 집사람, 안사람 등등. 어원을 찾아보면 다 어딘가 찜찜했다. 아내는 안채에 있는 사람, 부인은 한자로 며느리 부婦 자에 사람 인人 자. 그는 한동안 열심히 검색을 하더니 나를 ‘배우자’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짝지을 배配, 짝 우偶, 놈 자者. 즉, 내 짝지의 어른스러운 말. 나는 그를 ‘동거인’ 또는 ‘룸메이트’라고 부른다. 어딘가 종속되는 느낌이 없이 깔끔하게 느껴져서 좋다.
까만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자동으로 엄마, 그리고 아빠가 되었다. 둘이 집에서 뒹굴뒹굴하는 것도 좋았지만 셋이 조용한 밤거리를 산책하는 것은 더욱 좋다.
우리는 영원이라는 말을 믿지 않지만 그래서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관계란 깨지기 쉬운 화병같아서 서로 조심하고 아껴야 오래 갈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생각한다. 언제 나를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래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지나치게 푹신한 소파는 허리를 망가뜨린다. 염세주의자의 행복은 이런 모양이다.
에디터 이주연 글 송승언, 계피, 송재경, 오지은
일러스트 오하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