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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자유를 만나며
이 글을 읽고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든든한 사랑을 얻을 나의 아들을 위해, 어리숙했지만 가장 용감했던 지금의 우리를 기억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마침내 자유를 만나며.’ 아마 평생을 두고두고 마음에 담아둘 문장이 될 것 같다. 2022년 7월 아주 더웠던 한여름의 어느 날, 마침내 자유를 만나고, 그동안 그렇게 찾고 싶었던 인생의 진정한 자유를 만난 이야기.
29주에 시작된 병원 생활은 벌써 35주가 되었다. 열이 나는 것도, 원인을 모르는 것도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지만 우리는 묵묵히 앞으로 달려가고 있다. 하루하루 나와 아기를 살피며, 시간이 어느 때보다 빠르게 흐르길 바라며 지금을 보내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이 많이 떨어지고 있다. 아팠던 동안에 살이 7kg이나 빠졌다. 얼굴이 수척해졌고, 무엇보다 마음도 그만큼 야위었음이 느껴졌다.
만삭이어야 할 배는 아직도 많이 작다. 초음파를 보니 양수가 부족하고 아기도 작은 편이라고 했다. 물도 음식도 많이 먹어보려 하지만, 계속 나는 열 때문에 쉽지가 않다. 아기가 2kg만 넘어도 좋겠다는 생각에 한 주만 더 버텨보려 했지만, 점점 한계를 느낀다. 오늘도 하루 종일 열이 났다. 해열제로만 버티기에는 나의 체력이 어느새 바닥나고 있었다. 선생님들께서 아기도 힘들 거라고 지금이라도 당장 수술을 하자고 했다. 무서움과 두려움에, 무엇보다 미안함에 자꾸만 눈물이 났다. 내 잘못이 아니니 죄책감을 갖지 말자 늘 다짐했지만, 어쩔 수 없이 자꾸만 내 탓을 하게 된다.
처음 임신을 알았을 때 자연주의 출산을 결심했었다. 출산의 모든 것이 편안하고 따뜻하기를, 힘들겠지만 그래도 출산을 즐거운 축제처럼 맞이하고 싶은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주의 출산은 의료적 처치를 최대한 자제하고 자연스럽게 출산하는 방법인데, 출산 환경이 나와 아이에게 가장 편안한 상태로 맞춰진다. 늘 듣던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춤을 추며 아기가 스스로 나오는 과정을 기다리고,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따뜻하게 안아주며 인사해 주고 싶었다. 우리 인생 최고의 순간에 셋이 함께이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는 내일 수술하기로 결정했다. 자유는 태어나면 바로 신생아 중환자실로 가야 하고, 코로나19 때문에 꽤 오랜 시간 동안 안아볼 수도 없다.
하지만 아무래도 괜찮다.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나기만 한다면 아무래도 괜찮다. 아프기 시작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펑펑 울지 않았다. 일부러 참은 건 아니었다. 병실에는 나처럼 아픈 산모들이 모두들 저마다의 이유로 지금을 견디고 있었기 때문에 눈물을 참았고, 남편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삼켜졌다.
오늘은 다행히 병실에 아무도 없었다. 아이와 한 몸으로 보내는 마지막 밤, 나는 펑펑 울었다. 한 가지 마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백 가지 많은 마음에 자꾸만 눈물이 났다. 자유는 분명 건강할 테니까 얼른 너 아픈 거 치료해야 된다고 걱정하는 엄마의 문자 메시지를 읽다가, 남편이 자유에게 쓴 편지를 읽다가 울었다. 그러다 배 속에서 느껴지는 아기의 움직임에 안심해서 울고, 다시 시작되는 고열에 아파서 또 울었다.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소리 없이 실컷 울고 나니 속이 시원해졌다. 마음이 개운해지기까지 했다. 내일이면 우리 아기를 만나는구나. 열두 시가 넘은 시간을 보며 이제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네, 생각하며 조금 설레기도 했다.
7월 5일 am 7:00
예정일보다 한 달 일찍 아기를 만나게 되었다. 한 달이나 일찍 만나게 될 줄도, 이렇게 갑자기 만나게 될 줄도 몰랐다. 드디어 자유를 만나기 다섯 시간 전. 가슴이 터질 듯 두근거려서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출산을 몇 시간 앞둔 지금에도 눈치 없이 뜨겁게 열이 올라 해열제를 맞고 있다. 지금도 열이 나고 있으니 아무리 굳게 마음을 먹어도 무서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두려움의 크기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이지만 반대로 기다렸던 아기를 만나는 설렘의 크기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이다.
우리는 이제 완벽히 다른 삶을 살게 되겠지. 내일부터는 자유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얼마나 많이 상상했던 날인지, 예쁘게 그려봤던 시간인지 모른다. 아이의 건강만을 바라게 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의연한 마음으로 자유를 기다리는 일이다. 나를 무겁게 붙잡는 불안한 마음은 이쪽에 버려두고 가벼운 몸으로 자유를 향해 달려가는 일. 둥실둥실 떠올라 지금을 저 위에서 바라보는 일. 그것뿐이다. 언제나 그랬듯 잘 끝내고 즐겁게 웃을 것이다.
7월 5일 am 11:59
남편에게 잘 하고 올게, 인사를 하고 침대에 옮겨져 수술 방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많은 선생님께서 준비하고 계셨다. 작년 가을부터 시험관 준비를 하고, 어렵게 임신을 확인하고, 배가 불러오고 아기를 기다리는 지금까지의 일들이 휙휙 떠올랐다. 드디어 그토록 기다렸던 마지막 순간이구나. 이렇게 떨린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남편과 배 속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기 생각을 하며 그저 간절히 기도를 했다. 자, 이제 아기 꺼냅니다. 선생님 말씀에 모든 신경이 또렷해졌다. 아기를 배 밖으로 꺼내며 온몸이 흔들렸다. 마취 기운에 현실 감각도 없었지만, 자유야 엄마 여기 있어,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11시 59분, 1.8kg의 작은 몸으로 우리의 아기가 태어났다. 드디어 자유를 만난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아 그 짧은 찰나의 순간이 지금까지의 인생만큼이나 길게 느껴졌다. 혹시나 뭐가 잘못된 건 아닌지 너무나 무서웠다. 그때 자유가 힘차게 울었다. 세상에 잘 도착했다고, 나 여기 있다고 씩씩하게 알려주었다.
자유의 울음소리를 들으니 웃음이 났다. 어젯밤의 눈물은, 그동안의 무서움도 아픔도 하나도 기억나지않았다. 아주 작지만 스스로 호흡도 잘하고 건강하다고 했다.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떤 문장으로도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오로지 깊고 깊은 감사함뿐이었다. 저 멀리서 잠깐 얼굴만 보고 자유는 바로 신생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마취에서 깨어나 보니 정말 꿈을 꾼 것 같았다. 잠깐 본 아기 얼굴도, 울음소리도 전부 꿈 같았다. 남편얼굴을 보니 실감이 났다. 자유는 건강하다며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우는 남편의 말에 꽉 조여져 있던 마음이 녹아내렸다. 쑥 꺼진 배를 만지며 안도를 느꼈다. 자유가 건강하게 태어난 것이, 우리가 무사히 세 가족이 된 것이 믿어졌다. 이제 모든 것이 다 괜찮다. 결국은 이렇게 해피엔딩이다.
자유야, 무사히 이 세상에 온 걸 축하해!
에디터 이다은
글·사진 오송민